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8일 목요일

신의료기술평가 제도를 개혁하자는 기사가 나오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6월 7일 매일경제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혁신 의술·첨단 의료기기 규제수단 전락한 '신의료기술'

'신의료기술평가'를 통과하지 못한 '신의료기술(여기서는 새로 개발된 의료기술이라는 뜻)'은 환자에게 돈을 받고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이 오랜 믿음이었다. 그런데 의료법과 관련 규칙을 검토한 결과 허가제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는 내용이다. 2007년 신의료기술평가 제도 도입 이후 16년 동안 국가적 규모로 오해를 해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슬프게도 기사에서 인용한 의료법의 해당 조항 번호가 잘못되었다.

의료법 제45조 3항은 '신의료기술이라 함은 새로이 개발된 의료기술로서 보건복지부 장관이 안전성·유효성을 평가할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실제 의료법을 들여다보자. 이 내용은 제53조 제2항에 있다.

제53조(신의료기술의 평가) ①보건복지부장관은 국민건강을 보호하고 의료기술의 발전을 촉진하기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제54조에 따른 신의료기술평가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신의료기술의 안전성ㆍ유효성 등에 관한 평가(이하 “신의료기술평가”라 한다)를 하여야 한다. <개정 2008. 2. 29., 2010. 1. 18.>

②제1항에 따른 신의료기술은 새로 개발된 의료기술로서 보건복지부장관이 안전성ㆍ유효성을 평가할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6월 8일(오늘) 경향신문에는 비슷한 취지의 기사가 실렸다.

신의료기술평가의 대못을 뽑아주세요

여기에서는 의료법의 관련 조항 번호가 더욱 이상하게 변질되었다.

법조계에 따르면, 의료법 제45조의3은, ‘신의료기술이라 함은 새로이 개발된 의료기술로서 보건복지부장관이 안전성·유효성을 평가할 필요성이 있다는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라고 규정한다.

잘못된 조항 번호였던 제45조 제3항이 제45조의3으로 둔갑하였다. 이건 완전히 잘못되었다. '제M조 제N항'을 '제M조의N'으로 오해한 것 같다. 이 둘은 완전히 다르다. 실제로 의료법 제45조의 구조를 보자. '제M조의N'은 법률 개정을 통해 새로운 조를 신설할 때 쓰는 방법이다.



그리고 신의료기술평가에 관한 것을 규정한 의료법 제4장은 이러하다.


기자님!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https://www.law.go.kr/)에서 해당 법령을 확인해 보시고 기사를 써 주세요... 취재 과정에서 인터뷰 대상자가 잘못 말했을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국민건강보험 공부하기 - 어려운 몇 가지 핵심 용어

보통 '급여'(給與)라고 하면 일을 하고 그 보수로 받는 돈을 떠올린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이 표제어를 찾아보자.

급여(給與)「명사」 돈이나 물품 따위를 줌. 또는 그 돈이나 물품.

어라? 물품으로도 급여를 줄 수 있구나! 그러면 의미를 확장하여 물품뿐만 아니라 '서비스'도 급여의 범위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으로 '요양'(療養)이라는 낱말을 알아보자. 이 낱말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는 번잡한 도시를 떠나 공기 좋은 한적한 곳에 만들어진 시설에 머물면서 병을 치료하는 모습이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사전에서도 '휴양하면서 조리하여 병을 치료함'이라고 뜻풀이를 하였다.

그러면 국민건강보험법에서 말하는 '요양급여'는 뭔가? 국민건강보험법에는 요양급여를 정의하지 않고, 다만 제41조에서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다.

제41조(요양급여) ① 가입자와 피부양자의 질병, 부상, 출산 등에 대하여 다음 각 호의 요양급여를 실시한다.

1. 진찰ㆍ검사

2. 약제(藥劑)ㆍ치료재료의 지급

3. 처치ㆍ수술 및 그 밖의 치료

4. 예방ㆍ재활

5. 입원

6. 간호

7. 이송(移送)

쉽게 말해서 병원에서 받는 의료 서비스의 일부가 요양급여이다. 우리나라는 요양기관 당연지정제에 의해 모든 의료기관이 요양기관(역시 한적한 곳에 위치한 요양소를 떠올리면 안 됨)으로 지정되어 있으므로, 모든 병원에서 요양급여를 실시한다. 요양급여비용 중 환자는 전체의 10~30%를 낸다. 병원이나 처방을 받아서 약국에 내는 비용이 바로 이것으로서, 본인부담금이라 한다. 

의료 서비스 중 일부는 요양급여가 아니다. 예를 들자면 업무 또는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경우에 실시하는 행위는 건강보험 급여가 아니므로, 환자가 100% 부담해야 한다. 이러한 것을 모아서 비급여대상 목록으로 고시하고 있다(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 [별표 2]). 근거 법령은 같은 규칙 제9조제1항(비급여대상). 진료비 또는 약제비 영수증을 보면 내가 지불한 금액(본인부담금)과 공단부담금이 각각 얼마인지 확인할 수 있다(NECA [알쓸상식] 건강보험의 급여, 비급여). 민간의료보험은 본인부담금까지 지급을 해 준다. 이것이 전체 의료비를 늘려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국민건강보험, 즉 우리나라에는 하나뿐인 공보험의 재정에 부담을 준다는 우려가 높다.

