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30일 금요일

내년의 취미를 위한 밑밥 깔기 - LTspice로 회로도를 그려보자

R-코어를 이용한 싱글 엔디드 앰플리파이어용 5K:8 ohm 출력 트랜스포머의 제작을 최근 마쳤고, 어제는 네이버 미니진공관 앰프 제작 카페에서 '콘골트'라는 별명을 쓰는 손제호 님이 제작한 전원회로용 리플 필터 키트와 여분의 PCB(관련 글 링크)를 구입하였다. 2023년에도 진공관 앰프를 한대 더 만들기 위한 사전 준비 작업을 착착 진행하는 셈이다.

손제호 님 제작 리플 필터

손제호 님의 월간 디자인 인터뷰 기사는 여기에 있다. 납땜인두로 무장한 '취미가'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사람 중의 하나.

이번에는 누구나 다 한 번은 만들어 본다는 6V6 SE 앰프를 제작해 볼 계획이다. 진공관 앰프에 뒤늦게 입문한 나로서는 처음 경험하는 진공관이다. 표준적인 회로도는 주변에 너무나 많이 널려 있기 때문에, 약간은 새로운 시도를 해 볼 생각이다. 복합관인 6LQ8 삼극관부로 6V6을 드라이브하는 앰프를 구상하고 있다. 왜 6LQ8인가? 일단은 내가 이 관을 꽤 여러 개(PCB 포함) 갖고 있기 때문이다. 6LQ8의 삼극관부는 6J4와 매우 흡사하다는 것은 제이앨범 한병혁 님의 꼼꼼한 실험을 통해 이미 알려진 바 있다(링크). 6J4는 한진동(한국진공관앰프자작동호회) 고 안병원 회장님의 6L6 싱글 앰프 회로도('6L6 SE 따라하기')에서 초단부에 쓰여서 잘 알려져 있지만 점점 구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6V6(GT)는 워낙 많은 양이 생산되었고 현대에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어서 수급에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2023년에 달성하고 싶은 또 하나의 목표는 회로도를 제대로 그리는 것이다. 회로도 또는 CAD 프로그램으로 설계도를 그린다는 것은 음악으로 친다면 악보를 그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누구나 이해하여 같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공통의 언어'를 다룰 줄 알아야 한다. 무엇인가를 만드는 취미를 좀 더 진지한 단계로 격상시키려 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라고 생각한다. 

무료로 전자회로도를 그리는 프로그램은 부지기수로 많다. PCB 설계나 회로 시뮬레이션은 나의 주요 목표가 아니므로, 사용법이 간단하되 진공관 심볼을 쉽게 다룰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니 Analog Devices사에서 제공하는 무료 툴인 LTspice(링크)가 가장 적당해 보였다. 다음을 글이 판단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

[diyAudio] Tube circuit drwaing software?

KiCAD EDA(Electonics Design Automation)(링크)도 고려 대상이었다.

앰프 상판을 설계하느라 LibreCAD의 사용법을 더듬더듬 익혔다가 지금은 다 잊어버린 상태이다. 일정 빈도로 꾸준히 사용하지 않으면 학습 곡선을 제대로 타고 올라오지 못한다. LTspice는 학습 곡선의 어느 단계까지 오를지 알 수가 없다!

장난 수준으로 심벌 몇 개를 찍어서 연결을 해 보았다. 튜토리얼 자료가 많이 있어서 학습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 대중적인 진공관 외에는 라이브러리(파라미터)를 구해서 넣을 수가 없기 때문에 어차피 시뮬레이션 같은 것은 하기 곤란하다. 파워포인트를 익힌다는 생각을 갖고 회로도를 예쁘게 그리는 것 정도를 목표로 삼는다면 몇 시간 학습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3D 모델링 프로그램인 SketchUp까지 익히게 된다면? 변변한 제작 목표도 없으면서 여기까지 관심을 갖는 것은 욕심이다!

두 시간 정도 연습한 결과. 이만하면 나쁘지 않다. 실수 발견! 출력관 6V6의 grid leak resistor를 빼먹었다!


2023년 3월 24일 업데이트

7개의 핀을 가진 미니어쳐관 6J4(Radiomuseum, 데이터시트)는 오디오용 증폭관이 아니었다. UHF, 즉  극초단파 증폭용 3극관이었다. UHF의 주파수 범위는 300~3,000 MHz이다. 

2022년 12월 25일 일요일

OneDrive에 굴복하다

약간의 편법(?)으로 설치했던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365(관련 글 링크)의 구독 상태에 문제가 생겼는지 1TB 저장 공간에 접속이 되지 않는다. 오피스 365 프로그램 자체의 작동 상태에는 문제가 없다. 기본으로 돌아가는 5GB OneDrive가 부족하다는 메시지가 자꾸 나오는 것이 성가셔서 조금 고민한 뒤에 OneDrive Standalone 100GB 플랜을 구독하기에 이르렀다. 월 지불 금액은 2,900원이다.

한글로 '플랜'이라고 쓰는 것이 참 어색하다. 

원드라이브는 바탕화면이나 문서와 같이 시스템에 필수적으로 존재하고 이름을 바꾸기도 어려운 폴더를 대상으로 작동한다. 아마 이런 정책을 쓰는 것은 사용자들을 원드라이브 생태계에 자동적으로 충성하게 만들기 위함일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 365 플랜을 구독한다면 충분한 원드라이브 저장공간을 확보함은 물론 확실한 오피스 정품을 사용하는 효과까지 거두게 된다. 하지만 월 8,900원이란 금액은 나를 번뇌에 휩싸이게 하기에 충분히 높았다.

오늘 촬영한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영어로는 'Bodhisattva in pensive position'). 국보 제78호(왼쪽)와 제83호. 못난 중생들처럼 무엇을 살까, 무엇을 먹을까 하는 지극히 세속적인 걱정에 잠겼을리는 없다.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런 수준의 고민은 번뇌를 낳는다.

월 2,900원으로 원드라이브에 굴복하면서 길지 않은 번뇌는 곧 잦아들었다. 오래 고민하지 않고 필요하다면 굴복하는 것이 마음의 평화를 찾는 빠른 길이 될 수도 있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획일적인 생각을 갖기를 강조한다면 그 자유는 어느 한 사람만을 위한 자유가 될 것이다.

2022년 성탄절을 맞아 온 세상에 평화가 가득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 평화는 굴복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다툼과 토론 속에 왔으면 정말 좋겠다.

성탄 전야를 맞아 명동 거리를 거닐어 본 것은 내 평생에 오늘이 처음이었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던 시절에는 행사를 준비하느라 늘 바빴기 때문이다. 거리에 쏟아져 나와 즐기는 것이 성탄절 본연의 정신이 되어서는 안되겠지만.


명동성당에서.




2022년 12월 22일 목요일

보건의료데이터 - 공유·활용과 정보주체 보호의 문제

디지털헬스케어의 시대를 맞이하여 보건의료데이터를 이용하여 만들어질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가 인류를 이롭게 할 것이라는 기대를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이를 기술적으로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ICT·생명공학·의료기술의 눈부신 발전상을 보고 있노라면 이 측면에서는 낙관적인 기대를 해도 좋을 것 같다. 그렇다면 연구대상자의 보호를 위해 어떤 윤리적 원칙을 지켜야 할 것인가? 정준호·김옥주의 2017년 논문 '미국 연구대상자 보호 정책의 최신 동향 - 개정된 커먼룰(Common Rule)을 중심으로-'(링크) 앞부분에서는 다음과 같이 1979년 「벨몬트 보고서: 인간 피험자 보호를 위한 윤리 원칙과 지침」(국가생명윤리정책원 링크)가 제시한 생명윤리에 대한 대원칙을 소개하였다. 현실 세계에서는 이러한 보편적인 원칙에 입각한 법제를 마련하고 있으므로 연구자들에게는 이를 준수할 의무가 지워진다.

  • 인간 존중(respect for persons): 자율성 존중의 원칙을 기반으로 연구대상자에게 충분한 정보에 근거한 동의(informed consent)를 받아야 하며, 아동이나 수감자 등 자율성이 제한되는 연구대상자는 보호받아야 함
  • 선행(beneficence): 연구에서 해를 입히지 말고 가능한 이익을 극대화하고 해악을 최소화해야 함
  • 정의(justice): 연구에서 생기는 이익과 부담을 누가 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분배의 정의에 관한 원칙

생명윤리법 제2조에서는 사람을 대상으로 물리적으로 개입하거나 의사소통, 대인 접촉 등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수행하는 연구 또는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를 이용하는 연구를 인간대상연구로 정의하였고, 보다 자세하게는 동법 시행규칙 제2조에서 상세하게 그 요건을 나열하였다. 이에 따르면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를 이용하는 연구(연구대상자를 직접·간접적으로 식별할 수 있는 정보를 이용하는 연구) 또한 인간대상연구의 범위에 속한다. 따라서 연구대상자 보호를 위해 법으로 강제하는 규정을 똑같이 지켜야 한다. 보건의료데이터 역시 민감정보로서 개인 식별이 가능하므로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인간대상연구와 오늘 논의하는 보건의료데이터 활용 연구는 성격이 매우 다름을 알 수 있다. 보건의료데이터는 이미 연구대상자로부터 분리되어 나온 것이기 때문에, 데이터 수집 과정, 연구 과정, 그리고 최종 결과물이 대상자에게 직접적으로 미칠 위험성은 거의 없거나 극히 낮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시민 단체의 우려가 늘 있었다. 구글에서 '보건의료데이터 시민단체 반대'를 입력하여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정보가 나온다(검색일: 2022년 12월 23일, 상위 10개 검색결과만 나열). 사회적 분위기를 알아보기 위하여 읽어봄직하다. 나는 이러한 우려가 과장된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마침 어제(2022.12.21.) 열린 제14회 헬스케어 미래포럼「디지털헬스케어 산업 활성화 방안」(포럼 소개 사이트 링크, 제14회 포럼 안내문 링크, 유튜브 다시보기는 무슨 사정이 있는지 현재 비공개 상태임)에서 주제발표를 했던 건양대 의과대학 김종엽 교수의 발표자료 가운데 내가 격하게 공감하는 슬라이드가 있어서 인용하고자 한다.



