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13일 목요일

새로운 만년필, Waterman

Waterman의 제품으로는 Phileas에 이은 두번째 경험이다. 모델명은 Expert II일 것으로 추정된다. 카트리지에 병잉크를 넣어서 써 보았다. 손에 잡히는 느낌, 필기감 모두 좋다.


만년필을 세 자루나 필통 속에 넣어서 다니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잉크 색은 전부 다르다. 아마도 맨 왼쪽의 Sheaffer 만년필이 곧 서랍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만 같다.


형이 쓰던 것이라 뚜껑에 이름 각인이 새겨진 상태였는데 검정색 매니큐어를 덧발랐다. F닙을 채용하여 매우 적절한 굵기로 글씨를 쓸 수 있다. 이러다가 주력으로 쓰던 파커 IM 프리미어 배큐매틱까지도 밀어내게 될지도 모르겠다. 유튜브의 동영상 클립을 소개한다.


판교 테크노밸리를 방문하다

나에게 판교라는 곳은 성남시 분당구에 사시는 어머니를 방문하러 갈 때 고속도로를 빠져나오는 곳이라는 의미 이상을 갖지 못하였었다. 지난 일요일, 판교에 있는 진단 관련 회사의 관계자를 방문하기 위해 SRT(수서역 하차)와 버스를 이용하여 '판교 테크노밸리'를 방문했을 때, 이곳의 규모와 활기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지도 서비스의 이미지를 캡쳐하였다. 내가 방문한 곳은 아래 그림에서 D-1-2 지구쯤에 해당하는 건물이었다. 점심을 먹은 뒤 커피를 마시기 위해 밖으로 나와보니 아마도 근처 기업에 근무하는 것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마침 날씨가 좋아서 더욱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도 모르지만, 젊음과 하이테크가 어우러진 멋진 곳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카페의 야외에 마련된 테이블에 앉아서 노트북 컴퓨터 혹은 인쇄한 회의 자료(게임의 바탕 화면이었음)를 들고 무엇인가를 논의하기에 바빴다. 첫눈에 보기에도 IT 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로 보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바이오 관련 기업도 많이 입주해 있다고 하였다.

내가 방문한 곳은 유스페이스이다.

내가 일하고 있는 대덕연구단지(대덕'밸리'라는 이름을 붙인다고 해서 이미지가 좋아지지는 않는다)의 모습과 비교가 되었다. 인프라는 일찍 조성되었으나 활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연구단지 내의 주요 도로는 출퇴근 시간에만 반짝 붐빌 뿐이지 사람들의 자연스런 교류가 눈에 뜨이지 않고, 주말에는 썰렁함이 감돈다. 지역 매체에 나온 기사를 인용해 본다.
얼마전 대덕을 다녀간 도시생태계 전문가의 말이 아프게 다가온다. "대덕은 소통 슬럼가, 유령도시 같다."
과학기술과 문화가 한데 어우러진 멋진 곳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인재는 수도권으로 떠나고, 별 의미 없는 쇼핑센터·주상복합건물 건설 공사만 이어지고 있다. 최근 한국화학연구원이 입구에 디딤돌 플라자를 만들어서 소통의 공간 역할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엔씨소프트 R&D센터. 신분당선을 타기 위해 판교역까지 내려오는 길에 찍었다.
수도권은 이렇게 사람과 돈을 빨아들이고 있는데 반하여 나머지 지역은('지방'이라는 말을 쓰기 싫다) 어떻게 경쟁력을 갖춰 나가야 할 것인가?

2018년 9월 8일 토요일

좀 더 다양한 진공관을 경험하고 싶다면? (two digit types)

S.Ito라는 일본인의 웹사이트에서 가져온 그림을 하나 소개한다. 1972년부터 아마추어 무선을 시작한 사람으로서 진공관 및 전자회로 DIY에 관한 정보를 많이 수록하고 있다. 아마 인터넷에서 진공관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본 사람이라면 이 그림이나 혹은 S.Ito의 웹사이트를 방문해 본 일이 있을 것이다. 우람한 어깨를 자랑하는 ST(shouldered tube), 중간의 GT(glass tube), 그리고 가장 작은 MT(miniature tube). 물론 이와 다른 모양의 외형을 지닌 것도 많다. 이 그림이 수록된 Vacuum tubes for beginner에는 참조할만한 좋은 정보가 많다.

