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29일 수요일

검증은 보는 것에서 시작한다—ADC PatternLab 개발

PatternLab 결과물(실제 분석 보고서: 6BLUES, 6RANDB)

Type 0 MIDI 파일(.MID) 형태의 드럼 연주 패턴 데이터를 나의 '드럼 패턴학(Drum Patternlology)' 생태계에 집어넣기에 앞서서 파일 전체를 사람의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욕심을 실물로 구현한 것이 바로 adc-patternlab.py이라는 파이썬 스크립트이다. 스크립트의 이름은 (Drum) Pattern Lab, 즉 드럼 연주 패턴을 분석하는 실험실이다. 이 도구를 이용하여 커맨드라인에서 분석을 실시하면 HTML 결과 파일이 만들어지는데, 이를 웹 브라우저에서 열면 MIDI 이벤트 데이터를 있는 시각화한 화면과 매트릭스 형태로 변환한 화면을 전환하며 볼 수 있다. 철저히 비침습적으로 구동되며, 원본 MIDI 파일의 2-bar 단위 분할과 ADT/ADP 전환은 다른 도구가 맡는다.

Subdivision 분석을 통해 straingt/triplet-8/triplet-16을 구별하는 알고리즘도 실 데이터로 계속 테스트를 거치면서 더욱 고도화되었다. 처음에는 노트의 시작 시간(Note On Time)만 참고하였으나, 노트의 길이(duration) 또한 꽤 좋은 힌트가 됨을 알게 되었다. 패턴을 처음 생성했던 사람이 만약 DAW에서 작업을 했다고 가정해 보자. 셋잇단음표 체계의 리듬이라면(예: 블루스 또는 셔플), 삼등분 체계의 그리드를 만든 뒤 거기에 음표를 채우지 않았겠는가. '스윙'이라는 이름의 파일 안에 각 비트마다 킥과 스네어를 한 번씩만 타격한 패턴이 있다고 가정하자. Note on time으로는 스트레이트인지 트리플렛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note duration이 1/3박자라면 triplet-8임이 명백해진다. Tick으로 계산해도 되지만, duration이 한 박자의 몇 %인지를 보는 것이 더 간단하다.

메타데이터, 즉 파일 자체에 붙어 있는 장르명 힌트도 매우 강력한 근거가 된다.

다음 그림은 작년말에 어설프게 만들었던 패턴 이미지이다. 지금 생각하면 대단히 부끄러운 수준이고 오류도 많았다. 그러나 이런 어설픔이 쌓이고 쌓여서 최근 며칠 동안 급격한 발전을 이루었다. Fluid Ardule에서 드럼 패턴 재생을 해 보겠다고 옆길로 새지 않았다면, 과거의 부족함과 오류를 발견하지 못한 상태로 그냥 방치하였을 것이다.


Pattern Lab은 단순한 시각화 도구를 넘어 grace/ghost note 및 flam 후보까지 찾아낸다. 최종 결정은 사람의 몫이다. 구현이 가장 시급한 flam이 경우 별도의 sidecar file을 써서 ADP 파일의 재생 시에 원래의 연주 의도를 그대로 표현하게 만드는 초기 테스트에도 성공하였다. 한 마디를 16 또는 24 스텝으로 추상화한 나의 드럼 패턴학 생태계에서 flam의 구현은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으나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ADP는 최대한 단순하게 하되, 연주에 맛깔스럽게 양념을 치는 부가 정보는 sidecar file로 보완하면 단순한 스텝 기반 패턴에서도 실제 연주에 가까운 표현이 가능했다.

이처럼 PatternLab은 단순히 MIDI 파일을 읽어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람의 눈으로 데이터를 검증하고 알고리즘을 개선하는 실험실(Laboratory)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결국 좋은 자동화는 충분한 관찰에서 시작된다. PatternLab 역시 "먼저 본다. 그리고 이해한다. 그 다음에 변환한다."는 원칙 위에서 조금씩 진화하고 있다.

데이터 분석을 통해 음악 장르에 따라서 널리 쓰이는 드럼/타악기 세트(12개 이내)를 다음과 같이 확정한 것도 큰 성과이다. 약간의 추상화를 거치면 GM 드럼 표준 배열에서 12개로 충분하다!

Slot map definition. 원본에 해당하는 JSON 파일은 여기에 있다.


[부록] Subdivision 판정과 confidence 계산

PatternLab은 드럼 패턴의 subdivision을 단순히 음표가 놓인 위치만으로 결정하지 않는다. 현재 구현에서는 각 후보에 대해 note-on 위상, note duration, 입력 MIDI 파일명에 포함된 힌트를 종합하여 점수를 계산한다. 비교 대상은 straight-16, triplet-8, triplet-16이다.

가장 중요한 근거는 note-on의 위상이다. 각 타격이 한 박 안에서 16분음표 격자에 가까운지, 8분 셋잇단음표 또는 16분 셋잇단음표 격자에 가까운지를 조사한다. 이 위상 분석이 전체 판단의 중심이며, 최대 약 70%의 가중치를 갖는다. 박의 시작점과 정확한 반박 위치처럼 straight와 triplet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지점은 판별력이 없으므로 증거에서 제외한다. 또한 flam으로 추정된 선행 grace note도 subdivision 판정을 흐리지 않도록 분석 대상에서 제외한다.

Note duration은 보조 증거로 사용한다. 음표 길이가 16분음표, 8분음표 또는 4분음표 계열에 가까우면 straight 후보에 점수를 주고, 1/3박·2/3박 또는 1/6박 계열에 가까우면 해당 triplet 후보에 점수를 준다. MIDI 드럼 파일에서는 note duration이 연주 의도를 정확히 반영하지 않는 경우도 많으므로, 이 항목의 영향은 최대 약 22%로 제한하였다.

파일명도 제한적으로 참조한다. 예를 들어 파일명에 straight, 16th, 16beat가 있으면 straight 후보에, shuffle, swing, triplet, 8T, 16T가 있으면 해당 triplet 후보에 추가 점수를 준다. 다만 파일명은 잘못 붙을 수도 있으므로, 실제 note-on 위상보다 우선하지 않는 보조 정보로만 사용한다.

