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29일 일요일

2019년의 마지막 일요일을 응급실에서 보내다

미술학원을 가야 하는 딸아이가 갑자기 목이 아프다며 제대로 몸을 가누기 어려워한다. 미대 입시를 위한 실기시험을 앞두고 쉴 새 없이 달려왔는데, 드디어 몸에 탈이 난 모양이다. 학원에서 하루에 14시간 가깝도록 불편한 자세로 그림을 그리니 늘 목, 어깨, 허리의 통증을 호소해 왔었다. 게다가 유일한 휴식과 소통의 수단인 휴대폰은 또 얼마나 나쁜 자세를 유발하기 쉬운가. 차를 몰고 근처의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올해 초 음력설 연휴가 시작될 즈음 딸아이는 깨진 향수병을 버리려고 넣어 둔 비닐봉지를 잘못 밟아서 발바닥 바깥쪽의 두터운 피부가 꽤 깊게 파여나가는 작은 부상을 입은 일이 있다. 서둘러 을지대학병 응급실을 찾아 피부를 꿰매는 작은 시술을 받았었다. 마취도 없이! 엄지손톱만하게 떨어져 나간 살 조각을 가지고 갔지만 이를 제자리에 붙일 수는 없다고 하였다. 아이는 내 손을 꼭 붙잡고 바느질(?)을 잘 견뎠다. 그때도 느낀 것이지만 응급실 체계가 예전보다 많이 선진화되었다. 보호자는 한 사람씩만 입장이 허용되고, 응급실에 도착한 환자를 증세에 따라 분류하고 진행 상황을 대기실에 있는 동반인에게 알리는 등 시장바닥같이 법석대는 모습은 거의 줄었다. 몇 차례의 국가적 outbreak를 겪으면서 감염 관리도 철저하다. 하지만 어제 저녁 외출을 했다가 사람이 꽉 찬 신분당선 지하철을 타고 귀가하면서 이렇게 사람들이 높은 밀도로 모여서 이동을 하니 감염병이 한번 퍼지면 걷잡을 수가 없겠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목과 어깨가 아픈 딸아이는 눕지도 못하고 앉아서 진통제와 수액을 맞고 있다고 아내가 대기실에 있는 나에게 전화로 알려왔다. 통증은 한층 가라앉았다고 했다. 나도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비슷한 일을 겪은 일이 있다. 당시에 나쁜 자세로 이러한 일이 생기지는 않았겠지만,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는 금세 회복이 되었었다. 

중년인 나나 성년이 된 딸이나 경추의 상태는 통증을 유발하기 딱 좋은 상황인 것을 잘 알고 있다. 하루 종일 목을 빼고 컴퓨터를 보거나 두 팔을 앞으로 빼고 휴대폰을 매만지는 자세가 결국 이런 상황을 초래한 것이다. 시선과 관심을 화면 바깥의 세상과 바로 곁의 사람에게 돌려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렵다.

디자인 전공을 위한 대학 입시의 길은 참으로 어렵다. 외형적으로는 일반 미대 입시와 비슷해 보이지만 문제의 형식도 많이 다르고 이를 전공으로 택하려는 수험생도 이전보다는 훨씬 많다. 이미 한 차례의 실패를 겪었는데 이번 기회는 어떤 결말을 가져다 줄지 걱정과 기대가 반반이다. 어린 수험생들이 건강을 해치지 않고, 또한 좌절에 빠지지 않고 원하는 대학에 모두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년에는 개선된다고는 하지만, 2천명 가까운 수험생이 킨텍스에 모여 시장바딕같은 분위기에서 수시 실기시험을 치르게 하는 서울대학교 미대의 정책에 대해서는 정말 할 말이 많다.

119 구급대가 한 차례 왔다 가고, 저마다의 사연을 들고 환자들이 계속 휴일의 응급실을 찾는다. 모두 쾌차하시길.

2019년 12월 22일 일요일

린지 폴락(Linsey Pollak)의 DIY 관악기

색소폰용 마우스피스에 구멍을 뚫은 파이프를 연결하면 클라리넷류의 목관악기가 될 것으로 생각하고 이에 관한 정보를 찾다가 '라이온 향기따라' 블로그에서 린지 폴락이라는 사람의 정보를 알게 되었다(클라리니Clarini 링크). 린지 폴락은 호주 출신의 음악가이자 악기 제조가이며 발명가로서 2003년에 우리나라를 방문한 적이 있다(KBS 뉴스 링크). 색소폰 마우스피스를 쓰면서 왜 클라리넷이라고 부르는 것이냐고 따지지는 말자.

당근 클라리넷 만드는 법. 출처: https://www.linseypollak.com/instruments/

그의 웹사이트에 소개된 DIY 관악기 중에서는 Clarini(제작도면 PDF 파일)가 가장 현실성이 있다. 본체의 주료 재료인 irrigation riser pipe는 1/2 인치 ID(아마도 내경internal diameter) 15 mm라 하였는데, 아마 농자재를 취급하는 곳에서 농수관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하는 물건으로 여겨진다.

린지 폴락이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Making a Paper Clarinet' 링크) 중에는 포장지를 말아서 만든 클라리넷도 있다.


동영상이 끝나는 부분에 설계도가 나오는데 위에서 소개한 Clarini의 치수와는 약간 다르다. 대단히 간단하다. eBook 'Make your own Mr. Curly & other Clarinets'(링크)를 구입하면 그가 개발한 악기의 더욱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Ammoon Pocket Sax의 알토 색소폰 마우스피스 하나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출처: 'Making a Paper Clarinet' 링크


2019년 12월 21일 토요일

Ammoon의 8-hole LittleSax(B♭) 좀 더 알아보기 - 치명적 단점 발견!

악기에 딸려온 합성 리드를 케인 리드로 바꾸는 것이 더 좋은 소리를 나게 하는 방법임을 베노바를 통해 깨달았다. Ammoon LittleSax는 어떠한가? 리드가 무려 10개나 들어있지만 설명서를 보면 하나씩 테스트를 해 보고 가장 소리가 잘 나는 것을 사용하라고 되어 있다. 하나씩을 번갈아 끼워서 불어 보았더니 두세개 정도는 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고, 소리가 매우 잘 나는 것도 있었다. 전반적으로 리드가 매우 단단하고 그 정도 역시 고르지 않아서 단번에 소리를 내기 어려웠다.



동봉된 리드의 품질이 이렇게 좋지 않으니 리드를 바꾸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할 것 같아서 베노바를 위해 구입했던 것과 동일한 회사(AW-Reed GbR)의 알토 색소폰용 리드(2.5호)를 구입해 보았다. 구글에서 이 회사를 찾으니 폐업을 했다는 정보가 나온다. 그래서 비교적 싸게 리드가 팔리는 것일까? 회사 홈페이지(링크)에서는 폐업 여부를 알 수 없다.


Ammoon LittleSax에 포함된 순정 리드는 그야말로 복불복이었지만, AW의 것은 단번에 좋은 소리가 났다. 5개 들이 AW 리드의 가격은 할인된 가격으로 산 LittleSax의 그것에 거의 접근한다. 리드를 바꾸는 것 이상의 투자는 할 필요가 없다.

AL, AW의 알토 색소폰용 리드. AL', Ammoon에 기본 포함된 리드. SL, AW의 소프라노 색소폰용 리드. SL', 베노바에 기본 포함된 리드.

Ammoon 8-hole LittleSax(key B♭)의 미스테리는 공식 운지표에는 높은 E음을 어떻게 불어야 하는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음의 사진을 보라. 위의 것은 key B♭, 아래 것은 key C 제품의 운지표이다. 오버톤으로 불어야 하는 높은 음(분홍색 배경)은 제품에 따라 운지가 다르다고는 하는데, 어째서 B♭ LittleSax 운지표에는 높은 D#(E♭)과 E를 부는 방법이 나오지 않는 것일까? 비디오 튜토리얼에 혹시 힌트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중국어로 된 동영상 31개 중 어느 것에 그 방법이 소개되어 있을지 알 수가 없다. 몇 개를 클릭하여 열어보니 중요한 곳에는 영문 자막이 있기는 하다. 그리고 첫 소리를 내는 단원에서는 아랫입술로 아랫니를 살짝 말아서 마우스피스를 무는 방법을 강조하고 있지도 않다. C조 LittleSax 운지표에는 높은 E를 연주하는 운지법은 나오지만 희한하게도 D#(E♭)은 없다.