자료 출처: 국민건강보험과 민간의료보험의 역할 정립을 위한 쟁점. 보건복지포럼(2017.6)


(정확히 말하자면 병상 수에 따라 병원과 의원을 구분해야 하지만, 위에서는 편의상 이를 통틀어서 '병원'이라고 하였다.)

오래전 의료보험법에에서는 보험급여를 요양급여, 장제급여 및 분만급여로 나누었지만, 현 국민건강보험법에서는 장제급여를 제외하고 전부 요양급여라는 개념에 포함시켰다. 예전 의료보험법에는 이런 규정이 있다.

①보험의료기관은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당해 보험의료기관에서 행한 요양급여에 소요된 비용(이하 “診療報酬”라 한다)을 보험자에게 청구한다.

현 국민건강보험법 기준으로 고쳐 말하자면 보험의료기관은 요양기관, 한자로 표현한 진료보수(診療報酬, 일본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알고 있음)는 요양급여비용으로 바꾸어야 한다. '요양급여에 소요된 비용'이라는 문구에서 알 수 있듯이, 요양급여는 돈의 형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건강보험)수가'(酬價)는 무엇인가?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보수로 주는 대가'라고 하였다. 국민건강보험법 자체에는 수가라는 낱말은 나오지 않는다. 건강보험에서 수가란, 의료서비스에 대한 가격을 의미한다. 아주 복잡한 과정과 협상(매년 5월 진행)을 통해서 결정된다. (수가) = (요양급여비용)라고 보아도 되는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해 두자. 특정 의료행위의 건강보험수가는 (상대가치점수 x 환산지수 x 종별가산율 + 정책수가)라는 복잡한 공식을 따른다. 

진료의 대가로 의료공급자에게 지불되는 보상 방식을 '진료비지불제도'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행위별수가제와 7개 질병군에 대한 포괄수가제 및 정액수가제가 같이 쓰이고 있다. '진료'는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서는 내가 작년에 쓴 글 '의료와 진료는 무엇이 다른가? 보건은?'을 참조하라.

개인부담, 공단부담, 비급여 등에 대해서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에서 요양급여 대상을 정하는 방법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 - 약제·치료재료(이것은 건강보험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인데 정확히 정의조차 되어 있지 않음)·의료행위에 서로 다른 방식이 적용됨 - 를 알지 못하면 현 제도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했듯이 모든 의료 서비스가 전부 건강보험 급여인 것도 아니다. 의사는 최선의 진료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건강보험 요양급여기준 이외의 행위를 하고 환자로부터 비용을 받으면, '사기죄'로 처벌 받을 수도 있(었)다! 지금은 판례에 의해 의학적으로 필요한 행위에 대해서는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으나 아직 규제의 사각지대에 위치한 '새로 개발된 의료기술의' 시행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이는 나중에 다루기로 하고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만...

2023년 6월 6일 화요일

6LQ8 SE amplifier의 개선 - 상판 바꾸기(완성 단계)

5월 30일에 착수 단계의 글을 기록해 두었다.

6LQ8 SE amplifier의 개선 - 상판 바꾸기

앰프의 본체를 이루는 플라스틱 수납함을 상판(5T 아크릴)이 다 덮지 못한다. 아크릴판 자체로는 수납함에 고정하기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중간에서 위 아래를 이어주는 동시에 플라스틱 수납함의 나머지 부분을 가릴 재료가 필요하다.

이전의 구조물을 해체하여 약간의 자작나무 합판과 각재를 얻었다. 이를 적당히 접착제로 붙이고 다이소에서 구입한 밝은 색 우드퍼티로 구멍을 메운 뒤 바니시를 3회 발랐다.

바니시를 바르기 전.

바니시를 거듭 바르면서 색이 점차 짙어졌다.


이 중간 나무판을 플라스틱 수납함에 어떻게 고정할 것인가? 며칠을 고민한 끝에 가구 부속의 일종인 '자석 빠찌링'(door catcher)을 쓰기로 하였다. 참 마음에 들지 않는 명칭인데 이미 이 분야에서는 굳어진 이름이고 달리 대체할 용어도 없다. 이 부속을 문고리닷컴 동대문에 직접 가서 구입하였다. 다음 동영상을 통해 사용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어제까지 작업으로 negative feedback 연결을 제외한 대부분의 작업을 마쳤다. 신호 입력용 RCA 단자는 새 것을 갖고는 있으나 직경 10 mm 구멍을 뚫을 공구가 여기에는 없어서 예전 것을 임시로 그대로 연결해 두었다. 해체해 두었던 히터 배선 방법(직렬)이 잘 기억이 나지 않아서 PCB 패턴을 보고 다시 생각해 냈다. [1-2]에 커넥터를 통해 DC 0V-12.6V를 연결하고, [3-4]는 한데 합쳐서 전원기판의 그라운드에 연결하면 된다. 주 전원(고전압)과 히터 전원의 그라운드는 PCB 안에서 서로 연결된다. 이렇게 해야 잡음이 줄어든다. [1-2]와 [3-4]의 연결을 서로 뒤바꿔도 된다. PCB 설계 시 많은 것을 고려한 것 같다.

