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29일 월요일

꿈이 없는 자는 꿈이 있는 자 밑에서 일한다?

예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들은 말이다. 현실을 상당히 잘 비꼬아서 하는 말로 들린다. '야망' 혹은 '욕심'이 별로 없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와 같은 사람이 들으면 상당히 귀가 거슬린다.

내 기억에 나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A는 내가 데리고 일했던 사람이야.'

  'B는 내 밑에서 일했었어.' 

업무 경력을 돌이켜 보면 내 하위에 다른 사람이 위치했던 일이 별로 없었던 것은 맞지만,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에 대해서 나는 '나와 같이 일했던 사람' 또는 동료로 표현한다.

꿈이 있는 자를 현실적인 감각에 맞게 고쳐쓴다면 '다른 사람 밑에서는 도저히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다. 좋게 말하면 자기 주도권이나 독립이라는 표현을 달 수도 있다. 나쁘게 말하면 조화롭지 못한 사람이라고도 볼 수 있다. 

다른 나라와 비해서 한국에 자영업자의 비율가 유난히 많은 것은 산업 구조가 취약하고 고용환경이 유연하지 못한 것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다른 사람의 지휘·통제를 견디기 힘들어하는 특유의 심리 상태를 반영한 것이라고 본다. 모든 인간관계를 수직적으로만 해석하려 하고, 또 그런 구조에 안착하는 것을 편안하게 여기는 것이 사실 아니던가?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끼리도 처음 만나면 나이를 묻고 형·동생 관계를 정하는 현실이 무섭지 않은가? 사회적 관계를 이제 막 맺게 된 다른 사람이 도대체 몇 살인지(나보다 위인지 아래인지)를 알기 전에는 어딘가 불편하지 않던가? 이런 분위기는 빨리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한국 사회처럼 위계에 의한 스트레스가 많은 곳에서는 나이가 들 수록 다른 사람의 위로 차근차근 올라가는 것이 자연스럽고 또 그것을 성공으로 간주한다. 70대가 되어도 전문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서 작업대(실험대)를 지키는 사람의 가치를 별로 인정하지 않는다. 사병은 없는데 모두가 지휘관이 되고 싶은 꼴이라고나 할까.

이어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열정과 관련된 것이다. 다음은 박노해 시인의 『봄의 승리』 전문이다.

박노해 시인의 숨고르기 화면갈무리
순수한 열정이 갖는 힘은 대단하다. 경제적 동기가 아니라 신념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은 막을 길이 없다. 열정은 그 자체로 움직이는 것이다. 그런데 그 열정을 이용하는 외부인이 있을 수 있다. 바로 꿈 또는 욕심이 있는 사람이다. 

예전에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게 포로로 잡힌 연합군 병사가 일본군 전투기를 정비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너무나 진지하게 일을 하기에 그 모습을 본 일본군이 '왜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는가? 그래봐야 너희 연합군을 공격할 비행기 아닌가?'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그 포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일은 일이다.'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지는 일화이다. 이게 실제 있었던 일인지 혹은 날조된 이야기인지는 잘 모르겠다. 일(노동) 자체의 신성함과 고유 가치를 강조하기 위한 글로 읽히면 가장 좋을 것이다. 그러나 열정이 제대로 방향을 잡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을 위해 내가 이 일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늘 가슴에 품고 있어야 한다. '이 일을 함으로 인하여 나에게 어떤 보상이 주어지는가'는 그보다 하위의 문제이다.

다음은 오늘 나에게 던지는 무거운 화두이다. 

  • 나의 꿈은 무엇인가?
  • 다른 사람과 더불어 꿀 수 있는 꿈인가?
  • 나의 열정에 무임승차하려는 사람은 없는가? 혹은 나를 이용하려는 사람은 없는가?

2021년 3월 28일 일요일

삼익 일렉트릭 기타의 수리가 끝나다

대전 뮤직마스터(페이스북, 네이버 블로그)에서 기타의 수리가 끝났음을 알리면서 작업 사진 수십 장을 카카오톡으로 보내왔다. 구글 포토로 임포트하여 앨범으로 만든 뒤 다음의 링크로 공개한다. 처음 네 장의 사진은 수리 전에 내가 찍은 것이고 나머지 사진은 뮤직마스터에서 보내온 것이다. 뮤직마스터에서 보낸 사진의 배열 순서는 가장 최근 것이 먼저 오도록 되어 있다.

https://photos.app.goo.gl/pMxdUv96i2UTLST2A

작업 완료 후의 사진

내가 흉하게 붙인 헤드스톡의 앞면을 보기 좋게 만드는 것과 셀렉터 교체가 가장 품이 많이 드는 일이었고 프렛 관리 등 기본적인 관리 작업을 부탁하였었다. 세미 할로 바디의 기타는 F-홀을 통해서 배선 작업을 해야 하므로 부품을 갈려면 일반적인 일렉기타에 비하여 손이 많이 간다고 하였다.