높은 E를 어떻게 부는가... 왼손 엄지로 막은 구멍을 살짝 열고 불었을 때 나는 소리는 E인가 F인가? 비디오 튜토리얼(31강 overtone skill) 및 C조 LittleSax의 운지법에는 이것이 E라고 하지만 내가 듣기에는 F다.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것이지?

2019년 12월 22일 업데이트: 높은 D#(E♭)과 E는 연주 불능!(B♭ key 제품)

몇 음을 부는 방법이 운지표에 나오지 않는 문제를 LittlsSax 개발자인 He Linxian에게 이메일로 문의하였다. 그랬더니 즉시 답장이 왔는데, 원래 그렇다는 것이다! 이후에 개발된 C 키 버전에서는 이 문제가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D#(E♭) 한 음을 불 수 없다고 한다, 두 음을 불 수 없는 것에 비해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음역대 거의 중간에 위치한 음 자체를 연주할 수 없다는 것은 매우 중대한 결함이 아니겠는가? 매뉴얼과 광고 어디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밝힌 곳은 없다. 불량품이 아니라 설계상의 근본적인 문제인 것이다. 서른개가 넘는 실습용 동영상을 올릴 정도로 LittleSax의 저변 확대를 위해 들이는 He Linxian의 노고는 인정하지만, 높은 위치의 '미♭'와 '미' 소리를 낼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답답한가? 초등학생 교재용 소프라노 리코더도 이렇지는 않다.

할인된 가격에 산 것은 다행이지만, 추가로 비용을 들여서 AW 리드를 산 것은 과한 일이 아니었을까? 동봉된 10개 리드 중에 쓸만한 것이 두세개는 있었으니 말이다. 차라리 PVC 파이프를 자르고 구멍을 뚫어서 나만의 악기를 만드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알토 색소폰 마우스피스는 하나 챙겼으니 말이다. 인터넷을 뒤지면 흥미로운 정보가 많다. 라이혼 향기따라 티스토리 블로그의 '악기' 카테고리에 참고할만한 정보가 많음을 발견하였다.

2019년 12월 19일 목요일

[The Clumsy Venovist] Ammoon B♭ Mini Saxophone(8-Hole 'LittleSax') 도착

알리익스프레스에서 12월 3일에 주문하여 12월 18일에 받았으니 배송에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동수원 우체국에 도착한 것은 17일 새벽이었지만 바로 그날 배달이 되지는 못하였다. 마우스피스(색소폰용 알토 마우스피스)를 결합하기 전에 코르크 그리스를 발라야 한다는 말을 듣고 바셀린을 조금 발랐다. 리드는 무려 10개가 들어 있는데, 동봉된 설명서에는 전부 특성이 다르니 소리가 잘 나는 것을 택해서 쓰라고 하였다.

야마하 베노바(위)와 비교한 사진. 

리가춰는 저가품 느낌이 난다. 이 가격에는 어쩔 도리가 없다.
'ammoon'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마우스 피스를 이렇게 끝까지 밀어넣으면 안된다.
B♭ 제품은 마우스피스를 파이프에 끝까지 밀어넣어 끼우면 안된다. 10 mm 정도 떨어지게 유지해야 한다. 원본 동영상 링크는 https://youtu.be/aTCLEvjvVes이다(비디오 튜토리얼 2번 'Assembly and maintenace).

베노바의 마우스피스를 물던 방식 그대로 입에 물고 바람을 불어 넣었다. 어라? 쉭쉭거리기만 할뿐 소리가 나지 않는다. 암부슈어를 바꾸어 보면서 애를 쓰니 대단히 높은 소리가 가끔 새어 나오기만 한다. 입술 밖으로 나온 부분을 손가락으로 지지하여 마우스피스에 밀착한 뒤에 바람을 불어 넣으면 제 음높이의 소리가 나온다. 물론 이렇게 악기를 연주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암부슈어를 계속 바꾸어 보다가 저녁 무렵에야 비로소 소리를 낼 수 있었다. 마우스피스를 좀 더 짧게 물었더니 어렵사리 소리가 나기 시작하였다. 아랫니를 입술로 덮고, 윗니로는 마우스피스를 누르는 정석적인 방법을 따르지 않고 그저 초등학교 때 리코더를 불듯이 입술로만 마우스피스 끝을 물고 바람을 넣어도 소리는 잘 난다. 그러나 음량은 베노바보다 훨씬 작고 음색은 두툼하고도 부드럽다. 방음이 잘 되지 않는 곳에서 불기에는 매우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진짜 '색소폰'을 연주하게 되면 지금과 똑같은 시행착오를 겪게 될까? 베노바와 암문 미니 색소폰이 이렇게 다를 줄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음색과 음역이 다른 것은 당연하겠지만, 어떠한 관이 붙어있든 소리 자체를 내는 요령은 순전히 마우스피스에 달려 있다고 보는데, 소프라노와 알토가 이렇게 다르다니 정말 놀랍다.

베노바는 독일식 리코더의 운지법과 거의 같다. Xaphoon은 아직 경험한 적이 없어서 어떠한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이번에 구입한 관악기의 운지법은 리코더 또는 Xaphoon과 완전히 다르다. 특히 중간 '시'를 짚는 방법을 보니 보통 복잡한 것이 아니다. 관의 뒷쪽 중간쯤에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개폐하는 구멍이 있다는 것도 특이하다. 제품에 딸려온 운지표를 아래 사진에 보였는데, 어찌된 일인지 높은 '미'를 짚는 법이 아예 나오질 않는다. 악기 제조사 웹사이트에 있는 매뉴얼 파일을 찾아보니 편집 실수가 있었던 모양이다. 운지법이 서로 다른 관악기를 불다보면 치매 예방에는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제품에 포함된 운지표. 분홍 배경으로 칠해진 높은 음역의 운지법이 잘못되었다.

2019년 12월 12일판 웹사이트에 게시된 매뉴얼(2019년 10월판) 42쪽의 수정된 운지표.

알리익스프레스에서 악기 판매처는 Ammoon이지만 실제 개발과 제작을 한 곳의 웹사이트가 존재한다. 상세한 설명서와 동영상 등이 여기에 있다. 중국어 위주라서 보기에는 조금 불편하다. 2014년에 11홀 버전이 먼저 나왔고 더욱 쉽게 연주할 수 있도록 지금의 8홀 버전이 나왔다고 한다.

매뉴얼 맨 뒤를 보면 정식 품명은 LittleSax Simple Saxophone이고 Fuzhou LittleSax Musical Instrument Co., Ltd.에서 제조하였음을 밝혔다.


이 악기는 '8孔小萨' 또는 8-Hole LittleSax라고 불러주는 것이 개발자 He Linxian의 뜻에 더욱 가까운 것 같다. 참고로 '萨'는 색소폰을 중국어로 부르는 명칭인 '萨克斯风'의 첫글자를 딴 것이다. 발음은 유튜브를 참조하라. '싸커쓰꾸안(sà kè sī guǎn)' 정도로 들린다.

이러다가 Xaphoon, Saxmonica, MiniSax를 전부 섭렵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다음은 유튜브에서 찾은 Elle Jimmy Tan의 Ammoon Mini Pocket Saxophone 개봉기이다.


2019년 12월 16일 월요일

[The Clumsy Venovist] 리드(reed)의 맛

일주일 동안 열심히 연습을 했더니 AW의 케인 리드가 드디어 수명을 다하였다. 탄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이가 나가듯 끝부분이 망가졌다. 마우스피스에 끼운 상태에서 칼로 살짝 도려내는데 엉뚱하게 칼날이 마우스피스 위로 지나가고 말았다. 으이그... 집에서 쓰는 돋보기 안경의 도수를 더 올릴 때가 되었다.

리드 트리머를 쓰지 않고 대충 잘라서 그런지, 혹은 너무 많이 잘라내서 그런지 소리를 내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래, 이제는 교체를 해야지.. 아침에는 순정 합성 리드를 꽂아서 힘겹게 연습을 하고, 저녁에는 두번째 케인 리드를 끼워서 수월하게 소리를 내었다. 입술 근육과 부는 힘을 키우려면 뻣뻣한 합성 리드가 도움이 된다. 더디지만 소리가 점점 나아지는 것을 느낀다.