Types of tubes. 출처: http://www.atatan.com/~s-ito/vacuum/vacuum.html

내가 2014년부터 지금까지 경험해 본 진공관은 다음이 전부이다. 위 그림에서 보이는 MT에 해당한다.

  • PCL86 (=14WG8)
  • 12DT8
  • 6N2P
  • 12AU7
  • 6N1
  • 6P1
  • 6J6

MT는 진공관 역사에서 가장 마지막에 위치한 것이고, 가장 발전한 형태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다른 진공관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제조시기가 늦은 편이라서 품질이 좋은 NOS(new old storck) 관이 많이 남아있다고 보아도 좋다. 유리와 열팽창률이 같은 핀 재료를 사용하게 됨으로써 별도의 베이스를 쓰지 않게 되었다.

진공관 오디오의 재미는 그 특유의 음색도 있지만 빨갛게 빛나는 진공관을 바라볼 때 느낄 수 있다. 33 kHz 정도의 고주파을 이용해서 필라멘트를 가열했더니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푸른 빛이 보인다. 마치 어두운 도시 거리에서 고풍스런 옛날 건물을 보는듯하다.


그래서 짧은 진공관 경험이지만 MT가 아닌 다른 유형의 관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조금씩 들기 시작한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직열 삼극관 2A3).

2A3. Radiomuseum

이런 관을 쓴 앰프를 한번 정도는 경험해 보고 싶은 욕심이 있지만 가격이 그렇게 싸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슈광 제품이 하나에 거의 80 달러 가까이 하니 말이다. 심심풀이로 오디오파트의 "빈티지출력관" 카테고리에서 가장 싼 진공관을 찾아보았다. MT관을 제외하니 41, 43이라는 단순한 숫자만으로 이름이 붙은 진공관이 보였다. 이것은 어떤 진공관일까? 구글을 뒤지니 다음과 같은 웹문서가 나왔다.

Two Digit Types From 1 to 100

이에 의하면 41(데이터시트, Radiomuseum)부터 43(데이터시트, Radiomuseum, The National Valve Museum)까지는 power pentode이다. Hi-Fi 기준으로 어떨지는 모르겠으나 오디오용으로 만들어진 진공관으로서 아마 라디오의 최종 출력단이나 극장용 오디오 앰프에 쓰였을 것이다. 43 pentode에 대한 설명을 살펴보자. 히터 전압이 25 V나 되는 것은 동일한 진공관 여럿을 직렬로 연결하여 트랜스포머 없이 그대로 상용 전원에 연결하기 위했던 것이다.
The Type 43, is an audio output pentode that is designed for use in receivers with a series heater chain. It is electrically identical to the IO based 25A6. The valve is rated for use in low power single ended output stages.
한때는 현재에 재생산되는 진공관만을 사용해서 앞으로의 자작에 이용하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조금만 수고를 들여서 검색을 하면 아직도 구입 가능한 NOS관이 많이 있으며, 오디오 회로가 아닌 다른 용도의 고주파 회로(예: TV)를 위해 만들어졌다가 재고가 된 진공관을 오디오용으로 사용하는 사례도 조금씩 보이고 있다.

출력 트랜스의 임피던스가 조금 높은 것을 제외하면 오디오 증폭용 회로를 만들기에 별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내년을 위한 프로젝트로 생각하고 조금씩 자료를 모아 보겠다.

출처: https://www.radiomuseum.org/tubes/tube_41.html

이렇게 많은 진공관을 모은 사람도 있다(링크). 도저히 흉내도 낼 수 없는 수준이 아니겠는가!

2018년 9월 6일 목요일

Nanopore sequencing 결과물의 조립(de novo assembly)

대장균에서 유래한 미지의 박테리오파지 - 염기서열을 얻어서 NCBI에서 blast를 해 보니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 의 유전체를 Oxford Nanopore Technologies(ONT)의 방법으로 해독하였다. Rapid sequencing kit을 사용하여 시퀀싱 라이브러리를 만드는데 30분 이내, 그리고 MinION에 꽂은 flow cell에 반응물을 주입하여 러닝하는데 24 시간, 만들어진 140만 개 이상의 read를 fastq file로 전환(basecalling)하는데 약 5일!

