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0일 목요일

손글씨 쪽지로 의도치 않게 남을 설레게 했던 사연

낭만과는 별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학술행사(2024 대한의료정보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있었던 작은 에피소드를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오늘 있었던 일이다.



이번 학술대회의 주제는 'Omnibus Omnia Beyond Healthcare AI'. '옴니버스 옴니아'는 고 정진석 추기경의 사목 목표로,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을'이라는 뜻의 라틴어라고 한다. 심포지엄이 열린 건물의 이름 또한 옴니버스 파크(가톨릭대학교 성의교정).

규제혁신추진단에서 전문위원으로 일하던 시절, 디지털 헬스케어의 발전을 저해하는 규제 문제의 개선에 관심을 갖고 관련 법령과 현장에서 불거지는 문제점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산업적 활용과 정보 주체의 사생활 보호라는 서로 상반된 가치를 어떻게 조화롭게 충족할 수 있을까? 분자생물학과 미생물 유전체학 분야에서만 맴돌던 나에게 보건의료데이터의 활용이라는 새로운 주제는 새롭고도 제법 흥미를 끌었다. 2022년 9월에는 <디지털 헬스케어 연합포럼>(Digital Healthcare Alliance Forum, DHAF)에 참석하여 유익한 강연을 들었고, 주제발표를 했던 곽환희 변호사와는 그 후로도 이메일을 주고받은 일이 있다(당시 썼던 글 링크). 포럼 현장에서 서로 명함을 주고 받았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당시에는 리멤버라는 명함 및 인맥관리 앱이라는 것이 있는지도 몰랐고, 바로 어제까지도 내 휴대폰에는 곽 변호사의 전화번호가 없었다.

그 후로 2년이 지나 이번에는 대한의료정보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내가 발표를 하게 되었다. 원래 다니던 학회가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연사로 속한 심포지엄 01('국가 통합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 사업')만 끝난 뒤 서둘러 대전으로 내려올 생각이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의 노력으로 잘 만들어진 파워포인트 자료를 발표하고 그런대로 무난하게 행사를 마쳤다. 

잠시 여유를 갖고 프로그램집을 펼쳐보니 대형언어모델(LLM)에 대한 내용이 많아서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정말 모든 학술 분야에서 높아졌다는 것을 느꼈다. 심포지엄 04 '보건의료 데이터 활용방안: IRB와 DRB의 조화' 심포지엄에서는 규제혁신추진단에서 일하면서 세미나를 위해 초청했었던 서울아산병원의 유소영 교수와 위에서 언급한 곽환희 변호사가 강연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어느 방에서 심포지엄이 열리는지 금방 확인이 된다면 인사라도 하고 갈 수 있을 터인데... 아쉬운 마음으로 배낭을 들고 자리를 뜨려는데, 바로 같은 방(옴니버스 파크 컨벤션 홀) 헤드 테이블에 앉아 있는 유소영 교수가 눈에 뜨였다. 다행스럽게도 같은 곳에서 심포지엄 04가 이어지는 것이었다. 새로 바뀐 내 명함을 건네면서 함께 인사를 나누고 중간에 편하게 나갈 수 있도록 뒤쪽의 빈 자리에 앉아서 강연을 들었다. 두 번째 발표인 '보건의료 빅데이터 활용에서 DRB의 역할'(순천향대학교 양현종 교수)에서는 외부의 요청에 의해 의료데이터를 가명처리한 뒤 제공해야 하는 의료기관 현장의 생생한 어려움을 전해 들을 수 있는 매우 유익한 내용을 다루고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글을 쓰려고 한다. 

이어서 세 번째 발표자인 곽환희 변호사를 소개하는데 내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이 벌떡 일어나서 가방은 테이블 위에 둔 채 연단을 향해 나가는 것이 아닌가? 아, 곽 변호사가 바로 곁에 있었는데도 몰랐었구나... 하긴 포럼에서 한번 만나고 그 뒤로는 이메일 교신만 했으니 옆모습 만으로는 알아보기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반가운 마음으로 수첩을 꺼내서 쪽지 편지를 쓴 다음 내 명함과 함께 가방 위에 올려놓고 발표를 조금 듣다가 대전으로 오기 위해 중간에 자리를 떴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이틀 동안 대전-부산-서울-대전을 거치는 강행군을 펼치느라 피곤한 상태로 졸면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보니 곽 변호사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와 있었다. 쪽지 받아서 오랜만에 설레었고 또 반가웠다고. 아, 그렇구나! 잠깐 자리를 비운 뒤 다시 돌아왔더니 누군가가 남긴 쪽지 편지가 남아 있다면 어떤 사연일지 기대를 갖고 열어 보지 않겠는가? 펼쳐 보기 전에는 누가 왜 이런 것을 남겼을지 즐거운 상상을 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쪽지를 남긴 초로의 '아저씨'로서 그 기대를 여지없이 깬 것 같아서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 사실 문자 답신을 받기 전에는 내 쪽지 편지가 그러한 기대감을 갖게 했을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 고전적이고도 아날로그적인 소통 방식이 오늘같이 무덥고 지치는 초여름 날에 두 사람 모두에게 유쾌한 에피소드가 된 것 같다. 어쩌면 설레었다는 그 리액션이 단지 유머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연구 대상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안전한 데이터 제공을 위해 현 제도가 요구하는 IRB 및 DRB는 실제 현장에서 많은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그저 몇 편의 글이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 피상적으로만 문제 제기를 하던 나에게 오늘 심포지엄은 매우 유익하였다. 어쩌면 대전으로 돌아오기 위해 아예 듣는 것을 포기했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우연이라 생각했던 나의 선택이 새로운 도전의식을 불어 넣어 주었고, 이 분야에 입문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던 분들을 다시 만나게 되어 더욱 좋았다.

