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30일 금요일

[독서 기록] 『공포가 과학을 집어 삼켰다』와 『디자인은 어떻게 세상을 만들어가는가』


탈핵과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얼핏 보면 서로 관계가 별로 없는 분야의 주제이다. 전문가들이 흔히 하는 말 있지 않은가? 
'제 분야가 아니라서..(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또는 괜히 이야기해서 구설에 오르고 싶지 않습니다)' 
누가 나에게 원전 문제에 대해서 묻는다면, 나 역시 비슷한 논리로 이를 회피할 것이다. 난 생명과학자니까. 아니,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대해 물어도 또 내 전공을 세분화하여 살짝 피해 나갈 구실을 찾을 것이다. 나는 미생물, 특히 세균의 유전체를 연구하는 사람이니까..
  • 공포가 과학을 집어삼켰다(원제: Radiation and Reason - The Impact pf Science on a Culture of Fear)
  • 지은이: 웨이드 앨리슨
  • 옮긴이: 강건욱·강유현
두 공역자는 부녀 관계이다. 학술 논문에 부모와 나란히 공저자로 이름을 올리는 일이 과연 올바른 일인지에 대하여 사회적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고 이제는 누구나 조심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부녀 관계임을 밝히면서 공동 작업을 했음을 밝혔다는 것은 그만큼 각자가 제 몫을 충분히 했음을 반증한다고 생각한다. 강유현이 쓴 역자 서문의 일부를 소개한다.
많은 물리과 대학생들 또한 대학 졸업 후 대다수가 금융, 회계, 컨설팅 분야로 진출하며, 비전문가뿐만 아니라 전문가마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생각, 즉 정사유(正思惟)를 벗어난 자본주의적인 욕심으로 치우쳐져 있습니다. 전문가로서 활약을 할 수 있는 많은 인재들이 욕심을 앞세워 사회와 인류를 위한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결국 개인 투자자들이나 기업가들이 올바른 투자의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통찰력과 과학적 지식과 논리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287쪽)

연구분야에 종사하던 사람들에게 자본주의적 영감을 불어넣어 사업화의 길을 걷도록 하는 것이 마치 올바른 길이고 국민에게 봉사하는 것처럼(혹은 내 욕망을 채우는 길인가?) 느껴지는 요즘의 분위기에서는 매우 신선한 시각이 아닐 수 없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에 이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겪고도 어떻게 이런 책이 나올 수 있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원래 2009년에 쓰여진 책이다. 그러나 후쿠시마 방문기를 에필로그 형태로 다루었다. 원전 방사선 유출에 의한 직접적인 피해보다 '패닉' 자체가 더 큰 문제였다. 사실 인명피해는 쓰나미에 의한 것이 비교할 수 없이 더 컸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방사능에 대한 공포가 지나치게 높고 안전 규제 역시 실제적인 위해성을 입증할 수 없는 수준에서 너무나 강한 현실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안전에 대한 새로운 기준은 ALARA(As Low As Reasonable Achievable)에서 AHARS(AS High AS Relatively Safe)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쟁점은 저선량 피폭이 암 발생 등의 위험 가능성을 현저히 높이는가에 관한 것으로 귀결된다. 저자의 입장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암 치료를 위해 방사선 요법을 택하는 경우 그 부작용은 환자가 충분히 이해하고 감내하겠다는 조건으로 치료를 받는 것이다. 지난 7월 27일 그린란드에서는 8억톤은 빙하가 녹아 내렸다고 한다(관련 기사). 과연 신재생에너지만으로 인류가 요구하는 수준의 복지를 달성하면서 빙하를 지킬 수 있을까? 선진국 국민들은 전부 에너지를 덜 쓰기로 합의하고, 이제 막 자동차나 에어콘의 혜택을 입기 시작한 인구 폭발 중의 개발도상국 국민들에게는 그냥 현재 수준의 삶을 살라고 설득할 수 있겠는가? 이에 대한 가장 합리적인 대안은 원자력 발전 뿐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이야기.

딸아이가 디자인 관련 대학을 목표로 입시를 준비하던 시절, 입시 설명회 등을 통해서 기존의 대학에서 어떤 문제를 내는지 설명을 들은 일이 있다. 나의 느낌은 이러했다. 디자인을 공부하는 대학에서는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도전하는구나! 나의 전공인 생명과학도 감히 그렇게 하지 못하는데...