생각해 볼 수 있는 위험성은 민감한 건강관련 정보가 고의 또는 실수로 유출되었을 때 사생활이 침해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아무리 정보를 사전에 비식별처리를 했다 하여도 최신의 기술을 이용하면 그 데이터가 누구의 것인지를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종류의 위험성이 갓 개발되어 인체를 직접 대상으로 하여 쓰이는 약물이나 의료기기의 위험성보다 월등히 클까? ICT 기술을 잘 갖춘 범죄집단이 있어서 유출된 데이터를 활용, 특정인을 대상으로 범죄를 도모하는 공상과학영화와 같은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막기 위해서 보건의료데이터의 활용 자체를 막는다면 그로 인하여 얻는 것보다 잃을 것이 더 많을 것이다.

내 데이터를 이용하여 무슨 일을 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구속하는 방법은 동의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가끔씩 특정 정보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약관을 읽고 동의서를 작성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과정이다. 그런데 설명문이 너무 길어서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상세히 읽지 않고 대충 스크롤해 넘긴 뒤 동의 버튼을 클릭하거나 서면 동의서에 서명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동의 피로' 현상을 겪게 되는 것이다. 어차피 받을 서비스라면 동의를 해야 하고, 고민은 혜택을 늦출 뿐이니 말이다.

국내법에서 건강 관련 정보는 개인정보의 한 종류인 '민감정보'로 간주한다. 따라서 개인정보 보호 관련 규제를 따라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개인정보보호법제는 까다롭기로 따지자면 전 세계에서 1위권에 든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김송옥의 2019년 논문 '유럽연합 GDPR의 동의제도 분석 및 우리 개인정보보호법제에 주는 시사점'(링크)에 다음과 같이 소개하였다.

  • 사전동의의 원칙: 정보주체로부터 사전에 동의를 받아야 함
  • 개별적 동의방식: 수집·이용·제공에 대한 포괄동의(또는 일괄동의)를 금지하고 각 동의사항을 분리해서 별도로 받아야 함
  • 선택적 동의방식: 처리목적에 필요한 최소정보만을 수집하게 하면서 최소정보 외에는 '선택'으로 동의를 받도록 하는 방식
  • 김송옥의 논문에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최소한의 정보만을 수집하여 제공자가 동의한 활용 기간이 종료되는 즉시 파기해야 함은 상식이다.

두 번째 사항은 어떠한 부작용을 낳는가? 포괄동의를 금지하므로 각각의 동의항목을 매우 작은 단위로 세분화하게 되어 동의서식이 매우 길어지고 복잡해지며, 이는 동의를 더욱 형식화한다. 반면 유럽연합의 GDPR은 처리 목적 중심의 동의를 받도록 한다. 따라서 동의 항목을 세분화할 필요가 없고, 처리목적이 바뀌거나 추가되지 않는다면 별도의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김송옥은 적고 있다. GDPR이 갖는 중요한 특징 중 다른 하나는 언제든지 사후에 동의의 철회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개인정보 보호법이 아닌 생명윤리법에서 인체유래물연구의 동의에 관한 사항은 제37조에서 규정하고 있다("다음 각 호의 사항이 포함된 서면동의를 받아야 한다"). 인간대상연구의 동의에 관한 사항은 동법 제16조에 있다.

  1. 인체유래물연구의 목적
  2. 개인정보의 보호 및 폐기에 관한 사항
  3. 인체유래물의 보존 및 폐기 등에 관한 사항
  4. 인체유래물과 그로부터 얻은 유전정보(이하 "인체유래물등"이라 한다)의 제공에 관한 사항
  5. 동의의 철회, 동의 철회 시 인체유래물의 처리, 인체유래물 기증자의 권리, 연구 목적의 변경, 그 밖에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사항(이하 생략)

그러나 데이터를 이용한 연구는 동의를 받는 시점에 이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쓰겠다는 것을 정의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일단 데이터를 모아 놓고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주무르다가 갑자기 문제 해결의 돌파구가 나올 수도 있다. 또한 A와 B라는 데이터를 동의에 의해서 받아서 연구하다가 보니 C라는 데이터를 추가하면 더 합리적인 결과가 나올 것임을 깨닫게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서명을 받는 날짜로 모든 것이 확정되어 버리는 현재의 동의 방식은 걸림돌이 될 것이다. 김종엽 교수가 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이렇게 해 주었다.



미국의 개정 커먼룰(Common Rule)에서 도입된 '포괄적 동의'를 우리도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 커먼룰에서는 인체유래물(정보 포함)의 2차적 활용에 대해서 포괄적 동의를 받을 수 있고, 이 경우 연구자는 IRB 심사를 거쳐 연구대상자의 추가적 동의 없이 이를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이때 IRB는 수행대상 이차연구가 포괄적 동의의 범위에 속하는지만을 중심으로 실시할 수 있다. 다만, 연구자가 포괄적 동의를 거부하는 경우에는 IRB는 2차이용에 대한 동의면제를 받을 수 없다. 이 단락은 김재선의 2021년 논문 '미국의 보건의료데이터 보호 및 활용을 위한 주요 법적 쟁점 - 미국 HIPAA/HITECH, 21세기 치료법, 공통규칙, 민간 가이드라인을 중심으로-'(링크)에서 인용한 것이다.

중간 정리를 해 보자. 우리나라 국내법에서 보건의료데이터를 이용한 연구를 할 때 대상자를 보호하는 규제는 생명윤리법에서 규정한 '서면 동의'와 'IRB 심의'로 가닥을 잡을 수 있다. 다른 의미로 말한다면 연구자를 다소 힘들게 하는 규제에 해당한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 데이터 활용 연구와 약물 또는 침습적 의료기기(기술)과 같이 인체를 직접 대상으로 삼는 연구 사이에 이러한 규제 적용의 차이는 거의 없다. 나는 현 국내 규제에 손질을 가해서 데이터 활용 연구를 더 수월하게 실시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믿는다. 예를 들어 보건의료데이터 제공자(즉 '정보주체')가 어떤 정보를 수집하여 어떤 목적으로 활용할지 충분히 숙지하고 동의했다면, IRB 심의를 과감하게 면제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개정 커먼룰에서 제시하는 동의 양식은 이 연구에 참여함으로써 얻는 혜택과 위험 등을 서식 앞쪽에 몰아서 소개하도록 하였다. 연구의 구체적인 내용을 100% 이해하지 않아도(어차피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면 이는 불가능하다) 정보주체가 자율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왜 그렇게 IRB 심의를 받으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인간/인체유래물 대상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투고할 때 학술지 측에서 이를 요구하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닌가요? 연구가 아니라면 IRB 심의를 받을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지난주에 누군가와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마치 기업에서 제품 및 서비스 개발을 위해서 하는 행위는 '연구'가 아니므로 IRB 심의 대상이 아니라는 듯한 뉘앙스였다. 하지만 실제로 기업 연구실 현장에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글을 쓰다가 새로운 문제점을 발견하였다. 보건의료데이터를 이용한 연구는 인간대상연구인가, 또는 인체유래물연구인가? 일반 의료기록을 이용한 연구라면 인간대상연구이고, 생화학검사 또는 유전자검사 결과를 이용한 연구라면 인체유래물연구이다. 그러나 유전자(유전체)를 이용한 연구는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를 이용하는 연구에 해당하므로 인간대상연구로 봐야 한다(생명윤리법 시행규칙 제2조제1항제3호). 그런데 기관위원회의 심의를 면제할 수 있는 인간대상연구(생명윤리법 시행규칙 제13조)는 기관위원회의 심의를 면제할 수 있는 인체유래물연구(생명윤리법 시행규칙 제33조)와 별도로 규정되어 있다. 위에서 이미 살펴 보았듯이 두 종류의 연구는 생명윤리법에서도 제3장(인간대상연구)과 제5장(인체유래물연구 및 인체유래물은행)에서 별도로 규정한다.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

2022년 12월 18일 일요일

R-코어 출력 트랜스포머 임시 조립 후 소리 들어보기

올 겨울 들어 가장 큰 추위가 몰아친 일요일, 외출을 서둘러 마치고 2차 권선까지 다 감아 두었던 R-코어 출력트랜스포머의 리드선 연결 및 코어 체결 작업을 하였다. 에나멜선의 피복(PEW, 폴리에스터)은 납땜인두의 열로 녹지 않으므로 사포와 줄을 사용하여 철저히 제거하였다. 권선작업을 마친 보빈 한 쌍을 다음과 같이 직렬로 연결해야 하나의 출력 트랜스포머가 완성된다. 

S와 E는 감은 코일의 시작(start)과 끝(end)을 의미한다. 두꺼운 빨간색은 1차, 나머지는 2차 코일의 직렬연결을 뜻한다. 1차와 2차 코일은 전부 보빈 위에 같은 방향으로 감아야 한다. 여기에서는 E와 E를 연결하였지만, S와 S를 연결해도 된다. Global negative feedback을 걸기 위한 배선은 2차의 8옴 측에서 따면 된다.


아직은 마감 작업이 더 필요하다. 에나멜선과 리드선을 연결한 부위를 적당히 가려야 하고, 고정 방법도 마련해야 한다. 스테인리스 스틸 호스 밴드는 몇번이고 풀고 조이는 것이 가능하므로 마무리 작업이 완결되지 않아도 쓰기에 좋다.

앞모습은 매우 지저분하다. 파랑(B+), 녹색(P), 빨강(8 OHM), 하양(0 OHM). 임피던스 비는 5K:8이고 권선비는 1350:54 = 25:1이다.

아래에 놓인 초소형 트랜스포머(8K:8/4)를 대체하여 일단 6LQ8 SE 앰프에 연결하여 소리를 들어볼 것이다. 내가 만든 트랜스포머는 6LQ8 싱글 앰프에 딱 맞는 임피던스 비를 갖추지는 않았지만 실용상 별 문제는 없다.