사실 컴퓨터의 코어 수가 충분하다면 basecalling에 걸리는 시간은 충분히 줄이는 것이 가능하다. MinION을 구동하는데 사용한 낡은 Xeon E5520(2.27 GHz)에서 basecalling을 그대로 진행하느라 이렇게 된 것이다. 이 CPU는 코어 4 개를 갖고 있어서 동시 실행 스레드는 8 개에 불과하다. 따라서 local basecalling을 해서는 소용이 없고 /var/lib/MinKNOW/data/reads/tmp 아래에 저장된 백만 개 이상의 raw fast5 파일을 코어가 많은 다른 서버로 복사한 뒤 albacore(실제로는 read_fast5_basecaller.py 스크립트)를 수행해야 한다. 복잡한 디렉토리 구조 하에 파일이 존재하므로 rsync를 사용하는 것이 유리하다. 다행히 read_fast5_basecaller.py는 recursive하게 실행되므로 fast5 파일을 한 곳에 옮기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파일의 확장자(.fast5.tmp)는 .fast5로 바꾸어야 한다. 파일 이름의 맨 끝에 있는 .tmp를 어떻게 recursive하게 한꺼번에 제거할 것인가?
$ find tmp -name "*.fast5.tmp" -type f | while read filedomv ${file} ${file%.tmp}done
 세번째 줄은 ${file%%.tmp}라 해도 이번 경우에서는 똑같은 결과가 된다. Bash string manipulation examples - length, substring, find and replace(링크)에서 풍부한 사례를 맛볼 수 있다.

24 시간의 러닝 타임 동안 3만 개가 조금 못되는 fast5 파일(이 경우에는 basecall이 완료된)과 8개의 fastq 파일이 생겼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분량이므로, PacBio 데이터를 다루면서 가장 익숙하게 사용해온 de novo assembler인 canu를 사용하여 조립을 해 보았다. Contig는 총 2 개가 생성되었으며 각각의 크기는 2G, G + r이다. G는 예상되는 genome size이고 r은 redundant한 서열이다. 이는 circle 형태의 DNA를 대상으로 시퀀싱 라이브러리를 만들어서 염기서열을 만든 뒤 조립하면 흔히 발생하는 현상이다. Circlator를 실행하니 작은 contig는 큰 것에 병합이 되었다. 하지만 redundant한 서열은 없어지지 않았다. 남은 contig(size = 2G)를 가지고 gepard로 자체 dot plot을 그려 보았다.


이것은 무슨 의미인가? 서열 단위가 tandem하게 반복됨을 뜻한다(=====>======>). 원래 circlator는 이를 알아서 처리하여 하나의 반복 단위(즉 1G = genome size에 해당하도록)로 만들어 주어야 한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작은 contig를 큰 contig에 병합하는 것 말고는 원형화('circularize')를 시키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cross_match 결과는 다음과 같다.


약 49 kb의 단위가 두 차례 반복되지만 서열이 100% 동일하지는 않다. Phage genome이 원래 이렇게 생겼을 가능성은 극히 적고, 아마도 long read sequencing 고유의 error 문제일 것으로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다른 assembler를 사용하면 한번에 깔끔한 결과가 얻어질까? ONT의 공식 소프트웨어라고 할 수 있는 Pomoxis를 써 보기로 하였다. 나는 GitHub의 클론을 만들어 설치하지 않고 각 구성 프로그램(minimap2, minisam 및 racon)을 별도로 설치하였다. 실제 실행 방법은 University of Washington의 Genome Assembly - minimap/miniasm/racon overview 페이지(링크)를 참조하였는데, 여기에 약간의 오류가 있으니 주의하기 바란다.

그러면 각 단계를 살펴보도록 하자.

1. minimap으로 long read를 자체 비교하기

minimap -t 16 -x ava-ont ont-reads.fastq ont-reads.fastq > ovlp.paf
Self-overlap을 검출한다기 위해서 하나의 read file이 연속해서 인수로 주어졌다. PAF 파일은 base-level alignment가 없는 approximate mapping 결과물이다. Reference sequence에 read를 매핑하거나 spliced alignment를 할 경우, 그리고 결과물을 SAM으로 얻으려면 각각 이에 맞는 옵션을 주어야 한다. Read file이 여러 개라면 하나로 합쳐야 한다. PacBio read를 사용하는 경우 -x ava-pb 옵션을 적용한다.

