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사태, 조류독감, 북한 및 외교 문제... 나라 안팎으로 희망적인 소식은 도저히 들리지가 않는다. 조기에 치루어지든 원래대로 12월 말에 실시되든 대통령 선거라는 큰 계기를 통해서 내일과 희밍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쏟아지는 뉴스를 보면 답답하기만 하다. 현실이 어려우니 이를 애써 외면하고 생활 주변에서 즐길 거리를 좀 찾아보고자 한다.
뜬금없이 시계 이야기를 꺼내보겠다. 여자에게 핸드백이 주는 의미는 남자에게 시계가 갖는 의미와 비슷하다. 자동차, 카메라, 오디오... 남자가 빠지기 쉬우면서 많은 돈이 들어가는 몇 가지의 취미가 있다. 그런데 이 물건들은 상시 갖고 다닐 수는 없다. 하지만 시계는 그렇지 않다. 비록 휴대폰은 한치의 오차도 없는 시간을 알려주고 있으며, 몇 천원에 불과한 중국제 패션 시계(쿼츠) 역시 이에 못지않은 정확성을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손목 위에 채워진 시계를 향하는 시선은 즐겁다. 특히 외산 브랜드의 고가 기계식 시계가 남자들의 마음을 끄는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인 불황이라고는 하지만 요즘 명품 시계는 유독 한국에서 잘 팔린다고 한다(뉴스 - 명품시계, 왜 한국에서만 잘 팔릴까). 신년 초였던가? 배달된 신문을 펼쳐드는데 두 면으로 이어지는 롤렉스의 전면광고를 보고 흠칫 놀랐다. 백화점에서도 시계 매장이 효자 노릇을 한다는 소식은 쉽게 접할 수 있다. 한때 한국은 세계 3위권의 시계 제조국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고급 시계의 소비 대국이 되어가는 중이다. 오리엔트, 삼성, 한독 등등의 시계 메이커는 다 어디로 갔는가? 저가의 패션시계 아니면 고가 명품시계라는 양극단 속에서 한국의 시계산업은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잘 알려진 로만손만 해도 쥬얼리 브랜드인 제이에스티나를 출시하면서 시계 판매를 통한 매출 비중은 점차 줄어들고 이제는 사명을 바꿀 것을 검토한다고 들었다.
이렇게 기계식 명품 시계가 다시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 있는데, 카메라에서는 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요즘 필름식 사진에 대한 대중이 관심이 약간 증가하면서 코닥은 엑타크롬(슬라이드 필름)을 다시 생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도 거실 장식장 안에 몇 대의 필름식 카메라를 아직도 갖고는 있지만,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하는 서비스가 주변에서 거의 사라지고 말아서 이 취미를 다시 되살릴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경제력을 갖춘 40대 중후반 남자가 국내 고급 시계의 최대 고객층이라고 한다. 나는 40대 후반은 맞는데 경제력은 별로 갖추지 못하였다. 재미삼아 구입한 중국제 기계식(오토매틱 무브먼트) 시계 하나가 오늘 배송될 예정이다. 고등학교때까지는 손으로 매일 태엽을 감아야 했던 국산 시계 하나를 계속 사용했었고, 오토매틱은 이번이 처음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이제는 시력이 나빠져서 날짜/요일 표시창이나 작은 숫자판이 여럿 배치된 크로노미터형 시계는 별로 반갑지가 않다. 그리고 초등학교 시절 교실 바닥을 닦기 위해 걸레와 같이 갖고다니던 왁스통을 연상하는 너무나 큰 크기의 시계도 내 취향은 아니다(흔히 '방패'에 비유된다고 한다). 그러니 입맛에 맞는 시계를 고르기가 쉽지는 않았다.
어떤 방향으로 튈지는 아직 모르지만, 주머니 사정을 어렵히지 않는 범위 안에서 즐기는 것이 무슨 문제가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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