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25일 목요일

길 건너는 민달팽이 구하기

이슬비가 내리는 하천 옆 산책로를 따라 출근을 한다. 운동을 위해 지하철역을 내려 일부러 산책로를 우회하여 2 km 조금 넘는 거리를 걷는다. 기분에 따라서 수백 미터를 추가하기도 한다. 장마철에 막 접어들었고 밤새 비가 내려서 산책로를 따라 우거진 수풀에는 물기가 가득하다. 한참을 걷다가 눈 앞에 열심히 길을 건너는 민달팽이 한 마리를 발견하였다.

길 건너는 민달팽이.
몸을 한껏 늘인 민달팽이의 길이는 거의 8 cm 정도는 됨직하였다. 땅이 젖은 날이면 평소에는 지렁이들이 그렇게 많이 외출을 하더니 오늘은 큼직한 민달팽이가 느릿느릿 길을 횡단한다. 마치 대륙횡단열차가 사막을 지나는 모습을 상공에서 바라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삐죽 솟아나온 눈은 마치 통신용 안테나 또는 팬터그래프를 닮았다.

떠나는 이들은 누구나 사연이 있다. 목적지에서 무엇인가를 얻기 위하여, 혹은 지금 머무는 곳에서 비롯된 괴로움을 잊기 위하여, 심지어는 그대로 남아 있어서는 더 이상 살 수가 없기 때문에! 한승석&정재일의 2014년 앨범 [바리 abandoned]에 수록된 곡 '건너가는 아이들'의 뮤직 비디오를 소개한다. 가사는 이 글 마지막 부분에 올렸다.



그냥 놔두면 무심히 지나는 행인에게 밟히거나 자전거에 깔릴 것 같아서 구출을 해 주기로 하였다. 근처에서 나뭇가지를 가져다 몸을 밀치니 본능적으로 위험을 직감한듯 몸을 수축시키며 C자 형태로 잔뜩 구부려서 움직임을 멈춘다. 잔뜩 경직된 몸체는 마치 죽은 것 같다. 이것도 천적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하는 본응이리라. 껍데기조차 지고 다니지 않는 연한 몸을 지닌 동물이 무슨 수로 자기를 지치겠는가. 수축한 녀석의 몸을 보니 길을 건널 때는 최대로 몸을 늘였음을 알 것 같다. 일단 녀석의 행선지로 볼 수 있는 길 왼쪽 가장자리로 치워 놓았다. 그런데 구출을 마치고 자리를 떠난 뒤 생각을 해 보니 그쪽은 약간의 흙과 풀이 있지만 결국 콘크리트 벽으로 막힌 곳이다. 차라리 출발지쪽으로 가져다 놓았더라면 하천쪽이라서 민달팽이에게는 더욱 안전한 곳으로의 귀환이 되었을 것이다.

사무실에 도착하여 나무위키에서 민달팽이를 찾아보니 농작물을 갉아먹으므로 해충으로 분류하기도 한단다. 괜히 살렸나? 어차피 내가 민달팽이를 발견한 곳은 농사를 짓는 곳 근처도 아니요, 해충이니 익충이니 하는 것은 철저히 인간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동물을 양분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따진다면 인간과 그 문명은 지구라는 환경에게는 그야말로 해충이고 암종이다..

산책로를 지나면서 만나는 지렁이나 달팽이 등 작은 동물들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는 것이 일종의 습관이 되었다. 같이 산책을 하던 동료의 행동을 보고 따라하게 된 것에 불과하하다. 내가 생물학을 전공한 것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체를 자원화하여 인류에게 이롭게 하자는 뜻은 아니었을 것이다. 모든 생명은 저마다 다 소중하니까.

코로나-19 덕분에 지구 오염이 잠깐 늦추어졌다는 기사를 많이 접한다. 그러나 늘어난 일회용품과 마스크 같은 위생용품 쓰레기가 급증하여 곧 환경에 부담을 주게 될 것이다. 먼 훗날, 쓰레기 매립지를 시추했더니 유난히 마스크가 많이 나오는 지층이 발견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지층 위아래로는 닭뼈가 하나 가득히... 조개무지만 만들어지라는 법이 있는가? 유난히 치킨을 사랑했던 한국인이 조성한 닭뼈무덤, 닭뼈무지가 지금 어디선가 만들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건너가는 아이들 (Young Refugees)
사람들이 말했다. 공주님이 우리의 마지막 희망입니다. 무쇠갓쓰고 무쇠 지팡이 짚고 바리는 길을 떠났다. 설산을 넘고 사막을 지나 바다를 건너갔다. 이 저녁, 세상 어느 모퉁이 가난한 어미들은 먼 길 가는 아이에게 가벼운 짐을 들려주네 더했다가 뺐다가, 뺐다가 더했다가 더할 것도 없이, 뺄 것도 없이 먼 길 가는 아이 손에 건네주는 그 가벼운 짐 모래바람 부는 아프리카 펄럭이는 난민촌 천막 안에서 연기 자욱한 미드이스트 (The Mideast) 폭격으로 무너진 폐허 위에서 히말라야 가까운 티베트 버터기름 불밝힌 곰파 안에서 바다를 건너야 할 아이들에게 사막을 지나야 할 아이들에게 설산을 넘어야 할 아이들에게 빵 몇 조각, 옷 몇 가지, 양말 몇 켤레, 돈 몇 푼, 사진 몇 장, 그리고, 그리고 더할 것도 없고 뺄 것도 없는 몇 마디의 말. "나는 괜찮아, 네가 그곳에 가니까. 넌 우리의 희망이야. 사랑한다" 갈 수 있을까요? 저 바다를 건너, 모래바람 지나 총성과 폭음 속에 무사히 칼바람 부는 얼음산 너머 저 곳에 내가 갈 수 있을까요? 언젠가,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나게 될까요? 아이는 묻지 않았지 아무 것도 묻지 않았지 그 저녁, 세상 어느 모퉁이 가난한 어미들이 먼 길 가는 아이에게 가벼운 짐을 건네줄 때 한없이 무거운, 한없이 가벼운, 그 약속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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