  • 디자인은 어떻게 세상을 만들어가는가(원제: How design makes the world)
  • 지은이: 스콧 버쿤(Scott Berkun) https://scottberkun.com/
  • 옮긴이: 이정미

제한된 자원만을 가지고서 최대의 효율을 힘겹게 추구해야만 했던 과거(그렇게 먼 과거도 아니고, 어쩌면 지금도 별로 바뀌지 않았는지도)에는 '디자인'이란 다분히 시각적인 것이었고 또 이를 감안하여 일을 한다는 것은 일종의 사치처럼 여겨지기도 했었다. 디자인이라는 낱말이 담고 있는 뜻이 워낙 광범위하고 시대에 따라서 조금씩 변하다보니 '세상의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계획'까지도 포괄할 수 있는 수준이 된 것 같다. 제 1 장의 제목은 감히 이러하다. '모든 것은 디자인을 담고 있다'

책의 말미에서는 다음과 같은 체크 리스트를 제시하였다. 이른바 4가지 질문이다. 꼭 디자인과 관련한 것이 아니더라도 내가 현재 하고 있는 모든 일에 대해서 이런 4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1. 무엇을 개선하고자 하는가?
  2. 누구를 위해 개선하려고 하는가?
  3. 당신의 디자인 결정이 옳다는 것을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
  4. 당신이 한 일로 현재 혹은 미래에 피해를 볼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만약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면, 이 4가지 질문을 한번 던져 보자. 특히 2번 질문은 어떠한 과업의 고객을 명확히 하고자 할 때 유용한 질문이다. 주어진 과업에 대해서 비용을 지불하는 사람이 바로 그 결과물을 직접적으로 활용하지는 않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정부에서 발주하는 많은 사업이 그러하다.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는 일이므로 사양서에 맞추어 제대로 목표가 달성되었는지를 꼼꼼히 점검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사업의 결과물을 실제로 활용하는 대상은 발주처(정부)가 아닌 일반 대중인 경우가 많다. 돈을 직접 대는 사람에게만 초점을 맞추게 되면, 정작 실제 사용자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지 못하게 된다. 여기까지만 이야기하면 아마 정부출연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대략 감을 잡을 것이다.

자작 진공관 싱글 앰프의 빈약한 소리에 실망을 하다 - 7년 반만의 결론

진공관 앰프의 소리가 남다른 감동을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주문 제작을 의뢰하기도 하고 - 들인 비용을 생각하면 결코 큰 기대를 할 수 없는 - 많은 시행 착오를 겪으면서 직접 자작을 해 보기도 하였다. 그런데 남은 것은 무엇인가? 수북하게 남은 처치 곤란한 부품들, 그리고 자작 과정에서 느꼈던 희열 정도가 될 것이다. 정녕 진공관 (싱글) 앰프가 나에게 최고 수준의 음악을 들려주었나? 답은 '아니올시다'라고 해 두겠다. 특히 최근에 출력이 충분한 반도체 앰프로 다시 돌아서게 되면서 이러한 결론은 거의 확고하게 굳어졌다.

자작 43 앰프(왼쪽)와 주문제작 PCL86 앰프. PCL86 앰프는 오른쪽에서 잡음이 나기 시작하였다. 2014년 설 무렵에 구입하여 지금까지 사용했으니 슬슬 문제를 일으킬 시간도 되었다. 좌우의 관을 서로 바꾸어 뀌어도 잡음은 계속 오른쪽에서 난다는 것이 골칫거리. 초단관(12DT8)을 6N2P로 바꾸면 잡음은 사라진다. 물론 이렇게 쓰기 위해 히터 배선을 약간 바꾸는 수고를 하였다. 
가장 큰 문제는 아무래도 소리가 빈약하다는 것이다. 만약 SPL 92~93 dB/W/m 수준의 고능률 스피커를 갖고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 것이다. 빈약한 출력의 앰프를 만들어 놓고 여기에 맞는 새로운 스피커를 찾는다면 그것은 뭔가 목표가 잘못 선택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6LQ8 푸시풀 앰프는 그런대로 힘이 있는 소리를 내 주었지만, 본디 오디오 신호 증폭용으로 만들어진 대중적인 관을 한번도 써 보지 못했다는 것도 아쉽다.