 

6LQ8 SE 앰프에 임시로 대충 꼬아서 연결한 뒤 소리를 들어 보았다. 엄지손가락만한 기존의 출력트랜스포머와 비교하면 소리가 더 나은 것 같다. 이 고생을 하여 만들었으니 당연히 더 나아야 한다! 측정기를 걸어 본 것이 아니니 소리의 차이가 느껴지는 것은 단순한 기분탓일지도 모른다. 

이대로도 마음에 드는 소리가 난다. 만약 앞으로 6V6/6L6/EL34 등을 이용한 싱글 앰프를 만들게 된다면, 거기에 붙여 주고 싶다.


두 번째의 R-코어 출력 트랜스포머 자작하기는 권선기의 개량까지 포함하여 꽤 오랜 시간을 고민한 끝에 이제 끝을 보려 한다. 세 번째 자작까지 이어질 것인가? 그건 잘 모르겠다. AC 전동 드릴에 속도조절기(디머 스위치)를 붙인 조합은 일단 낙제점을 주겠다. 다시 권선기를 만들 일이 있다면 DC 모터를 사용하여 제대로 감아보고 싶다. UL탭 및 4옴용 탭을 내는 문제는 나중에 생각해 볼 일이다. 두 개의 권선이 서로 직렬로 연결되어 있어서 계산을 하려면 조금 까다롭다.


2022년 12월 21일 업데이트

검정 절연테이프를 둘러서 마무리하였다. 너무 저렴한 느낌이라서 좋아하지 않는 테이프이지만 갖고 있는 것이 이것 뿐이라 다른 대안이 없다. 아직 앰프 상판에 고정하지 않고 그냥 올려놓은 상태이다. 


에나멜 동선이 드러난 부분은 투명 도료를 적당히 발라서 피막을 보호하도록 하자. 특히 1차 권선에는 B+ 전압이 흐르므로 마찰 등으로 피막이 벗겨져 동선이 노출되면 감전의 위험이 있다.






2022년 12월 16일 금요일

R-코어 출력 트랜스포머 2차 권선 완료

직경 0.7mm의 두꺼운 에나멜선을 촘촘하게 감는 것은 매우 어렵다. 동선을 붙들고 아무리 강하게 잡아당겨도 굴곡이 완벽하게 펴지질 않아서 빈 틈이 생긴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더 이상 아름다운 권선을 만드는 것은 무리였다.




리드선을 납땜한 뒤에 한 쌍의 코일을 전부 적당한 테이프 비슷한 것으로 감아서 굴곡이 드러나지 않게 마무리를 하면 모든 작업이 끝난다. 버리는 허리띠를 잘라서 재활용하면 가장 좋을 듯.

R-코어 출력 트랜스포머 1차 권선 완료

0.3mm 에나멜선을 사용하여 1350회를 감았다. 트랜스포머 절연에 쓰이는 노란색 절연 테이프가 없어서 전기공사용으로 흔히들 쓰는 PVC 절연 테이프로 마무리를 하였다. 접착력도 별로 좋지 않고 끈끈이가 남는 등 별로 좋아하지 않는 테이프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다. 첫 2~3층 정도만 정렬권선이 되었고, 그 뒤로는 막감기로 진행하였다. 나의 경험과 실력으로는 도저히 어쩔 도리가 없었다. 보빈 4개를 감았을 때 소요된 동선의 중량은 계산상으로는 대략 417그램 정도이다. 600그램 한 롤을 구입했으니 꽤 많이 남았다.


절연 테이프를 감은 뒤의 직경은 37~38mm 정도가 되었다.


임피던스 비율은 5K:8 = 625:1이므로 권선비는 이것의 제곱근인 25:1이 된다. 따라서 1차 1350회에 대하여 2차는 1350/25 = 54회를 감아야 한다. 1차 권선수를 고정한 상태에서 원하는 임피던스 비율을 만들려면 2차 권선수는 다음과 같이 계산된다. 두 줄 감기는 도저히 못 하겠다. 그렇게 했다간 아마 최종 직경이 너무 두꺼워져서 코어에 끼우지도 못하게 될 것이다. 허용 전류는 직경 0.723mm(AWG no. 21)의 경우 4A, 0.644mm(AWG no. 22)는 2.5A이다. 0.7mm 구리선이면 허용 전류는 대략 3A는 넘을 것 같은데, 내가 생각하는 수준의 출력이라면 굳이 두 줄 감기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 2.5K:8이면 권선비는 17.68, 2차 권선은 76.36회
  • 3.5K:8이면 권선비는 20.92, 2차 권선은 64.53회
  • 5K:8이면 권선비는 25:1, 2차 권선은 54회
  • 7K:8이면 권선비는 29.58, 2차 권선은 45.64회
  • 8K:8이면 권선비는 31.62, 2차 권선은 42.69회

2차 권선 작업이 훨씬 어렵다! 선이 두꺼워서(0.7mm) 빈 틈이 없이 가지런히 감기질 않는다.  1차 권선 마무리가 고르게 되지 않았으니 아무리 노력해도 그 위에 감는 2차 권선이 깨끗하게 자리잡을 수가 없다. 54회면 얼마 되지 않으니 손으로 감는게 더 나을까? 두어 차례 해 보았으나 아이고, 그것도 쉽지 않았다. 트랜스포머 권선은 이번까지만 하고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더욱 확고해졌다.

직경 38mm에 54회 감되 직경이 변하지 않는다 가정하면 38 x 3.14 x 54 = 6443.28, 즉 6.4m의 동선이 필요하다. 이를 4개의 보빈에 대해서 감아야 하니 25m가 넘게 필요하다. 혹시 남은 0.7mm 동선이 부족하지는 않을지?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하고 2차측 선을 감아서 마무리를 할 것인가? 

  1. 에라, 모르겠다! 권선기로 그냥 휘리릭~ 감아버려?
  2. 손으로 정성스럽게 감아나간다. 몇 번 감았는지 잊어버리는 것이 가장 큰 문제.

2차 권선 작업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상상 속에서 시행 착오를 겪고 있다. 이번 주말이면 어떻게든 결과물이 나올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받아 들여야 한다! 테이프로 적당히 마감하여 보기 싫은 것을 가리고 써야 할 것이다.


2022년 12월 20일 업데이트

J50 코어의 1차 최적 권선수는 1350이 아니라 1250이었다! 1000~1500 사이에서 적당히 알아서 할 일이다. 

[Jalbum] J50 최적의 턴수(1보빈 1차 1250T)

싱글 출력 트랜스포머의 선택이라는 오래 된 글에도 공부할 거리가 많다. 많이 감으면 좋은 것이 아니다! 오디오 기기에서 가장 특성이 나쁜 부품이 바로 트랜스포머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아, 그게 아니다. 가장 특성이 나쁜 것은 진공관이다(오차와 수명을 생각해 보라). 트랜스포머는 그 다음이다. 진공관 앰프에서는 버릴 수 없는 운명과 같은 존재이지만... 일반 자작인이 직접 만들 수 있는 부품이 바로 트랜스포머 아니겠는가.

저역 특성을 좋게 하려면 1차 인덕턴스가 커야 한다. 다른 조건을 고정한다면 많이 감으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고역 특성을 좋게 하려면 누설자속과 코일이 갖는 분포용량을 줄여야 하는데, 많이 감으면 이것이 나빠진다. 고음 특성을 좋게 하는 방법은 층 분할감이를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인데, R-코어 출력 트랜스포머에서는 분할감이를 잘 하지 않는다. 그 이유가 뭐였더라? 일단 보빈이 2개 들어가니 그 자체만으로도 2회 분할감이가 된 셈이다. 

내가 대충 주워 들어서 아는 수준은 여기까지이며, 관련된 이론과 수식은 전문가의 영역이라 도저히 접할 수 없다.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해야 한다. 

2022년 12월 13일 화요일

두비 브러더스 - What a fool believes

1980~1982년쯤의 이야기를 하련다. 요즘은 종이 신문이나 잡지가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월간팝송> 같은 잡지를 이따금 구입했었다. 가요 또는 팝송 악보만 수록한 두꺼운 책도 집에 두어 권씩은 있었다. 

아마 월간팝송사에서 발간한 노래책었던 것 같다. 제목은 <골든팝송>이었던가? 보컬그룹의 악보만 엮어서 만든 꽤 두꺼운 책이 있었다. 표지는 비지스였던가. 당시에는 그 책에 실린 곡을 전부 다 들을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가 유튜브 전성시대가 되면서 오래 전에 히트했지만 내가 미처 모르던 노래를 이제 와서 재발견하게 되었다. 그 중의 하나가 두비 브러더스(Doobie Brothers)의 <What a fool believes>(나무위키)이다. 이 노래 역시 <골든팝송>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찾아 보니 1979년 빌보드 핫 100에서 1주 동안 1위를 했었다고 한다. 내가 처음 들은 버전은 두비 드러더스의 오리지널은 아니고 호주 밴드 HSCC(Hindly Street Country Clup)가 커버한 곡이다.


그러면 음반에 실렸던 오리지널곡은 어떨까?


다음은 라이브 버전. 악기를 연주하면서 노래를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이 곡은 마이클 맥도널드와 케니 로긴스가 작사·작곡하였다고 한다. 이번에는 2017년에 두 사람이 같이 공연하는 모습을 들어본다. 케니 로긴스가 'This one is my favorite'이라고 소개한다. 나이가 들어 1979년 앨범에 수록된 원곡 당시의 목소리와 큰 차이도 느끼기 어렵다. 이 얼마나 멋있는가?

 

다음에 찾은 동영상은 마이클 맥도널드가 혼자 직접 건반을 연주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 내가 흉내내고 싶은 것은 바로 이런 연주이다!


HSCC를 통해 재발견한 옛날 명곡에는 칩 트릭(Cheap Trick)의 곡도 몇 개가 더 있다. 세상은 넓고 들을 음악은 많다!


2022년 12월 12일 월요일

R-코어 권선 연습 4일차 경과

권선기는 끝없는 개량을 거치는 중이다. 감는 동안 손을 대신하여 장력을 유지할 장치를 달고, 회전수 조절기(디머 스위치)를 보다 가까운 곳으로 옮겨 달아서 선을 매만지다가 재빨리 속도를 조절하게 만들고...