그런데 두번째 케인 리드는 맛이 좀 이상하다. 원래 이랬었던가? 마치 땀에 전 속옷에 혀를 댄 느낌이랄까, 찝찔하게 느껴지는 것이 영 개운치 않다. 그렇다고 해서 물에 몇 시간 담가서 맛이 나는 미지(?)의 성분을 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가장 내기 어려운 소리는 F#이다. 매뉴얼에도 이 소리를 내기 어렵다고 했으니 받아 들여야 하겠지만, 그 이유를 알고 싶다. 시-도를 빠르게 연주하는 것도 쉽지 않다. 왼손 검지와 중지를 매끄럽게 교차시키며 운지하는 것이 어렵다.

알리익스프레스에서 주문한 Ammoon의 포켓 색소폰은 오늘 항공편으로 드디어 국내에 들어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늦어도 모레까지는 내 손에 들어올 것이다. 어떤 묵직한 소리를 내어 줄지 기대가 된다.

자체 검열을 많이 한다는 것

<르몽드 비판 경제학>을 읽으며. 종로 영풍문고에서 아내가 정해영을 촬영하다.
대형 서점에서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자유는 그 책에 손상이 가지 않게 하는 책임이 뒤따른다. 만약 표지를 꽉꽉 눌러 접어서 넘겨가며 손에 침을 발라서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러한 나의 모습이 누군가의 휴대폰에 찍혀서 그날 저녁 '몰지각한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올지도 모른다.

누구나 휴대폰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는 시대의 바람직한 고발·자정 작용이라 해야 할까?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일반인,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지정된 구획을 넘어서 세운 자동차, 식당의 '진상'손님... 별별 상황의 사진을 찍어서 '(극혐) 왜 이러는 걸까요?'라는 비난조의 글이 함께 올라오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바로 그 상황에서 지적을 하여 바로잡거나, 문제가 발생한 커뮤니티 안에서 해결하면 될 것을 이렇게까지 공론화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글을 올리는 동기은 십중팔구 댓글이 달리는 것으로부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일게다. 건전한 고발의 목적이라면 사회적으로 정말 심각한 문제가 될만한 것만 걸러서 올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이에 대한 실천으로서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읽으나 마나 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를 더 이상 들락거리지 않는 것이다.

나도 내 블로그를 통해 이런 사소하고 소심한 복수를 가끔 한 일이 있다. 그러나 블로그와 공개 커뮤니티 사이트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사진 속의 나는 <르 몽드 비판 경제학>책을 구입한 뒤 읽고 있는 것이다. 방금 전에 구입한 나의 소유물이니 펜을 꺼내 밑줄을 치든, 책장을 넘기면서 접거나 살짝 찢든 문제가 없다. 그러나 서점 안에 마련된 자리에서 책을 읽는 사람 대부분은 판매용 책을 보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괜한 오해를 사기 싫어서 스스로를 검열하면서 조심스럽게 책을 읽었다. 아! 차라리 구입 영수증을 책갈피 삼아 끼운 상태로 읽었더라면 좀 더 자유로움을 느끼지 않았을까?

잘 팔리는(혹은 잘 팔리기를 기대하며 밀어주는) 책은 이렇게 평서가에 놓여있다. 가운데에는 <르몽드 비판경제학>은 내가 올려놓은 것으로, 그 아래에는 다른 책이 놓여 있었다. 맨 오른쪽 <금융의 역사>는 아마도 나머지 경제학 비판서와는 다른 분위기의 것으로 여겨진다.

2019년 12월 13일 금요일

[The Clumsy Venovist] 연습, 또 연습

주말을 제외하고 하루에 2-3회 열심히 베노바를 연습하고 있다. 하루에 연주하는 총 시간은 아마 2시간을 조금 넘을 것이다. 케인 리드로 바꾼 이후 소리를 내기가 한결 수월해졌고, 최근 이삼일은 열심히 텅잉('tonguing')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아랫입술을 살짝 물듯이 한 상태로 마우스피스를 문 다음 혀를 놀려서 음을 끊는 것이 왜 이렇게 어색한지 모르겠다. 암부슈어 - 여기에는 혀를 잘 놀리는 것도 포함한다 - 를 완성하는 데에만 몇 년이 걸린다고 하니 조급하게 생각할 것은 없다.

악기 연습을 마치면 바닥에 떨어진 침을 닦아서 뒷정리를 해야 한다. 평소에 내가 침이 좀 많은 편이라 생각했는데 관악기 연습을 하니 약간 과장을 보태어 모든 구멍에서 침이 흘러나옴은 물론이요, 바닥에도 뚝뚝 떨어져서 그 흔적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남는다. 별도로 수건을 갖고 다니면서 바닥에 깔고 연습을 해야 될 것 같다. 베노바는 악기의 길이를 줄이기 위해 관을 구불구불하게 만든 혁신적인 디자인을 갖고 있지만, 왼쪽 엄지손가락으로 막는 뒷편 구멍(아래 사진에서 빨강 화살표로 표시한 곳)이 구부러진 돌출부에 위치해 있어서 이쪽으로 침이 흘러나오기 쉽다. 그러면 높은 음을 불기 위해 이쪽 구멍을 열었을 때 소리가 예쁘게 나오질 않는다.



어차피 캐주얼 관악기를 표방하고 있으므로, 이런 사소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재설계를 할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는다. 베노바로 연주한 정식 음반이 나올 정도로 이를 전문적으로 연주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또 모를까. 요즘에는 음반을 내는 것이나 유튜브에 연주 동영상을 올리는 것이나 감상자 입장에서는 별다른 차이가 없기는 하다. 유튜브에 베노바 연주 동영상은 꽤 많으니 말이다. 이것이 연주자에게 얼마나 수익을 가져다 주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말이다.

아직 피치도 불안하고 음이탈('삑사리')이 자주 일어나 고전하고 있지만 간단한 곡은 연주할 수준이 되었다. 케인 리드의 탄력이 처음보다는 조금 줄어든 것 같다. 기타줄을 갈듯, 관악기도 주기적으로 교체해야 하는 소모품이 있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것이 아니다.

2019년 12월 11일 수요일

yes라는 기괴한 명령어

업무를 위해 VPN을 통해서 종종 외부 - 내가 원래 소속된 기관 - 에 있는 리눅스 서버에 접속을 한다. CLC Genomics Workbench를 쓰기 위한 목적이 대부분이다.

VPN 접속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서 일정 시간 동안 키 입력이 없으면 끊어진다는 것이 문제이다. 정확히 몇 분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략 20-30분 정도인 것으로 여겨진다. Command line interface에서 돌아가는 응용 프로그램이라면 nohup으로 돌려놓고 로그아웃을 해도 되지만, CLC Genomics Workbench와 같은 GUI 프로그램은 그렇게 하기가 참으로 난감하다.

disown 명령어를 쓰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좀 더 나중에 알아보자.

작업을 돌려놓고 기다리는 상태에서 VPN 접속이 끊기는 것을 막기 위하여 일부러 키 입력을 하거나 마우스를 건드리기는 매우 귀찮다. 키 입력을 자동으로 생성하는 방법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지만 어떻게 하는지는 물어보지를 못했다.

구글에 물어보자. CLI에서 저절로 키 입력을 생성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yes라는 명령어가 바로 그것이다. yes라고 치면 화면에 y가 줄줄 출력된다. 마치 y와 엔터를 계속 입력하는 것처럼 말이다. yes why라고 입력하면 이번에는 why가 계속 출력된다. 언제까지? Control+C를 눌러서 멈추기 전까지 영원히!

yes는 계속 'y'를 입력해야 하는 명령어 또는 스크립트의 실행을 위해 쓰인다. 다음과 같이 약간 장식을 하면 1부터 20까지의 숫자가 1초 간격으로 반복하여 화면에 표시된다. $(seq 1 20)을 적당한 문자열로 바꾸어도 된다. 그저 yes라고만 쳐도 되지만, 화면에 한 줄로 비가 내리듯 y가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보면 마치 컴퓨터를 혹사하는 것 같아서 때로는 1초 간격으로 느긋하게 뿌려대고 싶다.

$ yes "$(seq 1 20)" | while read digit; do echo $digit; sleep 1; done
1
2
3
4
5
...

이 트릭은 How to use the yes command on Linux에서 얻었다. 원본 one-liner는 echo $digit라고 써야 할 곳에 echo digit라고 잘못 기재하였다.