2. miniasm으로 조립하기

miniasm -f ont-reads.fastq ovlp.paf > miniasm_reads.gfa

3. FASTA file 추출하기

 awk '$1 ~/S/ {print ">"$2"\n"$3}' miniasm_reads.gfa > miniasm_reads.fasta

4. Contig 서열에 다시 read를 매핑하기(minimap2)

이는 racon 단계에서 필요한 overlap 정보 파일(HMAP/PAF/SAM)을 얻기 위함이다.

minimap2 -t 16 miniasm_reads.fasta ont-reads.fastq > ovlp2.paf

5. racon으로 consensus 추출 

racon -t 16 ont-reads.fastq ovlp2.paf miniasm_reads.fasta > consensus.fasta

miniasm 결과는 길이 48328 bp의 contig 하나였고, racon 교정 후에는  49546 bp가 되었다. 혹시 이 contig 서열의 양 끝에서는 더 이상 정돈할 것이 없을까? 이것이 남은 숙제이다.

2018년 9월 5일 수요일

[Ubuntu 14.04 LTS]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후 application list에 보이는 것이 없다!

우분투가 깔린 컴퓨터에서 Oxford Nanopore 시퀀싱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1 년 전과 비교하면 웹사이트에서 제공하는 프로토콜이 훨씬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져서 한결 수월하게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작년에는 프로토콜과 동영상을 보아도 flow cell의 밸브를 여닫고 용액을 주입하는 방법이 약간 혼동스러웠었다.

심혈을 기울여 flow cell에 시료를 주입하는 이수현 연구원.

Rapid sequencing kit를 사용한 반응물을 주입하고 24 시간 running을 실시하였다. MinKNOW 프로그램에서 local basecalling으로 설정을 하였으나 러닝이 끝날 때까지 겨우 2% 밖에 진행이 되지 않았다. 만들어진 read는 140 만 개가 넘으며 추정되는 염기쌍은 무려 10 Gb! 1 년 전에는 48 시간 표준 러닝에서 1 Gb 정도가 얻어질 것이라 하였는데 이제 throughput이 얼마나 올라갔는지 놀랍기만 하다.

포어 하나를 DNA가 통과하면서 획득된 모든 정보는 하나의 fast5 파일에 저장된다. 이것이 basecalling을 거치면 내부에 염기정보가 수록된 fast5 파일과 fastq로 각각 저장된다. fastq 파일은 4,000 개의 서열이 차곡차곡 담긴 상태이다.

러닝 중에 추출된 겨우 8개의 fastq 파일만으로도 de novo assembly를 하기에 충분하였다. 평균 길이는 6.1 kb, total length는 98 Mb이다. 추정되는 genome size는 50 kb 정도이므로 이미 2,000x나 된다. 일단 이것으로 canu assembly를 하였고, circlator를 거치니 하나의 contig가 나온다. 그러나 교정이 충분히 되지 않아서 그런지 서열 시작과 끝 부분의 redundancy를 제거하지는 못하였다(circular genome으로 추정). 이는 Racon으로 polishing을 하여 다시 circlator를 실행하면 해결될 것으로 생각한다.

MinKNOW를 실행하던 중에 우분투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메시지가 나타났다. 시퀀싱을 마치고 하루가 지난 다음 이를 적용하여 재부팅을 했더니 application list에서 프로그램 아이콘이 하나도 보이질 않았다(새로 만든 파일은 보인다). 이건 또 무슨 버그인가? 터미널 창을 열 수가 없다! 파일 매니저를 열고 프로그램이 있는 디렉토리로 이동하여 xterm 혹은 gnome-terminal을 여는 수고를 해야만 했다. 구글을 검색해 보니 우분투에서 발생하는 버그라고 한다.

Newly installed applications do not show in the dash

실행 중인 프로세스 중에서 unity-scope-loader를 죽이면 된다고 한다. 이를 따라서 했더니 프로그램 목록이 잘 보인다. 재부팅을 하면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수정 후 정상 작동하는 대시보드.

2018년 9월 3일 월요일

SMPS 실험 끝내기

약 한 달에 걸친 SMPS 실험을 어제 날짜로 모두 마쳤다. 이번 실험의 목표는 SMPS를 사용하여 진공관 앰프의 B 전원 및 히터용 전원을 전부 공급하는 것이었다. 지난번 포스팅에서 실험을 모두 마쳤다고 하였었으나 글을 작성하던 당시에는 SMPS를 앰프 섀시 안에 넣기 전의 상황이었다. 그런데 주말을 맞아 최종 작업을 하다가 너무나 많은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모듈화된 각 기판을 연결하면서 선을 잘못 연결하였고, 이를 바로잡고 난 다음에는 출력 전압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 모든 테스트를 다 마치고 앰프 섀시에 넣는 과정에서 전혀 작동을 하지 않는 현상이 발생했으니 말 그대로 '멘탈 붕괴'에 빠지고 말았다. 핵심 부품인 반도체 소자는 정상적이었다. 그렇다면 다른 수동 소자가 망가졌단 말인가? 그래봐야 저항과 캐패시터가 전부인데, 어디가 터져 나가거나 탄 흔적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부품을 점검하느라 테스터봉을 찍고 부품을 탈착하는 과정에서 또 애꿎은 반도체 부품만 여러개 날려버렸다. 처음부터 다시 회로를 꾸며야 하는 것인가? 이제 남은 부품이 없는데? 그동안 만든 것을 전부 잡동사니 상자에 넣어버리고 잊어버릴까?