6LQ8 SE amplifier PCB는 제이앨범에서 설계 및 제작하였다. 나는 납땜만! PCB에는 한림LA0640-02(2.5 mm 피치, 나일론) 2P 앵글 헤더가 붙여 있다. 이 커넥터 시스템은 Molex의 5046-02에 대응하며, voltage 및 current rating은 각각 최대 250VAC 및 3A이다.


매우 작은 출력 트랜스포머를 사용하였지만 소리에 불만은 없다. 다음의 사진은 며칠 전의 상태로서 오늘과도 많이 다르다. 에폭시 기판은 90도 돌렸고, 커넥터의 방향이 바뀌면서 기존의 전선이 닿질 않아서 연장을 하는 등 수고를 많이 들였다. A4 용지보다 작은 플라스틱 바구나 안에 무슨 트랜스포머가 이렇게 많은지... MOSFET이 들어간 리플 제거용 보드를 사용했다면 훨씬 넉넉한 배치가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이 싱글 엔디드 앰프는 여러가지 면에서 독특한 점이 있다.

  • 널리 알려지지 않은 진공관인 6LQ8을 사용하였다. 이를 널리 알린 것은 강기동 박사님 및 제이앨범의 공로이다.
  • 배전압 정류회로를 택하였다.
  • 전원용 트랜스포머를 코어를 전부 해체하여 갭을 주기 위하 재정렬한 것을 한동안 싱글 엔디드 앰프용 출력 트랜스포머로 사용한 일이 있다. 이것의 1차부를 초크 코일 대용으로 사용하였다. 용량은 알 수 없다!
  • 히터 전원은 별도의 트랜스포머를 정류하여 사용하였다.
  • 무척 작은 크기의 출력 트랜스포머를 사용하였다(관련 글 링크).


개조 전에 비하여 훨씬 콤팩트하고 보기에도 좋은 앰프로 재탄생하였다. 좁은 공간 안에 부품이 이전보다는 더 가깝게 모이게 되어 혹시 전원 트랜스포머에서 유도되는 험이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하였으나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아니, 그건 아니었다. 아래의 업데이트를 참조하라.

내가 만드는 앰프는 죄다 생활 주변의 소품을 활용하였다.


코로나로 앓는 동안 사진 왼쪽의 6LQ8-6V6 앰프를 새로 만들었고 최근 일주일 동안 오른쪽의 6LQ8 앰프의 개선을 완료하였다. 불편한 자세로 방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고된 작업을 할 때마다 '내 다시는 이런 짓 하나 봐라...'하고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비장한 각오를 다지지만, 항상 그때 뿐이다. 음질은 그저 자기 만족일 뿐이고, 별로 예쁘지도 않은 진공관 앰프 제작에 왜 이렇게 빠져드는 것일까? 남아 있는 것 기준으로 현재 다섯 대의 진공관 앰프가 있다. 당분간은 유지 보수만 하는 것으로 만족하련다.


2023년 6월 7일 업데이트

주변 소음이 없는 새벽에 앰프의 전원을 넣었더니 험이 들린다. 스피커에서 1미터도 채 되지 않는 곳이라 더욱 크게 들렸다. 상판 바꾸기 개선 작업 전과 비교해서 더 심해졌을까? 정확히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류회로 기판을 MOSFET 리플 제거 회로로 대체하면 나아질지도 모르겠으나 현재 시스템은 배전압 정류를 채택하고 있어서 상황이 조금 복잡하다. 리플제거 회로 기판에서 다이오드 및 평활 캐패시터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만 활용해야 할 것도 같고, 만약 부품이 예전보다는 더욱 가깝게 위치함에 따라 전원 트랜스포머에서 유입되는 험이라면 이렇게 하여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숙제가 또 남았다.

이 회로에서 리플 제거 기능을 담당하는 빨간 상자 부분만 따로 만들어서 현재의 초크 코일을 바꿔치기하면 될지도 모른다.


2023년 6월 8일 업데이트

출력 트랜스포머, 신호선 및 앰프 PCB를 전원 트랜스포머와 AC 라인과 떨어뜨려 보았다. 험이 사라지지 않았다. 심지어 새로 만든 6LQ8-6П5С 앰프에서 MOSFET 리플 필터 보드를 떼어다 연결을 해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남은 용의자는 히터 전원뿐이다. DC 12V 어댑터를 이용하여 히터를 점화해 보니 험이 사라졌다!

참 기이한 일이다. 다른 사람은 교류 점화를 해도 문제가 없는데, 왜 나는 직접 만든 정류회로를 써서 DC를 만들어 점화했건만 험이 발생한단 말인가? 진공관 앰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알리익스프레스에서 6N1 + 6P1 싱글 앰프 보드를 구입하여 전원과 출력트랜스만 연결하여 들었던 일이 있다. 초크 코일도, MOSFET 리플 필터도, 히터 전용의 DC 전원도 적용하지 않았지만 잡음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왜 내가 만든 앰프는 이 모양일까?

DC 12V 어댑터로 히터 전원을 공급하면서 음악을 재생하는 모습. 사진 왼쪽 아래에 보이는 새 RCA 단자는 아직 사용하지 못했다. 부드러운 플라스틱 재질의 상자라서 가위나 롱 노우즈 플라이어로 쑤시면 직경 10mm 구멍을 만들 수 있겠지만, 일단은 테스트가 완료될 때까지 보류하기로 한다.


