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자작을 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새로운 것을 계속 만들어 나가는 것. 앰프를 만들어 탑(塔)을 쌓아 나가는 것에 해당한다. 초기 작품일수록 완성도가 떨어지고, 점차 쓰지 않게 될 가능성이 높다. 역사성 이외의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운 것도 있을 것이다. 진공관 앰프를 만드는 사람이 남에게 작품을 흔쾌히 선물하거나 재료비 미만의 싼 수고비만 받고 처분하는 것도 집안에 이를 계속 쌓아 두기 힘들어지기 때문일 수도 있다. 반복적인 '판매' 행위가 되면 현행법을 저촉하는 것은 아닌지도 고려해야 한다. 사업자등록도 해야 하고,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을 어기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봐야 한다. 십중팔구는 안전인증을 받았을리가 없으니, 법을 어기는 것에 해당한다. 대부분의 판매자가 키트 형태로 앰프를 판매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유형은 이미 만들어 놓은 작품을 부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진공관이나 트랜스포머와 같은 주요 부품은 그대로 활용하게 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부순다는 표현은 맞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영어로는 'salvage'란 단어를 많이 쓴다( 'salvaged parts'). 이렇게 하면 좁은 집구석에 앰프의 탑을 쌓지 않아도 된다. 나의 6LQ8 PP 앰프 '티라미수'가 그런 상황이었다. 그리고 출력 트랜스를 감기 위한 권선기와 R코어 출력 트랜스 역시 그러하다.
파견 근무지에서 납땜질을 하기는 쉽지 않다. 물론 잠시 수도권의 기업 연구소에 머물렀던 2019-2021년에는 6LQ8 앰프를 어렵사리 만들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숙소에서 일을 너무 크게 벌이지 않으려고 대전 집에 가끔 내려갈 때에만 조금씩 작업을 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부품을 구입하고 나서 몇 달이 흘러 지난 주말이 되어서야 권선기 버전 2의 외형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다. 구동축(M6 전산볼트)을 지지하는 방법을 다각도로 고민하다가(고민의 흔적) 지금과 같이 한쪽 끝에만 로드엔드 베어링을 쓰는 대단히 단순한 구성으로 결론을 내렸다. 커플링 등 새로 부품을 구입할 일도 없고, 편심에 의한 과도한 진동도 발생하지 않는다. 전동드릴 고정대에는 내경 10mm 베어링이 있지만 전산볼트는 여기에 전혀 체결되어 있지 않다. 처음에는 전산볼트에 무엇이든 돌려 끼워 고정해서 베어링과 체결할 생각이었으나, 드릴 고정대 자체가 그렇게 정밀한 물건이 아니라서 드릴 척에 고정된 구동축과 베어링의 중심이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는 것 같았다. 실제로 이 물건의 원래 구성인 원형톱 어댑터를 드릴에 고정하고 회전시키면 진동이 꽤 크게 느껴진다.
드릴을 고정하는 밴드는 바닥판에 살짝 용접이 된 상태라서 볼트를 강하게 조인 상태에서도 약간의 움직임이 발생한다. |
로드엔드 베어링의 자유도가 높아서 구동축을 드릴 척에서 빼내기가 수월하다. |
AC 모터라서 속도 조절은 조광기로 충분하고, 자석을 이용한 회전수 계수기는 이미 권선기 버전 1에서 구현해 놓았다.
자, 그럼 이것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R코어 출력 트랜스를 감을 예정이다. 2018년 여름 생애 최초로 감은 출력 트랜스는 두어 대의 앰프를 거쳐서 지금은 해체된 상태이다(당시 제작 기록 링크1, 링크2). 첫 작품이라서 예쁘게 마무리를 못했기 때문에 볼 때마다 늘 다 풀어버리고 새로 감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늘 머리를 떠나지 않았었다. 그래서 과감히 해체를 감행하였다! 코어는 하나인데 트랜스포머 제작은 두 번이요, 이를 위한 권선기의 제작도 두 번이다. 이번에 트랜스포머를 만들고 나면, 권선기의 운명도 알 수 없다. 다른 용도의 코일을 감을 일이 아주 드물게 있을 가능성은 있으나, 앞으로 내가 만드는 모든 진공관 앰프의 출력 트랜스포머는 직접 감겠다는 생각은 전혀 갖고 있지 않다. 아니, 심지어는 이번에 만들 트랜스포머의 제원도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임피던스는? 싱글용인가, 혹은 푸시풀용인가? 전부 확정되지 아니한 상태에서 권선기부터 만들고 있는 것이다. 8K PP(UL tap) 출력 트랜스포머를 만들 가능성이 가장 높다. 왜냐하면 이미 갖고 있는 6LQ8 진공관과 PP amp PCB를 쓰면 되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Alesis NanoPiano를 챙겨왔다. 이 녀석이 나와 인연을 맺은 것이 벌써 20년이 넘은 것 같다. 아무리 software synth가 대세라 해도 하드웨어적인 버튼과 다이얼이 달린 외장형 synth가 더 편리할 때가 있다. 확장성이라고는 전혀 없지만...
몇 년 만에 나노피아노의 소리를 들어 보았다. 어지러운 케이블이 마치 벌레의 뱃속을 빠져나온 연가시 같다. 에구, 징그러워라... 앰프는 TDA7265(최근의 개조 기록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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