세 종류의 근거를 합산한 뒤 가장 높은 점수를 얻은 후보를 1위, 그다음 후보를 2위로 정한다. 최고 점수가 너무 낮으면 unknown, 1위와 2위의 점수 차이가 작으면 mixed로 판정한다. 명확한 승자가 있을 때 confidence는 다음과 같이 계산한다.

confidence = (1위 점수 - 2위 점수) / (1위 점수 + 2위 점수)

이 값은 단순히 1위 점수가 얼마나 큰지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1위가 가장 유력한 경쟁 후보를 얼마나 확실하게 앞서는가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1위가 0.80, 2위가 0.20이면 confidence는 0.60이다. 반면 1위가 0.80이라도 2위가 0.70이면 confidence는 약 0.067에 불과하다. 즉, 절대 점수가 높더라도 두 후보가 팽팽하면 낮은 confidence가 부여된다.

이러한 계산은 subdivision 판정을 절대적인 정답으로 선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PatternLab의 역할은 사람이 전체 MIDI 파일을 검토하기 전에 가장 가능성 높은 격자를 제안하고, 애매한 패턴을 낮은 confidence로 표시하여 재검토가 필요한 부분을 드러내는 데 있다.

2026년 7월 28일 화요일

드럼 패턴 데이터의 추상화와 정규화


드럼 연주 기능을 고리로 하여 과거(Nano Ardule, 과거라고 해 봐야 너무나 가까운 반년 전이지만)와 현재(Fluid Ardule)의 통섭이 일어나고 있다고 아주 좋아하고 있었다. 그 즐거움은 며칠 가지 않았다. 과거의 작업 결과물이 완벽하지 않았음을 깨닫는 계기가 되고 말았으니까. 고쳐야 할 곳이 꽤 많아져서 약간은 망연자실한 상태이다.

Nano Ardule 개발 시절에 내가 확립해 둔 드럼 패턴 체계는 오직 4박자를 위한 것이었다. 4박자만큼은 아니더라도 널리 쓰이는 3박자(예: 왈츠), 그리고 5박자나 7박자 같은 비정형 박자를 다루려면 드럼 패턴 체계 자체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Fluid Ardule에 드럼 재생 기능을 넣으면서 살펴보니 과거에 만든 체계가 꽤 견고하고 합리적이라서 3박자나 비정형 박자를 처리하는데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게다가 더욱 까다롭게 생각했던 flam 처리도 sidecar 파일 방식으로 어렵지 않게 구현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결과에 만족하면서 flam이 포함된 왈츠 패턴 하나를 재생하고 있는데 tom 소리가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분명히 이미지로 만든 패턴 정보에는 low 계열의 tom을 3박째에서 2회(8분음표) 두드리고 있는데 처리가 끝난 ADT/ADP에서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원본 MIDI 파일에는 분명히 노트가 남아 있었다. 원인을 찾아 보았다. Tom 계열의 노트를 처리하면서 누락이 된 것이었다! 현재 사용하는 12개 slot 정보는 다음과 같다.

SLOT0=KK@36,KICK
SLOT1=SN@38,SNARE
SLOT2=CH@42,HH_CL
SLOT3=OH@46,HH_OP
SLOT4=LT@45,TOM_L
SLOT5=MT@47,TOM_M
SLOT6=HT@50,TOM_H
SLOT7=RD@51,RIDE
SLOT8=CR@49,CRASH
SLOT9=RM@37,RIM
SLOT10=CL@39,CLAP
SLOT11=PH@44,HH_PED

Tom은 High-Middle-Low로 그럴싸하게 배열해 놓았지만, 노트 번호를 미련하게 할당한 것이다. 원본 MIDI 파일에서는 노트 번호 43번으로 low tom(실은 high floor tom)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는데, 내가 쓰는 슬롯 정보에서는 이 번호가 슬그머니 사라진 것이었다. 

Rack tom의 가장 낮은 것이라 해도 floor tom의 high보다는 높은 소리를 내는데, 타악기 명의 앞부분만 보고서 애초에 tom 할당 체계를 잘못 잡은 것이다. Nano Ardule 개발 당시에 만든 스크립트(adc-mid2report.py)를 고쳐서 모든 노트에 대한 분석을 해 보라고 하였다. 이 분석 작업에는 35개의 MIDI 드럼 패턴 파일이 투입되었다.

> python .\260728a_adc-mid2report.py ..\patterns\original-midi-files\
============================================================
Directory: ..\patterns\original-midi-files
MIDI files found: 35   processed: 35   errors: 0
============================================================

Note-On Frequencies (all channels, no grouping):
  total note_on events: 13625
  ch  note  count
  10    36      3244
  10    37       294
  10    38      3009
  10    39        84
  10    42      4160
  10    43       504
  10    44       408
  10    47       652
  10    50       266
  10    51       756
  10    56       248

GM Drum Note Frequencies (channel 10, no grouping):
  note  GM instrument                 count     percent
    36  Bass Drum 1                       3244    23.809%
    37  Side Stick                         294     2.158%
    38  Acoustic Snare                    3009    22.084%
    39  Hand Clap                           84     0.617%
    42  Closed Hi-Hat                     4160    30.532%
    43  High Floor Tom                     504     3.699%
    44  Pedal Hi-Hat                       408     2.994%
    47  Low-Mid Tom                        652     4.785%
    50  High Tom                           266     1.952%
    51  Ride Cymbal 1                      756     5.549%
    56  Cowbell                            248     1.820%
  total: 13625

실제 데이터에서는 43(High Floor Tom)-47(Low-Mid Tom)-50(High Tom)을 tom 계열의 노트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만든 slot 체계에서는 45(Low Tom)-47-50이었다. 널리 쓰이는 43번이 아예 사라지도록 잘못 설계한 것이다. 근거가 되었던 계산적 드럼 패턴학('computational drum patternology' - 아마도 내가 처음 쓰기 시작한 말)에서 잘못된 분석을 하는 바람에 tom의 대표음을 엉뚱하게 배치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추상화(abstraction)정규화(normalization)를 제대로 하지 않는 값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올바른 계산적 드럼 패턴학을 위해서는 추상화를 통해 실제 악기의 사용 현황을 조사해야 한다. 그 다음에는 성격이 비슷한 악기를 그룹화한 다음, 정규화를 통해서 각 그룹에 대해 가장 대표성이 높은 악기를 대표 노트로 선택한다. 그런데 오늘의 분석 작업에서는 총 11개의 노트가 쓰였다. 즉, 12개라는 slot 제한을 초과하지 않았다. 따라서 악기를 그룹으로 묶거나 대표 노트를 고를 일도 없었던 것이다. 