이영건 선생님이 만들어 주신 PCL86 초삼결 앰프는 지금껏 '좋은 소리를 낸다'고 믿고 사용해 왔었다. 그런데 출력 트랜스의 모양에 대해서 제이앨범에 글을 올렸다가 갭이 없는 형태의 저 트랜스는 필시 푸시풀 출력트랜스를 원래 목적에 맞지 않게 사용한 것이 틀림없다는 의견을 받은 후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하였다.

[제이앨범] 싱글용 출력 트랜스의 갭

가장 간단한 방법은 아직 휴대폰에 남아 있는 이 선생님 번호로 전화를 걸어 물어보는 것이다. 하지만 만 7년을 넘기 쓴 앰프에 대해서 이제 와서 무언가 이상하다고 문의하는 것도 예의는 아닌 것 같아 아직 궁금증을 참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오디오는 심리학'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감각을 이용하여 영위하는 모든 활동이 다 그러하겠으나... 

적당한 수준에서 정리를 할 시간이 다가왔다고 생각한다.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정말 음악 감상용으로 문제가 없다는 평가를 받지 못한 앰프는 조금씩 줄여 나가야 될 것 같다. 어느 앰프가 퇴출(?)의 대상이 될지는 아직 좀 더 지켜 보아야 하겠으나...

2021년 7월 27일 화요일

NCBI의 datasets 명령어 알아보기

평소에 NCBI에서 미생물 유전체 자료를 밥먹듯이 다운로드하는 나로서는 웹 브라우저뿐만 아니라 명령행 환경에서도 쓸 수 있는 EDirectncbi-genome-download와 같은 유틸리티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Bactopia에서는 주로 ENA를 대상으로 하여 SRA 데이터를 간편하게 다운로드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한다. 물론 SRA Toolkit있지만 BioProject accession에 연결된 raw sequencing read를 다운로드하기에는 'bactopia search'를 활용하는 것이 훨씬 편리하다.

어떤 미생물 종의 유전체 해독 현황을 알아보기 위해 오늘 NCBI 웹사이트에 접속하여 검색을 해 보았다. 그랬더니 흔히 보던 검색결과 옆에 이런 안내문이 눈에 뜨인다. 오늘 처음 발견한 것은 아니다. Quickstart: command-line tools를 클릭해 보았다.

간단한 설명을 보자. datasets은 NCBI에서 대량의 생물학적 서열 데이터를 다운로드하는 명령어이고, dataformatJSON(JavaScript Object Notation) Lines 포맷의 메타데이터를 TSV나 엑셀 등 다른 형태로 전환하는 명령어이다. 이상의 두 가지 command line tool은 리눅스나 macOS 및 64비트 윈도우즈용 프로그램을 전부 제공한다.

Quickstart guides에서는 주로 인간 유전체에 대한 활용 사례를 간략하게 설명하였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유전체 서열을 다운로드하는 방법에 대한 설명도 있다. 조금만 연구해 보면 번거롭게 assembly summary 파일을 파싱하거나 다소 난해한 EDirect 명령어 조합을 만들 필요가 없을 것 같다. 

NCBI 웹사이트에서 검색을 실시한 뒤 적당한 필터로 거른 결과물을 다운로드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나도 최근에 신종코로나바이러스의 유전체 수십만 건을 웹사이트에서 받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내문에 의하면 1000건 이상의 유전체 혹은 15GB를 초과하는 genome data package를 다운로드하려면 datasets 명령어를 쓰라고 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주도로 바이오연구데이터를 등록하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고자 여러 사람이 애를 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단지 과제 평가를 위해서 데이터 등록 자체에만 치중해서는 의미가 없다. 등록된 데이터 자체에 대한 검색이 우선 가능해야 한다. 누가 무슨 과제를 통해서 생성한 연구 성과인지를 검색하는 것은 데이터 자체가 아니라 메타데이터에 대한 검색에 해당한다. 그 다음으로는 데이터를 쉽게 가져다가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오늘 소개한 것에 해당하는 유틸리티도 개발·보급되어야 한다. 이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은 너무나 명백하다.