히터 전원 공급용 트랜스포머와 정류회로. 결국 어느 앰프에서도 안식처를 찾지 못하였구나! 실험용 전원 등 다른 용도를 찾아 보아야 되겠다.


  

2023년 5월 31일 수요일

신의료기술평가(new health technology assessment, nHTA)는 우리나라에서만 쓰는 용어인가?

나는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므로, 오늘 쓴 글은 얼마든지 틀렸을 수도 있음을 미리 고백해 둔다.

콩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으라는 옛말이 있다. 의료법에 '의료행위'가 정의되어 있지 않아도 대한민국의 보건의료시스템은 그런대로 돌아가는 중이다. 심지어 대한민국 헌법에도 표현 및 맞춤법 등 234건이나 되는 오류가 있다고 한다(링크). 헌법도 이러할진대 내가 나서서 특정 분야 법령에서 사용한 용어의 문제점을 제기하지 않아도 나라의 시스템이 무너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학자의 특성 상 사소한 것을 붙들고 늘어지고 싶은 충동을 막을 길이 없어서 이런 글을 쓰게 되었다.

태초에 의료기술평가(health technology assessment, HTA)라는 말이 있었다. 이 용어는 1960-70년대 미 의회에서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평가('assessment', 보다 정확하게 옮기자면 사정査定이 맞겠지만)의 대상인 medical technology 또는 health(care) technology라는 용어는 누가 처음 사용했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가천대 이선희 교수가 2018년 보건행정학회지에 발표한 논문 "신의료기술평가제도 운영의 개선현황과 발전방향"의 서론을 인용하여 HTA의 역사를 알아보도록 하자.

근거중심의 의사결정을 위해 급여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 중 HTA가 수행되는데 이는 1960년대 말 미국의회에서 공식 사용된 것이다. 당시에는 'HTA를 기술의 적용과 사용으로 인한 단기 및 장기 사회적 결과를 평가하는 포괄적 형태의 정책연구'라 하였다. HTA의 주요 목적은 보건의료기술 관련 정책결정에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위 인용문의 마지막 문장을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바꾼다면 '의료기술평가의 주요 목적은 국민건강보험 급여 여부 결정에 정보를 결정하는 것이다'가 될 것이다(하지만 의료법에서는 나타낸 신의료기술평가의 목적은 더 고상하고 아름답다). 신의료기술평가는 영어로 new health technology assessment, 또는 줄여서 nHTA라고 쓰기도 한다. 하지만 HTA가 아닌 nHTA라는 용어는 국외에서 널리 쓰이던 것이 국내에 도입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구글 검색 결과 때문이다. New health technology assessment(또는 nHTA)라는 영문 용어를 쓰는 웹사이트 혹은 문서는 전부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PubMed에서 "health technology assessment"를 검색어로 넣으면 81,901건의 문헌이 나온다. 그런데 "new health technology assessment"로 검색하면 나오는 것은 겨우 26건에 지나지 않는다. 얼핏 살펴보니 대부분 '새로운 HTA'라는 의미로 쓰였고, 우리나라에서 발표한 논문에서만 '새로운 의료기술(new health technology)에 대한 평가'라는 의미로 쓰인 것 같았다. 차라리 nHTA가 아니라 K-HTA라고 하는 것이 더 나을 뻔하였다.

WHO나 EU의 관련 문서를 보아도 HTA는 있지만 nHTA라는 용어는 보이지 않는다. 약어든 풀어서 쓴 낱말이든 전부 통틀어서 그러하다. EU에서 발간한 Regulation (EU) 2021/2282 of the European Parliament and of the Council ... on health technology assessment and amending directive 2011/24/EU라는 문서에서 HTA의 정의를 찾아 보았다.

Health technology assessment (HTA) is a scientific evidence-based process that allows competent authorities to determine the relative effectiveness of new or existing health technologies. HTA focuses specifically on the added value of a health technology in comparison with other new or existing health technologies.

그렇다. 반드시 최근에 개발된 기술만이 의료기술평가의 대상이 되라는 법은 없다. 의학 교과서에 나오는 오래 된 의료기술이라고 해서 전부 HTA 절차에 들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므로, 기존 의료기술도 얼마든지 HTA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HTA의 개념도 변한다. Announcing the New Definition of Health Technology Assessment라는 논문(보다 정확하게는 Letters to Editor임)에서는 의료기술평가 관련 여러 국제단체가 모여서 논의한 끝에 다음과 같이 HTA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렸음을 밝혔다. 내가 보기에는 의료기술의 수명 주기 어느 단계에서도 HTA를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HTA is a multidisciplinary process that uses explicit methods to determine the value of a health technology at different points in its lifecycle. The purpose is to inform decision making in order to promote an equitable, efficient, and high-quality health system.

참고로 이 논문에서는 health technology의 정의도 수록하였다.

A health technology is an intervention developed to prevent, diagnose, or treat medical conditions; promote health; provide rehabilitation; or organize healthcare delivery. The intervention can be a test, device, medicine, vaccine, procedure, program, or system.

알아보는 김에 위키피디아에서 health technology를 찾아 보았다. 여기에 수록한 정의는 WHO에서 내린 것이라고 한다.

