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5일 일요일

2020년 첫 포스팅, 그리고 독서 기록 <워커홀리즘>

2020년에 접어든지 벌써 5일째를 맞는다. 1818, 1919, 2020, 2121, 2222... 앞 두자리와 뒤 두자리의 숫자가 같은 해가 돌아오려면 약 100년의 주기가 필요하다. 살아있는 동안 한 세기가 바뀌는 연도를 맞거나, 앞뒤 숫자가 같은 연도를 맞는 행운을 모두가 누리는 것은 아니다. 2020년. 기억하기도 쉽고 뭔가 의미가 있을 것도 같은 연도이다. 197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2000년은 참 먼 미래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벌써 2020년이 되고 말았다!

새해를 맞는 감흥은 예전보다 많이 단순해졌다. TV를 통해 별 시덥지 않은 시상식 프로그램을 생방송으로 보면서도 보신각을 치는 현장 중계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했던 열정도 많이 식었다. 연말 방송국 시상식에서는 왜 그렇게 공동 수상을 많이 하는지? 게다가 연말에 불거져나온 집안의 여러 소소한 사건들이 새해를 맞는 기분을 많이 가라앉게 하였다.

2019년의 가장 큰 변화는 근무지를 바꾼 것이었다. 직장을 바꾼 것이 아니라 파견 제도를 활용하여 민간 기업의 연구개발 및 기술혁신 지원을 위해 2년간 자리를 옮긴 것이다. 출연연과는 다른 일반 기업의 분위기를 익히고 나의 역량을 이용하여 기업에 기여한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 나름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그러한 와중에도 외부 생명정보학 기초 강의나 논문 마무리를 하는 것이 큰 도전이었다.

파견 근무지 숙소의 쓰레기 및 재활용품 배출장소에서는 종종 쓸만한 물건을 특템(?)하는 일이 생긴다. 가구, 의류, 가전제품, 책 등이 그러하다. 이러한 물건이 완전히 소각 또는 매립을 통해 완전히 폐기되거나 갈갈이 찢기어 다른 용도로 쓰일 물질로 환원되기 전에 생명을 연장하도록 만드는 것도 보람이 있는 일이다. 이번에는 읽을만한 책을 많이 구해왔다.


올해 첫 독서는 브라이언 로빈슨 지음/박정숙 옮김 '워커홀리즘(2009)'이었다. 일을 하는 것은 가족을 부양하고 자기계발 및 사회에 기여하기 위함이고 게으른 것은 악이므로, 주어진 할당량보다 더욱 넘치도록 일을 하는 것은 미덕이요, 이를 권장하고 독려하는 사회 분위기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일을 더 하기 위하여 거짓말을 하고 일거리를 몰래 싸들고 퇴근을 하게 된다면? 몰래 가져온 일이나 몰래 숨긴 술병이 동등한 것이라고 생각해 보자. 이러한 수준에 이른다면 일중독도 역시 병적인 상태인 것이다. 벅찬 일거리를 처리하면서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것을 즐기고 있다면('워커오르가즘'을 느끼기 위하여) 이는 분명히 중독 증세이다. 81쪽에 나온 '일중독의 실체'를 인용해 본다.

  • 일중독은 일중독자가 직장으로 가져오는 강박장애이다. 즉 일중독은 직장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 일중독은 정신건강상 문제이며 미덕이 아니다. 그것은 직장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보다 더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 수퍼히어로의 얼굴은 일중독자가 성취와 업적을 이용하여 숨기고 있는 깊은 내면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 채 문제를 은폐한다.
  • 일중독자는 일을 위해 자유시간과 가족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자기만족을 위해 일을 한다.
  • 대부분의 일중독자들이 일을 즐긴다고 말하지만 일에서 얻는 만족은 일중독의 필요조건이 아니다.
  • 일중독자들은 그들이 스스로 야기한 스트레스로 분비되는 아드레날린에 화학적으로 중독되어 있다. 그들은 일로 느끼는 황홀감을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인 위기를 갈망한다.
  • 일중독은 1차적 중독이 될 수도 있고 다른 중독과 섞인 2차적 중독이 될 수도 있다.
  • 직장에 고용된 상태에서만 일중독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일중독은 모든 강박적 활동에서 일어날 수 있다.
  • 일중독에서 벗어나 삶의 균형을 회복했을 때 업무의 질과 생산성은 향상되고 일중독자들은 직장에서 행복해지고 더욱 능률적으로 일할 수 있다.
  • 일중독을 줄이고 삶의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업무시간 축소 그 이상이 요구된다. 지금까지 무시해왔던 삶의 다른 부분들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진지한 자기반성과 통찰이 필요하다.

주50시간 근무니 최저임금제 도입과 관련하여 사회 전체가 들썩이는 것을 보면 아직 우리 사회는 최저 수준의 생계를 위해 과도하게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수준을 지나서 선진국 수준의 보편적인 복지가 이루어진 사회라면 이 책이 좀 더 널리 받아들여지리라는 점이 다소 아쉬었다. 지금 한국 사회의 모습을 보면 경제상황이 너무나 불투명하여 앞으로 근로 및 복지 여건이 더욱 나아지리라는 예상을 전혀 할 수가 없다는 것이 나무나 안타깝다.

일중독은 꼭 직장의 일하고만 연결된 것은 아니다. 다른 유형의 일중독 중에는 돌봄중독(careholic workaholic)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이는 타인에게 과도한 책임감을 느끼고 타인의 감정을 지나치게 이해하며 타인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강박적인 욕구를 느끼는 것을 말한다. 대부분의 부모는 이렇지 않던가?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아무리 과다해도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 오지 않았던가?

일과 놀이의 경계가 흐려지고, 각종 스마트 기기에 의해서 가정 또는 휴식의 순간에도 일이 침투해 들어오는 것도 일중독을 만연하게 만드는 주요 요인이 된다. 기독교·자본주의적 노동관, 그리고 첨단 기술이 우리를 점점 더 일에 중독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노동은 신성하다는 생각에 더하여 우리의 노력을 통해 좀 더 '부강한(아, 이 70년대스러운 용어여!)'나라를 만들게 한 다음에야 개인의 여유와 행복을 찾자는 전체주의적인 발상이 우리를 더욱 일에 몰두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는 북한과 대치한 상태이고 - 때로는 경쟁국 전체가 우리의 적이 되기도 한다 - 이렇게 게으르게 살면 뒤처지고 '나라가 통째로 넘어간다'는 말을 얼마나 많이 들어왔던가?

다음의 표에서 정말 일을 잘 하는 사람(특히 리더의 미덕을 갖춘 사람)과 단순한 일중독자의 차이를 알아보자.



퇴근 무렵 가방을 챙기면서 인쇄한 논문 등 일할 거리를 늘 조금씩 담는 나의 모습도 어딘가 모르게 일중독자의 모습을 닮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집에서 이를 꼼꼼하게 챙겨 읽지는 못한다. 파견기업의 업무용 이메일을 집에서 열어보지 않는 것도 지나친 일중독을 막기 위한 장치가 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서버 주소를 암기하고 있지 않아서 그런 것이지만!

인에이블러(enabler: 다른 사람을 돕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의 나쁜 행동의 개선을 막는 사람.36쪽에 처음 등장)에 대하여 좀 더 알아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과 함께 2020년 첫 포스팅을 마치고자 한다.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