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10일 일요일

여권 사진을 찍으며

9월에 다녀올 국외출장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권의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확인하였다. 이제는 유효기간이 만료된 여권을 다시 만드는 것은 신규 발급과 같이 취급하는 것 같다. 여권 재발급은 유효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수록 정보의 정정 및 변경, 여권 분실, 훼손, 사증란 부족 등의 이유료 여권을 다시 발급받는 것을 뜻한다.

여권 발급에 필요한 구비서류는 여권발급신청서, 6개월 이내 촬영한 여권용 사진 1매, 신분증이다(외교부 여권안내 홈페이지 링크).

휴대폰으로 그렇게 많은 사진을 찍는다 해도 증명에 필요한 개인 사진은 사진관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사진관에서 내 사진을 찍은 것이 언제였을까? 꼭 10년 전 여권을 다시 만들 때, 그리고 2011년 승진을 하면서 출입증을 재발급 받을 때가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여권 사진을 찍기 위하여 근처의 사진관을 찾았다. 세 컷 정도를 촬영한 뒤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게 한 다음 그자리에서 보정을 완료하여 총 8 장의 사진을 넘겨받았다. DSLR로 찍은 내 얼굴을 컴퓨터 모니터로 상세하게 펼쳐보니 이제는 거스를 수 없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인다는 것이 약간 슬펐고, 생각보다 촬영 후 보정 작업을 많이 한다는 것도 놀라웠다. 약간 뻗쳐나간 머리카락, 좌우 균형이 맞지 않는 어깨 정도는 문제가 아니었다. 촬영 전 거울을 보면서 머리를 정리할 필요도 별로 없다고나 할까. 촬영을 할 때 가장 나에게 주문한 것은 고개의 각도와 표정 정도였다. 나머지는 보정으로 해결 가능하니까 말이다.

'고개의 각도'를 좀 더 상세히 설명하자면 항공기에서 흔히 쓰는 용어인 롤링(rolling), 요잉(yawing), 그리고 피칭(pitching)으로 나누어 보면 된다. 얼굴을 정면에서 후면으로 관통하는 선을 x 축, 얼굴을 촤우로 관통하는 선을 y 축, 그리고 이에 대해 수직으로 위치한(즉 목뼈의 방향) 선을 z축이라 하자.
  • 왼쪽으로 갸우뚱하게 해 보세요(x축에 대한 회전) - 롤링
  • 오른쪽으로 돌려보세요(z 축에 대한 회전) - 요잉
  • 고개를 좀 들어보세요(y축에 대한 회전) - 피칭
자료 출처: 위키피디아(링크)

자기는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진사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보면 그렇지 않다. 거울로 자기의 모습을 보아도 어느쪽으로 머리가 기울었는지는 쉽게 알 수 있다. 단, 피칭의 정도는 다른 사람이 옆에서 봐 주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근골격계 질환이 있거나 늘 바르지 못한 자세로 있는 것이 습관화된 상태라면 위에서 설명한 세 가지 축에 대해서 머리가 돌아가 있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세 컷의 사진 중에서 고객이 원하는 것을 하나 고른 다음 실제 보정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교차하였다. 사진사는 보정하는 과정을 옆에서 그대로 지켜보게 하였었다.
'나중에 오세요' 혹은 '잠시 차 한잔 하시면서 기다리세요' 하지 않고 작업하는 모습을 다 지켜보게 하는 것은 작업자 입장에서 불편하지 않을까?
사진을 촬영하면서 고객에게 이렇게 저렇게 해 보라고 주문하는 것과, 사진 촬영을 한 뒤에 수정하는 것 중 사진사는 어느 것을 더 선호할까?
주름이나 잡티를 제거해 주는 정도는 모르겠지만, 증명을 목적으로 하는 사진에서 윤곽을 수정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 아닐까?
사진은 정말로 현실의 기록인가? 우리는 사진이라는 기록을 남기기 위하여 현실을 '조작'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


의도하지 않았었지만 정성들여 준비한 뒤에 찍은 2018년 6월 나의 모습이 사진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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