모터(AC 전동 드릴 + 디머 스위치에 의한 속도 조절)의 도입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했다. 에나멜선을 빈 틈이 없이 촘촘하게 감으려면 보빈이 자동으로 회전하는 상태에서도 두 손을 다 동원해야 한다. 유튜브에서 종종 보듯이 고속으로 회전하는 보빈에 대하여 한 손으로 정렬를 하여 감는 모습은 꿈도 꿀 수 없다. 상황에 따라서 회전 속도를 조절해야 하는데 디머 스위치의 조절에 따라 한 템포 느리게 반응하는 데다가 저속에서는 토크가 낮아서 이내 전동 드릴이 멈추어 버리고는 한다.

어떻게 해서는 네 번째 층까지는 정렬을 유지하고 싶다. 이렇게 가지런하게 빈 틈이 없이 감긴 상태로 목표치인 ~16층까지 그대로 감아 올리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분명 어디서든 틀어지기 쉽다.


드디어 직경 0.3mm 에나멜선을 주문하였다(쿠팡). 연습용으로 쓰던 것은 0.35mm였다. 광화문 근처에 근무하면서도 일과시간 중에 종로3가 승리케이블에 직접 가서 구입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한두 차례 연습을 더 한 다음 실전 권선 작업에 돌입하련다. 잘해 봐야 3층 정도 정렬 상태를 유지하다가 그 뒤로는 '막감기'로 끝날 것임이 자명하다. 권선 작업을 아무리 아름답게 끝마친다 해도 리드선 깔끔하게 연결하기, 코어 체결하기, 최종 제작물을 앰프 섀시에 고정하기 등 남은 숙제가 가득하다.

권선 작업이 끝나면 이런 형태로 코어를 체결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앰프 섀시에는 어떻게 고정을 할 것인가? R-core OPT 만드는 사람의 영원한 숙제이다.


강기동 박사님의 웹사이트 My Audio Lab에서 R-core 출력 트랜스포머 관련 자료를 링크해 놓는다. 

강 박사님 특유의 꼼꼼한 자료 정리 스타일을 감상하고 있노라면 앞으로 R-core 트랜스포머를 더 잘 만들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마구 솟구치지만 이번 권선 작업을 끝으로 자제하는 것이 낫다. 어차피 코어를 수급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고, 그것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계속 앰프를 만들어 탑을 쌓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권선 '설계'가 더욱 어려운 EI 코어 출력 트랜스포머는 자작 생각 자체를 하고 싶지 않다. 다음은 Jalbum 웹사이트에 남아있는 나의 첫 진공관 싱글 앰프 자작기이다. 한참 아래로 스크롤하여 내려가면 R-core OPT 제작기가 나온다.

일단 일을 저지르기로 했습니다(6N1 + 6P1 SE 앰프)(2018)

2022년 12월 9일 금요일

R-코어 권선 작업 연습을 시작하다

엘레파츠에서 주문한 '납걸이'(solder stand)를 받았다. 역시 국산이라 묵직하니 안정감이 있고 품질도 좋다. 여기에 동선 뭉치를 장착하면 된다.


그럼 연습 삼아서 보빈에 동선을 감아 볼까? 2018년에 최초로 제작했던 R-코어 출력 트랜스포머의 코일(직경 0.35mm 에나멜선, 보빈은 거의 동일하며 1050회 감았음)을 전부 풀어서 연습용으로 쓰기로 한다. 1~2주 정도 감는 연습을 해 보고 예쁘게 권선 정렬이 될 희망이 보이면 그때 새 에나멜선을 구입하련다. 

대충 권선기와 납걸이의 배열은 다음 사진과 같다. 실제로는 납걸이를 책상 아래에 내려놓고 손으로 동선을 붙들고 약간의 장력을 주면서 감는 연습을 시작하였다. 속도 조절을 잘못하여 전동 드릴이 순간 고속으로 회전하면서 드릴척에 붙어있던 회전수 카운터용 자석이 원심력을 이기지 못하고 날아가 버렸다. 만약 자석이 이마나 눈에 맞았다면 큰일이 날 뻔하였다. 다른 곳에 있던 자석을 떼어다가 이번에는 안전을 위해 테이프로 고정하였다. 날아간 자석은 어디로 갔는지 오늘 아침까지도 행방이 묘연하다.

정렬 권선은 쉽지 않다. 결국은 막감기로 끝났다.


코일 감기는 쉽지 않다! 유튜브를 보면 특별히 동선 이송 장치를 쓰지 않고도 맨손으로 선을 붙들고 멋지게 정렬 권선을 하는 동영상이 많다. 도대체 어느 정도로 숙련이 되어야 그렇게 잘 감을 수 있을까? R-코어는 누설 자속이 적어서 코일을 감을 때 정렬 권선에 그렇게 집착을 할 필요는 없다고 하지만, 최대한 정렬하도록 애를 써야 동선도 절약이 되고 공간 낭비가 없어서 2차 권선을 할 여유가 생긴다.

다음의 유튜브 쇼츠 동영상을 보라. 빠른 속도에서도 어떻게 정렬이 이렇게 잘 되는지 신기하다. 이게 가능하다고? 신기(神技)에 가깝다. 선을 감싸 쥐고 있는 천은 데님 조각으로 보인다. 1-2주일 수련으로 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동선이 가늘어서 가능한가, 혹은 회전 속도가 빨라서 가능한가? 어쩌면 권선 작업 8년차?



1000회를 조금 넘겨 감았을 뿐인데 거의 바퀴의 직경에 이를 정도로 차 올랐다. 2018년 제작 당시보다 훨씬 두껍다. 보빈의 외경이 1mm 정도 큰 것이 이런 결과를 낳았을까? 아니면 손으로 막감기를 할 때보다 더 못 감았나? AWG 29(직경 0.286mm) 또는 AWG 30(0.255mm)를 쓰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하겠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0.35mm 동선에 비하면 상당히 가늘다. 만약 가는 선을 쓴다면 정렬 권선에 좀 더 가까운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헛된 기대를 가져 본다.

디머 스위치를 이용한 자작 전동 권선기의 가장 큰 문제점은 (초)저속에서는 토크가 낮아서 선을 강하게 붙들면 회전이 아예 되지 않는다는 것. 만약 제대로 된 DC 모터용 속도 조절기 + DC 모터를 사용했더라면 초당 1~5회 정도의 저속에서도 충분한 토크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부하에 따라서 회전수가 변하므로 디머 스위치에 RPM 눈금을 붙이려는 애초의 계획은 쓸모가 없었다.

이런 문제점을 발견했다고 해서 전동 드릴을 치우고 DC 모터를 이용한 새로운 구동부를 만들 생각은 전혀 없다. 어차피 보빈 4개만 다 감으면 더 이상 트랜스포머 자작은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켜지지 않을 결심이 될 가능성이 크지만.

맨손으로 동선을 붙들고 감는 연습을 여러 차례 했더니 피부가 갈라져서 쓰라리다. 오늘 저녁 연습 때에는 목장갑을 끼고 해야 되겠다. 

전동 권선기는 보빈에 감았던 선을 다시 풀어내는 데에도 유용하다. 2일차 실습 때에는 뭔가 좀 나아지겠지.




2022년 12월 6일 화요일

연구란 무엇인가

'연구(硏究)'의 정의는 무엇일까? 영어로는 study, research, investigation, inquiry 등으로 번역되는 '연구'를 다음 사전에서는 '어떤 일이나 대상을 깊이 있게 조사하고 생각하여 이치나 진리를 밝힘'이라고 하였다.

미국 커먼룰에서는 45 CF 46.102(l)에서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국문 번역은 <생명윤리> 제18권 제1호 63-82쪽에 실린 논문 「미국 연구대상자 보호 정책의 최신 동향 -개정된 커먼룰(Common Rule)을 중심으로-」의 73쪽에서 따 왔다.

일반화될 수 있는 지식을 개발하거나 그에 기여할 수 있도록 고안된 연구 개발, 테스트, 평가를 포함한 체계적인 조사를 뜻한다(Research means a systematic investigation, including research development, testing, and evaluation, designed to develop or contribute to generalizable knowledge.)

우리나라 법률에서는 '연구' 자체를 정의해 놓지는 않았다. '인체유래물연구'(생명윤리법 제2조제13호)와 같이 특정 종류의 연구를 정의한 곳은 있지만.

'임상연구'는 무엇인가? 미국 National Institute on Aging(NIA)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What are clinical trials and studies?).

    Clinical research is medical research involving people. There are two types, observational studies and clinical trials.

    Clinical trial('임상시험')은 의료, 수술 또는 행동을 통한 개입이 어떠한 효과를 갖는지 알아보는 연구이다. 주된 목적은 새로 개발된 의약품이나 의료기기 등이 얼마나 안전하고 효과가 있는지 평가하기 위함이다. 커먼룰 45 CF 46.102(b)에서는 임상시험을 '생체 의학이나 행동 건강 관련 결과에 대한 개입의 효과를 평가하기 위해 한 명 이상의 연구대상자가 향후에 한 가지 이상의 개입(위약이나 여타 통제를 포함할 수 있음)에 배정되는 연구'로 정의하였다. NIA에서 내린 정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임상연구라는 큰 테두리 안에 임상시험이 들어간다고 대충 이해하면 된다. 

