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22일 토요일

무엇이 우리의 즐거운 컴퓨터 활용을 방해하는가?

우연한 기회에 맥북 프로를 접하게 되면서 어떻게 해야 이를 효율적으로 활용할지 그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정말 많은 글들을 찾아서 읽었다. 맥을 업무용 주력 기기로 사용하는 동료가 직접 찾아와서 몇 가지의 유용한 기법과 사이트를 알려준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Mac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접하는 어려움은 다만 사용 기술의 부족 때문만은 아니다. 이를 둘러싼 여러 편견과 불편한 시선이 분명히 존재한다. 나는 평소에 Mac을 쓰는 사람에 대해서 특별한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다. 

"흠, 멋진 컴퓨터군."

이게 내가 느끼는 감정의 전부였다. 언젠가 이를 꼭 써보리라고 한번도 생각한 적은 없었다. 과거에는 Mac이 디자인, 출판, 음악 등에서 매우 강점을 갖는 기기였고 지금도 해당 분야에서는 꽤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이는 나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분야이다. 적어도 '필요해서 쓴다(써야 한다)'라는 논리는 나와 맞지 않는다. 취향에 따라 선택하여 쓸 수 있는 도구일 뿐이다. 그런데 인터넷을 뒤지다 보니 Mac이 정말 필요한가 아닌가에 대한 논쟁을 꽤 많이 보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카페에서 웹서핑이나 하려고 Mac을 쓰는 것은 허세라는 글까지! 만약 macOS가 익숙하지 않아서 Boot Camp를 통해 설치한 Windows에 전적으로 의지한다면 더욱 진정한 허세라는 것이다. 가격대가 꽤 높고 익숙해지려면 약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 Mac을 일종의 자랑거리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다. 즉, 아무나 쓰는 물건이 아니라는 자긍심 정도?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 Windows와 너무나 다른 사용법은 처음에는 어렵지만 계속 쓰다 보면 언젠가는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일반인이 다양한 종류의 컴퓨터(OS, 소프트웨어 포함)를  쓰는데 어려움을 겪는 우리의 환경에 있다고 본다. Windows가 따로 설치되지 않은 Mac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의견에 나도 동의한다. 혹은 별도 작업을 위한 Windows 컴퓨터가 하나쯤은 여분으로 있을 것이다. 바로 공공기관/금융기관 등의 웹사이트 때문이다. 점차 나아지고는 있으나 과도한 ActiveX로 범벅이 된 각종 웹사이트, 그리고 공인인증서라는 해괴한 인증 방식이 Windows 이외의 플랫폼을 쓰고 싶어하는 소수(!) 사용자에게 어려움을 안겨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금융쪽 사이트는 휴대폰을 이용하여 대부분 해결이 된다는 것.

그런데 여기서 역설적인 현실이 하나 드러난다. 우리는 개방화라는 것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절대 선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폰-아이패드-맥으로 연결되는 애플의 제품 및 서비스가 어딘가 모르게 멋져 보이고 안정적으로 구동되는 것 같고 해킹이나 바이러스에 취약하지 않은 이유가 어쩌면 애플의 폐쇄적인 생태계에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다. Windows가 돌아가는 하드웨어는 얼마나 많은가? 그에 비하면 macOS는 오로지 애플의 제품에서만 돌아간다. 그러니 당연히 시스템 최적화가 상대적으로 용이하고 오류 발생이나 바이러스가 적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폐쇄적 환경에서 기인한 장점과 애플 제품에 대한 고객의 충성도와 만족감이 오묘하게 결합하여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 되고 있다. 정말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익숙해짐으로 인하여 해결되지 않는 두번째의 문제를 이야기해 보자. 바로 생활 밀착형 소프트웨어인 문서작성과 그 주변부의 것들에 관한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아직도 모든 공문서를 HWP 형식으로 제공한다. 각종 신청서(특히 연구개발에 관한 것) 역시 HWP가 기본이다. 과거 국산 소프트웨어 개발사를 지원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철학에서 이러한 정책이 비롯되었겠지만, 다양한 문서작성기가 존재하고 공개형 다큐멘트 포맷도 존재하는 마당에 아직도 HWP를 고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특정 소프트웨어를 쓰게 강제하는 것도 문제지만, '갑'이 요구하는 획일화된 문서 스타일이 더욱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단적인 예로서 과도한 의 사용을 지적하고 싶다. 표라는 것은 간결함에 그 생명이 있다. 그러나 표 작성에는 많은 노력이 들기에 꼭 필요한 곳에만 작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쪽 전체가 표라면? 심지어 여러 쪽에 걸친 문서 전체가 표라면 그건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정부 기관에서 제공하거나 혹은 제출해야 하는 문서의 양식을 보라. 전부가 표 일색이다. 지금 통용되는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신청서 및 계획서는 표지를 비롯하여 예산안 등이 전부 표로 되어있으며, 심지어 모든 절의 내용을 각각 한 cell짜리 표에 집어넣는 일도 부지기수이다. 연차실적계획서는 더하다, 문서 전체가 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표를 쓸 일이 전혀 없는 스타일의 문서임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쪽 전체를 하나의 네모로 둘러쳐서 글자들을 가두어 놓는다. 혹자는 이것을 가리켜서 '높은 분들이 보기 편하게' 만들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설상가상으로 아무리 긴 문서라 해도 한두쪽의 요약서로 축약할 수 있다는 파워포인트적 사고방식이 우리의 글 쓰는 방식을 형식이라는 틀에 가두고 말았다. 보고서란 윗분들에게 '올리'는 것이니 내용보다 외양을 더 중요시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표 형식이 가장 필요한 문서는 무엇일까? 손글씨로 빈 칸을 채워야 하는 - 이미 종이에 인쇄된 - 빈 양식의 문서 아닐까? 

정리를 하자면 우리의 즐거운 컴퓨터 생활을 방해하는 요소는 지식과 기술의 발전으로 전부 해결 가능한 것이 아니다. 의식과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궁극적인 해결이 될 수 없다, 이것은 컴퓨터 생활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생활에 걸쳐있는 것이다. 우리의 의식 밑바닥으로부터 정부 조직 끝까지 새로운 디자인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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