물론 앞으로 더 많은 데이터를 분석해 봐야 하겠지만, 오늘의 작업만으로도 실제 데이터가 어떤 경향이 있는지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과거의 잘못을 들추어냄에 따라서 해야 할 일도 많아졌다. Nano Ardule의 온갖 유틸리티 스크립트를 고쳐야 하고, ADT 안에 하드코딩되어 있던 슬롯 정보도 바꾸어야 하며, 패턴 이미지 파일도 개정하여  GitHub에 올려야 한다. 하지만 오늘이라도 알게 된 것이 어디인가? 

음악과 관련한 취미 코딩을 하면서 추상화와 정규화를 실천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겠다. 음악, 납땜, 코딩, 데이터 분석... 겉으로 보기에 별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일들이 한데 어우려져서 뭔가 산출물을 만들어 내고 이와 더불어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듯하다.

2026년 7월 26일 일요일

비정형 박자는 이미 가능했다 — ADT 설계의 재발견과 Nano Ardule·Fluid Ardule의 통섭

오늘부터 Fluid Ardule에서 사용할 드럼 패턴의 비정형 박자를 시험하기 위해 작은 명령행 파이썬 프로그램인 ADX Player를 만들고 있다. 3/4, 5/4, 7/8, 6/8처럼 4/4가 아닌 박자를 실제로 재생해 보려는 것이 이번 작업의 출발점이었다. 시험을 위한 플랫폼은 라즈베리 파이(Fluid Ardule) 그 자체이다. 다시 말해서 Fluid Ardule는 개발 대상이면서 동시에 테스트베드(testbed) 역할도 수행한다.

처음에는 비정형 박자를 지원하려면 ADT 규격과 재생기를 상당히 고쳐야 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기존의 ADT v2.2b 규격을 다시 살펴보고 실제 플레이어를 구현해 보니 뜻밖의 사실이 드러났다.

ADT는 이미 비정형 박자를 표현하고 재생하는 데 필요한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여기에서 잠시 ADT를 고안한 이유를 설명하고 넘어가려고 한다. 

Nano Ardule를 개발하던 당시, Arduino Nano에서 SD 카드에 저장된 Standard MIDI File을 별도의 MIDI 재생 라이브러리 없이 직접 스트리밍 방식으로 재생하는 기능을 구현하였다. 메모리가 극히 제한된 환경에서 MIDI 이벤트를 실시간으로 해석하며 재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었지만, 결국 원하는 수준의 재생기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곧 다른 문제가 드러났다. 드럼 반주만을 반복 재생하는 용도로는 MIDI가 지나치게 범용적인 포맷이었다. 특히 Arduino Nano와 같은 제한된 환경에서는 짧은 드럼 패턴을 끊김 없이 반복(loop) 재생하도록 구현하는 일이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또한 MIDI 이벤트를 텍스트로 살펴보아서는 실제 어떤 리듬인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웠고, 패턴을 수정하려면 사실상 DAW와 같은 별도의 MIDI 편집기가 필요했다.

ADT는 MIDI를 대체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다. 사람이 읽고 편집하기 쉬우면서도, 드럼 패턴을 플랫폼 독립적으로 교환하고 재생하기 위한 경량 텍스트 규격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출발하였다. ADT는 이러한 요구를 충족하는 사람이 읽을 수 있는 소스 형식이며, 이를 빠르게 저장하고 재생하기 위해 컴파일한 바이너리 캐시 형식이 ADP이다.

반복하자면 ADT와 ADP는 원래 자원이 제한된 Arduino Nano 기반의 Nano Ardule을 위해 만들어졌다. 지금 개발을 이어나가는 Fluid Ardule은 Raspberry Pi와 FluidSynth를 기반으로 훨씬 풍부한 음원과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제공하는 DIY MIDI sound module이다.

두 시스템은 서로 다른 시대와 하드웨어 환경에서 만들어졌지만, 이번 비정형 박자 구현 작업을 통해 Nano Ardule에서 탄생한 ADT/ADP의 설계가 Fluid Ardule의 새로운 드럼 반주 기능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단순히 예전 파일 형식을 다시 사용하는 정도가 아니다. Nano Ardule에서 축적된 간결한 패턴 표현 방식과 Fluid Ardule의 소프트웨어 음원, MIDI 처리 능력, 확장 가능한 사용자 환경이 하나의 체계 안에서 결합되고 있다.

이제야 Nano Ardule과 Fluid Ardule 사이의 진정한 통섭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번에 한 일은 새로운 포맷을 발명한 것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규격 안에 들어 있던 일반성을 다시 확인하고 구현한 것에 가깝다. Nano Ardule 시절의 설계가 사라지지 않고, 더 강력한 Fluid Ardule 안에서 새로운 역할을 얻은 것이다.

오늘의 글에서는 복습을 겸하여 중요한 개념을 국문으로 정리하였다. 초안 작성에는 ChatGPT의 도움을 받았다. 인터넷에서 이런 종류의 글은 아마 거의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이 글은 GitHub의 README도 아니고, 소프트웨어 개발 일지도 아니며, 실용음악 이론도 아니고, 논문도 아니다. '설계 회고(Design Retrospective)'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드럼 패턴은 시간과 악기로 이루어진 매트릭스다

ADT의 기본 개념은 드럼 패턴을 하나의 2차원 매트릭스, 즉 행렬로 표현하는 것이다.

시간을 X축으로 놓으면 각 열(column)은 하나의 Step이 된다. 세로축의 각 행(row)은 하나의 드럼 악기, 즉 Slot이 된다. Step size를 16분음표로 정의할 경우, 아래의 매트릭스는 매우 전형적인 4비트 록 드럼 패턴을 나타낸다.

                         시간: Step →
          
Step        0 1 2 3 | 4 5 6 7 | 8 9 A B | C D E F
----------------------------------------------------
Crash       O . . . | . . . . | . . . . | . . . .
Open HH     . . . . | . . . . | . . . . | . . O .
Closed HH   . . x . | x . O . | O . x . | x . . .
Snare       . . . . | X . . . | . . . . | X . . .
Kick        O . . . | . . O . | O . . . | . O . .

예를 들어 Step 4의 Kick과 Snare 위치에 모두 타격 기호가 있다면, 재생기는 그 순간 킥과 스네어를 동시에 연주한다. 따라서 하나의 Step에는 여러 Slot의 이벤트가 함께 들어갈 수 있다.