    서울아산병원의 메디컬칼럼(링크)에서는 다음과 같이 임상연구와 임상시험을 설명하였다. 빨간색 쉼표는 의미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내가 삽입한 것이다. 비슷해 보이는 두 낱말을 적절하게 구분한 설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심이 더욱 깊어지면 '중개연구(translational research)'라는 더 어려운 낱말의 뜻을 파고들게 될 것 같다. 치료법 또는 약물 등의 개입을 '중재'라고 한다. 임상연구에 중재가 개입된 것이 임상실험이라고 정의를 내려도 된다(메디게이트뉴스 - 임상연구의 설계①: 중재의 개념, 관찰연구의 종류, 연구의 시간적인 방향과 무작위배정 링크)

    임상연구는 암과 같은 질병의 예방, 진단, 치료에 있어 보다 효과적인 방법을 찾기 위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새로운 치료법이 포함된 전향적인 임상연구를 임상시험이라고 한다. 실제로 지금 시행되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치료법들은 과거의 임상연구의 결과를 통하여 정립된 것이며, 지금 시행되고 있는 임상연구의 결과는 미래에 시행되는 치료법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전향적 연구의 반대 개념은 후향적 연구이다. 감염병 돌발발생(outbreak)을 추적하는 역학 연구(epidemiology)에서 후향적 연구를 주로 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 법률 현실로 돌아오면 사정은 많이 달라진다. '임상시험'은 새로운 의약품이나 의료기기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하여 허가를 받기 위한 과정이고, '(첨단재생의료)임상연구'는 환자의 삶의 질 향상 및 질병 치료 기회 확대를 목적으로 실시하는, 첨단재생바이오법에서 정의하는 '연구'이다. 임상연구와 임상시험은 다르다고(나도 잘 이해하지 못하면서) 설명해야 한다. 신의료기술 평가는 너무나 복잡하여 차마 여기에 옮기지 못하겠다.

    '첨단'이나 '혁신'과 같이 일반적인 단어가 법률 안에 쓰이면 새로운 의미로 고착되어 버려서 쓰임새에 큰 제한이 따르게 된다. 신의료기술, 혁신의료기기, 혁신의료기술, 첨단재생의료, 혁신형 제약기업... 법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서 이러한 용어를 쓸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되면(보통 '인증'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많은 혜택을 입는다. 그리고 그 자격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능력이 있다면, 일몰 기한을 연장하도록 법을 바꾸기도 하고.

    자작 권선기 개량 아이디어

    본격적인 권선은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는데 벌써 개량 아이디어를 다듬고 있다. 출력 트랜스포머를 딱 한 조만 만들고 권선기는 해체하겠다고 다짐을 하였으니 조금 불편한 점이 있어도 참고 쓰면 되는데 말이다. 전동드릴 회전수 조절기는 어제 완성하였다(작동 동영상 링크).




    이번 권선기(v2.0)의 설계(?) 초기부터 구동축 고정 방식이 늘 고민스러웠다. 현재는 드릴 척과 구동축 반대편 끝의 로드엔드베어링 2점에서 지지하는 형태이다. 드릴 고정대의 일부분인 베어링(검정색 하우징 내에 있음)은 내경이 너무 커서 직경 6mm인 구동축(전산 볼트)을 전혀 지지하지 못한다. 구동축에 무엇인가를 끼워서 베어링에 꼭 맞게 해 보려고 머리를 굴렸지만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한 상태이다.

    로드엔드 베어링은 내부를 관통하는 축을 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따라서 보빈을 넣고 빼려면 먼저 드릴 척에서 구동축을 분리한 뒤 다음 그림과 같이 움직이면 된다.

    출처: 2022년 10월 5일 작성 글(링크)


    이러한 방식은 축의 끝부분(드릴 반대편, 사진에서 왼쪽)에 상당한 클리어런스를 확보해야 한다는 점이 문제이다. '클리어런스'를 대체할 적당한 국문 단어를 떠올리지 못함이 매우 죄스럽다! 다음의 그림을 보면 좀 더 명확할 것이다. 축을 분리하기 위한 1번 동작 단계에서 로드엔드베어링과 보빈 뭉치 사이에 충분한 간격이 있어야 한다.



    만약 로드엔드베어링을 현재 위치에서 분리하여 위 사진에서 보이는 보빈 뭉치의 바로 오른쪽, 그러니까 드릴 척에 가까운 부분에 고정을 하면 어떨까? 그렇게 하면 지금보다 짧은 구동축을 쓸 수 있게 되고, 구동축을 드릴 척에서 분리하지 않고도 보빈을 꺼낼 수 있다. 

    로드엔드베어링이 구동축의 끝 부분을 지지하는 현재의 구조가 구동 안정성 면에서는 가장 나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꽤 긴 축의 양 끝을 지지하게 되므로, 축의 수직 방향으로 힘이 가해지는 권선 작업 중에는 매우 안정적인 구조를 이룰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동축이 1/3 정도 짧아진다면 구동축 지지점이 드릴 쪽으로 치우친 상태라도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조금 긴 드릴 날을 사용한다고 보면 되니까.

    오늘은 동선 뭉치를 올려 놓을 납걸이(엑소 EXD-51)가 배송될 것이다. 연습 감기를 해 보면서 최적 회전수와 구동축 고정 방식을 결정하도록 하자.


    2022년 12월 7일 업데이트

    구동축은 양 끝 2점을 지지하는 방법으로 확정하였다. 로드엔드베어링을 고정하는 꺾쇠의 배치를 바꾸어서 탈착이 용이하게 하였다. 결과적으로 드릴 척을 풀지 않고도 보빈 뭉치를 넣고 뺄 수 있게 되었다.





    검정색 L자 모양의 꺾쇠 좌우로 날개처럼 튀어나왔던 자작나무 합판의 일부를 잘라내어 평탄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하면 볼트 하나를 푸는 것으로 '로드엔드베어링 + L자 꺾쇠' 뭉치를 쉽게 분리할 수 있고, 따라서 구동축을 드릴 척에서 풀어내지 않고도 보빈을 넣고 빼는 것이 가능하다. 스위스 아미 나이프에 딸린 조그마한 톱이 큰 일을 하였다. 



    이로써 자작 권선기 v2.221206이 완성되었다. 자작 권선기 v1은 2018년에 처음으로 만들었던 수동 버전에 해당한다. 다음번 도전 과제는 회전수 측정이 될 것 같다. 사실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속도 컨트롤러로 사용하는 디머 스위치에 대략적인 눈금을 붙이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로터리 엔코더와 아두이노 같은 고급스런 수단에 의존하지 않고 회전속도를 측정할 방법이 없을까?


    참고 - 베어링(bearing) 이야기: 나의 자작 권선기에는 로드엔드 베어링이 한 곳에 쓰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베어링의 원래 사용 목적과 잘 부합하지는 않는다(이전에 쓴 글 '로드 엔드 베어링은 그런 물건이 아니었다' 링크). 로드엔드 베어링은 어깨 관절과 같은 방식으로 동력을 전달('전달'이라는 것도 좀 어울리지 않지만 아래 동영상을 보면 틀린 말은 아님)하는 물건이다. 구동축을 드릴 척에서 빼내기 위해 각도를 주어 움직이는 동작을 생각한다면 로드엔드 베어링이 꽤 잘 어울리기는 하는데, 원래 이런 목적으로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다음의 유튜브 동영상 "Rod End Bearings in your Experimental aircraft"를 보면 도대체 이 물건이 기계에서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로드엔드 베어링은 구면내륜에 체결한 구동축이 고속으로 회전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런 용도라면 볼 베어링을 써야 한다. 설상가상으로 내가 만든 권선기에서는 구동축에 베어링에 고정조차 되어 있지 않다. 만약 고정을 한 상태라면 너무나 뻑뻑하여 수백 rpm 혹은 그 이상으로 잘 돌지 않을 것이고, 축의 중심을 잘 정렬해야 했을 것이다.

    현 상태는 로드엔드 베어링의 구면내륜과 구동축이 약간의 유격을 둔 상태이다. 0.몇 mm 정도의 여유를 두고 축이 이탈하지 않게 지지하는 정도로만 그 역할을 하고 있으며, 당연히 축이 회전하면서 직접적인 마찰에 의해 마모가 될 것이다. 아주 단순한 형태의 베어링인 슬리브 베어링(sleeve bearing)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오랫동안 사용할 물건이 아니니 마모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만약 내가 다음과 같은 일반적인 볼베어링을 사용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축을 넣고 빼는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다가 집어 던졌을지도 모른다. 이런 타입의 베어링에는 구동축이 꽉 끼게 들어가니 말이다. 권선기에는 보빈을 수시로 끼웠다 뺐다 반복해야 하니 구동축의 한 끝이 열려 있거나, 혹은 축 자체를 빼고 끼우기에 편리해야만 한다.

    출처: 알리익스프레스

    3D 프린터를 자작할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베어링에 관해서 공부와 고민을 거듭하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2022년 12월 5일 월요일

    개인정보 제공 및 활용을 위한 동의 체계에 관하여 알아보자

    우리나라의 개인정보 보호법은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강력한 '사전동의' 제도를 따르고 있다. 사전동의는 정보의 제공 전에 정보제공자로부터 받는 동의라는 뜻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 동의방식을 보다 상세하게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 개별적 동의방식: 정보의 수집·이용·제공에 대한 포괄동의를 금지하고 각 동의사항을 분리하여 별도로 받음
    • 선택적 동의방식: 처리목적에 필요한 최소정보만을 수집하게 하면서 최소정보 외에는 '선택'으로 동의를 받음

    정보를 먼저 제공하고 나서 실제 활용 시점에 동의를 받는다면 '사후동의'가 된다. 그러나 이 단어는 문맥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다음 사전(https://dic.daum.net/)에는 다음과 같이 풀이되어 있다(링크).

    사전 동의: 이메일이나 전화·팩스 따위를 이용한 광고성 정보 전송에서, 수신자의 허락을 얻은 경우에만 광고를 발송할 수 있도록 하는 광고 전송 규제 방식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서 발간한 보건산업브리프 제320호(2020.12.15. 발행) 「개인동의제도 현황과 개인건강정보(PHR) 활용에서 자기결정권 보장을 위한 개인동의체계」(링크)에 의하면, '사전적' 및 '사후적'이라는 뜻의 원어를 각각 'ex-ante'와 'ex-post'로 표현해 두었다. 그러나 구글을 아무리 검색해도 이를 동의(consent)와 붙여서 쓰는 'ex-ante consent'와 같은 용례는 없다. 'ex-ante analysis'라는 용례는 많이 보인다. ex-ante/ex-post 또는 'ex ante'/'ex post'는 주로 법적 문제에서 사건 전 또는 후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쓰이는 용어인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전/사후) 동의와 어울리는 말 같지는 않다.