실수와 좌절로 토요일 하루를 다 보내고 말았다. 이렇게 간단한 회로 하나도 제대로 꾸미지 못한단 말인가. 한 달 동안의 노력이 고스란히 들어간 프로젝트에서 이대로 좌절할 수는 없다! 다시 스위칭 회로 기판을 들고 어디에서 문제가 생겼을지를 꼼꼼하게 확인해 보았다. 스위칭 회로의 출력과 고주파트랜스의 1차 코일을 연결하는 납땜이 영 부실해 보였다. 전날 오배선으로 인하여 발생한 전기적 충격 때문인지 고주파 트랜스쪽으로 연결된 부실한 납땜이 거의 떨어진 상태인 것을 확인하였다. 이를 단단히 납땜을 하고 도통 테스트를 한 뒤 전원을 넣어 보았다.

출력 전압이 나온다! 다행이다.

나머지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고정되지 않은 상태로 바닥면에 그냥 놓여있었던 자작 R-core 출력 트랜스도 세워서 흔들리지 않도록 확실하게 고정을 하였다.


섀시 내부에 SMPS를 넣었다. 왼쪽의 전원 트랜스들은 실직 상태가 되었다.

조립을 전부 마치고 수 시간 동안 튜너를 연결하여 음악을 들어보았다. 고주파 트랜스에서는 그다지 열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신호가 없는 상태에서 스피커에 귀를 바싹 대고 온 신경을 집중하였으나 잡음은 실질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음질은 어떠한가? 트랜스를 이용한 전원회로를 사용하였을 때보다 나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노력이 헛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이번 기회가 아니었으면 SMPS의 원리를 배울 기회가 전혀 없었을 것이다. 나를 SMPS 자작의 길로 인도하신 제이앨범의 회원 '고야'님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복습을 하는 의미에서 이번에 만든 SMPS의 실제 모습을 상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이전의 포스팅에서도 이미 소개하였었지만 내가 참조한 회로는 이미 인터넷에 널리 공개가 된 것이다(링크1, 링크2; 두 회로는 사실상 동일). 참조 회로와 내가 꾸민 SMPS가 가장 다른 점은 250 V 이상의 DC를 얻기 위해서 배전압 정류회로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위칭 동작을 위한 핵심 부품인 IR2153의 정상 동작 여부를 확인하는 회로(IR2153 칩 점검을 위한 간단한 회로)를 자작하여 사용함으로써 훨씬 일손을 덜 수 있었다.

1번 회로기판(노랑 박스)는 고야님이 직접 만들어서 보내주신 것이다.
교류 220 V가 1번 회로로 들어가면 노이즈 필터를 거친 뒤 브리지 정류를 통해 280 V 정도의 직류가 얻어진다. 이는 직렬로 연결된 저항 양단에 공급되어 반분된다. IR2153는 입력된 직류를 30 kHz 정도의 고주파로 전환하여 트랜스로 공급한다. 트랜스 2차 권선은 B 전원과 히터용 권선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히터용은 0.7 mm 에나멜선을 단 두 번 감은 것인데, 특별한 정류를 거치지 않고 고주파 그대로 사용한다. 고주파는 일반적인 디지털 멀티미터로는 정확한 전앖값을 측정할 수가 없다. 따라서 3번 정류회로 기판을 거쳐서 나온 값으로 확인하였다. 3번 정류회로에서 쓰인 다이오드는 고속회복형인 UF4007이다.

3번의 최종 정류회로는 고전압을 얻고자 약간의 꼼수를 부린 것이다. 겉모습만으로는 매우 일반적인 다이오드 브리지 정류회로에다가 고주파 노이즈를 제거하기 위한 초크 코일을 단 것에 불과하다. 이렇게 사용하려면 노랑 원으로 표시한 두 곳에 교류를 입력하면 된다. 그런데 이 중 하나(사진에서 8.2 ohm 저항이 연결된 것)와 평활용 캐패시터를 연결한 중앙에 교류를 공급하면 배전압 정류회로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정류 다이오드 중 뒤쪽의 두 개는 쓰지 않는 셈이 된다. 