2019년 12월 13일 업데이트

터미널 창을 하나 더 열어서 yes 명령으로 아무리 키 입력을 위조(?)해 넣어도 소용이 없었다. 화장실에 좀 오래 다녀온 다음 책상 앞에 돌아와 앉으니 한창 작업을 하던 CLC 화면이 날아가고 접속이 끊긴 상태였기 때문이다. 으으... 이것 때문에 편의점에 달려가서 사 온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며 모니터 앞에 앉아서 지켜보던 날이 몇 날이었는데! VPN 접속 프로그램은 자기 기분대로 접속 지속 여부를 결정하는 모양이다.

2019년 12월 7일 토요일

[The Clumsy Venovist] 새로운 세계를 연 케인 리드

원래 계획으로는 새로 주문한 Ammoon의 B♭ mini saxophone이 도착하면 케인 리드가 어떤 것인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니, 그 이후에 베노바의 리드를 바꾸는 문제를 고민해 보려 했었다. 그러나 케인 리드는 그렇게 비싼 물건도 아니고 인터넷 쇼핑을 통해서 하루만에 손쉽게 입수할 수 있는 것이라서 다소 성급하지만 베노바에 호환되는 케인 리드를 쿠팡에서 주문하고 말았다. 보통 반도린(Vandoren)이라는 회사의 것을 많이 사용하는 것 같은데, 이번의 선택 기준은 오로지 가격이었다. 인터넷을 검색하여 소프라노 색소폰 리드 중에서는 가장 가격이 싼 AW(회사 홈페이지 링크)의 2.5호 제품을 구입한 것이다. 서투른 목수가 연장을 탓한다고, 베노바 연습을 본격적으로 시작한지 일주일 정도밖에 되지 않은 나는 이렇게 리드를 바꾸는 실험에 돌입하였다. Ammoon의 관악기는 12월 7일 비행기에 실려서 생산국인 중국을 막 떠난 상태이다. 이러다가 MiniSax, Saxmonica 및 Xaphoon을 하나씩 다 갖추게 되는 것은 아닐까하는 불길한 예감도 든다. 최종적으로 클라리넷과 '진짜' 색소폰 중 어느 것에 정착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왼쪽이 베노바의 순정 합성수지 리드. 오른쪽이 이번에 구입한 AW의 케인 리드이다.



앗, 세상에 이런 일이! 베노바에 원래 포함된 합성 리드에 비해 훨씬 수월하게 소리가 나는 것이 아닌가? 피치를 맞추기 위해서 입술에 힘을 더 주고 마우스피스 각도를 조절하는 등 이전처럼 애를 쓸 필요도 없었다. 적은 힘으로 소리가 잘 나니 숨 조절을 하면 방음이 잘 안되는 곳에서 평소보다 작은 소리로 연습을 하기에도 무리가 없다! 합성 리드는 아직까지의 내 실력으로는 소리 크기 조절이 잘 안되어서 늘 귀가 쩌렁쩌렁하도록 큰 소리가 났다.

베노바에 합성 리드를 기본으로 제공하는 것은 되도록 되도록 오래 쓰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한 개의 가격을 비교하면 합성 리드가 더 비싸다. 만약 케인 리드가 베노바에 기본 제공되었다면 초보 연주자가 제때에 교체를 하게 될 것 같지 않다. 합성 리드를 사용해서 초보자가 소리를 수월하게 내기는 어렵지만, 오히려 이것으로 일주일 정도 하드 트레이닝을 한 결과 케인 리드를 갈아 끼웠을 때 훨씬 편안하게 연주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리드의 호수가 클수록 더 단단하고 불기가 어렵지만 고음을 부드럽게 표현할 수 있다고 한다. 두께 자체는 차이가 없다는 글도 있고 호수가 크면 더 두껍다는 글도 있다. 외형 치수는 거의 동일하되 리드의 제작에 사용된 케인의 밀도가 다른 것이 맞을 것이다.

'순정' 합성수지 리드를 치워버릴 생각은 없다. 연습을 할 때 항상 휴대하면서 어렵게 불던 당시의 입술의 감을 잃지 않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2019년 12월 5일 목요일

[The Clumsy Venovist] 바른 소리를 내기 위한 '암부슈어'

Embouchure는 관악기를 불기 위해 입술, 얼굴 근육, 혀, 그리고 이(치아)를 쓰는 방법을 말하는 음악 용어이다. 앙부쉬르, 앙부셰, 앙부셔, 앙부쉬어 등 여러 한글 표기를 볼 수 있는데 나는 고집스럽게 '암부슈어'라고 쓰겠다. 구글에서 찾을 수 있는 영어식 발음은 암부슈어에 가깝고, 베노바 소개 책자에도 그렇게 적혀 있기 때문이다.

모든 관악기가 그렇지만 베노바는 암부슈어에 무척 민감한 악기라는 평이 많다. 동일한 암부슈어(내 생각에)를 한 상태에서 낮은 C, 중간 G, 높은 C를 불면서 튜너를 작동시키면 기준음에서 벗아나는 정도가 모두 다르다. 낮은 C를 튜너에 맞추어 불면서 손가락만 바꾸어 G를 불면 반음 정도 낮고, 이어서 높은 C로 바꾸면 B♭로 측정된다. 정말 이해가 가지를 않는다. 게다가 낮은 C와 D는 걸핏하면 '퍼더더덕' 소리가 나기 일쑤이다. 중간 G를 불다가 손가락을 다 덮어서 낮은 C로 바꾸어 보라. 도대체 깨끗한 소리가 나질 않는다. 입술의 조이는 힘과 악기의 각도, 그리고 마우스피스를 무는 깊이를 조절하여 피치를 맞출 수는 있다. 현재는 이것을 연습하고 있는데 음 높이마다 조절하는 정도를 조금씩 달리해야 하니 정말 힘들다.

영어쪽 표현을 보면 베노바를 불다가 'squeak'하거나 'honk'를 하는 일이 많다고들 한다. 다른 종류의 관악기를 불어 본 일이 없으니 클라리넷이나 색소폰을 부는 초보자도 마찬가지의 어려움을 겪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행스러운 것은 인터넷에 워낙 색소폰을 위한 자료가 많아서 여기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 물론 베노바는 완전히 새로운 악기이고, 소프라노 색소폰용 마우스피스를 쓴다는 것 말고는 공통점이 많지 않다. 베노바 설계에 대한 학술 자료는 여기에서 볼 수 있다('Research and development of a casual wind instrument: Venova(TM)').



소프라노 색소폰용 마우스피스를 악기에서 분리하여 불면 D음이 난다고 한다(Mouthpiece exercise - Taming the saxophone 웹사이트). 튜너로 이 소리를 측정해면 내가 제대로 된 암뷰슈어를 갖추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베노바는 베노바대로의 문제가 있으니 위에서 언급했듯이 높은 음으로 갈수록 음이 처지는 것을 보상하기 위하여 암부슈어를 계속 조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소한 내 짧은 경험으로는 그러하다.

반음을 깨끗하게 연주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베노바 안내 책자에도 잘 나와있다.

  • F♯, G♯, B♭ 등의 반음은 날카롭게 연주하기 쉬우며 공명시키기 어렵습니다(hard to resonate).
  • 운지와 공기흐름, 암부슈어 제어를 사용하여 음조를 조절하십시오.
이런 고민을 나만 한 것은 아니다. 외국의 색소폰 관련 포럼에도 이에 관한 질문과 답변이 있다. 

[Sax on the web] ...For those of you who have played a Venova, have you had success playing the low F#, G#, B♭? Any tips? Thanks! 링크

Andy A1S의 답변이 너무 길어서 여기에 다 옮기기는 어렵다. 운지표로 나타내면 좋을 것을 전부 말로 설명해 놓아서 언뜻 이해가 잘 가지는 않지만 글쓴이는 베노바의 운지법 개량을 위해 무척 많은 실험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위에서 소개한 베노바 개발에 관한 학술 자료 중 "3.3.2 Adjustment of cross fingering" 항목을 보면 피치와 연주 편의성 사이의 균형을 위하여 cross fingering(개방한 구멍 위 아래를 막는 것)을 조정('adjust')했다고 한다. 그러나 Andy A1S가 cross fingering을 통해서 소리내기 까다로운 음을 개선하고자 노력한 것은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일주일 정도 베노바를 불면서 겨우 소리나 내는 주제에 너무 연구를 하려 드는 것은 아닐까? 이런 것을 조사할 시간에 차라리 연습을 더 하는 것이 나을지도...