    사실 사전동의, 고지된 동의, 또는 설명동의로 번역되는 용어는 전부 'informed consent'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보통 동의라고 하면 양자가 대등한 관계에서 합의를 하고 서명하는 계약서(contract or agreement; 구매계약, 임대차계약, 사용권계약...)를 떠올리는데, informed consent는 이러한 행위에 수반되는 문서라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도대체 informed consent는 언제부터 쓰인 말일까?

    [위키백과] 사전동의(事前同意, Informed consent)는 1957년 미국에서 의료 사고에 대한 재판에서 생긴 법 용어이다.

    에잉? 내가 생각한 것과 영 다른 분야에서 쓰이는,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조어(造語)가 아닌가? Informed consent의 적합한 번역은 '고지된 동의' 또는 '설명동의'라고 생각한다. 설명을 먼저 한 다음에 승낙을 구하는 것이라서 '사전동의'라고 의역을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미국 NCBI의 Bookshelf에도 상세한 설명이 나와 있어서 이를 참조해 보기로 한다.

    Informed consent is the process in which a health care provider educates a patient about the risks, benefits, and alternatives of a given procedure or intervention.

    그렇구나... Informed consent는 개인정보 보호의 차원에서 만들어진 단어가 아니었다. 의료계 종사자가 환자에게 어떤 (치료) 절차 등을 시행하기에 앞서서 위험성, 혜택, 대안 등을 설명하고 허락을 구하는 과정에서 받는 문서이다. 서로 대등한 입장에서 '나는 A를 줄 터이니 너는 B를 다오'라고 합의를 할 때 서명과 함께 주고받는 문서가 아니었다. '내(정보주체, data subject)가 제공하는 정보를 너는 이렇게 쓰겠다고? OK, 내가 승낙할께'에 해당하는 것이 informed consent이다. 다시 말하지만 consent는 일반적인 계약을 구성하는 동의 또는 합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GDPR에서는 consent를 이렇게 정의하였다(링크).

    Consent of the data subject means any freely given, specific, informed and unambiguous indication of the data subject’s wishes by which he or she, by a statement or by a clear affirmative action, signifies agreement to the processing of personal data relating to him or her.

    그리고 informed consent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Consent must be informed Informed consent means the data subject knows your identity, what data processing activities you intend to conduct, the purpose of the data processing, and that they can withdraw their consent at any time.

    따라서 보건산업브리프에서 ex-ante, ex-post라는 용어까지 써 가면서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고 본다. 

    학술논문 「유럽연합 GDPR의 동의제도 분석 및 우리 개인정보보호 법제에 주는 시사점」(김송옥, 아주법학 제13권 제3호 157-192, 링크)를 읽다가 사전동의라는 낱말 자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60쪽에 이런 글귀가 있다.

    우리나라의 개인정보보호법제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규제법제로 알려져 있다. 특히 유럽연합(EU)이 「개인정보보호지침」(DPD)을 개정하여 보호를 더욱 강화했다고 평가받는 「일반개인정보보호교칙」(GDPR)보다도 더 강력한 동의기반의 사전규제를 갖고 있으나, 이를 반대로 이해하거나 GDPR과 우리가 유사하다고 이해하는 경우도 많다. 이를 바로잡는 차원에서...(후략)

    개인정보 또는 보건의료 정보의 제공과는 약간 다른 차원이지만 이번에는 「바이오뱅크 기증자의 포괄적 동의와 역동적 동의」(생명윤리 제17권 제1호 89-101, 2016)에서 설명한 동의 방법을 알아보자.

    • 구체적 동의(specific consent): 기증자가 연구의 목표, 연구자, 연구로 발생 가능한 이익이나 위험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아는 상태에서 자기 인체유래물이 그 연구에 쓰이도록 동의하는 것
    • 무제한 동의(open/blanket consent): 바이오뱅크의 기관위원회가 인정한 연구라면 그 연구의 목적이 무엇이고 연구자가 누구든 상관없이 자기 인체유래물이 제공될 수 있다는데 기증자가 동의하는 것
    • 포괄적 동의(broad consent): 의학적 목적의 연구나 암과 같은 특정한 종류의 질병에 대한 연구 중에서 바이오뱅크가 인정하는 연구에 대해 자기 인체유래물이 제공되는데 동의하는 것. 대신 기증자는 언제나 철회할 권리를 가진다('opt-out'). 구체적 동의와 무제한 동의 사이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다.

    생각난 김에 국가생명윤리정책원에서 2020년 7월에 발간한 「DTC 유전자검사 소비자를 위한 길라잡이」을 잠시 살펴보자. PDF 파일을 열어 보면 '함의(含意)'라는 꽤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또한, 검사 목적과 방법, 내용 등에 따라 결과가 나타내는 함의가 달라질 수 있고...

    이 문서에서 함의라는 낱말은 모두 네 번 나오는데, 전부 '결과의 함의' '결과가 갖는 함의'와 같이 '결과'라는 낱말과 연결되어 나타난다. 이렇게 어려운 말을 쓰지 않고도 충분히 다른 낱말로 대체 가능하다고 본다. 그저 '결과의 의미'라고만 해도 되지 않았었을까?

    R코어 출력트랜스포머 권선을 위한 구리선 소요량 계산하기

    1차 권선에서 총 1350회를 감는다고 가정하자. 에나멜선을 도대체 얼마나 구입해야 할까? 에나멜선은 길이가 아니라 무게 단위로 판매한다. 4년 전에 승리케이블에서 0.35mm 및 0.70mm 에나멜선을 각각 한 롤씩 구입했었는데 무게가 얼마였는지는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당시에 작성했던 글은 여기에 있다.

    납걸이에 동선 뭉치를 걸면 권선 작업이 편하다고 한다.

    동선을 감아 나가면서 직경이 조금씩 늘어나므로 한 턴에 대한 길이가 계속 변한다. 따라서 총 턴수를 이용하여 동선 소요량(길이)를 계산하는 것은 매우 불편하다. 평균 직경을 산출하여 한 턴에 소요되는 동선 길이를 알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단위 길이의 동선이 몇 그램이나 되는지 계산하는 것도 상당히 귀찮다. 

    정확성을 희생하더라도 더 간단한 계산 방법은 없을까? 보빈의 폭(아래 그림에서는 원기둥의 높이 h로 표현)을 동선의 직경으로 나누면 한 층을 꽉 채워 감았을 때 몇 턴(turn)이 되는지 알 수 있다. 그러면 목표로 하는 1350회를 채우려면 몇 층이나 감아야 되는지 계산이 된다.  

    아래 그림을 참고하여 온갖 가정을 집어넣어서 계산해 보기로 하였다. 1차 권선 작업이 끝난 뒤의 모습을 다음 그림의 바깥쪽 원기둥(반경 Rin, 높이 h)으로 표현할 수 있다. 내부의 푸른색 원기둥(반경 Rout, 높이 h)은 코일을 감기 전의 보빈에 해당한다. 주어진 보빈의 크기와 동선 규격에 대하여 정렬을 잘 해서 감았다면 Rout이 얼마가 될지 알 수 있다.


     

    가장 바깥쪽 원기둥의 체적을 구한 다음, 보빈의 체적을 빼면 구리선이 감겨서 형성된 도넛 모양 입체의 체적이 된다. 이 체적을 구리로 꽉 채웠다고 가정하였을 때의 무게를 알아내면 된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가정이 필요하다.

    • 동선 외피(절연 피막)가 차지하는 두께는 생각하지 않는다.
    • 단면이 원형인 동선이 아무리 정렬권선된다 하여도 빈 틈이 생긴다. 반경 r인 원의 면적과 이에 외접하는 정사각형(한 변이 2r)의 면적 비율은 0.86:1이다. 따라서 내가 고안한 방식으로 계산하면 실제 필요한 구리의 중량보다 조금 더 큰 값이 나올 것이다.

    계산용 워크시트는 한컴독스 문서(링크)로 공개하였다. 다음의 사례는 AWG 28번 동선(직경 d = 0.321mm, 허용전류 0.25A), 보빈의 직경(D)과 길이(h)는 각각 26mm와 27mm로 계산한 사례이다. 내가 최근에 만든 보빈은 양 끝에 붙인 바퀴가 꽤 두꺼워서 약간의 손해를 봐야 한다. 이는 더 많은 층을 쌓아야 하므로 다 감은 뒤의 보빈 직경이 늘어난다는 뜻이 된다. 600그람짜리 한 롤을 구입하면 보빈 4개, 즉 트랜스포머 1조(2개)를 만들 넉넉한 분량이 될 것이다.

    현실에서는 아름답게 정렬권선으로 시작하다가 막감기로 끝날 확률이 아주 높다. 막감기가 되면 구리선 소요량이 조금 더 증가할 것이다.


    제한 조건은 2차 권선까지 마쳤을 경우 전체 직경이 44mm를 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초과하면 보빈 두 개가 서로 맞닿아서 코어에 끼우지 못한다. 실제 작업에서는 2차 권선 횟수로 조절해야 된다. 1차가 1350회라면 2차 권선수는 임피던스 비율에 의해서 결정이 되지만, 감다 보면 직경이 예상 밖으로 커져서 이를 다 채우지 못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많은 전류를 감당하기 위해 흔히 쓰인 2차 권선 두 줄 감기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2018년도의 첫 번째 R코어 제작에서는 1차 1050회였고(1350회를 감으려다가 착각을 해서 1050회로 끝마쳤음), 2차는 한 줄 감기로 마무리하였었다.

    오늘은 납걸이를 주문해 두어야 되겠다. 납걸이에 구리선 롤을 장착하여 트랜스포머 코일 권선 작업에 흔히 사용하는 것 같다.


    가내수공업을 다시 시작하다 - 코일 권선기 마무리

    파견 근무지 숙소의 쾌적한 실내 환경을 위하여 납땜 작업을 하지 않겠노라고 다짐을 한지 3개월이 되었다. 납땜질을 하지 않아도 R-코어 트랜스포머 권선은 가능하니 필요한 도구만 챙겨서 올 생각으로 대전 집을 잠시 방문하였으나... 서울로 돌아오는 자동차에는 6LQ8 싱글 앰프와 인두, 납, 케이블, 수축튜브 등이 잔뜩 실려 있었다. 