수리를 결심하면서 블로그에 쓴 글은 여기에 있다. 큰 기대를 안고서 이름이 꽤 알려진 분당의 기타 수리점에 갔다가 수리는커녕 거의 퇴짜를 맞고 돌아왔다. 마치 고칠 필요가 없는 기타라고 여긴 듯 일반적인 컨디셔닝 작업에 대한 제안도 하나도 해 주지 않았다. 만약 이 일에 대해 논쟁이 벌어진다면 '당신이 특별히 더 부탁한 게 없었는데?'라고 항변을 할 것이다. 그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수리점 업주의 태도가 너무 불친절하여 물을 엄두가 나지 않았었다는 것이 나의 솔직한 의견이다. 말 한마디 하기가 무섭게 작업대로 돌아가 사포질만 하고 있는 업주에게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가격 흥정과 같은 무리한 요구를 한 것도 없고, 직접 대면했을 때에는 논쟁이 오가지도 않았으며, 판매용 기타를 쳐 보겠다고 한 것도 아니었다. 도대체 어떤 태도를 가져야 이 업주의 마음에 들게 될까? 지금도 그 수리점에 갔던 생각만 하면 기분이 몹시 불쾌하다. Mule에 올라왔던 글을 하나 링크해 놓겠다. Google 리뷰를 찾아 보아도 평이 갈리는 것은 마찬가지. 들여다보면 자꾸 짜증스러운 기억만 떠오른다.

수리를 포기하려다가 내 본래 거주지인 대전에서 해결 방안을 찾게 되었다. 외관 수리에 대한 상담을 마친 후 특별히 요청하지 않았지만 앰프를 연결한 상태로 점검을 하여 리어 픽업에서 소리가 거의 나지 않음을 확인해 주었다. 셀렉터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진단하고 교체를 하기로 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구입 후 얼마 되지 않아 기타를 넘어뜨리면서 셀렉터에 충격이 가해져 플라스틱 손잡이가 떨어져 나갔던 일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 전기적 접촉도 매우 좋지 않은 상태가 되었던 것 같다.

원래 상태는 이랬었다. 헤드는 유광 검정색으로 붉은색 바디와 다른 모습이다. 아마도 폴리우레탄 피니쉬가 아니었을까?

사진 제공: 뮤직마스터

도장을 벗겨내고...

사진 제공: 뮤직마스터

무늬목을 붙여서 마무리를 하였다. 원래의 모습처럼 유광 검정색으로 마무리를 하면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심각한 목공 및 도장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수리를 의뢰하고 기다리는 동안 개인적인 관심이 생겨서 옻칠에 관해 조사를 해 보기도 하였다. 네크 뒷면의 접합부는 그대로 두었다. 깨진 도장의 일부만 벗겨내고 흔적이 남지 않게 칠을 새로 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진 제공: 뮤직마스터

뒷부분은 그대로 두기로 하였다.

이것으로도 충분히 아름답지 않은가? 작은 헤드스톡 - 삼익에서 제조한 그렉 베넷(Greg Bennett)의 일렉기타 디자인에서는 헤드스톡을 작게 만드는 것이 기본 철학임 - 에 대하여 장식적인 요소를 강조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기타줄을 전부 걷어낸 모습을 보니 로우 포지션쪽의 프렛이 상당히 많이 닳아 있었다. 만약 수년이 지나 다음에 다시 관리를 맡기게 된다면 프렛을 교체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새 기타를 사지 않는다면 말이다.