셀피 놀이. 넥타이와 연자용 이름표 목줄의 두 색깔이 절묘하게 어울린다. KOBIC에서 (다시) 일하게 되면서 내 업무 스타일의 많은 것이 바뀌었는데, 특히 공식적인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짧은 글쓰기와 구두 발표를 자주 하게 되었다는 점이 과거와 다르다. 

내가 발표를 했던 옴니버스 파크 컨벤션홀은 정말 넓은 곳이었다. 2022년 완공된 최신식 건물로서 대규모 행사를 하기에 전혀 손색이 없었다. 이렇게 넓은 방에서 발표를 해 본 일은 내 기억으로도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연자나 패널 입장으로는 약간 불편한 점이 있었다. 상당한 시간 지연을 두고 반향음이 들려서 내가 하는 말을 깨끗하게 알아듣기 어려웠다. 특히 패널 토론에서는 더욱 심했다. 패널들에게 나누어 준 무선 마이크가 행사를 위해 별도로 설치한 앰프 및 스피커로 재생이 되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플로어의 좌우 벽면에는 몇 대의 메인 스피커가 적당한 간격을 두고 청중을 향해 배치되어 있으니 청중들에게는 불편한 점이 없지만, 모니터 스피커가 없었기 때문에 연단 위에서 말하는 사람은 메인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를 반향과 더불어 느껴야만 했다. 이상은 오디오에 민감한 사람의 불평이었다. 학술 행사에 연사로 참여하면서 모니터 스피커의 필요성을 느끼고 오다니... 이건 거의 직업병이다! 아니, 취미병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부산에서 서울로, 학회 1박 찍고 다시 다른 학회로...

2021년 부산 BEXCO에서 열렸던 한국미생물·생명공학회 정기 학술대회 및 국제 심포지엄이 이번에도 같은 장소에서 열렸다. 2021년 여름은 2019년 4월부터 2년 동안의 기업 파견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였고, 2022년 8월부터 올 1월 말까지 다시 1년 반 동안 정부 조직(국무조정실 규제혁신추진단)에 파견 근무를 나가느라 사실 최근 사오 년 정도는 학회 활동을 거의 하지 못한 상태였다.

어차피 나는 사람 사귀는 데에는 별로 소질이 없어서 학회를 인적 교류의 폭을 넓히는 계기로 잘 활용하지는 못한다. 내가 오랫동안 몸담았던 분야가 최근에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 하지만 바로 이틀째에는 서울에서 열리는 대한의료정보학회 춘계학술대회의 국가 통합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 사업 심포지엄에서 유전체 등 오믹스 데이터 생산·분석 정책지정과제에 대한 발표를 해야 한다. 그래서 일부러 부산역 앞에 숙소를 잡은 뒤 한국미생물·생명공학회는 하루만 참석하고 둘째 날 아침 서울로 이동하기로 했다. 비싼 학회 등록비를 내고도 충분한 시간을 머물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어제(2024년 6월 19일) 낮 부산에 도착한 직후.

BEXCO를 편하게 가려면 부산 도시철도 2호선 '벡스코역'이 아니라 '센텀시티역'에서 내려야 한다. 혼란을 주는 역명 때문에 논란이 있었던 것 같다.

전에 갔었던 벡스코 앞 롯데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이 왜 보이지 않는 것일까? 그건 내가 벡스코역에 내렸기 때문. 3년 전에 똑같은 곳을 찾아서 며칠을 보냈던 기억은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엉뚱한 역에서 내리는 바람에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한 정거장을 걸어야 했다. 



평의원회가 열렸던 광안리 어느 횟집의 창가에서 바라본 풍경. 족히 90 dB SPL이 넘는 수준으로 왁자지껄한 평의원회에서도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힘들어서 적당히 눈치를 보다가 자리를 떴다.


