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24일 일요일

수치화와 평가가 전부는 아니다

풍족한 간식, 그리고 평가서.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교육장의 모습이다. 교육도 일종의 서비스이므로 피교육자, 즉 고객에게 더 나은 인상을 줄 수 있는 노력을 제공자가 하게 마련이다. 그러면 당연히 평가서에는 좋은 점수를 쓸 가능성이 높아진다.

지난 금요일 직장에서 열렸던 연구역량강화 교육에 참여했었다. 요즘은 이런 교육을 제공하는 전문 기관이 생겨서 온라인 강의를 듣거나 집합 교육에 참석하기도 하고, 때로는 이렇게 현장에 와서 실시하는 집합 교육에 참여하기도 한다. 교육장에 들어가니 냉장식품이 든 스티로폼 상자가 여럿 보였다. 보통 물이나 커피, 쥬스와 과자 정도가 있는 정도인데 웬 냉장식품? 진행자가 상자를 열고 꺼내는 것은 일회용 용기에 담긴 생과일 쥬스와 아주 조그맣게 자른 티라미수 케익 등이었다. 오~ 이런! 이렇게 준비가 철저하다니! 나에게 감동이 밀려왔을까? 그건 아니었다. 물론 맛있게 먹기는 하였다. 하지만 먹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였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일회용 포장재는 다 어떻게 하고?

이렇게 길들여진 나 자신에게도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회의장이나 교육장에 가면 간식거리로 무엇을 주는지 기대를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기 때문이다. 과도한 칼로리가 건강에 도움을 주지 않는 것을 물론이요, 간식을 담는 일회용 포장재의 환경 오염 문제도 심각하다. 아무데서나 먹을 것을 입에 달고 살아야 하는 '모바일 간식(혹은 음료)'에 대한 생각은 다음에 정리하여 글로 남기고자 한다.

그 다음은 평가서에 대한 이야기이다.
계량하지 못하면 관리할 수 없고, 관리할 수 없으면 개선할 수 없다.
피터 드러커의 유명한 말이다. 강의 평가서를 받는다는 것은 이를 개선하기 위한 지표로 삼기 위함이다. 매우 좋은 목적이다. 그러나 계량(평가)를 하려면 상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올 봄에 며칠 동안 열리는 집합 교육에 참석한 적이 있다. 마지막 날 수료식을 마치고 강의 평가서를 작성해야 했다. 평가서 양식에는 약 10 사람의 강사 이름이 적혀있고 이에 대한 만족도를 여러 항목에 대해서 수치화하여 적어야 했는데, 강사 이름만으로 그 강의가 어떤 것인지 잘 떠오르지 않았다(내가 당시 상황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대충 평가서를 적어야만 했었는데, 이번에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하여 아예 평가서를 펼쳐놓고 강의를 듣기 시작하였다. 강의를 들으면서 즉시 평가를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오히려 강의에 집중에 되지 않는 것이었다. 강의(교육)란 지식을 전달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목적이다. 그런데 평가서를 펼쳐놓고 강의를 들으니 마치 내가 강사의 강의 능력을 평가하는 면접장에 앉은 면접관이 된 느낌이었다. 교재는 잘 짜여졌나? 전달력과 강의 태도는 우수한가? 이런데 집중을 하면서 오히려 강사가 전달하는 내용은 한 귀로 흘려듣게 되는 것이었다. 책을 읽는 독자에서 문학 평론가의 입장인 척 하려니 오히려 책이 주는 정보와 감동에 집중이 되지 않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강의를 들으면서 평가서에 체크를 하는 것을 그만 두었다.

일년에 한 번 정도 학회 참석을 위해 국외 출장을 간다. 정부 연구비의 지원으로 다녀오는 것이니 출장 보고서를 남겨야 한다. 대충 작성하는 사람도 있고, 동행인 표시라는 훌륭한 제도가 있어서 다른 사람이 작성한 보고서에 이름만 얹으면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일에 대해서는 남들보다 좀 더 꼼꼼한 편인 나는 충실한 보고서를 만들고자 강연 내용을 열심히 메모를 한다. 그런데 때로는 이 일이 너무 과도해서 정작 영화나 책을 보듯이 편안히 음미를 하지 못한다. 이 일은 '평가'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일이지만, 기록 행위 자체는 강의 평가서를 만드는 과정과 매우 흡사하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전부 수치화하여 순위를 매길 수도 없고,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해야 한다는 자본주의적 정서가 사람을 지치게 한다. 가전제품 수리를 위해 서비스 센터를 다녀온 뒤 전화로 서비스 만족도에 대한 조사를 하고, 연말이 되면 공공기관의 인프라 부서는 고객만족도 평가를 한다. 큰 비용이 들어가는 정책을 펼치기 전에 여러 가지 형태의 설문 조사를 하는 일도 잦다. 대부분 설문지의 문항에는 어떤 의도가 담겨있기 일쑤이고, 그 결과를 해석하는 것에도 마찬가지의 의도가 작용한다. 모 일간지에서 정례화한 대학순위평가라는 것도, 그 일간지의 인지도·사회적 영향력·발간 부수와 구독률(종이 신문을 별로 보지 않는 요즘은 의미가 없는 지수이지만)·그리고 더욱 중요하게는 광고 수주를 높이기 위한 철저한 기획의 결과물이 아니었을까? 이 평가에서 좋은 순위를 받기 위한 대학의 노력은 좀 더 좋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학교 본연의 취지와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계량화와 평가는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모든 일을 다 이렇게 처리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세상에는 수치로 환원할 수 없는 가치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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