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19일 월요일

잘 쓴 글씨로 좋은 평가를 받으면 특혜인가?

바꾸어 말하자면 글씨를 못쓴다고 불이익을 받으면 편견이고 차별인가? 오늘 경향신문 인터넷판에 실린 기사를 소개해 본다.

글씨마저도 스펙 시대...'지렁이체 바꿔야 산다'

이 사진의 저작권은 누구에게 있는지 나는 모른다. 오늘(2019년 8월 19일) 경향신문에 입력된 기사(위의 링크 참조)에 딸린 이 사진에는 출처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다. 놀랍게도 같은 신문 2005년에 11월 10일에 실린 기사 '[피플] 악필, 너는 내 운명인가?'에도 같은 사진이 쓰였었다. 보고서 표지의 제출일은 2005년 11월이다. 이것이 실제 과제물로 제출한 보고서를 촬영한 사진인지(허락은 받았을까) 혹은 기사의 이해를 위해 연출한 것인지를 나도 모른다. 만약 실제 존재하는 보고서를 촬영한 것이라면, 보고서를 쓴 사람에게 어떤 허락을 받아야 하나? 얼굴을 찍은 것은 아니니 초상권은 아니고, 그렇다면 저작권인가? 그것도 아닐지도 모른다. 물론 이름(성은 살짝 가렸지만)과 학번이 노출되었으므로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공개한 것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기자는 이런 보고서 표지를 그냥 찍어서 기사에 곁들이기 방식으로 사용한다 해도 법적 책임은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서 사용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상황이 꽤 많이 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기사의 내용만을 보면, 시험 답안을 악필로 써서 점수가 깎인 법학전문대학원 학생이 글씨 교정학원에 등록하면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부당함을 토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가뜩이나 취업도 안되고 '스펙'을 쌓느라 시간과 금전적 부담을 져야 하는 요즘 사람들에게 글씨까지도 예쁘게 잘 쓰라고 은연중에 강요하는 사회가 되었음을 비판하는 의도로 쓰여진 기사이다.

만약 옷 매무새나 목소리로 사람을 평가한다면 그건 틀림없이 차별이라고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글씨라면? 요즘은 책장을 넘겨가며 정보를 습득하는 일도 과거에 비해서는 월등히 줄어들었고, 손으로 글씨를 쓰는 일도 마찬가지로 줄었다. 쉽게 말해서 계약서나 카드 결제기에 서명을 하는 정도 외에는 글씨를 전혀 쓰지 않아도 일상 생활에 불편함이 거의 없는 시대에 잘 쓴 답안에 더 높은 점수를 부여하고, 심지어 입사 지원 서류 중 하나로 자필 자기 소개서를 쓰게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사실 입사 시험을 보는 그 자리에서 자필 서류를 쓰게 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대필도 가능한 세상이다. 글씨를 얼마나 잘 쓰는지의 여부로 편견을 가지면 안되니 앞으로는 평가 등을 위해서 절대 손으로 쓴 글씨를 내서는 안되게 해야 한다고 약간 급진적인 주장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글씨는 일단 정보의 전달이 주된 목적이다. 정보 전달이 심각하게 어려울 정도의 필체라면 고쳐야 한다. 이는 취업때에 임박해서 학원을 찾아다니면서 해결할 것이 아니라, 초등학교 및 중고등학교 때 어느 정도는 훈련이 되었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각종 과제나 답안지 등을 손글씨가 아니라 손글씨로 인쇄하여 냄으로써 손글씨를 못쓰는 사람에 대한 차별을 없애고 배려하는 효과가 있다면 워드 혹은 파워포인트에 온갖 현란한 장식을 넣어서 현혹함으로써 나타나는 부작용도 분명히 존재한다. 손글씨 학원 못지 않게 파워포인트를 '그리는' 기술을 익히는 것도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는 행위니까 말이다. 그럴 것이라면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히도록 지나치게 많은 분량을 요구하지 않는 수준에서 정성들여 손으로 쓴 과제나 답안지를 제출하도록 하는 것이 더욱 심플하다.

만약 사법시험 2차시험 답안을 컴퓨터로 쓴다면 어떨까? 이러한 요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다고 한다(2002년 기사 링크). 그러나 당시의 기준으로는 외국에서도 이러한 사례가 아직 없고, 아마 시험장에서 컴퓨터로 쳐서 답안을 입력하게 된다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생길 것이다. 예를 들어 잘 작성된 답안이 흘러나와서 학원가를 돌아다닐 수도 있고, 전산화된 자료를 몰래 들고와서 시험장의 컴퓨터에 입력하려는 시도가 이어질 것이 뻔하다.

나는 식구들 중에서 가장 글씨를 못쓰는 사람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글씨를 못쓴다고 지적을 받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글씨에 대해서는 늘 자신감이 없었다. 교회에서 학생회 활동을 하던 고등학생 시절, 행사 계획서를 손으로 작성하여 장소 섭외를 위하여 찾아간 곳의 책임자(나의 작은아버지)께서 하셨던 말씀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야, 너희는 타자기도 없니?"

교회의 공식 업무에서는 타자기를 쓰던 시절이었지만 학생회에서 만드는 보고서나 계획서는 모두 손으로 쓰던 시절이었다. 물론 나는 이 일로 좌절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의 글씨가 개성이 있고 잘 쓴다고 칭찬을 하는 사람은 나의 아내였다.

잘 쓴 글씨를 타인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면 이는 평가의 기준이 되고 권력이 작용하는 대상이 되고 만다. 쉽게 말해서 글씨가 그게 뭐냐고 한 마디를 하면 요즘 널리 쓰이는 표현을 빌리자면 꼰대질을 하는 셈이다. 그러나 글씨의 기능성을 생각하면 효과적인 내용 전달을 위해서는 어느 수준의 필체는 되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두려워할 것이 있다면 AI가 글씨체를 평가하는 시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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