ADT의 패턴 본문은 결국 다음과 같은 논리적 구조를 기록한다.

Pattern[step][slot] = accent level

각 셀에는 단순한 ON/OFF뿐 아니라 네 단계의 상대적 액센트가 저장된다. MIDI의 벨로시티(0-127)를 단순화한 것이다.

기호 레벨 의미
. 0 쉼, 타격 없음
- 1 약한 타격
x 2 보통 타격
o 3 강한 타격

ADT는 같은 매트릭스를 두 방향으로 기록할 수 있다

논리적으로는 시간축(X축)에 Step을 배치하고, Slot을 행으로 나열한 형태가 드럼 패턴을 눈으로 읽고 편집하기에 가장 자연스럽다.

ADT에서는 이 매트릭스를 파일에 기록할 때 각 행(row)이 무엇을 나타내느냐에 따라 두 가지 방향을 사용할 수 있다. 두 가지 기록 방식은 완전히 동일하다. 사람이 보기에는 첫 번째 방법(SLOT 방향)이 편하고, 저장 기본값은 두 번째 방법인 STEP이다.

1. SLOT 방향

ORIENTATION=SLOT에서는 한 행이 하나의 악기를 나타낸다. 따라서 본문의 행 수는 Slot 수와 같고, 각 행에는 시간 순서대로 LENGTH개의 기호가 들어간다. 

ORIENTATION=SLOT

O...O...O...O...
....X.......X...
x.x.x.x.x.x.x.x.
................
...

이 형태에서는 시간축이 가로로 진행한다.

  • 한 행 = 하나의 Slot
  • 한 열 = 하나의 Step
  • 본문 행 수 = SLOTS
  • 각 행의 문자 수 = LENGTH

드럼 머신의 스텝 시퀀서 화면과 비슷하므로 사람이 패턴을 살펴보고 편집하기에 편리하다. 위에서 사례로 든 4비트 록 드럼 패턴이 바로 이렇게 표시한 것이다. 

2. STEP 방향(default)

ORIENTATION=STEP에서는 같은 매트릭스를 90도 돌린 것처럼 기록한다. 한 행이 하나의 시간 Step이 되고, 그 행 안의 각 문자가 Slot을 나타낸다.

ORIENTATION=STEP

O.x.........
............
..x.........
............
OXx.........
...

이 형태에서는 시간이 위에서 아래로 진행한다.

  • 한 행 = 하나의 Step
  • 한 열 = 하나의 Slot
  • 본문 행 수 = LENGTH
  • 각 행의 문자 수 = SLOTS

두 표현은 서로 다른 패턴이 아니다. 하나의 동일한 Step × Slot 매트릭스를 서로 90도 회전시켜 기록한 것뿐이다.

파서는 어느 방향으로 기록된 ADT를 읽더라도 내부에서는 보통 다음과 같은 STEP 기준 구조로 정규화할 수 있다.

grid[LENGTH][SLOTS]

최근 테스트 파일에서 발생한 오류도 이 두 방향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본문은 SLOT 방향으로 작성했지만 ORIENTATION=SLOT을 명시하지 않아, 파서가 기본값인 STEP 방향으로 해석했던 것이다.


Step: 시간축의 최소 칸

Step은 ADT 시간축의 최소 단위이다.

Step 자체가 언제나 16분음표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Step 하나의 실제 시간 길이는 GRID가 정한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 있다면, Step 하나는 16분음표 하나에 해당한다.

GRID=16

Step 0, Step 1, Step 2는 각각 연속된 16분음표 시간 칸이다.

플레이어는 각 Step에 들어 있는 모든 Slot을 조사하여 필요한 MIDI 드럼 노트를 동시에 출력한 뒤, GRID가 정한 시간만큼 기다리고 다음 Step으로 이동한다.


Slot: 동시에 연주할 수 있는 악기 레인

Slot은 드럼 패턴의 악기축이다.

ADT의 기본 드럼 구성에서는 12개의 Slot을 사용하며, 각 Slot은 MIDI 드럼 노트 하나와 연결된다.

SLOTS=12

SLOT0=KK@36,KICK
SLOT1=SN@38,SNARE
SLOT2=CH@42,HH_CLOSED
SLOT3=OH@46,HH_OPEN
...

KK@36은 이 Slot의 약어가 KK이고 MIDI 노트 번호가 36이라는 뜻이다.

Slot은 시간의 길이를 결정하지 않는다. 단지 각 Step에서 어떤 악기가 울리는지를 결정한다.


GRID: 시간축의 해상도

GRID는 4분음표를 기준으로 Step이 얼마나 촘촘하게 나뉘는지를 정의한다.

GRID Step 하나의 의미 4분음표당 Step 수
16 일반 16분음표 4
8T 8분음표 셋잇단음표 3
16T 16분음표 셋잇단음표 6

따라서 GRID는 패턴의 박자를 정하는 값이라기보다, 시간축을 어느 정도의 해상도로 나눌 것인지를 정하는 값이다.


8T와 16T: 셋잇단음표 그리드

GRID 이름 뒤의 T는 Triplet, 즉 셋잇단음표를 뜻한다.

GRID=8T

4분음표 하나를 3개의 동일한 Step으로 나눈다.

4분음표 1개 = 3 Step

4/4 한 마디에는 4분음표가 4개 있으므로 12 Step, 두 마디에는 24 Step이 필요하다.

TIME_SIG=4/4
GRID=8T
LENGTH=24

GRID=16T

4분음표 하나를 6개의 동일한 Step으로 나눈다.

4분음표 1개 = 6 Step

따라서 4/4 두 마디는 48 Step이 된다.

TIME_SIG=4/4
GRID=16T
LENGTH=48

이 구조 덕분에 셔플이나 트리플렛 계열의 리듬도 별도의 예외적인 재생 알고리즘 없이 표현할 수 있다.


LENGTH: 패턴 전체의 Step 수

LENGTH는 패턴에 들어 있는 전체 Step의 수이다.

ADT 패턴은 관례적으로 두 마디 길이이지만, 두 마디가 언제나 32 Step인 것은 아니다. 실제 Step 수는 박자와 GRID에 따라 달라진다.