2019년 12월 4일 수요일

[The Clumsy Venovist] 좌절...

튜너를 작동시키고 베노바 연습을 하는 것은 분명히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제 위치에 이르지 못하는 바늘을 보면 속이 상하지만. 지난번 포스팅에서도 밝혔지만 전반적으로 소리가 낮다. 낮은 음에서는 비교적 덜하지만 G를 넘어가면 매우 심해진다. 낮은 음이라고 해도 만만하지는 않다. 깨끗한 소리를 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초보자에게는 쉽지 않은 소프라노 색소폰용 마우스피스 + 합성수지 리드가 빚은 문제일까? 나의 구강 구조와 베노바에 최적화된 암부슈어를 찾는 지난한 과정은 아직 첫 발자국도 떼지 못한 상태와 다름이 없다.  "Venova를 연주해봅시다!" 책자의 88쪽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 초보자가 쉽게 연주할 수 있도록 부드러운 리드(정말?)가 기본으로 제공되지만 높은 피치를 표현하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악기에 충분한 공기를 불어넣을 수 있게 되면 더욱 단단한 리드로 바꾸어서 높은 피치를 부드럽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 단단한 리드는 다소 날카로운 피치로 연주됩니다.
소프라노 색소폰으로 첫 관악기를 입문하는 사람과 마찬가지의 어려움을 내가 겪고 있는 것인지? 이런 문제 때문에 야마하에서도 2019년 알토 베노바 YVS-120을 출시하게 된 것은 아닐까? 레슨 동영상은 YVS-100이 8개, YVS-120이 12개이다. 혹시 YVS-100을 단종시키려는 것은 아닐까? 겨우 일주일 정도 연습을 한 상태에서 어떤 결론을 내린다는 것은 너무 이르다. 아마존에 올라온 베노바의 리뷰를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베노바에 대한 사용기를 가장 많이 읽을 수 있었던 곳은 바로 이 아마존의 리뷰였다. 리드 악기에 숙련된 사람도 정확한 피치의 좋은 소리를 내기 어렵다는 의견이 상당히 많았다. 베노바의 가장 큰 의미는 새롭게 만들어진 악기라는 점이다. 리드 악기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 편하게 독학하여 들을만한 소리를 내는 악기는 절대 아닌듯하다.
  • I've played clarinets with reeds more than 50 years. This thing is next to impossible to play.
  • When we got this, my wife who has been a music teacher for 30 years, has a master's degree, and is the principal oboist of a symphony could not produce consistent tones with this.
  • So far terrible. Ive played sax for 10 years and all I can do is honk on this instrument.
알토 색소폰용 마우스피스를 쓰는 플라스틱 관악기는 좀 다를까? 알리익스프레스의 블랙 프라이데이 세일 끝자락에 Ammoon(링크)의 악기를 주문하고 말았다. 리드가 열 개나 들어있는데 저 가격이라면 별로 고민할 필요도 없다. 두 악기를 비교해 보면 해답이 나올 것이다.


아마존의 리뷰를 보면 불기 어렵다는 의견은 보이지 않는다. 색소폰 리드의 크기 차이는 다음 사진과 같으므로 Ammoon 악기에 딸려온 알토 색소폰용 리드를 대충 자르고 갈아서 베노바 마우스피스에 끼워보면 뭔가 가능성이 보이지 않을까?

출처: reedstore.com

2019년 12월 2일 월요일

[The Clumsy Venovist] 왜 이렇게 음이 낮을까?

비올라를 연주하는 사람을 비올리스트라고 하니까 베노바를 연주하는 사람은 베노비스트(Venovist)라고 부르면 될 것이다. 구글을 아무리 뒤져도 Venovist라는 낱말은 보이지 않으니 내가 처음 만든 것이라고 선언한다!

어제부터는 휴대폰으로 튜너 앱을 켜 놓고 제대로 피치가 맞는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G음, 그러니까 왼손으로 모든 구멍을 막고 마우스피스로 숨을 불어 넣으면 튜너에서는 F# 정도를 가리킨다. 아랫입술로 리드를 단단하게 받치라는 설명을 따라서 가까스로 G에 근접하게 되지만 입술도 힘이 들고 소리도 불안정하다. 나는 치열이 엉망이라서 밥을 먹다가 아랫입술을 잘 씹는 편이라 상처가 자주 난다. 그런 상태에서 아랫입술로 리드와 마우스피스를 밀어 올리려니 입술이 아프다. 약간 웃는 듯한 입술 모양을 하고 마우스피스를 단단히 감싸 조이되 볼을 불룩하게 하지는 말고... 어렵다!

리드를 아랫입술로 단단히 죄면 분명히 리드가 더 높은 소리로 떠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다 너무 신경을 쓰면 윗니가 마우스피스를 누르는 것을 잊게 된다. 손으로 악기를 내리 누르려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내 위 앞니도 상태는 별로 좋지 않아서 왼쪽이 더 앞으로 튀어나온 상태이다. 그러니 오른쪽 위 앞니만 마우스피스를 무는 꼴이 되어서 이쪽에만 흠집이 많다.

사람마다 신체 조건이 다 다르니 연습을 통해서 최적화를 이뤄야만 한다. 내가 아무리 치열이 좋지 않다 해도 캐쥬얼 관악기인 베노바를 포기해야 할 정도로 상태가 나쁜 것은 아니다.

베노바 자체가 새로 개발된 악기이다보니 인터넷에 널린 색소폰 교습 자료를 보게 된다. 소프라노 색소폰은 마우스피스와 리드가 작아서 정확한 음정을 잡기가 어려우니 색소폰을 처음 배우는 사람은 알토나 테너 색소폰으로 시작하란다. 베노바는 소프라노 색소폰용 마우스피스를 쓴다. 게다가 단단한 합성수지 리드를 채용하고 있다. 리드 관악기에 입문하는 사람이 쉽게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이다.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다. 베노바는 독학용 악기다! 개발 취지가 그러하니 어떻게든 불어 보는 것이다. 베노바를 잘 불기 위하여 클라리넷이나 색소폰을 미리 배울 필요는 전혀 없는 것이다.

다음 이미지는 내가 사용하는 Soundcorset 튜너 & 메트로놈(링크)의 화면이다.


기준음과 측정음의 차이를 센트 단위로 보이는 것이 생소해서 자료를 찾아보았다. 위키피디아의 설명(링크)에 따르면, 평균율(equal temperament)에서 반음 간격에 해당하는 진동수 차이를 100 센트로 나타낸다고 한다. 따라서 12 반음 위(1 옥타브)는 1200 센트에 해당한다. 저 튜너 화면에 '솔'이 표시되게 하려고 그렇게 애를 쓰는데도 어렵다. 

색소폰에 관한 영문 사이트를 검색하면 intonation이라는 용어도 많이 보인다. 이건 중학교에 입학하여 영어를 배울때 문장 내 발음에서 높낮이(단어 안에서의 강세는 accent)라는 뜻으로 배웠고 '억양'이라고도 불렀다. 악기 연주에서의 인토네이션은 무엇일까? 위키피디아의 설명은 이러하다.
In musicintonation is the pitch accuracy of a musician or musical instrument.
아, 그렇구나! 그러나 이것은 인토네이션이라는 단어 쓰임새의 어느 한가지 측면만 이야기하는 것이다. 평균율(equal temperament)와 순정률(just intonation or pure intonation)에서 말하는 인토네이션은 좀 더 길고 복잡한 음악의 역사를 품고 있으니 별도로 시간을 들여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피치(음높이)와 음정은 다르다. 음정은 정확하게 풀이하자면 두 음의 높이 차이, 즉 피치의 차이를 말한다. G를 연주해야 하는데 약간 틀어진 소리를 내고 있을 때, '음정이 정확하지 않다'고 말한다면 이는 틀린 표현이다.

내 음악 이론은 기타와 피아노를 혼자 익히던 10대~20대 이후로 정체 상태였다가 '캐쥬얼 관악기'인 베노바를 만나면서 다시 발전할 것만 같다.

