2024년 8월 4일 일요일

2024년 뜨거운 여름의 경주 여행

"이런 날씨에 경주를 간다고?"

뜨거운 여름에 경주를 가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만약 그렇다면, 이런 날씨에 경주 IC를 진입하자마자 차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는 무엇이며, 대릉원 지구의 노상 주차장을 꽉 채운 자동차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밤 늦게 동궁과 월지(예전에 '안압지'라 부르던 곳), 그리고 월정교의 야경을 즐기기 위해 밀려드는 사람들은? 도심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압도적인 규모와 함께 부드러운 곡선미를 한껏 품고 있는 왕릉군은 그 위를 뒤덮은 초록 풀과 함께 기가 막히게 어우려져 고유한 마티에르를 이루며 한 여름에 더욱 가치를 발한다. 왕릉 앞의 혼유석에는 여름 더위에 지친 무덤 주인이 땅 속에서 스며 나와 '어휴, 꽤 덥군'하면서 나와 앉아서 손부채질을 하면서 왁자지껄 근처를 지나는 관광객을 흥미롭게 구경하고 있을 것만 같다.

2024년 7월의 끝자락 2박 3일은 경주 여행으로 마무리하였다. 기억이 흐려지기 전에 사진과 더불어 여행기를 남기고자 한다. 경주는 문화유적지를 찾아 다니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우리 부부의 단골 여행지이다. 거의 20년 전부터 매년 1회 이상 경주를 다녀왔던 것 같다. 수도권에서 파견 근무를 했던 3년 반 동안은 제외하고.

2019년 월정교가 복원되면서 인근의 야경이 좋은 볼거리가 되었고, 예쁘고 아기자기한 가게로 들어찬 '황리단길'도 인기를 끌면서 경주를 찾는 사람이 더 많아진 것 같다. 그래서 대릉원 입구의 좁은 차도 또한 사람이 몰릴 때에는 매우 혼잡하다. 대릉원은 내부 천마총을 제외하고 무료로 개방이 되었다. 쪽샘 유적발굴관은  현재 운영을 하지 않아서 아쉽다. 월정교를 비롯한 신라왕경 핵심유적의 복원에 대해서 논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현재의 모습 그대로 보존할 것인가, 또는 정확한 고증은 어차피 불가능하니 최대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최소한의 건물이라도 복원해 놓는 것인 옳은가? 참 어려운 문제다.

첫 날은 대릉원과 경주국립박물관을 둘러 보았다. 전시실에서 땀 냄새가 날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숙소에서 쉬다가 저녁이 되어 동궁과 월지의 야간 조명이 멋있다고 하여 늦은 시간에 다시 차를 몰고 나가 보았으나 차량이 너무 많이 밀려서 포기하고 월정교를 둘러 보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고속도로를 따라 경주로 진입하다.

대릉원에서.


'신라'라는 이름은 이런 뜻을 지니고 있다. 덕업일신 망라사방(德業日新 網羅四方) - 덕을 쌓는 일이 날마다 새로워 사방 천지를 아우른다.

무엇이 이렇게 부끄러우신지?

기와(수막새)에 새겨진 신라인의 국보급 미소. 정식 명칭은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보물 제2010호). 현재 쓰이는 LG의 로고 디자인에 영감을 제공했다고 한다.

월정교. 남에서 북쪽으로 건너 온 뒤에 교촌마을 쪽에서 촬영.


둘째 날 오전은 불국사로 향했다. 폭염이 계속되고 있어서 나무 그늘을 벗어나기 싫은 날이었다. 불이문쪽으로 오르는 언덕길은 그늘이 울창해서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아쉽지만 너무 더운 관계로 석굴암은 건너 뛰었다.

점심은 다음 목적지인 감은사터를 둘러본 뒤 근처 바닷가에서 해결하기로 하였다. 몇 년 전에 문무대왕릉이 위치한 봉길해수욕장까지 왔다가 양남 주상절리가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나 미처 들르지는 못하였다. 이번에는 주상절리의 모습이 궁금하여 그 근처에 가서 구경도 하고 점심도 먹기로 하였다.

해안을 따라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이내 양남 주상절리에 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내비게이션은 차를 서쪽으로 돌려서 터널을 뚫고 가게 하였다.봉길해수욕장 바로 남쪽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여기에 월성 원자력발전소가 위치한다. 여러 가지 입지를 고려하여 이 곳에 발전소를 지었을 것이다.