예년보다 빨리 찾아온 폭염은 부산이라고 하여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광안리 해변가에서 열렸던 평의원회에 잠시 참석하여 저녁을 먹고 늦은 시각에 부산역 앞으로 돌아오니 제법 선선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것이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의 좋은 점이 아닐런지?

숙소의 수준에 대해서는 별로 말을 하고 싶지 않다. '부산역에서 가깝고 쌀 것'이라는 조건을 겨우 만족하는, 이름만 호텔인 숙박업소의 수준이 오죽하겠는가? 오후에 서울에서 열리는 학회의 발표 준비를 좀 더 하겠다는 마음으로 일찍 일어나서 컴퓨터 앞에 앉았지만 실은 별로 좋지 못한 숙소의 환경이 주는 불편함 때문에 잠이 일찍 깬 것이 맞다. 간단히 차려먹을 수 있는 아침 식사가 준비되어 있다고 해서 1층에 내려가 보니 수많은 파리가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환영 비행을 하고 있었다. 오, 과연 여기가 2024년 대한민국 제2의 도시가 맞는가...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비용을 조금 더 지불하고 부산역 바로 옆에 붙은 토요코인에서 묵을 것을.

서울로 향하는 KTX에서는 또 노트북 컴퓨터를 펼쳐 놓고 발표자료를 검토하면서 입 속으로 연습을 하고 온라인 결재를 했다. 어제도 학회장에 머무는 동안 부처에서 오는 전화를 받느라 집중을 하기 힘들었다. 이래서 여름 휴가라도 제대로 갈 수는 있을지? 앞으로 3년 동안은 개인 생활이나 '고요함'을 완전히 포기해야 하는가? 

그 3년이라는 기간이 '곱하기 2'가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도 주어진 일은 기대 수준에 맞게 해야 될 것이다. 어서 짐을 챙겨서 부산역으로 나가야 되겠다. 오랜만에 찾은 학회에서 마음 속에 쉼표를 좀 찍어보려 했으나 그것조차 여의치 않다.

숙소 탈출! 이 골목을 따라서 죽 가면 바로 오른편이 부산역, 왼편은 역 광장이다. 사진을 촬영한 곳은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1213-3.



2024년 6월 17일 월요일

주말의 변산반도 나들이

주말에 아내와 함께 차를 몰고 나들이를 나갈 때 특별히 꼼꼼하게 목적지를 선정하는 성격은 아니다. 대개 당일치기 코스를 고르면서 전날이나 심지어는 당일 아침에 어디를 갈지 정하고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넣고 가기 일쑤이다. 지난 주말(6/15)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변산반도쪽으로 가기로 하고 목적지 근처의 적당한 식당 이름을 찾아 넣은 뒤 대전당진고속도로와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렸다.

첫 목적지는 변산해수욕장이었다. 간단히 해물 칼국수를 먹고 커피를 한 잔 마신 뒤 바닷가로 나가 보았다. 아직 개장 전이라서 사람은 많지 않았고, 가족 단위로 갯벌에서 조개를 캐는 관광객이 더러 있었다. 여기에서 채석강이 그렇게 멀지 않을 텐데...



바로 정면 바다 건너에 보이는 섬은 비안도와 두리도 및 부속 도서가 아닐까 싶다.



아, 그렇구나! 채석강 바로 옆에 있는 해수욕장은 격포해수욕장으로 변산해수욕장에서 해안을 따라 남서쪽으로 더 가야 한다. 가는 길에는 고사포해수욕장을 만날 것이다.

다음 목적지는 내소사였다. 꽤 오래전에 아이들과 함께 내소사를 찾았던 기억이 있다. 입구의 식당가를 지나치는데 어느 식당 주인이 갑자기 구운 전어를 들이밀면서 머리부터 꼭꼭 씹어 먹으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평소 생선을 이런 식으로는 먹지 않아서 다소 놀랐지만, 생각보다 먹을 만하였다. 

내소사는 입구의 전나무숲길이 유명하다. 부도밭을 지나고 봉래루를 만나면서 조금씩 기억이 되살아나는 듯 하였다.


'능가산 내소사'라는 편액이 걸린 일주문 앞에서. 내소사(來蘇寺)는 '소래사(蘇來寺)'에서 개칭된 절로, '이곳에 오면 소생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산사를 방문하여 천왕문을 지날 때에는 항상 동방지국천왕의 플레이 스타일(?)을 유심히 관찰하고는 한다. 동방지국천왕이 연주하는 악기는 비파지만 내가 요즘 연습하고 있는 일렉트릭 베이스를 닮았기 때문. F-홀에 해당하는 긴 구멍에는 바깥을 매섭게 내다보는 눈이 보인다. 


봉래루. 제멋대로(?)의 크기를 자랑하는 주춧돌과 기둥의 묘한 조화가 이채롭다.

대웅보전(보물).