2019년 12월 5일 업데이트

튜너 앱을 바꾸었다. 유료 앱으로서 이름은 TonalEnergy(TE) tuner and metronome(링크). 오차 이내의 음을 계속 불면 초록색 스마일이 나타나 점점 커지면서 입을 벌린다. 색소폰 입문자에게 중요한 '롱 톤' 연습을 하기에 아주 좋다. 천편일률적으로 롱톤을 고집하는 교습 방법을 비판하는 사람도 있지만, 일단은 중요한 연습 방법이라 생각한다.



2019년 12월 1일 일요일

2019년 12월에 만난 네이버의 인공지능 스피커 WAVE(2017년 출시)

공동주택에서 생활을 하다보면 뜻하지 않게 재미난 물건들을 입수하게 된다. 단지 블루투스 스피커일 것이라고 생각한 시커먼 원뿔대가 전원을 연결하고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 보니 네이버에서 2017년에 첫 출시한 WAVE라는 '스마트 스피커'였다(링크). 매뉴얼은 이곳에 있다(PDF 파일). 클로바(Clova)인가, 혹은 웨이브인가? 네이버 클로바는 네이버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플랫폼으로 휴대폰에 깔리는 앱(구글 플레이 링크) 이름도 같다.

스마트폰 카메라의 왜곡이 심해서 마치 원기둥처럼 보이지만 실제 모습은 아래의 사진에서 더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형태의 입체를 수학에서는 원뿔대(truncated cone)이라 부른다.

진공관 앰프와 음성인식 인공지능 스피커가 묘한 대조를 이룬다.

전원을 연결한 다음 휴대폰에 네이버 클로바 앱을 설치하였다. 블루투스로 연결을 하면 WAVE-B9A라는 기기명이 뜬다.




기기의 바닥면에 있는 정보에 따르면 모델명은 NL-S500이고 2017년에 출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음성 인식을 위한 약간의 테스트를 거친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최신 인기곡을 재생하는 것.



유료 스트리밍 서비스를 가입하지 않으면 1분씩의 미리듣기만 가능하다. 유튜브 프리미엄도 돈이 아까워서 몇 달 듣다가 해지하였는데, WAVE를 갖고 놀기 위하여 다시 유료 가입을 해야 하는가? 그 정도는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여 네이버의 VIBE에 일단 가입을 하였다. 첫달은 무료, 2-5달까지는 매달 천원, 그 이후로는 월 7,500원씩의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클로바, 지금 몇 시지?"
"클로바, 뉴스 읽어 줘."
"클로바, 최신곡 틀어 줘."
"클로바, 지금 나오는 노래 제목이 뭐지?"

WAVE는 2년 전 네이버 뮤직 1년 구독자에게 무료로 주는 제품으로 첫선을 보이게 되었다. 당시에는 이러한 기능이 무척 신기했었을 것이고, 요즘은 초고속 인터넷 회사에서 셋톱박스 등과 같이 끼워주는 물건으로 꽤나 흔해진 것 같다. 예를 들어 KT의 '기가지니'같은 것. 가전제품 콘트롤 등의 기능까지 포함하는 것도 많아졌다. 그 사이에 제품 또는 서비스의 이름은 조금씩 바뀌거나 대체되어 나갔다. 예를 들어 네이버 뮤직은 VIBE로. 2019년의 마지막 달에 접어든 지금, 이러한 음성인식 비서 시스템(아니면 그저 간단히 음성인식 스마트 스피커 정도라고 하자)이 소비자에게 기대할만한 인기를 끌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구글을 검색해 보면 2019년에는 이 주제로 국내 사이트에 새로 올라온 글이 그다지 많지 않다. 아직 본 궤도에 오르지 못한 것인지, 혹은 시장에서 외면받은 기기인지... 다음과 같은 기사가 눈에 뜨이기는 하지만. 아마도 내가 검색어를 잘 고르지 못한 모양이다.


네이버 클로바의 현재 제품군(링크).
AI 이름에 새겨진 공식(세계일보 2017년 4월 10일 링크). 네이버의 제품이 출시되기 직전이다. 

출시 이후 꽤 시간이 지난 물건이라 펌웨어 업데이트가 필요할 것 같았다. 다음의 안내에 따라서 업데이트를 할까 생각했었는데 앱을 통해서 현재 펌웨어 버전을 찾아보니 2.1925.21으로 이미 최신 버전에 해당한다.


블루투스 스피커로서(유튜브를 연결해 들어 보았음), 그리고 VIBE를 재생하는 기기로는 꽤 괜찮다. 올레TV 셋톱박스를 음성으로 제어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아직 그 방법을 찾지는 못했다.

2019년 12월 2일 업데이트

올레 TV 셋톱박스의 제어는 되는데, 인켈 저가 제품인 TV는 안된다. 주말이라 그런지 뉴스 업데이트 주기가 늦다. 외국 가수나 음악 제목을 요청할 경우 원어에 가깝게 발음하는 것과 한국식으로 발음하는 것, 어느 것이 더 나은지를 잘 모르겠다. 몇 시간 동안 경험한 것으로는 한국식으로 발음하는 것을 더 잘 알아듣는 것 같다. IPTV를 제대로 제어하려면 서비스 공급자가 제공하는 음성인식 스피커를 써야 한다는 것이 불편한 점이라 여겨진다. 네이버의 클로바 제품군은 LG U+의 것과 제휴를 맺은 것으로 알고 있다.

베노바, 제대로 소리내기 참 어렵다

이삼일 정도 조석으로 삑삑거리면서 일단 '헛발질'을 하지 않고 소리를 내는 수준에는 이르렀다. 운지를 하면서 가락을 만드는 것은 나중 문제이고. 약간 큰 풍선을 불듯이 배에 힘을 주면서 불어야 된다는 것도 터득하는 중이다.

내가 제대로 된 소리를 내는지 궁금하여 야마하 홈페이지의 레슨 동영상과 튜너 앱을 틀어놓고 비교를 해 보았다. 나는 분명히 G음을 불고 있는데 반음 정도가 낮다. 마우스피스가 좀 덜 끼워졌나? 마우스피스를 조금 빼면 소리가 약간 낮아지므로 이것을 이용하여 피치를 조정한다는 설명을 매뉴얼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아니다.

매뉴얼에서 <문제 해결> 항목을 찾아보았다.

  • 상태: 전체적인 피치가 낮습니다.*
  • 원인: 입이 너무 느슨하거나 열려 있습니다(아랫입술이 리드를 잘 받치지 못합니다).
  • 해결 방법: 입술로 리드를 세게 감싸서 아랫입술로 리드를 단단히 받치십시오('끽' 소리가 날 정도 조이면 안 됩니다).
* 암부슈어가 나빠서 피치가 잘 표현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음을 참조하여 피치를 개선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아보십시오.



만약 내가 리코더를 불고 있다면 입술에 대하여 책임을 물을 일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리드를 이용한 관악기를 불 때에는 입술의 역할이 중요하다. 마우스피스를 무는 입술에 조금 더 힘을 준다는 느낌으로 교정해 나가야 되겠다.

2019년 12월 1일 업데이트

글을 작성해 놓고 '게시'를 클릭하지 않은 상태로 노트북 컴퓨터의 화면을 닫고 말았다. 본의 아니게 12월 1일에 작성한 글이 되었고, 11월에 올린 글 수는 목표치인 12개에 하나 모자란 상태가  되었다.

2019년 12월 5일 업데이트

Pianosnake의 블로그에서 베노바 운지표를 친절하게 PDF 파일(드롭박스 링크)로 떠서 올려놓아 주었다. 
The Venova is the latest noise maker from Yamaha... It's loud, it's pitchy, it's fun.
Venova fingering chart(링크). 여기에서는 독일식 운지법만 보였다.
여기에서 'pitchy'란 어떤 뜻일까? 악기에 대해서는 별로 좋은 의미로 쓰이지 않는 단어이다. 나도 베노바가 pitchy하다는 데에는 매우 크게 동감한다.
Pitchy is used when someone is singing a song but they are out of tune, often sounding sharp or flat. 링크

2019년 11월 29일 금요일

MetaWRAP - a flexible pipeline for genome-resolved metagenomic data analysis

Shotgun sequencing을 이용한 메타게놈 연구가 이렇게까지 발전할 줄은 몰랐다. 내가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15년쯤 충북대학교 미생물학과의 이성근 교수의 제안을 통해서였다. 초창기 연구자료를 교환하고 약간 들여다본 것 이상으로는 진도가 나가질 않아서 논문 형태로 업적을 만들어내거나 하지는 못했었다. 지금 검색을 해 보니 "Genomic and metatranscriptomic analyses of carbon remineralization in an Antarctic polynya"라는 논문으로 Microbiome(링크)에 출간이 되었다. 저자 중에 낯익은 사람이 많아서 반가운 느낌이다.