주상절리가 위치한 곳의 바로 북쪽에는 읍천항이라는 작은 항구가 있었다. 차를 해안가에 대고 내리니 바닷가로부터 시원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장님이 직접 운영한다는 읍천횟집에서 물회를 먹었다. 공깃밥을 곁들여 주는 물회는 처음이었는데, 반찬과 탕을 포함하여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다. 다음에 경주를 오게 되면 꼭 들르게 될 것 같다. 양남 주상절리는 새로운 발견이었다.




감은사터 서탑. 

읍천횟집.

'바랗 COFFEE'라는 카페에서. 바람이 시원하여 에어컨을 가동할 필요가 없다. 휴가를 가도 전자결재를 위해 노트북을 늘 갖고 다녀야 한다.


이것이 사진으로만 보았던 양남 주상절리.

'ㅇㅊㅎ' = 읍천항.

남쪽에서 바라본 월성 원자력발전소. 왼편은 동해.  홍보관은 공사 중이라 문을 닫았다. 원자로를 직접 본 것은 처음이다. 저 원자로를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할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가까이 가서 사진을 찍고 싶다'였다. 물론 그럴 기회는 없었다. 혹시나 싶어서 돌아오는 길에 발전소 정문쪽으로 접근해 보았으나 거기에서는 원자로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심슨 가족'의 무대가 되는 스프링필드의 원자력발전소가 생각이 났다. 몽고메리 번즈 사장은 아직도 건재하신가?

돌아오는 길에는 괘릉, 즉 원성왕릉에 들렀다. 경주 여행 때 한 번도 빼놓지 않는 곳. 언제나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네 마리의 돌사자는 표정이 전부 다르다. 나는 이를 드러내며 익살스럽게 웃는 동북쪽 돌사자를 가장 좋아한다. 그러고 보니 여기 놓은 석물들은 1300년 전부터 여기에 있었고, 또 내가 죽은 뒤에도 계속 남아 있을 것이 아닌가? 아, 부럽다...

오늘따라 유난히 처연하게 보이는 영지석불.


마지막 날에도 날씨는 대단히 더웠다. 숙소가 위치한 보문단지 가까이 위치한 종오정이라는 곳을 처음으로 가 보았다. 전통 정원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연꽃은 이미 다 졌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피어나는 꽃이 남아 있었다. 다음 코스는 분황사 - 첨성대 - 계림 - 경주 향교. 단골집인 경주원조콩국에서 시원한 콩국수로 점심을 하고 경주를 떠났다.


종오정 입구에서 찍은 사진.

2024년 여름, 부여 궁남지의 연꽃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여기에서 달랜다.


분황사의 돌사자. 원래 그렇게 만든 것인지, 천 년이 넘는 오랜 시간 동안 풍화를 견뎌내느라 그렇게 된 것인지. 돌사자의 모습은 흡사 단순하게 디자인된 것처럼 보인다. 현대 작품이라 해도 믿을 것 같다.

첨성대 경내에는 그늘이 별로 없다. 남동쪽에 위치한 모과나무 아래 벤치를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승자.

계림으로 들어가면 더위를 잊을 수 있다.

계림에서 바라본 첨성대. 향교쪽으로 나가는 길에 내물왕릉을 만났다.


경주 향교의 대성전.

경주 향교는 물론 삼국시대에 건립된 것은 아니겠지만 마모된 계단에서 세월이 느껴진다.

2천년 초반에 아이들을 데리고 경주에 처음 여행을 왔던 기억이 새롭다. 사실 그때는 휴식을 위해 온 것이 아니라 학회 참석을 위해 급하게 일정을 잡아서 왔었다. 비가 억수로 내리던 여름, 딸아이를 업고 불국사의 불이문쪽 언덕을 오르던 기억이 난다. 이번 여행에서는 평소에 가지 않았던 곳을 발견하게 된 것이 훌륭한 성과라고 하겠다. 더위가 물러나면 다시 또 오고 싶다.

여행의 교훈: '셀카'를 믿지 말자. 주름이나 잡티를 없애 주므로, 내가 생각보다 젊다는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앞으로 할 일: 작년부터 쓰기 시작한 노랫말 '경주'를 마무리하고 멜로디를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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