플레이어는 Step 0부터 LENGTH - 1까지 재생한 뒤 다시 Step 0으로 돌아간다.

for step in range(LENGTH):
    play_all_slots(step)
    wait_for_grid_interval()

repeat

따라서 실제 재생 엔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패턴 길이 값은 LENGTH이다. 나의 설계에서는 패턴 길이는 의도적으로 2 bar를 가정하고 있다. Player는 두 마디 중 어느 하나만 선택하여 재생할 수 있다.


TIME_SIG: 패턴의 박자

TIME_SIG는 Time Signature, 즉 패턴의 박자를 나타낸다.

TIME_SIG=4/4
TIME_SIG=3/4
TIME_SIG=5/4
TIME_SIG=7/8
TIME_SIG=6/8

분자는 한 마디에 들어 있는 기준 음표의 수를 나타내고, 분모는 그 기준 음표의 종류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7/8은 한 마디가 8분음표 일곱 개 길이라는 뜻이다.

TIME_SIG는 음악적 의미, 문서화, 마디 구분, 에디터 표시 및 LENGTH 검증에 사용된다.

그러나 현재의 ADT 재생 구조에서는 매 Step의 실제 간격은 GRID가 정하고, 루프의 끝은 LENGTH가 정한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TIME_SIG를 직접 참조하지 않고도 패턴을 정확한 길이로 재생할 수 있다.

이것은 TIME_SIG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TIME_SIG는 패턴의 음악적 구조를 설명하고, GRID 및 LENGTH가 서로 일치하는지를 확인하는 중요한 메타데이터이다.


박자와 GRID에 따른 LENGTH 계산

분모가 4인 박자만 생각한다면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계산할 수 있다.

LENGTH
= 마디 수 × 한 마디의 박 수 × 한 박당 Step 수

그러나 7/8이나 6/8처럼 분모가 4가 아닌 박자까지 일반화하려면 박자의 분모도 계산에 반영해야 한다.

LENGTH
= 마디 수
× TIME_SIG 분자
× (4 / TIME_SIG 분모)
× GRID의 4분음표당 Step 수

ADT의 표준 패턴 길이인 두 마디를 기준으로 몇 가지 예를 계산하면 다음과 같다.

박자 GRID 한 마디 Step 두 마디 LENGTH
4/4 16 16 32
3/4 16 12 24
5/4 16 20 40
7/8 16 14 28
3/4 8T 9 18
6/8 8T 9 18

여기에서 3/4와 6/8은 마디의 전체 시간 길이는 같을 수 있지만, 음악적인 강세 구조는 다르다. 이 차이는 TIME_SIG가 설명하고, 실제 시간축의 세분화는 GRID가 담당한다.


왜 v2.2b만으로 비정형 박자가 가능한가

5/4를 예로 들어 보자.

GRID=16에서는 4분음표 한 박이 4 Step이다. 5/4 한 마디는 20 Step이고, ADT의 기본 길이인 두 마디는 40 Step이다.

TIME_SIG=5/4
GRID=16
LENGTH=40

플레이어는 40개의 Step을 재생하고 루프하면 된다. 5/4 전용 재생 루틴은 필요하지 않다.

7/8도 마찬가지다. GRID=16에서는 8분음표 하나가 2 Step이므로 한 마디는 14 Step, 두 마디는 28 Step이다.

TIME_SIG=7/8
GRID=16
LENGTH=28

재생기는 28 Step을 순서대로 재생한 뒤 처음으로 돌아가면 된다.

결국 비정형 박자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은 특정 박자별 예외 처리 코드가 아니라 다음 세 요소의 분리이다.

  • TIME_SIG: 음악적인 박자
  • GRID: 시간축의 해상도
  • LENGTH: 패턴 전체의 Step 수

이번 정리 작업의 의미

이번 문서 정리와 ADX Player 제작은 ADT에 새로운 기능을 억지로 추가하기 위한 작업이 아니다.

목적은 3/4, 5/4, 7/8, 6/8과 같은 비정형 박자를 실제로 구현하고 검증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확인한 것은 기존 ADT v2.2b 규격의 완성도가 예상보다 높았다는 사실이다.

ADT는 이미 다음 요소를 서로 독립적으로 정의하고 있었다.

  • 박자를 나타내는 TIME_SIG
  • 시간 해상도를 나타내는 GRID
  • 전체 재생 길이를 나타내는 LENGTH
  • 악기축을 나타내는 SLOT
  • STEP 방향과 SLOT 방향의 두 가지 본문 표현
  • 직선 계열과 트리플렛 계열의 GRID

특히 재생 엔진이 TIME_SIG에 종속되지 않고 LENGTH를 권위 있는 루프 길이로 사용하는 구조 덕분에, 기존의 동일한 재생 루프로 다양한 박자를 처리할 수 있었다.

과거에는 주로 4/4 패턴만 제작하고 사용했기 때문에 이 일반성이 눈에 잘 띄지 않았을 뿐이다.

비정형 박자는 새로 가능해진 것이 아니다. 이미 가능했으며, 이번 작업을 통해 그 사실을 명시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다만 7/8이나 6/8처럼 분모가 4가 아닌 박자까지 문서에서 완전히 일반화하려면 LENGTH 계산식에 TIME_SIG의 분모를 분명하게 반영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파일 구조나 재생 방식의 변경이 아니라, 이미 가능한 동작을 더 정확하게 설명하기 위한 문서상의 보완이다.

ADT의 핵심 철학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ADT는 드럼 패턴을 Step과 Slot으로 이루어진 매트릭스로 표현한다. GRID는 각 Step의 시간 간격을 정하고, LENGTH는 패턴의 전체 길이를 정하며, TIME_SIG는 그 시간 구조의 음악적 박자를 설명한다.

SLOT 방향에서는 시간이 가로로 흐르고 악기가 세로로 배열된다. STEP 방향에서는 같은 매트릭스를 90도 돌려 시간이 세로로 흐르고 악기가 가로로 배열된다.

이 단순하고 분리된 구조 덕분에 ADT는 4/4에 갇혀 있지 않다. 3/4, 5/4, 7/8, 6/8과 트리플렛 계열 패턴도 동일한 자료 구조와 동일한 재생 엔진으로 처리할 수 있다.

이번 작업은 ADT를 새로 설계하는 작업이 아니라, 이미 잘 만들어져 있던 설계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실제로 증명하는 작업이다.

