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3일 월요일

[뉴욕 여행기 4] 되는 것 없는 하루: 지하철에서 방황하기

9월 16일 월요일. 주말 이틀 동안은 딸아이가 뉴욕 시내를 안내하며 몇 군데 명소를 돌아다녔다. 오늘부터는 우리 부부가 알아서 낮 시간을 보내야 했다. 사전에 철저하게 준비를 하지 못한 관계로 관광 안내책자를 대충 참조하여 업타운 쪽으로 가 보기로 하였다. 위험하다고 알려진 할렘과는 직접 관계가 없는 곳이다. 업타운 또는 어퍼 맨해튼은 맨해튼의 북쪽 끝으로부터 센트럴파크의 남쪽 경계인 59번가까지의 지역을 뜻한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뉴욕'하면 떠올리는 이미지에 해당하는 미드타운은 59번가부터 14번가까지, 그리고 그 남쪽은 다운타운 또는 로우어 맨해튼이다.

컬럼비아 대학교 캠퍼스가 아름답다고 하여 지하철을 갈아타고 116가-컬럼비아 대학 역에서 내렸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 대학으로 들어가는 모든 입구를 막아놓고 학생과 교직원만 들여 보내는 것이 아닌가? 최근 일어난 총격 사고 등으로 인하여 보안을 강화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 딸에게 물어보니 학생들의 시위가 너무 많아서 출입을 통제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아쉽지만 컬럼비아 대학교 근처의 명소인 세인트 존 더 디바인 대성당으로 가 보았다. 그러나 입장료가 생각보다 비싸서 입구에서만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성공회 성당인 이곳은 1892년 착공하였으나 아직도 미완성!

1904년에 지어진 116th Street Station.

세인트 존 더 디바인 대성당을 배경으로 한 컷.

저것은 키스 헤링의 그림을 것이다.


성당 근처의 어린이를 위한 조각 공원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고...



센트럴 파크의 북쪽 끝자락을 잠깐 들렀다. 어디선가 풍겨오는 낯설고 역겨운 냄새는 아마도 마리화나 냄새? 여행 기간 내내 뉴욕시 곳곳을 지나면서 종종 맡을 수 있었다. 거 참.... 



근처에서 페루 음식을 파는 식당을 검색하여 이동하는 도중에 그래피티 명예의 전당이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여기는 Central Park East 고등학교의 담벼락에 해당한다.




평생 언제 페루 음식과 맥주('Cusqueña')를 먹어 볼 일이 또 있겠는가?


세비체(남미식 물회?)와 볶음밥.

조금 더 걸어서 뉴욕시 박물관에 가 보았으나 여기도 입장료가 만만치 않았다. 매주 수요일은 무료 입장이라는 안내를 받고 다시 오기로 했다. 


사전 조사를 충분히 하지 못한 탓이었을까, 오전 탐방은 별 성과 없이 끝났다. 상당히 많은 거리를 걸었기에 코리아 타운에 있는 H 마트에 들려서 한국 식재료를 사기로 하였다. 103가역에서 지하철 6번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 33가역에서 내린 다음 서쪽으로 조금만 걸으면 된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보인다.



한국계 마트라고 해서 화장실 인심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바로 곁의 그릴리 스퀘어 공원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하라고 하였다.

비교적 더운 날씨에 냉장고에 넣어야 하는 식재료를 샀으니 되도록 빨리 집에 돌아가야 한다. 바로 근처의 34가-Herald Square역에서 B선을 탄 뒤 북쪽으로 단 한 정거장만 올라가면 타임즈 스퀘어-42가역이 나오고, 여기에서 서쪽 플러싱 방향으로 가는 7호선으로 갈아타면 된다.

바로 이때부터 난관이 시작되었다. 지하라서 구글맵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데, 바깥으로 보이는 정차역의 이름이 좀 이상하다. 몇 정거장을 지날 때까지 문제가 뭔지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였다. 아! 지하철을 반대로 탔구나! 어느새 지하철은 맨해튼을 벗어나 다리를 건너 브루클린으로 접어들었고, 아주 한참을 가서야 아틀란틱 애비뉴 역에 도착하였다.