당시에 참고했던 논문은 이것이었다. 그때로서는 아마 가장 앞선 방법이었을 것이다.

Genome sequences of rare, uncultured bacteria obtained by differential coverage binning of multiple metagenomes. 
Albertsen M Hugenholtz P Skarshewski A Nielsen K Tyson G Nielsen P
Nature Biotechnology 2013 vol: 31 (6) pp: 533-538 PubMed

활성슬러지 생물반응기로부터 DNA 추출 조건을 약간 다르게 하여(hot phenol을 쓴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얻은 샘플에 대한 deep sequencing을 한다는 것이 이 논문에서 사용한 핵심 기법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Binning 과정부터는 슬슬 수작업 비슷한 것이 들어가기 시작하여 끈기있게 그 과정을 끝까지 따라서 해 보지는 못했었다.

그 이후로 실험 설계부터 제대로 된 shotgun metagenomics를 할 기회는 없었다. Microcystis처럼 heterotrophic bacteria와 필연적으로 공유를 하는 미생물의 유전체를 해독하거나, 특별한 샘플을 다루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된 microorganism contamination의 정체를 깊은 수준까지 밝혀보기 위하여 shotgun metagenomics적 방법을 조금 쓰게 되었다.

요즘은 인체 마이크로바이옴의 전성시대라는 것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새롭게 실험을 디자인하여 샘플을 모으거나, 혹은 NIH Human Microbiome Project 또는 유럽의 MetaHIT 등에서 공개된 shotgun metagenome sequencing 결과를 가져다가 공들여 조립하여 MAG(metagenome-assembled genomes, 메타게놈 조립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라서 실제 배양 가능한 균주가 분리되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를 만들었다는 논문이 종종 눈에 뜨이고는 한다. 그중에서 가장 최근의 연구 성과는 아마 다음의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는 bioRxiv에만 올라 있지만 조만간 major journal에서 출간될 것으로 믿는다. 화려한 저자 목록을 보라. 다 이 분야에서 대단한 지명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밑줄 친 저자는 최소한 내가 논문이나 소프트웨어를 통해 알고 있는 사람들)? 더군다나 Philip Hugenholtz는 위에 언급한 논문에서도 저자로 참여하였다.

A unified sequence catalogue of over 280,000 genomes obtained from the human gut microbiome.
Alexandre Almeida, Stephen Nayfach, Miguel Boland, Francesco Strozzi, Martin Beracochea, Zhou Jason Shi, Katherine S. Pollard, Donovan H. Parks, Philip Hugenholtz,  Nicola Segata,  Nikos C. Kyrpides, Robert D. Finn
doi: https://doi.org/10.1101/762682

이 논문의 저자 Nayfach와 Kyrpides는 국외 학회에 가서 본 일이 있다. "만나본 적이 있었다'라고 쓰려면 최소한 인사라도 하고 악수라도 해 봤어야 한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외국인 과학자는 몇 명 되지 않는다.

인체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에서 유래한 유전자 카탈로그는 Integrated Gene Catalog(IGC, 논문 링크)라는 것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자원은 유전자 중심이라는 것이 한계이다. 이번 bioRxiv 논문에서는 유전체와 단백질 서열을 총망라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Unified Human Gastrointestinal Genome (UHGG) collection에서는 무려 286,997개의 유전체를 확보하였으며 여기에서 유래한 Unified Human Gastrointestinal Protein (UHGP) catalogue에서는 6억 2500만개의 단백질을 포함한다. 이는 IGC가 수록한 단백질의 두 배가 넘는 분량이다.

오늘 올리는 글의 제목인 metaWRAP(PubMedGitHub)은 MAG를 만들 때 필수적인 프로그램들의 실행을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wrapper script이다. Robert D. Finn의 2019년 Nature 논문 "A new genomic blueprint of the human gut microbiota(링크)"의 일부분을 잠깐 살펴보면 metaWRAP이 어디에 쓰이는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있다.


MetaWRAP은 Microbiome이라는 저널에 실렸었다. 이 저널에는 좋은 방법론이 종종 소개되고 있어서 참조하기에 아주 좋다. 특히 Unicycler를 사용하여 ONT nanopore long read와 Illumina를 잘 조합한 미생물 유전체 해독 방법 논문을 최근에 흥미롭게 읽었었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이에 관해서 포스팅을 하고 싶다.

오늘 소개한 첫번째 논문은 무려 6년 전에 나온 것이다. 당시에는 bioconda라는 것이 나오기도 전이다. 이에 비하면 metaWRAP은 얼마나 편리한가? 프로그램의 설치와 관리 및 활용법 문서가 인터넷을 통해 체계적으로 보급되고 있어서 이제는 몰라서 못한다는 말은 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이제 해 볼 만하다"

2019년 11월 25일 월요일

드디어 야마하 베노바(Yamaha Venova YVS-100)을 구입하다

관심이 생기기 시작하여 웹을 통한 조사를 거치고, 드디어 악기 구입까지 너무 짧은 시간 안에 모든 일이 끝난 것 같다. 사실 이날(2019년 11월 24일), 그것도 베노바를 꼭 사야겠다고 다짐은 한 것은 아니었는데 마침 일요일이라 낙원상가는 문을 열지 않았고, 종로2가 사거리 금강제화 바로 곁의 '종로야마하'는 문을 열었기에 여기에서 구입을 하였다. 지금까지 이곳을 수백번도 더 지나쳤지만 직접 들어가서 악기 또는 관련 물품을 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리드(reed) 관악기를 접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어쨌든 소리는 난다. 전혀 아름답지 않은 소리, 아니 소음 수준이다. 주변에 소음 피해를 주지 않을만한 곳을 찾아서 하루 한두시간 일주일 정도는 애를 써야 아주 조금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디서 연습을 할 것인가? 오피스텔에서는 불가능이다.

관악기는 왜 악보대로 연주하면 C장조가 되질 않는지, 높은음자리표 둘째칸의 '라(A)'는 연주하는 곡의 시대나 단체에 따라서 440Hz를 쓰기도 하고 442 Hz를 쓴다든지(이것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우리가 흔히 초등학교의 음악교육에서 피리라고 부르던 소프라노 리코더의 독일식 운지법은 바로크식 운지법과 무엇이 다른지.. 평소에는 전혀 모르던 것들을 이번에 많이 알게 되었다.

음정(pitch)에 대해서는 다음의 위키피디아 표제어를 참고하라.

하지만 악기 연주는 책이나 구글 검색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유튜브에 초보자를 위한 동영상이 무척이나 많은 것은 다행이지만, 연습을 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베노바는 소프라노 색소폰용 마우스피스(야마하 4C)를 그대로 쓰면 된다고 한다. 리드는 합성수지제라서 오래 사용할 수 있다고 하였다. 몇 번 불지 않았는데 흥건하게 액체가 고이는 것을 보니 연습 후에는 반드시 청소를 해 두어야 되겠다. 음식을 먹은 직후 악기를 입에 무는 것 역시 악기에 대한 실례가 아닐까 한다.

암뷰슈어(embouchure 또는 lipping)은 관악기를 연주할 때 입술을 사용하는 방법이라 한다. 모든 악기가 그렇지만 사용자가 몸으로 미묘하게 콘트롤할 부분이 관악기에서는 더 많은 것 같다. 내 입 구조에 잘 맞는, 그러나 표준적인 방법을 잘 따르는 암부슈어를 찾아 나가야 한다.
색소폰 암부슈어를 2주 이내에 잡으라고 말하는 이유는 평생 젓가락질은 배우는 순간에서 이미 결정이 난다는 생각에서 말하고는 한다. 링크

2019년 11월 20일 수요일

오늘부터 Amazon Web Service(AWS)를 이용하기 시작하다

시작이 많이 늦었다. 가장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도 있지만, 그건 뒤쳐진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 쓰는 수사(修辭)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출처 링크

물리적인 서버를 더 이상 두지 않는 것, 이것이 내가 꿈꾸는 가까운 미래이다. 업무용 PC까지 완전히 없앨 수는 없겠지만 복잡한 계산을 수행하거나 데이터 파일을 안정적으로 보관·공유하는 데에는 클라우드 서비스 이상 가는 것이 없을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서비스만 이용할 수 있는 계정으로 가입하여 프리 티어 내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테스트하기 시작하였다.