Health technology is the application of organized knowledge and skills in the form of devices, medicines, vaccines, procedures, and systems developed to solve a health problem and improve quality of life. This includes pharmaceuticals, devices, procedures, and organization systems used in the healthcare industry, as well as computer-supported information systems.

과거에는 medical technology라는 용어를 썼었다고 한다. 이것을 그대로 번역하면 '의료기술'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써 놓으면 의사가 시행하는 기술로만 제한되므로, health(care) technology라는 용어가 요즘 더 널리 쓰이게 되었다. 시류에 따라 영어권에서는 용어 자체가 바뀌었으나 우리말은 그대로 남아 있다. Health technology를 그대로 번역한 건강기술이라는 표현은 거의 쓰지 않는다. 현 시점에서 (health technology) = (의료기술)은 약간 어색한 등식이다.

그러면 new health technology assessment는 다음 중 어느 것에 해당할까?

  1. new health technology assessment = new + { health technology assessment }
  2. new health technology assessment = { new health technology } + assessment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문서의 맥락에서 본다면 (2)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음이 거의 확실하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신의료기술평가에 관여하는 기관에서 발간하는 모든 안내서가 그렇게 기술하고 있다. 국내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링크)에서는 아예 제목에 'New Health Technology' assessment라고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먼저 생겨난 HTA라는 단어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2)의 의미로 활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위에서 연달아 사용한 4개의 단어 중 technology assessment는 보편적으로 쓰이는 어구로서 서로 강하게 결합되어 있는 것도 (2)와 같이 {...technology}와 assessment를 끊어서 사용하는 것이 적절치 않음을 보여준다.

새로 개발된 의료기술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보편적 진료 환경에서 사용할 수 있을 만큼의 안전성과 유효성이 있는지를 판가름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신의료기술평가 제도이다. 여기에는 '체계적 문헌고찰'이라는 방법을 동원한다. 그러나 근본 목적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국민건강보험 급여대상이 될 수준의 의료기술을 걸러내기 위함이다. 결과적으로 평가를 통과하지 못한 의료기술은 비급여로도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일부러 의도한 것은 아니겠으나, 의료법 제53조(신의료기술의 평가)제1조에서 '국민건강을 보호하고...'라는 신의료기술평가의 목적과 그런대로 잘 부합한다. 그런데 통제 위주의 현 정책 때문에 바로 뒤에 이어 나오는 '의료기술의 발전을 촉진하기 위하여'라는 목적을 달성하기는 쉽지 않다.

신의료기술평가의 법적 근거. 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웹사이트의 「의료법」. 빨간색 밑줄친 부분 바로 다음에 나오는 '대통령령' 링크를 클릭하면 "조문에서 위임한 사항을 규정한 하위법령이 없습니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왜?


물론 안전성과 유효성을 갖춘 것만으로 요양급여 대상이 되지는 않으며, 경제성 평가(대체 가능성과 비용효과성), 급여 적정성 등 여러가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국외 문서에서 nHTA는 거의 전적으로 (1)의 의미로 쓰이는 것 같았다. 'HTA의 새로운 방법' 정도의 의미로 보인다. 외국에서도 우리나라의 nHTA와 동일한 목적의 평가를 수행한다. HTA의 목표는 주로 정책과 관련된 의사 결정 과정에 도움을 줄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의사 결정 중에서 보험 급여 여부를 따지는 것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짐작할 수 있으나 100%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를 부르는 이름은 여전히 HTA이지, nHTA는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HTA란 개념을 들여와서 새로 개발된 의료기술을 평가하는 것으로 사용하면서 의료기술평가(nHTA)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그런데 이런 맥락을 모르고 이 단어를 처음 접하는 사람은 "그래? 그러면 신의료기술은 뭔데?"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러한 의문은 신의료기술이라는 개념이 먼저 생기고 나서 이를 평가하는 것이 신의료기술평가라는 의식이 자연스럽게 들기 때문이다. 국어의 구조 역시 이러한 의문을 갖는 것이 어색하지 않게 만든다. 신의료기술평가라는 단어 자체도 모호함을 내포하고 있다. 신의료기술을 평가하겠다는 것인지(즉 평가 대상), 신의료기술을 가려내기 위해 평가를 하겠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다시 말해서 '신의료기술'은 (1) 평가의 대상인가, 또는 (2) 평가 결과 중의 하나인가? 의료법 제53조에서는 (1)의 의미로 쓰였고, 이를 근거로 만들어진 신의료기술평가에 관한 규칙 제2조에서는 (1)과 (2)의 의미가 혼재한다. 그러나 많은 안내자료(특히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안내하는 자료)에서는 (2)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국내 연구진 발표 논문에서도 (2)의 의미로 사용하였다.

이런 우스갯소리를 한번 해 보겠다. 신의료기술이란, 신의료기술평가를 통해서 신의료기술로 판정된 신의료기술이다. 단지 우리나라에서만...