내소사 대웅보전의 꽃살문은 너무나 유명하다.

수령 1천년이 넘는다는 느티나무.

국보로 지정된 동종. 고려시대에 주조되었다고 한다.

돌아오는 길에는 잠시 군산에 들렀다. 점심을 너무 많이 먹은 관계로 정작 군산에 와서는 옛날식 팥빙수를 한 그릇 먹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군산 내항 쪽에는 대규모의 수제 맥주집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기회가 되면 즐겨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나, 차를 가지고 다녀야 하는 형편 때문에 일정을 아주 잘 짜지 않으면 어렵다. 마침 6월 21일부터 23일까지 2024 군산 수제맥주 & 블루스 페스티벌이 열린다고 하니 관심을 가져 보도록 하자(행사 링크).





2024년 6월 13일 목요일

스피커의 정격 출력에 못 미치는 앰프를 연결하여 구동하면 스피커가 망가진다?

엊그제 구입한 PA 스피커(12인치 우퍼)의 연속 허용 입력은 250와트인데 반하여 이를 구동하는 파워앰프(인터엠 R150 PLUS)의 출력은 8옴 임피던스 기준으로 채널 당 50와트(THD 0.5%), bridged mono 모드에서는 170와트(THD 0.05%)이다. THD는 total harmonic distortion(전고조파 왜율)을 의미한다. 출력이 낮다고 하여 소리가 작은가? 그렇지는 않다. Sensitivity는 1와트에 대하여 96 dB/m이기 때문이다. 물론 공연장을 쩌렁쩌렁 울리는 수준은 되지 않을 것이다. 앰프와 스피커의 파워 매칭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먼저 THD(전고조파 왜율)의 의미를 설명한 자료부터 링크하겠다. 전자공학 측면에서 '건조하게' 정의한 THD는 낮을 수록 좋은 앰프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지만, 음악의 측면에서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 실용적으로 1% 미만의 THD라면 이를 알아챌 수 있는 황금귀는 거의 없다고 한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스피커의 정격보다 낮은 출력의 앰프를 물린 뒤 과도하게 앰프의 출력을 높여서 클리핑이 발생한 상태로 오랫동안 사용하면 트위터가 망가질 수 있다는 경고성 글이 제법 보인다. 클리핑이란 신호 레벨이 너무 높아서 여기에 연결된 장비(예: 앰프)에서 신호의 높은 부분이 잘리는 것을 의미한다. 클리핑이 일어나면 네모파(사각파)와 비슷한 모양이 되므로 과도한 고조파(하모닉스; 음악 분야에서는 배음이라고도 부르지만 두 용어는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음)이 생겨서 트위터에 무리가 간다는 것이다. 파형에 따르는 고조파의 구조는 이 웹사이트를 참고하라. 배음은 결과적으로 높은 주파수의 소리이니, 트위터에 부담을 주는 일이 이론적으로는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클리핑이 생기면 일단 소리가 이상해지니 오디오 경력이 좀 되는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 실제로 이런 이유 때문에 소중한 스피커 시스템을 망가뜨린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게다가 공연용 대출력 파워 앰프는 클리핑이 일어날 때 경고등이 들어오며, 스피커 단락이나 앰프의 과열 등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보호 장치가 잘 마련되어 있지 않은가.

어떤 글에서는 클리핑이 일어나는 경우, 즉 신호가 잘리는 동안 앰프의 모든 입력 전압이 열로 변환되어 스피커의 보이스 코일이 손상될 수 있다고 한다. 이 글 아래에서 소개한 Crown Audio의 웹사이트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If you use much more power, you are likely to damage the speaker by forcing the speaker cone to its limits. If you use much less power, you'll probably turn up the amp until it clips, trying to make the speaker loud enough. Clipping can damage speakers due to overheating. So stay with 1.6 to 2.5 times the speaker's continuous power rating.

클리핑이 스피커에 무리를 주는 원리를 완벽하게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저 달달 암기한 상태에서 남에게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낮은 출력의 앰프라 해도 능률이 좋은 큰 스피커를 클리핑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로 구동해도 현실적으로는 별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1~3와트 수준의 출력에 불과한 진공관 앰프로 음악 감상을 한 것이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았다. 또한 진공관 앰프는 매우 부드러운 클리핑이 발생하므로 이런 문제가 훨씬 적을 것이다.

그러면 정해진 사양의 앰프와 스피커를 사용하는 조건에서 과연 얼마나 멀리 떨어진 거리까지 적정한 수준의 소리를 전달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작업 및 감상 청취 레벨은 85 dbSPL이다. 귀가 85 dB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영구적인 청각 손실을 입을 수 있으며, 매우 시끄러운 댄스 클럽이 90 dB 정도이다.

