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및 조국 '사태'를 겪으면서 연구진실성에 대한 일반 대중의 이해 수준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수준으로 올라갔다.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만든 논문을 이용하여 실익을 취하는 일은 앞으로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실익이라 함은 연구자로서 이름을 알리거나, 승진·채용 혹은 연구비 신청에서 업적으로 활용하는 것 또는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자료로 쓰이는 것을 말한다. 위조 또는 변조한 데이터를 이용하여 만든 연구 논문은 제3자가 이를 적발하거나 권위를 갖춘 기관에 의해 재현을 거쳐 위·변조가 있었음을 검증하는 것도 가능한,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연구 부정 행위이다. 종종 BRIC 사이트에서는 '매의 눈'을 가진 네티즌들이 논란이 되는 논문으로부터 날카롭게 위·변조된 그림을 찾아내고는 한다.
올바른 저자 표기를 판별하는 것은 그보다 조금 더 어렵다. 쉽게 말해서 정당하게 제 몫의 일을 하지 않고 논문에 저자로 무임승차를 한 것을 가려내는 일 말이다. 논문 자체를 과학적으로 조사하는 것만으로는 이를 알기가 대단히 어렵다. 물론 정황만으로 의심을 하기는 쉽다. '어라? 고등학생이 논문의 제1저자네? 소문에 의하면 교신저자가 아버지라며? 뭔가 수상하다!' 그러나 이를 입증하는 것은 매우 까다롭다. 각 저자의 연구 노트를 점검하여 실제로 어떤 일을 했는지 소상히 파악하거나, 연구 혹은 논문 작성 당시의 상황을 깊숙하게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쉽지 않고, 그에 따라서 잘잘못을 가려내는 것 역시 어렵다.
일고여덟명의 저자가 참여한 논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각해 보자. 모든 저자가 수시로 한데 모여서 얼굴을 익히고, 연구와 논문 작성을 점검하며, 각 저자가 어떤 부분을 기여했는지를 만장일치로 확인하는 그런 절차를 거치는 것도 아니다. 한번도 직접 만난 일도 없는 사람들이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이메일을 주고받으면서 한 편의 논문을 만드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저자 그룹에 포함되는 순서라든가 업적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주저자(보통 제1저자와 교신저자)는 최종 투고본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서로간에 자연스럽게 합의가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종종 정치적인 고려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너무 많은 공동 제1저자와 공동 교신저자가 남발되는 일도 적지 않으며, 이러한 현실은 썩 바람직하지는 않다. 그러나 대부분 그 합의는 암묵적인 것이지 합의서 양식을 돌려서 사인을 받거나 하지는 않는다.
어쩌다가 미성년 저자가 포함된 논문에 연루되어 곤욕을 치르고 있다. 나는 중간쯤에 위치한 정당한 공저자로서 연구 과정에 직접 참여하였고(그 누구의 손을 거치지 않고 내 손으로 시퀀싱 데이터를 분석하고 그림과 표를 만들었으며 논문의 본문을 작성함) 당시에는 미성년 저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였다. 그런데 이제와서 내가 이 논문에 대해서 어떤 기여를 했는지를 소상히 적어내야만 했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족히 세 번은 소명 자료를 냈던 것 같다.