2021년 7월 25일 일요일

FM 수신용 안테나의 보수 및 재설치

튜너의 수리도 마쳤으니(관련 글 링크) 원활한 방송 수신을 위해 옥외에 설치한 안테나도 손을 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파견 근무 기간을 포함하여 약 3년 이상을 안테나 상태에 대하여 전혀 신경을 쓰지 못했다. 소자가 비틀어지고, 일부는 구부러지기까지 하였다. 인터넷으로 FM 방송을 듣게 되면서 안테나를 아예 철거해 버릴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튜너를 수리했으니 이에 맞추어 안테나도 보수를 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안테나를 끌어내려서 구부러진 곳을 폈다. 급전부가 있는 플라스틱 케이스을 열어보니 벌레가 고치를 지은 흔적도 있어서 깨끗이 닦아냈다. 고정 볼트에는 녹이 많이 슬었고 플라스틱 부품류도 부식이 일어나고 있다. 햇볕과 비바람에 노출된 동축 케이블의 외피 역시 변색이 되고 딱딱해졌다. 몇 년이 더 지나면 전체를 비슷한 제품으로 바꾸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이런 스타일의 옥외용 FM 수신 안테나는 현재 2만원 정도에 팔린다.

이런 스타일의 안테나를 실내에 두어도 깨끗한 소리가 나는 포인트를 찾을 수는 있다. 그러나 고정할 방법이 문제이다. 또한 콘크리트 벽에 기대어 놓으면 수신 상태는 나빠진다. 발코니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내 블로그에는 이 FM 수신용 안테나의 설치 방법을 조금씩 바꾸었던 기록이 남아 있다. 2014년 처음 구입하여(제품 링크) 사용한 것을 시작으로 하여 마지막 글은 2018년에 작성하였다(FM 수신용 안테나 보수하기). 전부 수평 설치를 기본으로 하였고, 붐대가 처지는 것을 막기 위해 발코니 난간에 설치된 화분 받침대에 걸치는 방식을 사용했었다.

이번에는 수평으로 설치를 하였다. 또한 거실쪽이 아니라 침실쪽에 면한 난간을 이용하였다. 전과 비교한다면 동쪽으로 수 미터를 이동한 셈인데, 이렇게 함으로써 남동쪽의 열린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효과를 거두었다고 믿는다. 목표는 식장산 중계소(102.1 MHz, KBS Classic FM 청주). 계룡산 중계소에서 송출되는 98.5 MHz도 잘 잡힌다.




좀 더 긴 붐대를 이용하여 안테나를 창틀에서 1.5 미터 정도 떨어뜨리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갖고 있는 재료로는 견고하게 고정할 방법이 없다. 또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수신 상태는 충분히 양호하다.
동축 케이블 연결 작업까지 마무리를 한 뒤 음악을 듣는다.
누가 뭐래도 나에게 가장 중요한 오디오 소스는 튜너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2021년 7월 23일 금요일

인켈 튜너 TX-5400 수리

2년 동안의 파견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서 인켈 TX-5400 튜너에 외부 안테나를 연결하고 전원을 넣었더니 모든 FM 방송이 모노로만 잡혔다. 전에는 KBS 1 FM의 스테레오 수신만 불량한 상태였었다.

라즈베리 파이를 이용하여 국내외의 다양한 인터넷 라디오를 듣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전원을 넣고 부팅이 될 때까지 결코 짧지 않은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 불편하였다. '전원을 켜면 즉각 소리가 난다'는 것은 매우 강력한 장점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에게도 라즈베리 파이로 음악을 듣는 과정이 성가시게 느껴지는데, 음악을 좋아하는 아내에게 휴대폰으로 볼류미오를 조작하라고 알려주기에는 미안하다. 비록 최근에 새로 들인 인터엠 R150PLUS 레퍼런스 파워 앰플리파이어는 보호 메커니즘 작동 때문에 전원을 넣은 뒤 몇 초를 기다려야 릴레이가 붙고 소리가 나기 시작하지만... 

음질 면에서도 특히 KBS 1 FM은 튜너로 들을 때 더 박력이 있게 느껴졌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모처럼 하루 휴가를 낸 금요일, 튜너를 들고 인켈·바텔 대전서비스센터를 찾아 수리를 의뢰하였다. 코일을 교체하여 정상 기능을 되찾았다. 스테레오 수신 표시를 얼마 만에 보는 것인가? 수리 비용은 생각한 것보다는 조금 비쌌지만, 아깝단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 돈이면 TX-5400과 비슷한 등급의 중고 튜너를 다시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동 상태는 보장하기 어렵다. 