포인트 소스에서 소리가 나는 경우 거리의 제곱에 비례하여 음압이 떨어진다. 거리가 2배로 늘어나면, -6 dB의 감쇠가 일어난다. 자, 그러면 벽이나 천장, 바닥에서 음의 반사가 일어나지 않는 가상의 공연 현장을 예로 들어 계산을 해 보자. 내가 보유한 장비를 기준으로 50와트 파워앰프에 96 dB 스피커를 물렸을 경우, 85 dB까지 음압이 떨어지는 거리는 얼마나 될까?

홈레코딩 위키의 앰프 매칭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계산기에 수치를 넣어 보면 그 답을 알 수 있다. Watt to dbSPL 항목에서 앰프의 출력과 스피커의 sensitivity를 입력하면 1 미터 거리에서 느껴지는 음압은 113 dB로 계산된다. 113 dB와 85 dB의 차이는 28 dB이다. 따라서 -28 dB(0.001736배)까지 음압이 떨어지는 거리를 Inverse Square Law 항목에서 계산해 보면 기준 거리인 1미터의 24배가 된다. 즉, 24미터 떨어진 곳에서는 비로소 85 dB로 들린다는 것이다. 대충 테니스 코트의 크기(복식 라인 기준 23.77440 m x 10.9728 m)의 실내 공연장을 채운 청중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여기에 몇 가지 고려해 넣어야 할 요인이 있다.

앰프를 항상 최대 출력으로 작동시키면 좋지 못하니, -3 dB 정도(1/2 파워)로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면 기준 거리의 음압은 113 - 3 = 110 (dB)가 되고 도달 거리도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더 좋은 일이 있다. 지금까지의 계산은 단일 채널에 대한 것이다. 내 파워 앰프는 2 채널이고, 엊그제 구입한 스피커 CX12 역시 두 개가 있다. 따라서 파워 앰프를 -3 dB 수준으로 구동하여도 결국 2배, 즉 +3 dB의 효과가 있으니 처음 계산한 거리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실제로는 벽에 의한 반사가 있으니 24미터보다 좀 더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85 dB를 맞출 수 있다. 단, 스피커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은 과도한 음압에 노출되므로 상당히 귀가 아플 것이다. 

지금까지 안내한 방법은 절대로 완벽하지 않다. 헤드룸을 특별히 고려하지 않았고, 재생되는음악의 장르에 따라서도 실은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보다 자세한 것은 다음의 웹사이트를 참조하라.

[Crown Audio] How much amplifier power do I need?

그리고 크레스트 팩터(crest factor, 어떤 소리 파형의 RMS에 대한 peak의 비율)에 대해서도 잘 공부해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2024년 6월 12일 수요일

나도 12인치 스피커를 갖게 되었다

비록 그것인 PA(public address) 용도의 패시브 라우드스피커(2-way)로서 플라스틱 케이스에 들어 있는 제품이라 해도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다. 우퍼 직경이 8인치를 넘는 스피커 시스템을 가져 본 일은 없었으니 말이다. 결국은 호기심 충족을 위해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세상을 바꾸게 되는 강력한 추진력의 밑바탕이 되는 동기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인류애와 같이 보편적이고도 숭고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것, 욕심 채우기, 자아 실현, 또는 그저 우연...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바에 따르면, 우연이야말로 인류의 역사(아니, 생명체의 진화까지 포함하여!) 모든 면에서 정말 중요한 요소이고, 호기심 충족 또한 개인의 삶에서 대단한 추진력을 발휘하는 동기가 된다.

오랜 검색과 고민 끝에 Fdb의 CX12(중고품) 1조를 들여놓게 되었다. RMS 250와트를 공급할 수 있는 중량 15.3kg의 이르는 묵직한 스피커이다. 물론 집 침실에서 사용하는 8인치 더블우퍼 채용 3웨이 AV 스피커인 인켈 SH-950(28 kg, 정격입력 80와트, 최대허용입력 120와트)에 비하면 훨씬 가볍고 작으며 이동성도 좋다. 원래 이런 부류의 PA 스피커라는 것이 한 곳에 가만히 두고 쓰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옮겨 다녀야 하는 물건이라서 무겁게 만들면 곤란하다. 



가운데 것은 같은 회사의 CX8 스피커.


파워앰프(인터엠 R150Plus)의 bridged mono 모드를 해제하고 스테레오 출력으로 들어 보았다. 채널 당 50와트라는 앰프의 출력은 CX12의 250와트나 되는 power rating을 꽉 채우기에는 크게 못 미치지만, PA 스피커가 그렇듯이 sensitivity가 96 dB(1 W/1 m)나 되어서(연속 120 dB, 피크 126 dB) 적당한 크기의 공간에서는 부족함이 없다. 8인치 우퍼를 채용한 CX8의 sensitivity는 92 dB(연속 112 dB, 피크 118 dB)이다. 앰프의 출력은 스피커의 허용 입력보다 1.5~2배가 되는 것을 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간혹 앰프의 출력이 현저히 낮으면 두 시스템 모두 무리가 간다는 글이 보이는데, 나는 여기에 동의하지 못하겠다. 파워앰프와 스피커의 매칭에 관한 상세한 정보 및 계산 방법은 홈레코딩 위키앰프 매칭을 참고하자.

