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8일 토요일

버리기 어려운 물건들

사람의 능력이나 기억에는 한계가 있다. 인간의 생활을 이롭게 하는 기계들 - 요즘의 전자제품이나 스마트 기기들은 가동 부품이 많지 않아서 고전적인 기계의 정의와 다소 어울리지 않지만 - 은 끊임없이 진화하지만, 사람이 무난히 관리할 수 있는 지식, 인맥, 취미 등은 신제품 컴퓨터와 같이 무어의 법칙을 따라서 점점 향상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론 현대인들은 과거에 비해서 엄청난 양의 정보를 접하고 또 소화하고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각각에 대해 집중하고 천착하는 정도를 고려한다면, 역사를 통해서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기억하고 추억하고 또 현재를 즐기는 능력, 즉 주기억장치의 용량은 그대로인데, 형편에 여유가 있다보니 세간은 자꾸 늘어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과거에 구입한 세간들의 활용 빈도는 점점 떨어지기 마련이다. 이를 얼마나 오래 갖고 있어야 할까? 정리의 법칙에 따르면, 잘 쓰지 않는 물건을 상자에 넣어서 6개월 동안 유지해 본 다음, 이를 한번도 꺼내지 않았다면 버리는 것이 옳다고 한다.

집이 충분히 넓다면 추억의 물건들을 그대로 두면 어떠랴? 특히 우리는 급변하는 현대사를 살면서 과거의 것을 너무 빨리 버리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었다. 옛것을 아끼는 마음은 '박물관 정신'이나 '헛간 정신(미국식으로 친다면 garage spirit라는 말도 안되는 단어를 만들어 볼 수도 있겠다. 그들의 역사를 살펴본다면 garage에서 많은 실용적인 일들이 벌어진 것을 무시할 수 없으니...)'으로 이어질테고, 이는 창조 경제 시대에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40대 중반이 되어 이제 30평대 아파트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대부분의 가장들에게는(나만 그런가?) 창고나 헛간으로 활용할 공간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니 새로운 물건을 들이게 되면 활용도가 현저히 떨어진 과거의 물건을 밀어내야 하는 아픔을 겪어야 한다. 어찌보면 이는 안타까운 일이라고만 생각할 것은 아니다. 좀 극단적인 가정이지만 내가 당장 내일 죽는다고 생각해 보라. 내가 가지고 '놀던' 물건들은 이제 어떻게 가치를 찾을까? 대부분 유품 정리라는 과정을 거치게 되겠지만 실상을 따지고 보면 한갖 쓰레기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염두에 둔다면, 물건을 새로 사고 또 버리는 것에 대해 신중을 기하지 아니할 수 없다. 언젠가는 쓸모가 있겠지, 혹은 소중한 추억과 얽혀 있으니까 하는 생각으로 품고만 있다가는 제대로 된 정리를 하지도 못한 채 결국은 그 속에서 허덕이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나에게 있어 활용도는 떨어지지만 아직까지 버리지 못하고 있는 물건을 한번 나열해 보자. 버린다는 표현을 쓰기에는 아직 구입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미안한 물건들도 있다. 좋은 취미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물건들이 이에 해당하겠다.

1. 인켈 프로로직 리시버 앰프와 톨보이 스피커 세트.
2. 필름 사진기들(SLR)과 렌즈들
3. 2백만-4백만 화소급의 초기 디지털 카메라, 그리고 이를 구입할 때 사은품으로 딸려온 후지필름 즉석 카메라(한번도 쓰지 않았다)
4. 카세트 테이프
5. 구형 휴대폰과 악세사리
6. 몇 가지 가정용 운동기구
7. 6 mm 디지털 캠코더
8. 더 이상 드라이버가 지원되지 않는 USB 전화기와 웹캠
9. 구형 컴퓨터
10. 망원경

이들 모두가 더 이상 갖고 있지 말아야 할 이유와 더불어 똑같은 정도로서 갖고 있어야 할 이유를 달고 있다. 6개월간의 유예기간을 스스로에게 주고, 연말에 이들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게 되었는지를 평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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