'앞으로 얼마나 더 쓸 수 있을까요?' 수리 기사에게 물어 보았다.
'7년쯤 지나면 앰프나 튜너의 부품이 삭기 시작할 겁니다'. 

내가 집에서 인터엠 R150PLUS 앰프를 최근에 구입하여 쓰고 있다고 했더니 매우 의외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방송용 앰프를요?' 뭐 어떠랴.

내가 이 튜너를 중고로 구입한 것이 언제였을까? 아마도 2014년 무렵이 아니었을까? 공교롭게도 7년의 시간이 지났다. 수리 기사의 말이 맞다면, 그때 신품으로 튜너를 샀다 하더라도 지금쯤 스테레오 수신 불량 상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신품으로 구입했던 오디오 시스템이 몇 년이 지나면서 튜너의 수신이 불량해지는 현상을 최소한 두 차례 경험했었다. 비교적 짧은 시간(내 생각일 뿐이다)이 흐르는 동안 이렇게 빨리 열화되는 부품은 도대체 어떤 녀석인가? 손가락 한 마디도 안되는 코일이 바로 문제이다.

그러면 반도체 칩 몇 개로 구현한 라디오 수신 모듈은 어떻게 하여 코일 같은 것이 없이 작동하는 것일까? '전통적'인 튜너보다 수명이 더 길까? 나도 DSP PLL stereo FM receiver module을 하나 구입하여 테스트해 본 일이 있는데, 음질은 영 꽝이다. 이런 라디오 수신 모듈과 컴포넌트 오디오를 구성하는 단품 튜너의 음질이 비슷하다면 불공평하지 않은가? 물론 이런 식의 비교 자체는 공정하지 못하다. 90년대 초반의 데스크탑 컴퓨터보다 현재의 휴대폰을 비교해 보라. 크다고 더 좋은 것이 아님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DSP PLL stereo FM receiver module. 사진 출처: AliExpress
내가 실제로 구입하여 갖고 있는 FM 수신 모듈.

이 FM 수신 모듈과 관련하여 블로그에 작성한 글은 다음과 같다. 둘 다 2016년에 쓴 글이다.

처남에게서 얻은 B&W DH10 스피커(관련 글 링크)를 거실에 두게 되면서 인터엠 R150PLUS 파워 앰프를 사게 되고(관련 글 링크), 거실에 늘 두고 쓸 소스 기기로서 튜너를 수리하게 되었으니 우연히 벌어진 일의 나비 효과가 이런 결과를 초래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인생은 예측할 수 없는 것으로 가득하다는 것이 매력 아닌가? 올해 내가 만든 두 대의 진공관 앰프가 현재 제작 중인 드라마 촬영 현장에 놓이게 될 것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2021년 7월 18일 일요일

[독서 기록] 문명의 역습

책을 도서관에 반납해 버린 후라서 정확한 기록을 남기기가 어렵다. 독서를 하면서 메모를 하는 스타일은 아니라서, 독서 기록을 쓰려면 다시 책을 손에 들고 뒤적거려야만 한다.
  • 제목: 문명의 역습('우리는 문명을 얻은 대신 무엇을 잃었는가')
  • 원제: Civilized to Death
  • 저자: 크리스토퍼 라이언
  • 역자: 한진영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위하여 인류가 언젠가는 스스로 일구어 온 문명을 버려야 할 수도 있다고 나는 믿는다. 아니,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거듭된 재앙이 인류를 반 강제적으로 저(低)기술 사회로 몰고 갈 수도 있다고 본다.

인공지능이 고도로 발달하고 - 그 과정에서 인류가 인공지능에 의해 도태되지 않는다면 - 생각만으로도 사물을 제어할 수 있는 수준으로 과학기술이 발달하여 특이점까지 도달했다가 전쟁이나 환경오염, 기후변화 등으로 인류가 멸망했다고 가정하자.

또 다른 시나리오에서는 원하든 원치 않든 지금까지의 과학기술을 버리고 듬성듬성 소규모 집단을 이루면서 수렵과 채집을 살아가는 방식으로 회귀했다고 치자. 과연 나라면 어떤 미래를 꿈꿀 것인가? 생태계의 다른 구성원과 더불어 지속 가능한 삶을 살고자 한다면 당연히 후자가 더 바람직한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손가락 조작만으로 요즘같이 뜨거운 여름날에 시원한 에어콘 바람을 맞으며 쾌적하게 사는 모습에 더 가치를 둔다면, 수렵 채집인의 삶은 따분하고도 발전이 없는 것으로 여길 것이다.