나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1960-70년대에 국외에서 '의료기술평가', 그리고 이보다 앞서 '기술평가'라는 개념이 먼저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개념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다소 독특하게 신의료기술평가라는 신조어로 바뀌면서 보건의료시스템(특히 건강보험 요양급여)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는 한 제도의 명칭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고, 나처럼 호기심이 가득한 사람은 '신의료기술'의 정의를 찾아 헤매는 답 없는 긴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신의료기술평가(nHTA)는 HTA의 매우 특별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new' HTA라고 볼 수도 있다. 왜 특별할까? 신의료기술평가를 통과하지 못하면, 의료기관에서 이를 사용하고 환자에게 돈을 받지 못하므로. 이를 임의로 사용하면 최악의 경우 처벌을 받는, 규제의 회색지대에 놓이게 된다. 이 평가제도의 원래 의도는 건강보험 요양급여가 될 만한 수준의 안전성·유효성을 갖춘 'new health technology'를 가려내기 위한 것이지만, 그것이 새로운 의료기술이 등장하여 임상현장에 들어오는 데에는 걸림돌이 된다.

2002년 8월 보건복지부에서 「신의료기술등의 결정 및 조정기준 개정」을 발표한 일이 있다(링크). 여기에서 사용한 신의료기술이라는 용어는 아직 보험급여하고 있지 않은 새로운 의료기술(미결정 행위 등)를 의미한다. 의료법에 근거하여 현재 NECA가 주관하는 신의료기술평가 제도에서 일컫는 신의료기술과는 의미가 다르다. 이에 대하여 임철희 변호사는 대한내과학회지 제97권 제2호에 발표한 논문 "신의료기술평가 전의 신의료기술은 비급여대상진료이다"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2007년 도입된 의료법의 "신의료기술"이라는 용어는 2002년 1월 1일 도입되었다가 지금은 사라진 국민건강보험법령상의 "신의료기술"이란 용어와 전혀 관계없었음을 지적해 둔다.

기술 관련 용어는 전부 영어권에서 먼저 그 개념이 정립되고 이를 제대로 국문으로 번역해야 정당성을 갖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개념이 아니라면 국외의 보편적인 사용례를 따라야 한다고 믿는다.

이 글은 앞으로 좀 더 조사를 통해서 살을 찌워 나갈 예정이다. 계속 분량이 증가하고 있다!


 


2023년 5월 30일 화요일

6LQ8 SE amplifier의 개선 - 상판 바꾸기

6LQ8의 복합관(triode + pentode) 기능을 전부 이용하여 단 하나의 관으로 스피커를 구동하게 만든 소출력 싱글 엔디드 앰플리파이어를 하나 갖고 있다. 2021년에 만든 것으로 기억한다.



작동 상태에는 별다른 불만을 갖고 있지 않으나. 전반적으로 앰프가 너무 높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부품의 배치를 최적화하면 백색 플라스틱 상자 안에 PCB와 출력 트랜스포머를 넣는 것이 가능할 것 같아 보였다. 이렇게 하면 중간층을 구성하고 있는 나무판을 없애는 것이 가능하다.

앰프를 해체하고 조금씩 작업을 시작하였다. 히터 전원 공급용 정류회로를 수정하여 지나치게 넓게 자리를 잡고 있는 부품의 위치를 옮긴 뒤 만능기판을 일부 잘라내어 옆으로 세워서 고정할 수 있게 만들었다. 


아크릴판에 작은 구멍을 4개 뚫은 뒤 서포트를 달아서 PCB를 고정하면 된다. 좌우의 남는 공간을 적절하게 채우는 것이 숙제로 남았다.

이 작업이 끝나면, 다음 과제는 Sanken SI-1525HD hybrid IC를 이용한 앰프의 케이스를 전체적으로 보수하는 일에 돌입하게 될 것이다. 


2023년 5월 27일 토요일

나의 궁둥이를 30년 넘게 괴롭혔던 것은 무엇일까

정확한 해답은 다음 주 화요일 조직 검사 결과가 나와 봐야 알 것이다. 전부 절제해 버렸으니 더 이상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 모낭에 세균이 감염이 되어 노란 고름이 잡히면 모낭염(folliculitis)이라고 하는데, 모낭염이 심해지고 커져서 결절(비정상적으로 커진 덩어리)이 생긴 것을 종기라고 한다. 출처
  • 표피낭종은 모낭의 입구가 피부에 막히거나, 표피 부위가 다양한 원인에 의해 피부 안쪽으로 들어간 후 증식하면서 낭종의 벽을 형성하여 발병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낭종의 내부는 벽에서 만들어진 케라틴이라는 물질로 채워지게 됩니다. 출처

표피낭종(epidermal cyst 또는 epidermoid cyst)을 피지낭종(sebaceous cyst)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출처). 아마도 주머니 모양의 것에 피지가 들어차는 일이 흔하기 때문일 것이다. 표피낭종은 집에서 고약한 치즈 냄새가 나는 기름 같은 것을 아무리 손으로 짜 내어도 내부의 주머니가 없어지지는 않기 때문에 외과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올바른 치료 방법이라고 한다. 엉덩이의 피지낭종을 제거한 사례(링크)를 하나 소개한다. 집도한 의사 선생님께서는 '월척'이라 표현하였다. 그다지 아름답지는 않으니 용기가 없으면 클릭하지 말 것. 사실 유튜브에는 이보다 더 심한 수술 사례도 얼마든지 나온다. 피부 속에 들어 차 있는 그 무엇인가를 짜서 꺼내는 영상을 보면서 쾌감을 느낄 수도 있겠으나...