2000년, 그러니까 21년 전 아마도 2월,  대전 둔산동 타임월드 근처의 비바체 악기(지금은 없어짐)에서 이 일렉기타를 구입하였었다. 시리얼 번호에 의하면 1999년도 제조품인 것 같다. 이 기타에는'Made in Korea'라는 표식을 제외하면 제조사나 모델을 알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삼익에서 그렉 베넷 설계의 세미 할로 바디 일렉기타인 Royale 시리즈를 본격 출시하기 전에 만든 시험 제작품이 흘러 나온 것을 내가 구입한 것으로 알고 있다. 흥미롭게도 구입 당시에는 네트쪽의 스트랩핀이 붙어 있지 않아서 삼익악기 본사에 편지를 보냈더니 부품을 무료로 보내주어 내가 직접 구멍을 뚫고 고정하였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그렉 베넷이 직접 Royale RL3 모델을 설명하는 동영상(아래에 게시)을 보았다. 이 모델이 어떤 개념에 의해 설계되었고 어떤 장점이 있는지 찬찬히 설명하는 모습이 참 보기에 좋다. 기타의 현을 지지하는 두 곳, 즉 브리지와 너트에서 현을 당기는 각도에 의해서 소리가 달라진다는 설명을 이 동영상에서 기타 설계자를 통해 들으니 귀에 쏙쏙 들어온다.

일반적인 세미 할로 바디 기타라면 본체를 네크와 같은 방향으로 가로지르는 블록은 통짜 나무를 쓰지만 옆면은 어쿠스틱 기타를 만드는 것과 유사하게 얇은 판(보통 3/16 인치 두께)을 구부려서 붙여 만든다. 그런데 5분 15초부터 그가 특별히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바디 디자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기타는 특이하게도 옆면까지도 통판을 갈아내어 만들었다고 한다. 아래쪽의 날카로운 컷어웨이 부분을 만들려면 측판을 구부리는 방법으로는 곤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판 하나를 CNC로 라우팅하여 챔버 부분을 깎아내어 이런 모습이 된 것인데,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된 것은 아니었고 우연히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Royale 모델 특유의 monoframe construction을 다음의 사진에서 보였다.

그림 출처 링크
즉 센터블록과 옆판은 원래 하나의 나무판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오히려 강도와 서스테인, 공명 등 모든 면에서 좋은 효과를 가져왔다고 한다. 핀터레스트에 남겨진 'RL 3 AM' 모델의 광고 이미지도 인용해 본다.

이 기타를 살 때에는 세미 할로 방식의 기타 제작 방식에 대해서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측면에 나타나는 마호가니의 무늬를 보고서 전체를 하나의 나무에서 깎아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삼익악기에 스트랩핀을 부탁하기 위해 편지를 쓰면서 이에 대한 궁금증을 같이 적었고, 내 추측이 맞다는 답장을 받았던 것 같다.

사진 제공: 뮤직 마스터. 옆면의 나무 무늬를보라. 

삼익의 Royale 시리즈는 볼트-온-넥을 채용한 가장 저가의 RL-1부터 화려한 RL-5와 RL-40까지 몇 가지의 모델이 나왔었다. 내가 소유한 기타는 이것 중에서 RL-4와 가장 가깝다. 그러나 바인딩의 색상이 다르고 결정적으로 헤드스톡에 아무런 표식이 없다. 정식으로 출시된 제품이 아니니 그럴 수밖에. 사다리꼴의 지판 인레이는 RL-3의 것을 닮았다. 커스텀 기타는 절대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물건을 갖게 되었다.

이번에 기타 수리와 조사 작업을 거치면서 내 기타에 대하여 더욱 애착을 갖게 되었다. 최근에 스쿨뮤직 웹사이트를 들락거리면서 '무엇이 내 다음번 기타가 될까?'하는 헛된 생각으로 시간 낭비를 많이 했던 것을 반성한다. 주기적으로 관리만 잘 한다면 계속 쓸 수 있는 것이 기타 아니겠는가? 다음에는 사무실에 방치된 2008년에 구입한 인도네시아 제조 스콰이어 텔레캐스터를 들고 뮤직마스터를 찾아야 되겠다. 시리얼 넘버에 의하면 이 기타의 제조연도는 2007년이다. Affinity와 Standard Telecaster에 대한 정보는 SquireWiki를 참조하라.


나의 스콰이어 텔레캐스터(Squier Telecaster Standard Series). 네이버 블로그(현재 없음) 백업본에서 찾아낸 구입 직후의 사진이다. 


2023년 1월 30일 업데이트

수리한 기타의 헤드스톡에 붙인 무늬목이 군데군데 부풀어 올랐다. 줄을 교체하게 되면 헤드머신을 제거하고 다리미로 눌러서 어떻게 해서든 자가 수리를 해 보련다. 

2023년 1월에 인천의 '악기플러스'를 찾아가서 DBZ Cavallo AB 플라잉-V 형 기타를 구입하였다(링크).

Greg Bennett은 2020년 6월 22일 69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링크). 'Made in Korea' 시절의 삼익 일렉트릭 기타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고인도 여기에 큰 기여를 했고, 음악 애호가들에게 값진 유산을 남겼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