맨 마지막 장은 무척 의외로 여겨진다. 전통 사회에서부터 쓰이던 향정신성약물의 긍정적인 면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마약이나 약물이라고 한데 묶어서 생각하는 것들을 진지하게 나누어 다루어야 하고, 그 중에는 쓸만한 것이 있다는 이야기인데, 아직 우리 한국 사회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독서 기록] 유닉스의 탄생 - bioneer 서버를 추억하며

1990년대 초반, 내가 다니던 대학원의 몇몇 연구실에서 조금씩 돈을 모아서 당시로서는 꽤 좋은 리눅스 서버를 조립한 일이 있다. 그 서버의 이름은 'bioneer'. 이를 한글로 표기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다들 고민을 별로 하지 않았다. 월드와이드웹은 고사하고 학교에서 이메일 주소를 공식적으로 발급해 주지도 않던 시절, bioneer는 생명정보학 도구의 산실이자 학과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이메일 계정을 하나씩 안겨준 귀한 자원이었다. 지금은 중앙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한윤수 교수가 직접 코딩하여 만든 텍스트 터미널 방식의 bbs 프로그램은 학생들의 일상과 실험 노하우를 공유하는 매우 중요한 정보 교류의 장이었다. bioneer라는 이름은 우리 학과의 당시 영문 명칭인 Department of Biological Science & Engineering에서 딴 것으로 기억한다. 이 bioneer라는 이름이 우리나라 생명공학계의 최초 벤처기업인 (주)한국생공이 1996년 (주)바이오니아로 상호를 변경하는데 어느 정도는 영감을 제공하였을 것으로 믿는다.

당시 바이오니어 서버를 만드는데 주도 역할을 했던 사람은 누구였던가? 안타깝게도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아마도 홍석진, 한윤수, 홍승범 동문 등이었던 것 같다. 혹시 정확한 정보를 알고 계신 동문이 있다면 연락 주시기를! 이러한 일을 학생들의 열의만으로는 할 수 없는 노릇이었고, 박찬규 교수님이 분위기 조성에 도움을 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과 선배 중에서도 기여를 한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이 작은 역사가 나로 하여금 리눅스에 관한 관심을 갖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고, 1994년 드디어 내 생애 최초로 개인 PC를 갖게 되었을 때 리눅스를 설치하여 간단하게 bbs도 운영해 보고 학위 논문 원고도 LaTex으로 쓰게 된 계기가 되었다. 컴퓨터는 계속 바뀌었지만 이때 지은 eos라는 서버명은 그 이후로도 꽤 오랫동안 사용하였다. 사실은 1993년 여름 어렵게 장만한 캐논 SLR 카메라 EOS 5에서 딴 이름이지만... 다음 주에 컴퓨터를 하나 발주할 일이 있는데 생각이 난 김에 eos라는 이름을 다시 사용해야 되겠다. AMD CPU를 쓰는 컴퓨터로는 첫 경험이 될 것이다.

학부생 때에 SSM-16에 접속하여 포트란 실습을 한 일이 있어서 리눅스의 텍스트 터미널 환경을 별로 낯설게 여길 필요가 없었던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1984년에 개발된 국내 최초의 상용 컴퓨터인 SSM-16에 대해서는 ETRI 40주년 자료를 참고하기 바란다. 아, SSM은 '삼성 수퍼마이크로'의 약자였구나!(1996년 전자신문 기사) 예전보다는 SSM-16에 대한 정보를 찾기가 수월해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서론이 지나치게 길었다.

