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8일 토요일

염곡사거리 횡단보도에서 제이앨범 한병혁 님을 만나다

대전에서 한국연구재단 서울청사를 찾아가는 일은 쉽지 않다. 차를 몰고 가면 근처에서 심각한 교통체증에 시달려야 하고, 대중교통으로 가려고 해도 몇 번의 환승을 거쳐야 한다. 어제(9월 27일) 한국연구재단 서울청사에서 있었던 오전 회의와 오후 성과교류회에 참석하기 위해 어떤 교통수단을 써야 할지 당일 새벽까지 고민을 하다가 최종적으로 택한 코스는 이러하다. KTX를 타고 광명역까지 가서 6번 출구에서 G9633 버스로 갈아탄 다음, 양곡도매시장에서 내려서 1.2 km를 걷는 것이다. SRT를 타고 수서에서 내려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최종 목적지로 가는 것이 더욱 합리적이지만, 원하는 시간에 탑승할 수 있는 SRT 승차권을 예매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광명역에서 G9633을 타면 자리에 앉지 못할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고속도로를 잠깐 이용하기 때문에 좌석이 없으면 타지 못한다.

서울로 접어들면서 밀려드는 차량으로 인해 도로가 점점 번잡해지기 시작하였다. 버스는 길게 늘어선 자동차 사이로 용케 머리를 들이밀면서 길을 헤쳐 나갔다. 양곡도매시장에서 목적지까지 가는 길은 별로 보행자 친화적이지 않았다. 인도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마치 고속도로 갓길을 무단으로 걷다가 인터체인지를 스쳐 지나가는 느낌이랄까. 걷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서초구 양재동에 위치한 현재자동차-기아자동차 본사 건물

염곡사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데 낯익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엇, 여기 웬일이세요?"

바로 제이앨범의 주인이지 관리자인 한병혁 님. 나는 출장길, 인근에 직장이 위치한 한병혁 님은 출근길. 제이앨범은 내 블로그에서 '즐겨찾는 곳'으로 유일하게 링크를 걸어 둔 곳이기도 하며, 국내에서 진공관 앰프 자작 문화를 보급하는데 오랫동안 힘쓰고 있다. 나도 이 웹사이트를 통해 진공관 앰프 자작에 입문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내 공식 블로그의 audio amplifier DIY). 특히 한병혁 님은 오디오 용으로는 쓰지 않던 구관을 발굴하여 회로를 설계하고 따라하기 쉬운 자작 가이드 및 회로와 PCB, 부품 등을 공급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재미 공학자인 강기동 박사님(웹사이트)와 깊은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 제이앨범의 친절하 설명과 풍부한 자료에 힘입어 나도 서툴게 납땜을 하고 직접 출력 트랜스포머를 감기도 하였다. 

진공관 앰프 자작 문화를 선도한 것 외에도 6LQ8, 11LQ8과 같은 새로운 관을 발견하여 오디오 앰프용으로 회로를 설계·실증하고 R코어 출력트랜스포머를 개발한 것이 두 분의 공로는 무엇보다도 값지다. 기회만 된다면 두 분에게 감사패를 만들어 전달하고 싶다.

제이앨범 한병혁 님(왼쪽)과 나. 이렇게 반가운 일이 벌어지다니.

출장지에 가는 여러 방법 중 나는 그 어떤 것도 고를 수 있었다. 만약 광명역에서 버스를 타고 한참을 걷는 이 경로를 택하지 않았다면 한병혁 님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인생은 즐거운 우연의 연속이다. 살다 보면 힘든 상황을 종종 겪기도 하는데, 요즘은 '마음의 굳은살'이 단단하게 생겨서 어지간한 공격에도 별로 흔들리지 않게 된 것 같다. 스트레스 극복을 위해 운명에도 없던 운동(달리기)을 시작하게 되었으니 올해 초부터 급격히 달라진 나의 인생이 그렇게 나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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