나의 오른쪽 궁둥이에도 같이 데리고 살기에는 불편한 '덩어리'가 하나 있었다. 과거형으로 표현하는 것은 어제 외과의원에 가서 제거를 하는 간단한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다. 가끔씩 빨갛게 부풀어 오르면서 아프고, 짜려고 노력을 해도 나오는 것은 없고, 고약을 발라 두어도 쉽게 낫지가 않는 상태로 수십 년을 그냥 두고 참아 왔다. 특히 불편한 점은 딱딱한 바닥이나 의자에 앉으려고 하면 이 덩어리가 바닥과 궁둥뼈(좌골, ischium) 사이에 눌리면서 '억' 소리가 나게 아플 때가 많았다. 이는 특별히 부풀지 않은 상태에서도 그러하였다.

도저히 이런 상태로 살기는 너무나 불편하여 근처의 외과를 찾아서 수술로 제거하기로 하였다. 흔한 표피낭종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초음파 검사로는 특별한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다. 초음파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만지면 딱딱하고 아픈 것은 무엇인가? 다른 가능성에 관한 설명을 들었으나 병명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쨌든 제거하기로 하고 수술대 위에 누웠다. 마취 주사가 생각보다 꽤 따가웠지만 수술 하는 동안은 아픔을 느낄 수 없었다.

수술을 마치고 제거한 조직을 보여 주었다. 주머니 모양의 것은 없었고, 딱딱한 조직을 잘게 잘라 놓은 것만이 거즈 위에 남아 있었다.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하다.

수술은 어제 낮에 받았고, 연휴가 끼어 있어서 4일 후에 다시 병원에 오라고 하였다. 이틀 정도는 물이 닿지 않게 주의를 하라고 하였으나, 다음 내원하기 전까지 집에서 드레싱을 바꾸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꿰맨 상처는 거즈 드레싱이 더 낫다고 한다. 그리고 봉합한 뒤 삼사일이 지나 피가 나지 않는다면 흐르는 물에 비누로 씻고 말린 뒤 소독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이때부터는 물이 닿으면 큰일 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된다. 값비싼 습윤 드레싱은 찰과상과 같이 삼출물이 많이 배어 나오는 상처를 흉터 없이 낫게 하는데 적합하다. 어차피 눈에 보이는 곳도 아니라서 흉터가 남아도 상관은 없다. 

피지 분비가 남들보다 많은 체질이라서 그런지 몸 곳곳을 뒤지면 칼을 대서 제거하고 싶은 덩어리가 만져지는 곳이 있다. 수십 년 동안 아무런 증세를 보이지 않으면서 나와 평화로운 공존을 하는 것도 있고, 건드리면 성을 내는 것도 있다. 이런 것들을 전부 칼을 대서 없애기도 힘든 노릇이다. 왜냐하면 돈과 시간이 드니까! 살갗에 작게 거치적거리는 것이 있다고 하여 함부로 짜거나 손톱으로 잡아 뜯지 말아야 되겠다. 잘못하면 덧나서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게 되는 일이 생긴다.

요즘은 주변에 피부과가 많이 있지만 이런 질환을 수술로 제거해 주는 일은 거의 하지 않는다. 제대로 치료를 받고 싶다면 외과를 찾을 것.


2023년 6월 8일 업데이트

어제 병원을 찾아 실밥을 뽑았다. 조직검사의 결과는 지루성 각화증이라고 한다. 엉덩이에 지루성 각화증이라니? 의사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한다. 

2023년 5월 25일 목요일

너무나 흔하게 쓰이는 혁신이라는 낱말

혁신(革新)은 '낡은 것을 바꾸거나 고쳐서 아주 새롭게 함'을 뜻하는 낱말이다. 영단어로는 innovation인데, 가끔 breakthrough(돌파구)를 혁신으로 번역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 FDA에서 운영하는 Breakthrough Devices Program(혁신적 의료기기 프로그램)이 그러하다. 어떤 뉴스에서는 이를 획기적 의료기기 프로그램으로 번역해 놓기도 했다. Emerging technology(신흥 기술)도 이러한 부류의 기술에 넣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근본적으로 생물학자이고, 세부적으로는 분자생물학을 전공하였다. 직장에서 경력을 쌓으면서 미생물 유전체학으로 자리를 잡은 상태이다. 예기치 않게 보건의료 관련 법·제도를 공부하게 되면서 혁신적인 의료기술이 어떻게 의료시장에 자리를 잡고 그 비용을 어떤 방식으로 지불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우선 혁신의료기기에 관해서 살펴보자. 우리가 어떤 용어에 대해 떠올리는 의미와, 법령에서 정의한 것이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 「의료기기산업 육성 및 혁신의료기기 지원법 」 제1조제3호에서 혁신의료기기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혁신의료기기"란 「의료기기법」 제2조제1항에 따른 의료기기 중 정보통신기술, 생명공학기술, 로봇기술 등 기술집약도가 높고 혁신 속도가 빠른 분야의 첨단 기술의 적용이나 사용방법의 개선 등을 통하여 기존의 의료기기나 치료법에 비하여 안전성·유효성을 현저히 개선하였거나 개선할 것으로 예상되는 의료기기로서 제21조에 따라 식품의약품안전처장으로부터 지정을 받은 의료기기를 뜻한다.