연주자가 아니라 감상자 입장이라면 역시 음악은 스테레오로 들어야 한다! 아주 작은 규모의 공연에서는 스피커 하나로도 충분히 커버가 가능하지만, 앞으로 음악 감상 용도로 쓰게 될 것도 감안하여 같은 종류의 스피커를 한 쌍 마련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대출력 핸들링 스피커를 울릴 공간을 내 집에서 마련할 날이 과연 올지는 모르겠지만.

스피커 스탠드가 부족하여 당장은 지하실 책상 위에 올려 둔 상태라서 아무래도 음이 단단하지 못하다는 느낌이 든다. 실은 '진동을 잡아주지 못하는 책상 위에 스피커를 올려 놓았으니 당연히 그럴 것이다'라는 편견이 작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만간 튼튼한 스탠드를 하나 더 마련해야 될 것 같다.

'앞으로 내 인생에 더 이상의 스피커는 없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지만, 곧 거짓말로 판명될 것이 뻔하다. 지키지 못할 결심을 함부로 말할 필요는 없다.




2024년 6월 11일 화요일

게놈 고물상 - 이번에는 454 데이터를 다루어 보자

참고를 위한 지난 글 링크를 하나 소개하는 것으로 오늘의 글을 시작해 보련다.

게놈 고물상 영업 시작(2024년 4월 24일) 

이번에는 Roche/454 pyrosequencing의 추억을 되살려 보고자 한다. 국내에서 염기서열 해독이라는 업무가 완전히 연구 서비스의 산업의 영역으로 넘어가면서 보통의 연구자들은 장비 자체를 만날 일이 거의 없어진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내가 GS 20이나 GS FLX를 직접 본 일이 있었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Pyrosequencing이라는 획기적인 기술을 상용화하여 2005년 GS20을 출시했던 454 Life Science라는 기업은 2007년에 Roche에 인수되었다. 당시로서는 대단한(!) 수준의 throughput을 자랑하며 NGS(next-generation sequencing)의 시대를 연 주역으로 큰 찬사를 받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약 10시간의 런타임 동안 무려 400-600 메가베이스의 염기를 생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년이 지난 지금의 기준으로는 보잘것없겠지만.

그러다가 일루미나가 시장을 장악하게 되면서 Roche/454 pyrosequencing은 2013년 공식적으로 단종되었고, 대략 2016년까지는 남아 있는 기계로 서비스를 하다가 이제는 숱한 SFF(standard flowgram file)을 남긴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SFF는 하나의 서열 단편(read)은 하나의 파일에 저장된다는 기존의 체계를 벗어난 첫 사례이며, Ion Torrent 장비에서 만들어지는 원시 데이터 파일이기도 하다. 

게놈 고물상 사업의 일환으로 이미 K-BDS(국가 바이오데이터스테이션)에 방선균(Streptomyces clavuligerus NRRL 3585)의 GS 20 유래 SFF 파일을 등록한 일이 있다. 이것이 왜 공개가 되지 않고 여태 'Private' 상태로 머물러 있는지 관리자에게 물어 보아야 되겠다.

오늘 등록을 준비하는 데이터는 한때 '동해 독도'라는 애칭으로도 불렸던 Donghaeana dokdonensis DSW-6의 유전체 프로젝트에 관한 것이다. Roche/454 pyrosequecing과 fosmid end sequencig(Sanger)에 대한 초기 작업은 내가 직접 하다가 당시 UST 학생이던 권순경 교수(현 국립경상대학교 생명과학부)가 이어받아 완전히 마무리하고 로돕신에 관한 실험을 거쳐서 2013년 논문으로 발표되었었다(PMID: 23292138). 내가 붙인 코드네임은 DD. 던킨 도너츠가 아니다!

당시 NICEM이라는 약칭으로 잘 알려진 서울대학교 농생명과학공동기기원에서 GS FLX로 생산한 데이터 및 gsAssembler로 조립한 결과물을 수령하였었다. gsAssembler와 gsMapper를 포함하는 소프트웨어 패키지를 Newbler라고 불렀던 것 같다. 다음의 DD 리포트를 만들어 준 사람은 누구일까? 혹시 최범순 박사는 아니었을까? 


gsAssembler는 '-consed' 옵션과 함께 실행할 경우 Consed에서 열어볼 수 있는 ace 파일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PCR 및 그 산물에 대한 Sanger sequencing을 통해 genome finishing을 하면 되므로. 지금이나 PacBio platform으로 한꺼번에 여러 개의 미생물 유전체를 원형 구조로 완성할 수 있지만... Manual finishing으로 contig를 바느질하는 그 수고스러움을 누가 알랴? 새 시대의 연구자들은 이런 일 하지 말고 더 가치 있는 일에 매진하기를 바란다.