ADT는 오래된 포맷이 아니다. ADP의 장점을 계승하면서 사람 친화적인 텍스트 규격으로 새롭게 설계되었다. 그리고 불과 1년 만에 ADX Player를 통해 4/4를 넘어 다양한 박자를 자연스럽게 수용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결과적으로 Nano Ardule에서 시작된 ADP와 Fluid Ardule에서 발전한 ADT는 이제 하나의 패턴 생태계를 이루게 되었고, 이것이야말로 두 프로젝트의 진정한 통섭이라 할 수 있다.


(회고) 왜 ADT v2.3 Final Draft를 만들었었나?

ADT v2.2b는 이미 충분히 완성도가 높은 규격이었다. 실제로 이번 작업을 진행하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지 않고도 3/4, 5/4, 6/8, 7/8과 같은 다양한 박자를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굳이 ADT v2.3 Final Draft를 만들 필요가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규격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규격이 원래 지니고 있던 일반성을 더욱 정확하게 문서화하기 위해서였다.

이번에 ADX Player를 구현하면서 4/4가 아닌 여러 박자를 실제로 재생해 보았다. 그 과정에서 ADT의 핵심 요소인 TIME_SIG, GRID, LENGTH가 특정 박자에 종속되지 않는 일반적인 구조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v2.2b에도 이러한 개념은 이미 포함되어 있었다. 다만 설명과 예제가 주로 4/4 박자를 중심으로 작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독자가 ADT를 4/4 전용 규격으로 오해할 여지가 있었다. 또한 LENGTH를 계산하는 설명도 분모가 4가 아닌 박자까지 포괄하도록 더욱 일반화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v2.3 Final Draft에서는 다음 사항을 명확히 하거나 보완하였다.

  • ADT가 4/4뿐 아니라 다양한 박자를 표현할 수 있는 일반적인 패턴 규격임을 명시하였다.
  • TIME_SIG, GRID, LENGTH 사이의 관계를 더욱 정확하게 설명하였다.
  • 박자표의 분모까지 반영할 수 있도록 LENGTH 계산 원리를 일반화하였다.
  • 8T16T 등 트리플렛 그리드의 의미를 보완하였다.
  • STEPSLOT 표현이 서로 90도 회전한 관계임을 분명히 하였다.
  • 3/4, 5/4, 6/8, 7/8 등의 예제를 추가하여 규격의 일반성을 실제로 확인할 수 있게 하였다.

즉, v2.3은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거나 파일 구조를 바꾼 버전이라기보다, v2.2b에 이미 들어 있던 설계 의도를 구현 결과에 맞추어 더 정확하게 설명하고 문서의 완성도를 높인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Final Draft라는 표현도 이러한 성격을 나타낸다. 규격의 핵심 구조는 사실상 확정되었지만, ADX Player와 실제 패턴을 통해 마지막 검증을 거친 뒤 정식 v2.3으로 확정하기 위한 최종 검토본이라는 뜻이다.

특히 이번 작업에서는 Nano Ardule에서 출발한 ADP의 간결한 패턴 구조와, 이후 사람이 읽고 편집할 수 있도록 설계한 ADT가 Raspberry Pi 기반의 Fluid Ardule에서 다시 활용될 수 있음이 확인되었다. 과거의 설계를 단순히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재생 환경에서 그 일반성과 확장성을 실제로 증명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v2.3 Final Draft는 단순한 문서 개정판이 아니다. Nano Ardule과 Fluid Ardule의 진정한 통섭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하나의 이정표이기도 하다.

ADT v2.3은 현재의 설계 목표를 대부분 달성하였다. 앞으로는 기존 구조를 유지하면서 표현력을 조금씩 확장해 나갈 예정이다. 현재 검토 중인 기능으로는 Legacy UI의 12슬롯에 제한되지 않는 사용자 정의 드럼 배열(Custom Drum Set) 과, 드럼 연주의 표현력을 높이기 위한 Flam 지원 등이 있다.

반면 Swing이나 Humanize와 같은 기능은 패턴 데이터 자체의 속성이라기보다 재생 엔진의 동작에 가까우므로, 포맷에 포함하기보다는 플레이어의 선택적 재생 옵션으로 다루는 방안을 우선 고려하고 있다.

2026년 7월 25일 토요일

Fluid Ardule에 드럼 패턴 재생 기능을 넣다

Fluid Ardule은 '전원을 넣고 키보드를 연결하면 즉시 연주 가능'한 MIDI 사운드 모듈을 지향한다. 인터넷 라디오, 각종 오디오 음원 파일 재생, 블루투스 오디오 재생 기능은 재미와 활용성을 높이기 위하여 추가한 것이다. 라즈베리파이 3B라는 제한된 하드웨어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샘플러라든가 작은 DAW와 같은 기능을 넣으려는 욕심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다. 그래서 JACK이나 PortAudio 등을 절대 쓰지 않으며, 오로지 ALSA만을 이용한 단순하고 빠른 처리를 목표로 하였다.

하지만 드럼 재생 기능만큼은 넣어 보고 싶었다. Nano Ardule을 개발하면서 값진 자산으로 남은 드럼 패턴 라이브러리를 이용하면 어렵지 않게 Fluid Ardule의 운영 스크립트에서 드럼 패턴을 반복 재생하고, 연결된 키보드를 이용하여 드럼과 동시 연주도 가능할 것 같았다.



Nano Ardule 개발 당시 공개된 드럼 MID 파일을 분석하여 2-bar 단위의 패턴을 장르별로 정리해 둔 일이 있다. 이를 위한 두 가지의 전용 파일 포맷도 개발해 두었다. ADT는 사람이 읽고 편집할 수 있는 파일이고, 이를 검증하여 작은 바이너리 캐시로 만든 것은 ADP이다. ADP는 아두이노 나노(에브리)의 작은 메모리에도 비상용으로 수십개 정도는 넣을 수 있다.

사실 아두이노 나노보다 성능이 훨씬 좋은 라즈베리 파이에서는 ADT를 그대로 재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운영 스크립트 안에 텍스트 파서가 들어가야 하고, 잘못 작성된 패턴을 검사하는 코드도 필요하다. 예외 처리도 늘어났을 것이고, 앞으로 ADT 문법이 바뀔 때마다 Fluid Ardule도 함께 수정해야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ADP는 대단히 단순하다. 이미 검증이 다 끝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텍스트 파일을 다룰 때 필요한 파서 같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 ADP 파일을 연다.
  • 헤더를 확인한다.
  • 스텝 데이터를 읽는다.
  • 해당 스텝의 드럼 음을 출력한다.