반대로 탔으니 플랫폼에 내려서 단순히 역방향으로 가는 열차를 타고 되돌아 가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 반대편으로 같은 노선이 지나가지 않는다! 이곳 지하철 환승역은 한국의 대부분 역이 그렇듯이 플랫폼 반대편에서 같은 노선의 역방향 열차가 지나간다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초행자는 좌절을 겪을 수 있다. 하나의 플랫폼에 서로 다른 노선이 지나가는 일도 흔하므로 전광판을 잘 보고 있어야 한다는 딸의 말이 생각났다.

복잡한 환승역 구조의 사례(Queens의 퀸스보로 플라자역). 우드사이드에서 맨해튼 방향으로 가는 7번을 타고 왼쪽에서 내렸다.  그러나 같은 플랫폼의 반대편(오른쪽)에서는 되돌아가는 7번을 탈 수 없다. 맨해튼을 거쳐 브루클린으로 가는 N과 W 노선을 타려면 이 플랫폼의 반대편에서 승차하면 되지만(위 노란색 네모), 반대방향, 즉 퀸스의 북쪽으로 가려면 계단을 통해 올라가야 한다. 플러싱 방면으로 가는 반대방향 7번을 타려면 마찬가지로 계단으로 올라가야 된다.

구글맵이 터지지 않으니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옆의 현지인에게 어떻게 해야 맨해튼쪽으로 다시 올라갈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일단 한 층을 올라가서 아무거나 타도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위로 올라가 보았지만 노선의 방향에 대한 감각을 완전히 상실하여 거의 패닉 상태에 이르렀다. 집에 돌아갈 수나 있을까? 겨우 친절한 현지인을 만나서 지하철 노선 안내도 앞에서 설명을 들었다. 그가 다음의 두 질문을 던졌다. 최종 목적지는 어디인가? 여기에서 맨해튼 쪽으로 가는 노선 중 어느 것이 가장 적합할까? 정답은 Q선이었다. 그는 친절하게도 Q 승차장까지 우리를 데리고 가서 그가 갖고 있던 지하철 앱을 보여주며 환승역을 지나치지 않도록 사진을 찍어 가라고 했다. 내가 갖고 있는 구글맵과는 모양이 아주 달랐기 때문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이 앱은 인터넷 연결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쓸 수 있는 다운로드형 노선도 앱인 'Map of NYC Subway - MTA(Metropolitan Transportation Authority)'였던 것 같다. 환승역에 이르러서 7호선 승차장으로 이동할 때에는 방향을 헷갈리지 않도록 아주 조심하였다. 우리가 가야 하는 곳은 동쪽으로 가는 플러싱 방면의 열차이다. 반대 방향으로 가면 한 정거장 뒤가 종점인 34가-허드슨 야즈라서 크게 좌절할 일은 없지만.

이스트 강을 사이에 두고 왼쪽은 맨해튼, 오른쪽은 브루클린이다. 빨간 타원으로 표시한 Atlantic Ave역의 환상적으로 복잡한 환승 구조를 보라. 초행길에 저 역에서 무사히 환승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기적이다. 지도 원본은 여기에서 얻었다.

남자와 여자의 문제 해결 방식은 매우 다르다. 남자는 일단 문제 해결을 위해 '동굴'에 들어간다. 주변의 상황을 차단한 상태로 혼자 골몰하거나 휴대폰을 뒤진다. 오늘과 같이 길을 잃었을 때에는 '지도'에 더욱 파고들면서 혼자 해결하려고 든다. 절대 다른 사람에게 길을 물어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여자는 지나는 사람에게 묻는 해결 방법을 택한다. 이러한 차이는 남자와 여자의 뇌 작동 방식이 다르기 때문으로, 매우 잘 알려진 현상이다.


이러한 차이를 잘 이해하고 활용하면 살아나가면서 접하는 정말 많은 문제를 풀 수 있을 것이다. 자기의 방식만을 고집하면 불필요한 충돌이 일어나게 되고 서로 감정도 상하게 된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오늘과 같은 일이 몇 번 있었다. 결국 누가 옳았었나? 5전 3승 2패? 그런 것을 따져서 무엇하겠는가? 부부는 서로 겨루는 사이가 아니다. 좀 더 너그럽게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던 나 자신을 반성해 본다. 

귀국하기 전에 어퍼 맨해튼을 한번 더 도전해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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