454 데이터의 시각화 및 편집은 2007년 9월 공개된 Consed 16.0부터 새 기능으로 추가되었다. 나는 최신(아니, 최후!) 버전에서 바로 직전 것인 28.0(2014년 12월, 거의 10년 전!)을 갖고 있다. 참고로 2008년에 GS data를 이용한 피니싱 (1): consed와 GS data라는 글을 이 블로그에 쓴 일이 있다. 아쉽게도 2편은 나오지 못했다.

Consed에서 454 read를 다루는 법은 (1) 기존의 reference sequence에 454 read를 추가하거나, (2) Newbler assembly가 만든 ace 파일을 활용하는 것의 두 가지로 나뉜다. 두 방법 전부 454의 원본 read를 개별적으로 확인하고 이를 기준으로 contig를 자르거나 붙이는 일이 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실제 프로젝트 수행에서는 454 contig를 적당한 길이의 'overlapping pseudoread'의 assembly로 만들어 ace 파일로 전환한 뒤 finishing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쉽게도 이런 방식에 대해서는 블로그에 글을 거의 남겨 두지 않았다. 오늘 쓰는 글에서는 (2)의 과정을 반복한 것을 기록하려는 것이다.

그러면 정말 오랜만에 Newbler를 돌려보자. 과거에 어느 회사로부터 GS software를 CD-ROM으로 받아 놓은 것이 있어서 내가 지금 사용하는 리눅스 서버에 몇 달 전에 설치를 해 둔 일이 있다. 

$ runAssembly -version

runAssembly Software Release: 2.0.00.20

Copyright (C) [2001-2008] 454 Life Sciences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

버전까지 확인하였으니 실행을 해 보자. 항상 최신 상태의 우분투를 유지하고 있는 서버에서 이 낡은 소프트웨어가 잘 작동을 할지 매우 궁금하다.

$ runAssembly -o DD -consed -p *sff 
Initialized assembly project directory DD
1 read file successfully added.
    EVJX6DF02.sff
1 read file successfully added as explicit paired-end files.
    EVJX6DF01.sff  (paired-end)
Assembly computation starting at: Tue Jun 11 13:33:08 2024  (v2.0.00.20)
Indexing EVJX6DF02.sff...
  -> 215241 reads, 57026459 bases.
Indexing EVJX6DF01.sff...
  -> 221263 reads, 58643490 bases, 0 paired reads.
Setting up overlap detection...
  -> 436504 of 436504
Building a tree for 9272433 seeds...
Computing alignments...
  -> 436385 of 436385
Detangling alignments...
   -> Level 3, Phase 9, Round 2...
Building contigs/scaffolds...
   -> 57 large contigs, 98 all contigs
Computing signals...
  -> 3988361 of 3988361...
Generating output...
  -> 3988361 of 3988361...
Assembly computation succeeded at: Tue Jun 11 13:35:01 2024
$ cd DD
$ 454AlignmentInfo.tsv  454AllContigs.fna  454AllContigs.qual  454LargeContigs.fna  454LargeContigs.qual  454NewblerMetrics.txt  454NewblerProgress.txt  454ReadStatus.txt  454TrimStatus.txt  consed  sff
$ cd consed
$ ls
chromat_dir  edit_dir  phd_dir  phdball_dir  sff_dir

조립이 끝나는 데에는 몇 분 걸리지 않았다. 이제 비로소 기억이 하나 둘 돌아오는 느낌이다. 출력 디렉토리 안에 consed 및 5개의 하위 디렉토리(chromat_dir, phd_dir, phdball_dir, edit_dir, 심볼릭 링크인 sff_dir)가 만들어졌다. 앞의 두 개는 비어 있으며, phdball/phdball.1 파일이 저절로 만들어졌다. consed로 454Contigs.ace.1 파일을 열어서 각 read를 클릭하여 Sanger 스타일의 trace를 보는 것까지 정상적으로 진행이 되었다. 물론 이때 보이는 trace는 sff2scf 유틸리티가 만들어 내는 fake이다. 

Consed의 공식 문서를 보면서 하나씩 따라서 할 필요가 없었다. 'runAssembly -consed'만 제대로 옵션을 갖추어 돌리면 Consed 28.0에서 그대로 이용하면 되는 것이었다. 물론 기존의 assembly에 add new reads 형식으로 더하려면 매뉴얼에 대한 약간의 공부가 필요하다.