이것으로 끝이다. "Play with Drums"라는 메뉴를 넣을 위치를 결정하고, 대략의 화면을 구상한 뒤 지시문을 만들어서 ChatGPT에 ADP 파일 사양 문서와 함께 밀어 넣었다. 그것으로 끝. 인코더를 돌려서 BPM을 조절하고, 키보드 입력 신호를 동시에 연주하는 기능도 순식간에 구현하였다. 오히려 화면 안에서 텍스트 배치를 보기 좋게 조절하는 것에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았다.

Nano Ardule 개발 당시 꽤 신경을 써서 만든 '드럼 패턴 데이터 표준안'이 결국 미래의 나를 위한 좋은 선물이었던 것이다. 물론 앞으로도 ADT는 필요하다. 사람이 읽고 수정할 수 있는 원본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연주를 담당하는 프로그램에게는 검증이 끝난 ADP가 더 적합하다. 만약 2-bar MIDI drum pattern을 재생 대상으로 삼았더라면 타이밍 계산과 MIDI 이벤트 해석, 스케줄링을 처리하느라 개발 과정은 그야말로 재앙이 되었을 것이다. MIDI drum pattern은 악기 사용 빈도를 계산하고 ADT → ADP를 만드는 과정에서 매우 유용한 raw data 역할을 한 것은 솔직하게 시인한다.

내가 만든 체계에서는 드럼킷을 구성하는 악기(slot)를 12개로 제한한다. 실용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다. ADP에서는 슬롯 번호마다 다음과 같이 정해진 악기가 할당된다. 반면 ADT는 12개 슬롯이라는 원칙을 지키기만 한다면 다른 악기를 넣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카우벨이나 탬버린 같은 것. 따라서 새로운 패턴을 만들 때에는 ADT가 필요하다.

노트 넘버 37번은 rim shot이 아니라 side stick이 맞을 것이다.

이러한 타악기 배치는 임의로 정한 것이 아니다. 인터넷에 공개된 다수의 드럼 패턴 파일(.MID)을 분석한 결과물이므로 일종의 (빅)데이터 분석을 통하여 얻은 결론이다. 이를 컴퓨터 키보드(16키) 또는 AKAI MPK MINI의 패드(8키 x 2뱅크)에 할당하여 입력하기 위해 나름대로 머리를 싸매서 고민을 한 결과가 바로 다음의 스펙 문서이다. 

APS Drum Instrument Sets & Pad Mapping - Reference Specification

실은 요즘 며칠 작업을 하면서 이 문서가 조금 잘못된 것을 깨달았고, 조금씩 수정을 가하고 있다. 결론적으로는 Legacy UI 12 Set를 실질적인 표준으로 삼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 내가 만들어 놓은 450개 가까운 ADT/ADP는 실제로 Legacy UI 12 Set를 따르고 있었다. 처음부터 목표를 세워서 이를 구현하기 위해 표준을 설계한 것이 아니라, 공개된 데이터를 분석하고 실제로 사용 가능한 형태로 다듬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표준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어쩌면 내가 숱하게 남긴 기록에도 불구하고 개발 과정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결국 좋은 데이터 포맷이란 단순히 파일 크기가 작거나 처리 속도가 빠른 것이 아니다. 사람이 이해하고 수정할 수 있는 원본과, 기계가 빠르고 안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표현을 적절히 분리하는 것이다. ADT와 ADP는 바로 그런 역할 분담을 목표로 만들어졌다. 몇 달이 지난 지금도 거의 수정 없이 새로운 프로젝트에서 다시 활용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당시의 설계가 나쁘지 않았음을 증명해 주는 것 같다. 미래의 나는, 과거의 내가 남겨 둔 작은 선물을 기분 좋게 다시 꺼내 쓸 수 있었다.

오키나와에서 왼쪽 차선으로 운전해 보기

아들이 기획한 오키나와 가족 여행으로 2026년 이른 여름 휴가를 대신하였다. 여행을 다녀온 즉시 글을 쓰지 못하는 바람에 기억이 점점 흐려짐은 아쉬운 일이다. 아들이 아니었으면 어쩌면 평생 국제운전면허증을 발급받아서 외국에서 운전을 한다는 도전 자체를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올 한해 동안 아들이 기획한 효도 관광을 두 차례나 일본으로 다녀온 셈이다.

오키나와 나하 국제공항에서.


오키나와현립 박물관・미술관

아들과 번갈아 운전한 차량은 토요타 아쿠아(하이브리드).


오리온 맥주와 블루실 아이스크림, 그리고 오키나와 특유의 '포크 음악'은 이제 영원히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일본 본토를 둘러싼 갈등과 2차대전 끝무렵에 오키나와 주민이 겪은 아픔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오키나와 추라우미 수족관



오키나와 해양 엑스포 공원 내 해양 문화관은 볼거리가 정말 많았다.


사위 덕분에 '입덕'하게 된 루트비어. 사위인 Gavin은 오키나와에서 유명한 브랜드인 A&W보다 Sprecher를 더 좋아한다. 사위의 최애 한국 과자는 오징어땅콩.

왼손으로 변속을 하고 오른손으로 방향지시등을 조작하는 것이 정말 어색했다. 깜빡이를 켠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와이퍼가 좌우로 왔다갔다! 게다가 우회전, 즉 우리 방식으로는 좌회전을 하는 방식이 왜 이렇게 생소한지! 우리의 교통규칙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전부 엄격하게 규정하여 보여주지만, 이곳은 기본적으로 모든 우회전은 비보호에 해당하며 중앙선을 넘어서 반대편 골목으로 넘어가는 것이 전혀 교통규칙 위반이 아니다. 양보가 몸에 밴 사람들이라서 다들 경적 한 번 울리지 않고 여유있게 차량을 운행하고 있었다.


산토리니 느낌이 난다는 세나가섬의 우미카지 테라스.


나하 시내를 달리는 모노레일 유이 레일.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 내 전시관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다. 일제 강점기를 겪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오키나와 주민들의 전쟁 피해—일본 정부에 의한, 그리고 미군에 의한—에 대해서는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오키나와 전통 현악기인 산신(三線). 뱀가죽으로 몸통을 둘렀다. 중국의 삼현에서 유래하였으며 일본 본토로 넘어가 샤미센이 되었다.

제주도에는 돌하르방이 있다면, 오키나와에는 수호신에 해당하는 '시사'가 있다.