    출력 트랜스포머를 새로 만들었다면 소리는 들어봐야 할 것 아닌가? 반도체든 진공관이든 새 앰프를 하나 만들고 싶어하던 욕구는 잠시 줄이고, 무게가 덜 나가서 들고 다니기에 가장 적당하면서 부품 교체가 편하게 만들어진 6LQ8 싱글 앰프를 갖고 오게 되었다. 납땜 인두는 권선기용 속도조절기 제작 및  에나멜선에 리드선을 붙이기 위한 용도로만 제한적으로 쓰일 것이다.

    서울로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권선기의 마무리이다. 대전 집에서 얼추 가조립만 해 놓은 상태였다. 구동축(직경 6mm 전산볼트 이용)의 정렬을 맞추기 위하여 약간의 톱질이 필요하였다. 회전수 카운터까지 장착한 뒤의 모습을 사진과 동영상(유튜브 링크)으로 남긴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의 6LQ8 SE amplifier.


    디머 스위치를 응용한 전동드릴 속도 조정기는 금주 안에 퇴근 시간을 이용하여 완성할 계획이다. 작동 테스트는 이미 한 상태이고 전선만 연결하면 되는 단순 작업만 남았다.

    1차 권선에 사용할 AWG #28 에나멜 동선(직경 0.32mm)와 거치대만 구입하면 트랜스포머를 감을 모든 준비가 끝난다.

    준비가 완료된 R-코어와 보빈. 출처: 2022년 11월 11일 작성 글(링크)


    파견 근무지 숙소에서는 반도체 칩 TDA7265를 사용한 앰프를 듣다가 오랜만에 진공관 싱글 앰프를 들으니 신기하게도 귀와 마음이 편안하다. 단지 플라시보 효과인가? 만약 블라인드 테스트를 한다면 두 앰프의 차이를 전혀 느끼지 못할까? 플라시보 효과면 좀 어떠하랴. 내가 편하고 즐거우면 되는 것이지!


    2022년 12월 6일 업데이트 - 전동 드릴 속도 조절기를 완성하다



    다음은 작동 동영상. 회전수를 눈으로 대충 확인하여 노브에 눈금을 그려야 되겠다. 조절은 아주 세밀하게 하는 것이 안전하다.



    2022년 12월 2일 금요일

    개정 커먼룰(Revised Common Rule)과 포괄적 동의(broad consent) 공부하기 - 어디부터 클릭해야 하는가

    2018년 7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미국의 연방정책(Federal Policy) 중 하나를 왜 2022년이 끝나가는 시점에 공부하고 있는가? 개정 커먼룰이나 유럽연합의 GDPR(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이 무슨 사서삼경 중 하나라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이를 일부러 공부하는 이유는 윤리적인 인간대상 연구의 수행을 위해 이 연방정책으로부터 참고할 사항이 매우 많기 때문이다. 미국의 연방정책이라는 것이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국내법 상의 법(률), 시행령, 또는 시행규칙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 소위 커먼룰은 인간대상연구 보호를 위한 연방정책(Federal Policy for the Protection of Human Subjects)을 일컫는 것이다. 'Common(공통)'이라는 낱말은 여러 정부 기관에 적용되는 규칙이기 때문에 붙은 것이다.

    우선 2017년 국내 학술지 「생명윤리」에 실린 다음의 논문을 클릭하여 읽어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면 좋을 것이다. 꽤 길다... 다 읽고 나면 뉘른베르크 강령, 헬싱키 선언, 터스키기 매독 사건, 벨몬트 보고서, 황우석 사태와 한국의 생명윤리법 제정 등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사건을  한 번에 꿰게 될 것이다. 이런 기본적인 이제 바이오 분야를 공부하기 시작한 학부 저학년 때에 배워야 한다!

    미국 연구대상자 보호 정책의 최신 동향 - 개정된 커먼룰(Common Rule)을 중심으로 -

    다음으로는 미국의 보건복지부에 해당하는 HHS(U.S. Department of Health and Human Services)의 OHRP(Office for Human Research Protections)에서 제공하는 관련 설명을 보는 것이 좋다.

    • [HHS] Revised Common Rule Q&As 교육자료이므로 설명은 매우 친절하다.
    • [HHS] Regulations - 45 CFR 46 - 2018 Requirement(2018 Common Rule) CFR(Code of Federal Regulations)란 미국연방규정집을 의미한다. 45 CFR 46을 구성하는 A에서 E까지의 서브파트 중에서 'A'가 바로 개정 커먼룰(2018 Common Rule)에 해당한다. 맨 위에 보이는 푸른 바탕의 흰 글씨 "View an official version at e-Code of Federal Regulations"를 클릭하면 연방 관보(Federal Register)에 공개된 커먼룰 웹사이트로 이동한다. 연방 관보는 우리나라 법제처의 국가법령정보센터와 가장 흡사한 구조의 문서를 제공하고 있어서 파악하기 쉽다. 반면 공식 PDF 문서(링크)는 상당히 이해하기 어려운 문서의 구조를 하고 있다. 이 웹사이트를 스크롤하여 아래로 내려가면 각 조문(§46.101-§46.124)이 나온다. 왼쪽 메뉴바 가장 위에 링크된 벨몬트 보고서도 터스키기 매독 연구 사건을 조사하면서 나온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자료이니 생명윤리에 관심이 있다면 클릭해봄직하다. 

    NCBI taxonomy와 유사한 방식으로 Subpart A에 이르는 hierarchy를 알아보자.

    Code of Federal Regulations - Title 45(Public Welfare) - Subtitle A(Department of Health and Human Sevices) - Part 46(Protection of Human Subjects) - Subpart A(Basic HHS Policy for Protection of Human Research Subjects)

    예를 들어 국내법에서 'X법 제Y조 제Z항'이라고 말하듯이, 미국 45 CFR § 46.116(d)가 바로 포괄 동의와 관련한 것이다('Elements of broad consent for the storage, maintenance, and secondary research use of identifiable private information or identifiable biospecimens').

    다음은 SACHRP(Secretary’s Advisory Committee on Human Research Protections)에서 제공하는 권고사항(전체, 검색) 중 informed consent(설명 동의, 사전 동의, 고지된 동의 등으로 번역)에 관한 것이다. 포괄 동의와 관련한 템플릿도 제공하고 있다.

    [SACHRP] Recommendations for Informed Consent (Broad Concent Guidance, Broad Consent Template)

    내가 특별히 관심을 갖는 것은 개정 커먼룰에 도입된 '포괄 동의(broad consent)'이다. 이는 인체유래물등(유전체 정보 등을 포함하는)의 2차적 활용 연구에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동의사항이다. 1차적 연구(primary research)라면 연구자가 연구대상에게 직접 개입하거나 상호작용을 하는 연구이고, 2차적 연구(secondary research)는 1차적 연구가 끝난 뒤 남은 잔여 시료 또는 결과물을 이용하는 것이다. 2차적 연구의 내용이 어떻게 될지는 연구대상자로부터 동의서를 받는 시점에서는 알 수 없다. 따라서 이때 2차 활용에 대한 포괄 동의를 받아 놓으면 생명의료과학(또는 의생명과학) 연구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음은 자명하다.

    이전 커먼룰에서는 연구의 구체적인 사항에 대한(study-specific) informed consent를 받거나 기관심의위원회(IRB)로부터 informed consent 면제(waiver of consent)를 받는 것 두 가지 중 하나를 따라야 했다. 개정 커먼룰에서는 여기에 포괄 동의라는 세 번째 옵션을 추가한 것이다.  필수 또는 기본 선택이 아니라 옵션의 하나이며, 1차 연구가 아니라 식별 가능한 시료 또는 개인정보에 대한 보관, 관리 및 2차 연구에 한정한다. 포괄 동의는 동의 면제가 아니고 study-specific informed consent를 대신하는 것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의 연구윤리가 대상자의 보호에 치중했다면, 최근에는 연구를 통해 인류 전체가 얻게 될 혜택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경향을 반영하여 2차적 연구가 쉽게 이루어지도록 커먼룰이 개정되었다고 보면 쉽다. 물론 개정 커먼룰에서 달라진 점은 포괄적 동의의 도입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개정 커먼룰 체제에서 인체유래물과 데이터를 이용한 2차 연구가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대해서는 다음의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꼼꼼하게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미국 NIH 생명윤리 웹사이트에 올려져 있으니 그만큼 정확한 설명 자료라고 볼 수 있다.

    [Holly Fernandez Lynch, Univ. Pennsylvania] Secondary Research with Biospecimens and Data Under the Revised Common Rule

    Lynch의 발표 자료 중 아마도 가장 중요한 42번 슬라이드(출처 링크). 가장 오른쪽 경로를 보라. 이차 연구의 경우 비식별조치를 취했다면 인간대상 연구가 아니므로 IRB도, 동의 절차도 필요하지 않다. 이건 커먼룰 개정 전에도 그랬었다. 아, 부러워라!

    개정 커먼룰에서 도입된 포괄 동의를 공부하면서 아직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 것이 몇 가지 있다. 첫째, 2차적 연구는 다른 연구자에게 제공하는 것을 포함하는가? CFR에서 이에 대해 명시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특별히 금지하지 않으면 해도 된다는 미국법의 철학(무슨 근거로 이렇게 판단하는지 모르겠지만...)에 의해 판단하건대 제공도 가능한 것 같다. Ochsner Journal 20:62-75('Revised common rule changes to the consent process and concent form', PMC 링크)에 실린 동의서 사례(p.73)를 보면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

    FUTURE RESEARCH We may use or share you research information and/or biospecimen for future research studies, but it will be deidentified, which means that it will not contain your name or other information that can directly identify you...(중략)...We will not ask for your additional informed consent for these studues.