법을 근거로 식약처장으로부터 지정을 받은 의료기기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 법에 따라 혁신의료기기와 그렇지 않은 것은 확연하게 구분이 된다. 따라서 혁신성을 갖춘 의료기기 전반을 지칭하려면 다른 용어를 써야만 한다. 뒤에서 설명할 신의료기술도 마찬가지이다. 법령에서 어떤 의미를 제한하여 사용하는 신의료기술과, 새롭게 개발된 의료기술을 뜻하는 신의료기술을 구별하기가 어렵다. 좋은 의미의 단어를 법령에서 다 갖다 써버려서 난처한 상황을 만들 것이 아니라, 미국의 510(K), PMA(premarket approval)와 같이 약호를 잘 만들어서 새로 만든 용어의 뒤에 붙인다면 법령에서 정의한 의미를 정확히 사용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지정된 혁신의료기기에 관한 사항은 고시가 아니라 공고 형태로 일반에 공개된다(2023년 5월 19일자 공고). 소프트웨어의 형태를 띤 것이 압도적으로 많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혁신의료기술은 무엇인가? 혁신의료기기를 사용하는 의료기술(의사의 행위에 중점을 둔 표현)인가?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를 이해하려면, 신의료기술평가 제도를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새로운 의료기술을 의료기관에서 사용하고 환자에게 돈을 받으려면(이에 더하여 광고를 하려면) 몇 가지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새로 도입된(수입 또는 국내 개발) 의료기기에 대한 식약처 허가를 받고 이것의 활용 행위를 적법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새로운 의료기술은 먼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서 기존 요양급여목록에 등재된 행위와 일치하는지의 여부를 판정한다. 기존 것과 같으면 의료기관에서 기존 수가대로 쓰면 되고, 기존 것과 다르면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에서 신의료기술평가라는 것을 받아서 신청 기술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평가한다. 판단 근거는 신청자가 제출한 자료가 아니라, NECA에서 전세계의 논문을 탐색하여 만들어낸다. 충분한 논문이 쌓일 수준의 기술이라면 신의료기술이 아니라 이미 '헌' 의료기술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국민건강보험은 효과가 입증되고 안전한 의료를 전국민 대상으로 베풀고 그 비용을 부담하는 취지의 제도이므로, 단지 가능성만을 가지고서 보험 대상으로 삼아주지는 않는다. 따라서 안전성은 확보되었지만 잠재성이 있는 의료기술을 의료현장에서 먼저 정해진 기간 동안 비급여 또는 선별급여로 사용하면서 근거 축적의 기회를 주고, 사용 기간이 끝나면 신의료기술평가를 받게 하는 중간적(혹은 예외적) 제도를 만들었으니 그것이 바로 혁신의료기술이다. 근거법령은 「의료법」과 「신의료기술평가에 관한 규칙」이 중심이 된다. 혁신의료기술을 신청하려면 안전성은 이미 확보되어 있어야 하고, 잠재성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하여 인정을 받아야 한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생각했을 때 혁신성과 잠재성은 서로 일치하는 개념은 아니다. 여기에서 고개를 약간 갸웃거리게 된다.  

혁신의료기기 지정을 받으면 병원을 대상으로 판매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것이 실제로 환자에게 쓰이고 비용을 받으려면 혁신의료기술평가 트랙으로 들어가야 한다. 의료기기 지정에서 말하는 혁신과, 신의료기술평가의 별도 트랙에서 말하는 혁신의 의미가 일치하지 않는다! 더욱 헷갈리는 것은, 바로 위에서 설명한 혁신의료기술은 혁신의료기기를 사용하는 의료기술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는 점이다.

작년부터 혁신의료기기 통합 심사·평가 제도라는 것이 생겨나서 혁신의료기기 지정과 이의 활용을 위한 혁신의료기술 평가 과정을 빠르게 도와주는 것은 매우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혁신이라는 낱말이 정확하지 않게, 그리고 조금씩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어서 혼란을 초래한다. 이 글의 첫머리에서 이미 혁신의 사전적인 의미에 대해서 논하였다. 혁신은 가능성의 단계를 넘는 일이어야 한다. 지금은 인공지능이 이미 우리 주변을 뒤흔들어 놓고 있는데, 1950년대에 연구실로부터 그 개념이 처음 나왔을 때에는 그 누구도 이를 혁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수십 년 뒤 세상을 뒤집어 놓을 잠재성을 가진 기술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몇 명 있었을 것 같다.

무릎을 탁! 치면서 읽었던 지난 3월의 히트뉴스 기사("언어의 향연? '혁신적 의료기기'는 최선이었나")의 일부를 약간 풀어서 인용해 본다. 부제는 '무수한 혁신들, 그래서 혁신이 평범해졌다'이다.

혁신적 의료기기(3월 2일에 정부가 발표한 바이오헬스 신산업 규제혁신 방안에 등장한 용어) 지원 목적은 융복합 기술 발전으로 개발되는 의료기기를 통한 의료 질 개선과 의료비 절감이다. 이같은 면에서 기존 혁신 의료기기와 혁신 의료기술을 아우르고, 나아가 확장하는 혁신적 의료기기라는 용어는 재정적 한계라는 점과 부딪혀 시장진출 대기실만 넓히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