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3일 월요일

[뉴욕 여행기 2] "스몰 토크가 싫어요" - 7호선을 따라서

뉴욕 여행 이틀째(9월 14일 토요일)를 맞으면서 어제 있었던 일을 잠시 되새겨 본다.

뉴욕 JFK 공항에서 우드사이드까지 이동하는 데에는 옐로라이드라는 한인 택시 서비스를 이용하였다. 사용 후기까지 읽어 보면서 택시 서비스를 고를 생각은 없었는데, 어떤 사용기에 이런 글이 있었다.

"스몰 토크 싫어요"

스몰 토크(small talk)는 동료들과 나누는 '잡담'과는 다르다. 처음 만나거나 친하지 않은 사이에 나누는 가벼운 대화이며, 북미 문화의 중요한 일부라고 여겨진다. 따라서 상대방을 평가하거나 가르치려는 태도는 스몰 토크의 매우 좋지 않은 사례일 것이다. 아마도 택시 기사께서 좀 말씀이 많았던 듯.

우리나라 문화에서는 스몰 토크를 거의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연히 마주친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일절 하지 않아도 불편함을 느끼거나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경우는 택시를 탔을 때 기사와 나누는 몇 마디 정도가 전부이고, 대개는 이야기를 듣는 쪽이다. 이걸 우리 방식의 스몰 토크라고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이번에 만난 옐로라이드 기사는 말이 지나치게 많았고, 대화의 태도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래전에 이민을 와서 현지 사정을 아주 잘 알고 있으며, 지금은 뉴욕에서 성공하여 특정 지역에 살고 있음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태도를 읽을 수 있었다. 거주 지역에 대해 상세하게 쓰면 기사를 특정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겠다. 우리가 그 교포 기사의 사회적 성공을 칭찬해 주기 위해서 택시를 이용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남을(손님을?) 평가하고 가르치려 하는 모습도 상당히 보였다. 자기 딴에는 조언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특별히 묻거나 부탁한 것도 아닌데 왜? 요즘 국내에서 그랬다가는 단번에 꼰대 취급을 받을 것이다. 원래 이민자 사회는 고국을 떠날 때 당시의 문화와 정서를 그대로 유지한다고 하지 않던가. 이외에도 몇 가지 마음에 들지 않는 면(근무 규정 위반일지도 모르는)이 있어서 카카오톡으로 상담직원에게 메시지를 남겨 놓았다.

오늘은 7호선을 타고 서쪽 방향 종점에 해당하는  34가-허드슨 야즈(34th Street - Hudson Yards) 역으로 나와 보았다. 벌집 모양의 건축물인 베슬(Vessel)이라는 곳을 한번 가 볼까? 하는 즉흥적인 생각으로 오늘의 코스가 결정된 셈이다. Vessel - 하이 라인 - 첼시마켓 - 코브릭 커피 - 리틀 아일랜드까지. 주말이라서 그런지 맨해튼 '미드타운'은 정말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베슬. 올라가지 못하게 입구는 막은 상태.

하이 라인. 이 길을 따라서 남쪽으로 첼시마켓까지 걸었다. 날씨는 다소 뜨거웠다.






하이 라인을 따라 걸으면서 여러 스타일의 건물과 조형물을 보면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듯한 분위기를 느꼈다.  


인파를 비집고 첼시마켓 내 Miznon에서 점심을 먹었다. 자리를 잡는 데에는 역시 아내의 수완이 빛을 발한다. 물론 딸이 아니었으면 제대로 주문과 결제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주머니 모양의 빵 '피타 브레드'에 고기와 야채를 채운 요리가 아주 맛있었다. 더불어 나오는 큰 고추 요리 - 튀김도 아니고 조림도 아닌 - 도 좋았다. 지중해식 요리 전문점이라고 한다.

자리가 없어서 구경만 하고 나온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거의 공장 규모의 거대한 기계가 돌아간다. 혹시 자리가 있을까 싶어서 매장의 위층으로 올라가니 술을 파는 곳이고, 아래층에 내려가니 남녀 구분 없이 화장실 앞에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난 뒤 그저 커피가 당겨서 딸아이가 즉흥적으로 검색한 커피숍 Kobric Coffee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커피 맛집이라고 한다. 이곳 화장실 역시 완벽한 성평등을 이루고 있었다.

리틀 아일랜드 입구에서. 리틀 아일랜드는 허드슨 강에 지어진 인공섬이라고 한다.

리틀 아일랜드에서 남쪽을 바라보니 저 멀리 자유의 여신상이 보인다. 2006년에 온 가족이 배를 타고 저곳까지 가서 여신상의 발가락까지 올라갔던 일이 기억난다.

조선왕조실록 수준으로 상세하게 여행기를 올리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내가 쓰는 간단한 여행기는 그런 것에 비하면 경쟁력이 현저히 떨어질 것이다. 블로그나 브런치 플랫폼에는 'OOO는 내가 뉴욕 여행 갈 때마다 들르는 곳이예요' - 이런 부류의 글이 흘러 넘친다. 남들보다 뉴욕에 몇 번 더 갔다고 해서 갑자기 맨해튼 스타벅스에서 자아를 발견하거나 그런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기는 자아 도취성 글도 마뜩잖고,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가 보았다'라고 일부러 쿨한 척하는 글도 가볍게 여겨진다. 나는 그저 나의 기억을 돕기 위해 여행기를 쓴다고 생각할 뿐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출국 며칠 전에 국민은행에서 발급받은 트래블러스 체크카드를 아주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다. 식당, 상점, 지하철 등에서 간단히 태그만 하는 것으로 OK. 2006년 보스턴으로 장기 출장을 왔을 때 출장비 전부를 여행자 수표로 바꾸어 나왔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그러나 이렇게 편리한 비접촉식 결제 서비스를 정작 국내에서는 널리 쓰지 못한다는 현실은 좀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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