약 250~280 V 수준의 높은 출력 전압이 얻어지지만 실제 싱글 엔디드 진공관 앰프에서 필요로 하는 전류는 120 mA 수준이라서 단순 계산으로 32.2 W면 충분하다. 싱글 엔디드 앰프이므로 입력 신호의 크기에 관계없이 늘 일정한 전류가 흐른다. 히터쪽에서는 역시 단순 계산으로 17 W 미만의 전력이 필요하다(교류이므로 단순히 전압과 전류를 곱해서 전력을 계산할 수는 없다). 따라서 SMPS 입장에서는 50~60 W 정도를 안정적으로 출력할 수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전원 변동에 따른 보상이나 단락에 대한 보호 등 복잡한 기능은 하나도 넣지 않은 대단히 단순한 SMPS이지만 진공관 싱글 엔디드 앰프라는 부하의 특성과 소전력만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구성만으로도 실용상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호기심, 좌절, 보람, 그리고 성취감으로 범벅이 된 지난 한 달이었다.

2018년 8월 30일 목요일

SMPS 실험의 결론

SMPS는 요즘 많은 전자기기의 전원 공급원으로 매우 널리 쓰이고 있다. 보통 사용되는 전압의 범위는 DC 수십 볼트 혹은 그 이내이다. 진공관 앰프용으로 이를 사용하는 것은 어떨까? 무거운 전원 트랜스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7월부터 이 실험을 시작하였다. 다양한 종류의 기성품 SMPS가 주변에 널려있지만 진공관 앰프 회로에 필요한 250 V 혹은 그 이상의 직류 전압을 출력하는 SMPS는 찾기가 대단히 어렵다. 그래서 제이앨범 사이트의 도움으로 이를 자작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에서 키트 혹은 완제품으로 팔리는 PCL86 싱글 앰프 TU-8100은 어댑터로 공급되는 DC 12 V를 내부에서 전환하여 사용한다고 들었다(인버터 사용). 이 주제와 관련하여 제이앨범 사이트에 내가 지속적으로 작성한 글을 소개한다.

다음의 제작 목표는 SMPS 활용 전원회로?

바로 어제까지의 실험을 통해서 하나의 SMPS에서 히터와 B전원을 전부 공급하는 것이 가능함을 확인하였다. 아래 사진은 가장 마지막에 만들어진 출력용 정류 및 평활회로 모듈이다. 브리지 정류 및 배전압 정류가 모두 가능하다.


히터용으로 꼭 맞게 전압을 조정하는 일이 아직 남았다. 두 가지의 고주파 트랜스를 가지고 실험을 진행해 왔는데, 권선수가 서로 달라서 최종 선정된 트랜스에서는 아직 정수배로 2차 선을 감았을 때 딱 6.3 V가 나오게 만들지를 못하였다. 두 번 감으면 6 V를 겨우 넘고, 세 번 감으면 훨씬 넘는다. 적절히 저항을 삽입하거나 에나멜선 위치를 절묘하게 뽑아 고정하여 6.3 V를 만들거나 해야 되겠다.

SMPS 자작을 통해서 전력 전자공학의 아주 작은 부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힌 것에서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 만약 내가 작성한 실험기를 전문가가 본다면 매우 한심하고 또 위험하다고 평가할지도 모른다. 특히 가장 어려운 것은 트랜스를 설계하고 감는 일이다. 흘릴 전류에 맞추어 에나멜선의 두께를 선정하고, 권선수와 비율을 결정하고, 감는 방식을 결정하고(1차를 둘로 나누어 감고 사이에 2차를 넣을 것인가, 둘로 나누어 감은 1차 권선을 직렬 혹은 병렬로 연결할 것인가, 혹은 1차를 다 감고나서 그 위에 2차를 감을 것인가, 감기 시작/끝 위치와 보빈의 핀은 어떻게 일치시킬 것인가), 절연 대책을 세우고, 발열이 심할 경우에 대비하고...

안전에 극도로 주의하자. 나는 300 V에 가까운 고전압을 다루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번 주말까지는 현재 사용하는 6N1+6P1 싱글 앰프에 자작 SMPS를 실장하여 넣는 것까지가 목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