Consed에서는 일루미나 또은 454 read를 기존의 assembly에 추가하는 기능이 있다. 이는 공식 문서에서 잘 설명해 놓았다. 그러나 454 read의 경우 Newbler의 runMapping을 쓰는 것이 더 낫다. 454가 만든 SFF 파일에서 sequence 및 quality score를 FASTA 파일 형태로 추출한 다음 phrap으로 조립을 하는 것은 물론 가능하지만, 그 결과는 454 전용의 소프트웨어인 Newbler를 쓰는 것보다 좋지 못하다.

고물상에 입고할 물건을 또 하나 찾아서 먼지를 털고 잘 작동하는지 확인하였다. 추억은 방울방울...


2024년 6월 7일 금요일

손목시계의 배터리를 일 년 만에 바꾼다는 것은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뜻이다

빅토리녹스 매버릭(Victorinox Swiss Army Classic Maverick GS Dual Time 241441)은 시계에 한참 관심을 갖게 되었던 2017년 블랙프라이데이 세일 때 Ashford에서 구입했던 물건이다. 다이버워치에 대한 호기심을 채우기에 충분한 시계로서 매우 튼튼하고 묵직한 위용을 자랑하였다. 또한 dual time이라서 국외 출장 때 좋은 동반자가 되었었다. 정확히 몇 년도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으나 대전의 한빛 시계수리 전문점이 서구 둔산3동에 있던 시절에 이 손목시계의 배터리를 교체한 일이 있었다. 가장 최근의 교체 기억은 바로 작년 4월이었다. 이에 대한 기록은 손목시계 배터리 교체하려다 '멍청비용' 제대로 치르다에 남겼다. 당시 작업 환경이 좋지 못한 남대문의 노점에서 마지못해 배터리를 교체하면서 찜찜한 구석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며칠 전 이 매버릭을 차려고 했더니 초침이 4초에 한번씩 움직이고 있었다. 배터리 교체 시기를 알려주는 EOL(end of life) 기능이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겨우 일 년 전에 배터리를 갈았는데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보통 4년 정도는 무난히 작동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예를 들어 2019년 8월에 신품으로 구입했던 카시오 에디피스(구입 당시 쓴 글 링크)는 5년이 지난 이번 봄에 한빛아파트 입구의 시계방에서 배터리를 교체했었다. 

혹시 시계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하였다. 아마존에서 찾은 이 제품의 top critical review에는 'This watch have problems with the battery, I tool it the store twice for the same problem.'이라고 하였다(링크). 

현충일을 맞은 휴일(어제), 마침 종로 3가를 지날 일이 있어서 시계줄질의 성지 '신화사' 지하에 위치한 수리점을 방문하였다. 일이 있을 때마다 아내와 같이 간 일이 몇 번 있어서 기술자께서도 우리를 알아보았다.

손목시계에는 버튼형 산화은 전지를 써야 하는데 간혹 알칼라인 전지를 넣어서 몇 달 쓰지 못하고 작동이 멈추는 일이 있다고 하였다. 이번의 경우는 어떠한 상황이었는지 모르겠다. 분명 배터리는 소모된 상태였다고 한다.

교체를 마치고 뒷뚜껑을 닫은 뒤 시간을 맞추기 위해 마지막 점검을 하는데 기술자께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다시 뚜껑을 열고 시계 작업용 현미경으로 가져가시는 것이 아닌가? 이전 작업에서 배터리 접촉 부분의 부속을 잘못 끼워 놓아서 그런 것 같다고 한다. 공구를 이용하여 한참 뭔가를 펴듯이 조정하더니 작업이 끝났다.

일 년 전의 상황이 떠올랐다. 애초에 노점에서 시계 배터리를 가는 것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공구도 없이 먼지가 휘날리는 길가에서 시계 뒷뚜껑을 열고 작업을 하는 모습에 신뢰가 가지 않았었다. 결국 어려움에 봉착해서는 나를 좀 기다리라고 하더니 근처 시계방으로 들고 가서 알지 못할 처리를 하고 돌아오지 않았었던가?

어쩌면 이때에 부품을 비정상적으로 끼워 놓아서 배터리와 직접 닿는 전도성 부품과 다른 부품 사이에 비정상적 접촉이 일어나 빨리 소모되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앞으로는 서비스 요금이 조금 더 들더라도 절대로 길거리 노점에서는 손목시계와 관련된 서비스를 절대로 받지 않을 것임을 다짐하였다. 그리고 앞으로 2년 내에 배터리 문제가 또 발생한다면, 그때는 시계 자체의 문제라 인정하고 더 이상 미련을 갖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배터리 교체를 마치고 종로3가 뒷골목(돈화문로6길)을 지나면서. 함께 갔던 아내의 뒷모습이 찍혔다.  


오랜만에 찾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고대 중국의 한 백과사전에 수록된 동물 분류법. 보르헤스가 인용하고 미셸 푸코가 재인용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