    이 샘플 동의서가 커먼룰을 위배하는 것이 아니라면, 제3자에게 주는 것이 가능하다. 이때 연구대상자(시료제공자)에게 추가적인 동의를 구하지 않을 것임이 마지막 문장에 나온다. 제3자 제공 시 비식별 처리를 하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다. 자, 그러면 비식별 조치를 어떻게 할 것인가?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단일한 비식별화 방법은 없다. 그러나 가장 많이 참조되는 미국의 HIPAA(Health Insurance Portability and Accountability Act) 비식별화 가이드라인에 의하면 경우 HIPAA에서 정의한 18개 PHI(Protected Health Information)에 대하여 전문가 판단(Expert Determination)을 하거나 완전히 제거하는 방법(Safe Harbor)를 사용한다. HHS 웹사이트에 이에 대한 글이 있다("Guidance regarding methods for de-identification of protected health information in accordance with the Health Insurance Portability and Accountability (HIPAA) privacy rule" 링크).

    Safe Harbor method의 경우를 보자. 이름, 주소(주state는 살린다), 생년월일, 전화번호 등 18개의 식별자를 자료에서 제거하는 것이다. 그럼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떠한가? 「보건의료 데이터 활용 가이드라인」에 의하면 각 보건의료 데이터 유형에 대한 가명처리 방법이 나온다. 모든 식별자는 삭제하거나 일련번호로 대체하고, 플러스 알파가 더 있다. 즉 식별자를 제거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 자체도 가명 처리를 해야 된다. 슬프게도 유전체나 전사체 자료는 안전한 가명처리 방법이 아직 확립되지 않았으므로 가명처리 유보 상태이다. 달리 말한다면 정보 제공자의 서면에 의한 동의가 없다면 아예 쓰지를 못하는 것이다. 으흑흑... 연구대상자로부터 시료 수집 단계에 2차적 사용에 대한 동의를 깜빡 잊고 받지 못했다면 쓰지를 못한다! 데이터 3법 개정의 취지는 가명처리된 정보는 제공자(정보주체)의 동의 없이도 몇 가지 목적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쓸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쓸모가 아주 많은 유전체 및 전사체 데이터는 가명처리를 아예 하지 못한다! 

    (가명처리 = 비식별처리)는 아니지만, 일단 이에 대한 논쟁은 하지 않기로 한다.

    둘째, 제3자에게 주는 경우

    유전체 정보의 개인 재식별 가능성과 그것이 가져올 잠재적 위험성에 대해서 우리나라는 지나치게 우려하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탐구해 보련다.

    둘째, 개정 커먼룰에 의해 제3자에게 제공된 자료의 운명은 어디까지 허용될까? 비식별상태를 유지한다는 가정 하에 계속 다른 연구자에게 넘어가도 되는가? 잘 모르겠다.

    셋째, 시료 제공자가 보존 기한을 명시한 경우, 포괄 동의에 의해 타인에게 넘어간 자료 역시 보존 기한이 종료되면 폐기해야 하는가? 비식별 처리가 이미 되었으니 어느 자료의 유효 기간이 도래했는지 제3자는 알지 못하므로 폐기를 못할까? 만약 식별의 의미가 시료/정보의 원 주인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1차 연구자는 이름을 '0001'이라는 일련번호로 대체하여 이 식별자를 갖는 상태로 정보를 제3자에게 준 셈이니(이것도 비식별처리에 해당), 유효기간이 도래한 시료의 경우 '0001' 자료를 폐기해 달라고 제3자에게 요청하면 되므로 가능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후자의 방식이 엄격하게 실행되려면 정밀한 추적 시스템이 필요하므로 시료를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 될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잘 모르겠다.

    넷째, 가장 어려운 궁금증이다. 여러 자료를 보면 포괄적 동의는 식별 가능한 개인정보 및 시료로 제한된다는 내용이 보인다. 여기에서 식별 가능하다는 것은 시료 또는 정보와 연결된 원 주인 및 그가 작성한 동의서와 연결 가능하다는 뜻으로 보아야 하는가? 예를 들어 Ochsner Journal 20:81-86('Understanding broad consent', PMC 링크)의 표2에는 포괄적 동의를 사용하지 못하는 사례가 나오는데, 그 중에서 다음의 것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An investigator wants to conduct research on deidentified tissue samples from the institution's tissue bank. Broad consent is not an option, because broad consent only applies if the samples are identifiable. Because the tissue samples are deidentified, obtaining study-specific informed consent may not be possible. Therefore, the investigator should seek a waiver of consent from the IRB. (연구자가 기관의 조직 은행에서 식별되지 않은 조직 샘플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려고 합니다. 포괄 동의는 샘플을 식별할 수 있는 경우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포괄 동의는 옵션이 아닙니다. 조직 샘플이 식별되지 않기 때문에 연구별 정보에 입각한 동의study-specific consent informed consent를 얻는 것이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조사자는 IRB의 동의 면제를 구해야 합니다.)

    뭔 소리지? 식별되지 않은 조직 샘플을 채취할 때 받은 동의서가 broad consent에 따른 것이라면 상관이 없지 않나? 식별되지 않는 조직 샘플이라는 것의 의미는 '여기에 원래 딸려 있었던 동의서가 무엇이었는지 역추적이 불가능한 것'을 의미하는가? 갑자기 조직 은행의 운영 방식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상식적으로 조직에는 일련번호를 붙이고, 이를 수집할 때 받은 동의서에도 같은 일련번호를 붙여서 별도의 장소에 관리하지 않을까? 이 예문을 글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누구 샘플인지 모르기 때문에 동의를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포괄적 동의는 시료 제공 시점에 하는 것이 상식이지만, 1차 연구가 끝난 다음에 시료 제공자를 찾아서 '1차 연구는 성공적으로 끝내게 되어 감사합니다. 남은 시료를 다양한 연구 목적으로 쓰려고 하오니 새로 만든 동의서에 또 서명해 주시되 이번에는 연구 목적이 아주 브로오-드하므로 구체적으로 쓰지는 않을 거예요'라고 하는 상황이 떠오른다. 시료의 채취는 1차 연구 때 이미 끝났으므로, 앞으로의 활용에 대한 위험은 없다고 봐야 한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생물학적 시료를 조사하여 개인을 식별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 및 그 정보의 악용 위험성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고 있지만... 이것은 동적 동의(dynamic consent)의 종이 버전이라고나 할까. 안 될 것은 없다. 그런데 문제의 시료가 누구 것인지 모른다면 당최 추가 동의서를 받을 방법이 없다. 이러한 상황을 의미하는 것인지?

    이상에서 열거한 네 개의 궁금증은 무식의 소치일 수도 있고, 관련 분야 전문가가 답을 주어야 하는 수준의 것도 있을 것이다. 부디 혼자 더욱 깊게 공부하는 과정 중에 스스로 답을 찾게 되기를 바란다. 

    혹시 지나가던 전문가께서 이 글을 읽고 글쓴이의 무식을 깨우쳐주고 싶으시다면 댓글을 부탁합니다!

    2022년 12월 1일 목요일

    12월 첫 날 아침의 막커피 - 던킨 원두

    스타벅스에 이어서 이번에는 던킨 도넛에서 파는 원두를 구입해 보았다. 제품명은 '브로드웨이'. 이번 겨울 시즌을 겨냥하여 나온 것으로서 에티오피아, 니카라과, 콩고의 세 종류 원두를 블렌딩하여 미디엄 로스팅하였다고 한다. 봉투를 뜯으니 기름기가 흐르는 원두에서 향긋한 냄새가 풍긴다. 바로 직전까지 먹었던 스타벅스 원두와는 또 다른 분위기이다. 

    요즘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는 바람에 뜨거운 물을 담아 컵을 미리 데웠음에도 불구하고 금방 커피가 식어버린다.


    던킨 '브로드웨이'의 화려한 봉투 디자인이 마음에 든다.


    광화문 근처의 로스팅 샵에서 원두를 살 생각도 해 보았지만 충분한 정보가 없어서 구입을 망설이고 있었다. 던킨 커피라면 '막커피'를 내려먹는 나의 고급스럽지 않은 입맛을 만족시키기에 딱 적당하다.

    막커피 핸드 드립 실력은 앞으로 얼마나 더 수련을 거쳐야 나아질 것인가? 수동 분쇄기의 입자 조절이나 해야 되겠다. 예전에 이걸 가지고 에스프레소를 내리겠다고 최대한 작게 갈리도록 만들었더니 핸드 드립으로 내려 먹기에는 좀 진하게 우려지는 것 같다. 신맛을 적게 하고 싶은데 아직 요령이 부족하다. 시간은 총 4분 이내로 철저히 지키는 편이다. 중~강배전 쪽으로 원두를 택해야 하는 것인지...

    최초로 상업적 가능성을 보인 백열전구의 탄생일이 다가온다

    오늘(12월 1일)이 무슨 날이길래 구글이 이런 그림을 내다 걸었을까? 마우스 포인터를 그림에 갖다 대어도 특별히 설명이 나오지 않는다. 혹시 에디슨이 백열전구 실험에 성공한 날인가?



    맞다. 1879년 12월 3일, 바로 멘로 파크의 실험실에서 에디슨의 백열전구가 탄생한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날은 수많은 시도 끝에 비로소 실용성이 있는 필라멘트의 재료를 실험적으로 입증한 날이라고 보는 것이 맞겠다. 에디슨은 정말로 존경할 만한 엔지니어였을까? 이에 대해서는 워낙 논란 거리가 많으니...

    백열전구의 시대는 가고, 이제는 자동차와 건물용 조명까지 LED가 대세인 시대가 되었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한 LED를 보면 왠지 따뜻함보다는 차가움이 느껴진다. 발열이 별로 없다는 미덕(저전력)이 따뜻함을 앗아간 것 아니겠는가.

    효율이 극히 나쁜 백열전구는 퇴출되었지만, 비슷한 정도로 효율이 나쁜 장치인 진공관 앰프는 아직 살아남았다. 워낙 수요가 적으니 법으로 제조 또는 자작을 막을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2022년 12월 5일 업데이트

    구글 검색 페이지의 전구 모양은 에디슨의 백열전구 실험 성공을 기념하기 위함이 아닌 것 같다. 그림 위에 마우스 포인터를 갖다 대었더니 그저 '2022 연말연시'라는 글귀가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