나의 업무에서 여전히 중요하게 쓰이는 자료 처리용 스크립트 언어 AWK의 저자 중 한 사람인 브라이언 커니핸이 쓰고 하성창이 번역한 책 『유닉스의 탄생』(한빛미디어 2020년)을 재미있게 읽었다. 훗날 누군가 짧았던, 그러나 굵게 흔적을 남긴 bioneer 서버의 역사에 대한 글을 쓰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UNIX와 C 언어는 미국 AT&T의 연구 개발 자회사인 벨 전화 연구소(Bell Telephone Laboratories, 혹은 단순히 '벨 연구소')에서 태어났다. UNIX가 탄생되는 순간은 이 책의 80쪽부터 나온다. MIT와 공동 작업으로 진행되었던 멀틱스(초기 시분할 운영체제의 하나, 1964~2000) 개발에서 손을 뗀 사람들이 거의 놀고 있었던 DEC PDP-7을 활용하기 위해 창의력을 발휘한 것이다. 멀틱스의 복잡성에 대한 반작용으로 탄생한 것이 유닉스라니! 켄 톰프슨은 PDP-7에 달린 특이한 디스크 드라이브의 작동 효율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디스크 스케쥴링 알고리즘을 작성했고, 이를 시험하기 위해 그의 아내가 한 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부모님을 뵈러 간 3주 동안 유닉스의 프로토타입을 만든 것이다.

당시 벨 연구소는 연구자들이 최대한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게 배려하는 분위기였고, 대학을 찾아다니며 좋은 인재를 영입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요즘 우리나라와 같이 '블라인드 채용'만이 공정한 인재 등용 방법이라면서 이를 강하게 추진하는 것과는 크게 대조가 된다. 유닉스는 벨 연구소의 모기업에 결코 재정적인 성공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주변 대학에 영업 비밀 보호 협약만 맺는 조건으로 싼 가격(명목상의 매체 수수료)에 배포를 하여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요즘 말하는 오픈 소스 방식은 분명히 아니었고 라이선스를 취득한 사람끼리만 유닉스와 관련된 경험을 공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커뮤니티가 확산되고 점차 다른 종류의 하드웨어로 이식되는 것도 가능해졌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호환성이 중요한 전통으로 자리잡게 되었다고 한다. 유닉스에서 직접적으로 파생되었거나 영향을 받은 후손이 지금은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고, 그 한가운데에 리눅스가 있다.

벨 연구소는 소속 연구원들이 책을 발간하는 것을 장려하였다고 한다(201쪽부터). 초창기 유닉스에서는 문서 생성용 도구가 큰 비중을 차지하였고, 이로 말미암아 각종 매뉴얼이나 기술 논문 및 책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특히 벨 연구소의 컴퓨팅 과학 연구 센터에서는 책을 집필하기 위해 별도의 개인 시간을 쓸 필요가 없었다. 덕분에 벨 연구소는 컴퓨팅과 컴퓨터 과학에 대한 권위 있는 책을 쓰는 곳으로 유명해졌다. 

비교적 규모가 작은 기업의 연구소에서 이렇게 좋은 책을 많이 낼 수 있었던 원인을 저자는 이렇게 파악하고 있다. 이를 원문에서 그대로 인용해 본다(203쪽~). 기술적인 글쓰기를 즐기는 나에게 매우 깊은 인상을 준 대목이다. 
  • 글쓰기를 진지하게 대했고, 스스로 공을 들여 썼으며,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읽고 훌륭한 비평을 제시했다.
  • 연구소 경영진이 책 쓰기를 지지해 주었다... 6개월 동안 책을 몰두하여 쓸 수 있었고, 저작권은 벨 연구소가 보유하지만 저자가 인세를 받았다.
  • 프로그래밍 환경으로서 C와 유닉스, 연구 분야로서의 문서 생성, 컴퓨터 기술을 주제로 한 글쓰기를 주요 활동으로 삼은 것 간의 공생 관계다.

유닉스 개발에 가장 크게 기여한 소수의 천재를 고르라면 케네스 톰프슨과 데니스 리치로 대상을 좁히지 않을 수 없지만, 저자는 당시 벨 연구소 컴퓨팅 과학 연구센터의 분위기는 열정으로 뭉치고 우애 넘치며 자유로운 환경임을 강조하고 있다. 자유로운 연구를 지속적으로 지원하였던 부서장이라든가, 인턴 연구원으로 잠시 근무하면서 머물면서 유닉스 시스템의 성장과 발전에 기여한 사람들(예: 훗날 구글의 CEO가 된 에릭 슈미트) 등등..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어디에서도 치열한 경쟁이나 성과를 둘러싼 싸움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관리자로 승진하기 싫어서 애쓰는 모습이 애교스럽게 묘사되기도 하였다. 혹시 일부러 저자가 낭만적으로 책을 쓴 것은 아니었을까?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인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역사가 되어 있더라구요.'

언젠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얼마나 영광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