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3일 월요일

[뉴욕 여행기 3] 냄비밥을 지어 먹고 브루클린 대교를 건너다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은 다음의 세 가지의 조건을 어느 하나라도 갖춘 사람이다.

  • 스포츠에 관심이 많고 운동을 잘 하는 사람 - 생각하는 것을 실천하는데 필요한 강인한 체력을 갖고 있을 것 같고, 프로 스포츠를 화제로 하여 이야기를 잘 할 것 같다. 왠지 비즈니스 마인드도 잘 갖추었을 것만 같다.
  • 2년 이상의 해외 생활 경험이 있는 사람(학위 과정, Post-Doc 연수, 장기 출장 등 뭐든지) - 해당 국가의 언어를 잘 할 것 같다.
  • 요리를 잘 하는 남자 - 이 기능의 유용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뉴욕 여행 3일차인 9월 15일 일요일 아침, 냄비에 직접 밥을 지었다. 위에 나열한 조건 중 마지막 것의 실현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가정 하에. 아래 사진에서 오른쪽의 미역국은 아내가 끓였다. 미역은 이번에 한국에서 가져간 것이고 쇠고기는 근처 슈퍼마켓에서 어제 구입한 것이다. 추석 연휴 기간이 생일과 겹쳐서 그런 것이 아니라 딸아이는 엄마가 끓인 미역국을 정말 좋아하기 때문이다. 지난 여름에 국제우편으로 보내 주었지만 미처 뜯지 못한 마른 멸치로 볶음을 하고, 장모님께서 보내주신 오이지 무침을 곁들여 정말 한국적인 아침 식사를 하였다.

소량(2인분)의 냄비밥 레시피는 여기에서 찾았다. 쌀 불리기, 물/불 조절 등 여러 변수가 있으며, '반드시 이 방법대로만 해야 한다'와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단, 쌀을 30분 동안 충분히 불리는 것이 중요하다. 도정을 언제 했는가, 즉 건조 상태에 따라서 쌀을 불리는 시간도 바꾸어야 한다는 말도 있지만, 그렇게까지는 못 하겠다.

물이 다 없어지고 '자작자작' 소리가 나면 불을 끈 뒤 뚜껑을 덮고 5분 동안 뜸을 들인다.

눌어붙지 않은 훌륭한 냄비밥이 만들어졌다. 누룽지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더라? 사실 냄비밥은 에너지를 가장 적게 들여서 밥을 짓는 방법일 것이다. 불을 조절하면서 계속 지켜보고 있어야 하니 전기밥솥에 밥을 짓는 것에 비해서 손이 좀 많이 가지만.

식사를 마치고 딸과 함께 집 근처의 빨래방에 들렀다. 갑자기 두 사람의 손님이 들이닥치니 빨래의 양이 많아졌다. 빨래를 하는 동안 바로 곁의 카페에서 차를 마시면서 딸의 인생 계획을 진지하게 들어 주었다.

그래서 오늘은 어디를 갈 것인가? 이번에도 행선지 결정은 즉흥적으로 내렸다. 브루클린 대교를 건너 보자! 우드사이드에서 지하철 7호선을 타고 서쪽으로 가서 종점 직전인 타임즈 스퀘어-42가까지 간 다음 남쪽으로 가는 4/5/6호선을 타고 브루클린 다리-시티 홀에서 내린다. 바깥으로 나오면 브루클린 다리로 가는 방향을 보여주는 표지판이 있다. 이를 따라서 남쪽으로!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드디어 그 유명한 교각이 모습을 나타낸다. 이것이 1883년에 만들어진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이자 뉴욕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단 말인가. 압도적인 규모와 고전미가 넘치는 인류의 멋진 유산이다. 

아래층은 왕복 6차선의 자동차용 도로이고 위층은 보행자용 다리이다. 21세기에 나무로 상판을 덮은 다리를 걸어서 건너다니 상당히 낭만적이지 않은가?


전체 길이는 약 1.8 km. 약간 더운 날씨였으나 다리를 건너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브루클린 대교는 정말로 'spectacle, iconic bridge'이다.

남쪽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높은 빌딩의 숲이 장관을 이룬다.

점심을 먹기 위해 근처를 어슬렁거리다가 그 유명한 '덤보(DUMBO) 포토존'을 지나게 되었다. 덤보는 브루클린의 지역명으로, 'Down Under the Manhattan Bridge Overpass'의 약자라고 한다. 원래 마지막 단어인 overpass는 불필요하지만, DUMB이라고 하면 멍청하건 우둔하다는 뜻이 되어서 일부러 삽입한 것이라고 한다. 교각 사이 아래쪽으로 멀리 보이는 빌딩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라나?

교각과 주변 건물의 색깔(심지어 안전망까지)이 매우 잘 어울린다.

바로 근처의 Time Out Market으로 들어가서 베이글 전문점인 ESS A-BAGEL에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때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으나 사람이 너무 많아서 간신히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역시 여기에서도 양성평등 화장실 앞에서 약 서른 명 정도가 줄을 서는 힘든 경험을 하였다. 대기줄 길이를 보고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나가는 사람도 많았다.




TIme Out Market의 북쪽 출구를 통해 밖으로 나가니 맨해튼의 마천루를 배경으로 이스트 강의 푸른 물결 위에 배와 제트스키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지나간다.

이것은 맨해튼 다리.

브루클린 다리.


산책을 나온 시민과 관광객들이 벤치와 잔디 위에 앉아서 여유로운 시간을 갖고 있었고 간간이 달리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눈과 마음이 다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찾는 멋진 장소에 왜 화장실은 그토록 부실한 것일까? 


벤치에 앉아서 휴대폰을 꺼냈더니 KRIBB 마스코트 '세뽀' 그립톡이 없어진 상태였다. 걸어온 길을 되돌아 가면서 인근 잔디밭을 뒤져서 결국 찾아내었다. '에밀리 워런 로블링 플라자'에 하마터면 세뽀를 미아 상태로 놓고 올 뻔하였다. 

다리 밑 공원으로 가는 길에 어떤 여성의 기념물이 서 있었다. 그 주인공은 에밀리 워런 로블링. 그녀는 브루클린 다리를 아버지(John A. Roebling, 설계자)에 이어 2대에 걸쳐 만들던 남편 워싱톤 로블링을 대신하여 최초의 여성 현장 엔지니어로서, 10년 동안 일하면서 드디어 완성에 이르게 한 기념비적인 인물이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겨우 39세! 이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는 브루클린 다리 - 비극을 기적으로 바꾼 로블링(Robeling)가의 집념을 참고하기 바란다.

내일은 또 어디를 갈까? 한국에서 가져온 뉴욕 여행 소개 책자를 들추어 볼 기력이 없다... 미국에 와서 달리기를 할 여건은 못 된다. 센트럴 파크가 바로 곁에 있는 것도 아니고, 딸아이 집 근처는 너무 번잡하여 달리기를 할 상황이 아니다. 그러나 워낙 많은 거리를 걸으며 돌아다니고 있어서 운동량은 충분하다.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