저녁 무렵의 어메리카 빌리지.


바쁜 일상 중에 잠시 쉼표를 찍고 갈 수 있게 해 준 아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가급적 많이 돌아다니련다.

2026년 7월 24일 금요일

다시 하루 걸러 하루 달리기로 운동 주기를 바꾸어 보다

2026년 7월 말이면 달리기를 시작한 지 꼭 2년이 된다. 일반적인 체력이나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하프마라톤 코스 정도는 최소한 한 번쯤 소화하였을지도 모르겠다. 그에 비하면 나의 성적은 초라하다. 아직까지 6분 이내의 평균 페이스, 쉽게 말하여 30분에 5km 이상 달리기도 달성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달리기 2주년을 앞두고 받은 배지
어제 받은 배지. 집을 나설 때에는 '오늘은 몸이 좀 피곤하니 과연 1km나 달릴 수 있을까?'하고 걱정을 하지만, 결국은 쉬지 않고 5km를 달리게 된다.

처음에는 하루 뛰고 하루 쉬는 것을 목표로 하였으나 피로감 극복이 힘들어서 하루를 달리고 이틀을 쉬는 것으로 운동 주기를 바꾸어 꽤 오래 지속하였다. 한 번에 달린 거리는 6~7.5km 정도였다. 최근에는 출장과 여행, 날씨 등으로 쉬는 기간이 더 길어지는 일도 많았다.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하여 이번 주부터는 한 번에 달리는 거리를 5km로 약간 줄이고, 다시 처음과 같이 하루 걸러 뛰는 방식으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만약 2~3km 정도라면 매일 뛰어도 괜찮을 것이다. 주 3회가 아니라 무조건 이틀에 한 번 달리기이다.

이번 주 달리기 기록
금주에는 하루 뛰고 하루 쉬기를 3회 반복하였다.

달리기를 시작한 이후 체중은 눈에 띄게 줄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근육량 감소는 지속되고 있다. 오른쪽 상완골 대결절 1분 골절을 극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한 아령 운동 정도로는 어림도 없는 것 같다. 이번 달 초에 받은 건강검진의 인바디 검사 결과는 정말 초라하였다.

달리기를 유일한 운동으로 삼아 심폐지구력을 향상시키는 것만으로는 당연히 근육량 증가뿐만 아니라 유지도 힘든 것 아니겠는가? 피트니스 클럽을 가지 않더라도 특별한 기구 없이 집에서 할 수 있는 근육 운동 방법이 있을 것이니 검색을 해 봐야겠다.

ChatGPT가 자동 생성한 기구 없이 집에서 하는 근력운동법을 아래에 소개하였다. 과거에 쓴 글에서는 아령 운동법도 소개한 일이 있다(긴 여행 뒤 일상으로 돌아와 다시 운동하기).

50대 중반을 위한 집에서 하는 근력운동법
ChatGPT가 자동 생성한 근력운동법.

먹는 것에 대한 유혹도 견뎌내야 하고, 운동 계획은 더욱 치밀하게 세워서 끈기 있게 실천해야 한다.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것이 참 어렵다. 나 혼자 이렇게 궁리하고 실천할 것이 아니라 아내에게도 운동의 중요성을 설파해야 하는데, 참 걱정이다.

2026년 7월 22일 수요일

천박한 표어

표어는 조직의 철학을 압축한 문장이다. 좋은 표어는 짧지만 오래 남는다. 그 조직이 왜 존재하는지, 무엇을 지향하는지를 몇 마디 말로 설명한다. 그래서 표어를 만드는 일은 쉽지만, 좋은 표어를 만드는 일은 어렵다. 여기서는 새로운 프로젝트와 사업, 서비스의 이름도 넓은 의미의 표어에 포함하기로 한다.

좋은 표어는 처음에는 다소 생소할 수 있다. 대개 신조어에 바탕을 두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표어는 스스로를 설명할 수 있다(self-explanatory). 그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 자연스럽게 의미가 전달되고, 시간이 흐를수록 이 표어를 내세우는 조직의 철학과 함께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 잡는다.

반대로 천박한 표어는 이름보다 설명이 길다. 회의마다, 발표마다, 문서마다 '이 이름은 이런 뜻입니다.'를 반복해야 한다. 정작 설명을 다 듣고도 '그래서 왜 이런 이름을 붙였지?'라는 의문이 남는다면, 그 표어는 이미 목적을 잃은 것이다. 만약 권력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이러한 의문이 제기되면, 그 표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하급자'에게 십중팔구 그 잘못이 돌아간다.

또 하나의 기준이 있다. 몇 년이 지나도 이름이 입에 잘 붙지 않는다면, 그것도 좋은 이름은 아니다. 사람들은 억지로 만든 이름을 오래 기억하지 않는다. 결국 줄여 부르거나 다른 이름으로 바꾸어 부른다. 이름은 사람이 적응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사람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어야 한다.

이 원칙은 법과 정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좋은 법은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 이유를 변명하지 않는다. 만약 담당자가 수년 동안 '법이 있으니 해야 합니다.', '제도가 생겼으니 따라야 합니다.'를 반복해서 설명해야 한다면, 문제는 국민이나 연구자가 아니라 법과 제도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법이 있으니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법이 만들어진 것이고, 또 그래야 한다. 좋은 법은 시간이 흐를수록 왜 필요한지 스스로 설명한다. 좋은 정책은 담당자가 바뀌어도 살아남는다. 정책의 생명력은 추진자의 열정보다 해결하려는 문제의 타당성에서 나온다.

표어도 결국 다르지 않다. 이름은 철학을 담는 그릇이다. 그릇이 내용을 압도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철학이 아니라 이름만 기억하게 된다. 그래서 새로운 표어를 볼 때마다 나는 먼저 묻는다.

이 이름은 스스로를 설명할 수 있는가.

좋은 표어는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설명을 들으면 의미가 더욱 깊어지며, 이것은 깊어질수록 좋은 일이다. 반대로 표어를 이해시키는 데 끊임없이 에너지를 써야 한다면, 그것은 철학을 담은 이름이 아니라 포장에 가깝다.

좋은 표어는 조직의 철학을 설명한다. 천박한 표어는 표어 자체를 설명하느라 조직의 철학을 설명할 시간을 빼앗는다. 표어가 철학을 대신하는 순간, 조직은 이름을 만들고 철학을 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