이 논문은 미성년 저자가 포함되어 있다고 하여 수준이 낮은 논문도 아니다. 미성년 저자와 특수 관계에 있는 저자(두 명의 교신저자 중 하나임)는 다른 기관 소속이다. 그런데 그 소속기관에서는 문제를 삼지 않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미성년자가 저자로 포함되는 과정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은(막지 못한?) 단순 공저자인 나는 정부연구기관 소속이라는 이유로 몇 차례에 걸쳐 소명 자료를 내야만 했다. 흠, 그것을 사전에 알고 막았어야 하는 것인가? 그 미성년 저자가 정말 연구에 참여를 했고 저자로서 합당한 위치에 있었음을 입증할 책임은 교신저자, 특히 특수 관계에 있는 교신저자라 생각한다. 그런데 지난번 조사에서는 내가 그 미성년 저자와 특수관계라는 것이다. 그 교신저자와 내가 아는 사이라서 그렇다는 것이다. 나는 그 미성년자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내가 생각하는 조사 시나리오는 이러하다. 조국 사태를 통해서 미성년 저자가 포함된 논문이 대학 입시에 부정하게 쓰일 수 있다는 것이 국가적 이슈로 부각되어 더 이상 덮어둘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으니 각 부처에서는 이를 전수 조사하게 되었을 것이다. 조사 후 조치를 취했다는 보고를 남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까. 논문은 하나인데 책임을 질만한 저자가 대학 소속이면 교육부에서, 정부출연연구소 소속이라면 과학기술부(일반인에게는 생소한 NST라고도 불리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로 토스했을 것임)를 통해서 따로 조사를 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슬프게도 두 상급기관이 하나의 논문을 다루는 심각함이 다르다! 동일한 논문에 대해서 미성년 저자 포함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저자(대학 소속)는 교육부를 통해서 더 이상 문제를 삼지 않기로 한 반면, 단순 공저자인 나는 NST를 통해서 몇 번에 걸쳐 집요한 조사를 받는 것이다. 아, 정말 조사하시느라 대단히 수고가 많으십니다...
[연합뉴스] 수상한 미성년 저자 논문 22건...과기부 정밀검증 2019년 12월 9일 기사. 교육부는 뭐 하시나요?
나의 책임은 도대체 무엇일까? 논문의 최종 원고가 투고될때 모든 저자의 이름과 소속 기관을 꼼꼼히 훑어보고 왜 이런 사람이 석연치 않게 저자로 포함되어 있느냐고 따졌어야 하는가? 아니, 내가 넘겨받은 raw data가 진실한 것인지 혹은 아닌지를 따져야 하나? 불행하게도 모든 저자가 논문의 투고용 최종본을 점검할 기회를 가지는 것도 아니다. 내가 담당한 부분의 본문과 그림 혹은 표를 보내고, 투고 이후에 비로소 저널 웹사이트로부터 제출본을 다운로드하여 전체 원고를 보게 되는 일도 허다하다. 많은 저자가 참여하여 분업화가 이루어는 요즘 추세로는 이상한 일도 아니다. 공저자는 대개 자기가 작성한 부분과 이름, 소속, 그리고 연구비 사사가 제대로 표기되었는지 점검하기에 바쁘다. 내가 주저자가 아니라면 다른 저자에까지 신경을 쓸 겨를이 없는 것이다.
저널에 따라서는 다르겠지만, 투고 시점에 교신저자에게 '모든 저자는 최종 투고되는 원고의 내용에 동의하였음'을 확인을 받기도 한다. 넓게 본다면 저자 포함 여부, 순서 및 역할도 동의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확인 절차는 보통 교신 저자 선에서 마우스 클릭으로 처리되고는 한다. 참여한, 아니 참여할 연구자의 서명을 개별적으로 받아서 제출하는 것은 정부 지원 연구 과제에 신청서를 낼 때 정도이다. 만약 다음에 공동 작업을 통해서 논문을 같이 쓰게 되면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 미리 따져봐야 되겠다.
연구 논문의 Acknowledgment에 보통 표기하는 '과제 사사' 역시 연구 부정 행위의 잣대로 조사하면 웃지 못할 일이 많이 벌어질 것이다...
댓글 4개: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사회신뢰도가 낮으면 이렇게 불필요하고 비생산적인 일들에 사회적 비용을 낭비하게 됩니다 ㅠㅠ 암튼 분명한 것은 조국장관 관련된 일은 과학연구신뢰와 무관하게 매우 정치적인 사건이라서 연구윤리를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늦었지만 박사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댓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공저자로서의 제 책임을 따지는 댓글이 아닐까 긴장했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아~ 이런. 제 이름을 안 남겼네요 ㅎㅎ 김병용 드림
누구신가 궁금했습니다. 정체를 밝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구독버튼이 활성화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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