자습서를 이용하여 EC2 서비스에서 공개된 AMI(Amazon Machine Image)의 인스턴스를 생성하고 명령행에서 SSH 접속을 해 보았다. 다음으로는 DocMind Analytics에서 준비한 AMI를 이용하는 것을 따라서 해 보는 중이다. 후자에서는 원격 데스크톱 연결을 해야 되는데 아직 개념이 부족하여 어려움이 많다. 돌이켜보니 보니 바로 옆 책상 위에 설치된 리눅스 서버를 연결하면서 원격 데스크톱 접속을 할 생각을 전혀 하질 않았었다. Xmanager로 서버와 연결하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었는데, 사실 PC와 서버 간에 파일 전송이 필요한 업무를 하는 것이 아니라면 원격 데스크톱 연결이 더욱 탁월한 작업 환경 아니겠는가?

DocMind Analytics의 AMI. 원격 데스크톱 연결을 위해 3389번 포트를 추가로 열어야 한다. 이는 '6. 보안 그룹 구성'에서 추가하면 된다.

구독 경제(subscription economy)의 시대가 되었다. 필요한 자원을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만 빌려서 사용하고 그에 상응하는 비용만 지불하면 되는 것이다. 관리에 따르는 책임을 질 필요가 없어지고 말았다. 이제는 컴퓨터가 마치 '배민 라이더스'와 같은 존재처럼 여겨진다. 이것이 미래의 올바른 방향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AWS 관리 콘솔에 로그인하여 무엇을 클릭해야 할지 아직은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모니터를 바라보는 내 모습이 어쩌면 패스트푸드 매장의 자동주문기 앞에서 긴장을 하고 서 있는 중년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세상이 변해가니 살아남으려면 배우고 적응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늘 쉽지는 않다.

mg-GlobOS의 제작도 전혀 계획하지 않고 어찌하다보니 여기까지 흘러오게 된 일인데, 그 과정에서 내가 얼마나 큰 즐거움과 보람을 느꼈던가? AWS 입문도 마찬가지의 경로를 걷게 될 것이라 믿는다.

플라스틱 관악기의 세계

관악기를 하나 배워보겠다고 몇년을 벼르던 아들이 결국 없는 용돈을 모아서 동네 악기점에서 오랫동안 진열만 되어있던 트럼펫을 하나 구입하였다고 알려왔다. 연습을 할 환경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못하였는데 어떻게 소리를 내려는지 걱정이 된다. 며칠 연습을 하더니 이제 음계 소리가 나온다면 소리를 녹음하여 보내주기도 했다.


아들이 관악기류를 조사하면서 보내준 정보에 의하면 일반인에게는 아직 잘 알려져있지 않은 재미난 악기가 많았다. 관악기를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서 취미로 악기를 배우려는 초심자들이 부담없이 입문하게 만든 것들이다. 우선 전부터 알고 있었던 야마하의 베노바(Venova)라는 것이 있다. 모양은 리코더에 가까운데 색소폰과 클라리넷의 중간쯤 되는 소리를 재현하고 있다. 야마하에서는 이를 캐주얼 관악기라고 부른다. 좀 더 조사를 하니 이런 부류의 악기 중에서 베노바가 가장 늦게 나온 편임을 알게 되었다. 초기 모델(YVS-100)과 알토 베노바(YVS-120) 두 종류가 있다. 꽤 상세하게 기록한 YVS-100의 구입 및 사용기가 여기에 있다.

출처: 야마하 홈페이지

하지만 몇년 전에 아들과 낙원상가를 둘러보다가 접했던 클라리넷 모양의 하얀 플라스틱 악기는 베노바가 아니었다. 한동안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서 도무지 인터넷에서 검색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아들이 알려준 Nuvo Instruments라는 회사의 제품 목록에서 드디어 내가 궁금해하고 있었던 악기를 찾아냈다. 그것은 바로 클라리네오(Clarinéo)였다.

출처: Nuvo Instrument 홈페이지
Nuvo에서 개발한 제품을 보니 정말 기가 막히는 것들이 많았다. jFute, jSax, jHorn 등 웬만한 관악기(특히 금관악기)가 다 있는 것이 아닌가. 'j'는 주니어를 뜻하는 것으로 안다. 원래 어린이에게 쉽게 관악기를 익히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성인이 입문용으로 사용하기에도 손색이 없다.

이런 악기로만 구성된 일본의 오케스트라가 있으니 그 이름하여 Akiba Plastic Orchestra! 아마도 플라스틱 악기를 제조하는 업계의 지원을 받는 것 같다. 유튜브에 올라온 라벨의 볼레로를 들어보자. 튜닝 상태는 약간 불만인데(조정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멋진 시도 아닌가? 트럼펫, 트롬본에 이러 튜바까지 플라스틱으로 만들었다니 정말 놀랍니다.


이상에서 소개한 악기는 베노바를 제외하면 기존의 악기를 플라스틱으로 재현한 것이다. 이에 반하여 사푼(Xaphoon, 위키피디아)이라는 악기는 하와이 마우이섬의 원주민 연주자 Brian Wittman이 대나무를 이용하여 1972년에 직접 개발한 것이다. 베노바와 마찬가지로 2 옥타브의 음역대를 갖추었다.

출처 링크

대나무를 가공하여 일일이 만들다보니 공급이 달려서 이를 플라스틱으로 대체한 것은 포켓 색스(pocket sax)라고 한다. Xaphoon store에서 다양한 제품을 만나보자.

뉴질랜드에서 만들어지는 Saxmonica는 킥스타터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서 제품화가 이루어졌다. 현재는 두 개의 관을 추가한 Generation 2가 발매되고 있다.

출처: 아마존
Saxmonica는 반주용 트랙 연주기 앱을 제공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미국 플로리다에서 만들어내는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의 MiniSax라는 것도 있다. 이 글의 제목인 '플라스틱 관악기의 세계'와는 어울리지 않으나 쉽게 배워서 가볍게 들고 다니며 연주하기 위해 만들어진 악기라는 면에서는 일치한다. 공식적인 음역은 1 옥타브에 불과하지만 특별한 테크닉을 써서 높은 음을 낼 수 있다고 한다. 이는 다른 악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제작자가 만든 동영상을 여기에서 만날 수 있다.

출처 링크

포켓색스는 좁은 의미로는 사푼을 플라스틱으로 재현한 것이지만 휴대용 색소폰이라는 일반적인 의미로도 쓰인다. 알리익스프레스에서 pocket/mini/portable/little sax(or saxophone)을 검색하면 위에서 소개한 것과 거의 같거나(사푼 계열) 또는 다른 플라스틱 관악기가 꽤 많이 나온다. 그중에서 Ammoon이란 악기 회사의 것은 10 best pocket saxophone reviews 2019 - best xaphoon에서도 언급되었다.

Ammoon B♭ mini saxophone. 출처 링크
마지막으로 소개할 것은 미니 클라리넷 또는 클라리노(clarineau)라 불리는 것이다. 앞서 소개한 모든 악기들의 원형이자 클라리넷의 원형인 샬뤼모(chalumeau, 위키피디아)에서 발전된 것이라 한다. 독일식 리코더(그렇다, 초등학교에서 누구나 배웠던)의 운지법을 따르기 때문에 입문용으로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바로크식 운지법을 따르는 클라리노도 있다. 클라리노는 독일 Kunath의 것이 원조인 것으로 보이고 국내 브랜드인 YAN(현재는 중국 OEM 생산, Yan Music 블로그)의 'clarino'가 있다. 서초동에 있는 유럽악기 웹사이트에서 사푼/미니오보에/께나 카테고리를 보면 관련 제품이 많이 보인다. 유럽악기는 국내에 Kunath의 제품을 독점 공급하고 있으며 YAN 제품은 악기나라 등에서 공급한다.

Kunath 웹사이트의 리드 악기 소개. chalumeau와 clarineau는 별개의 악기이다.


출처: 악기나라
바로크 및 독일식 운지법의 차이(리코더)는 여기를 참고하라. 대단히 중요한 정보가 담겨 있으니 정독을 권한다.

원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색을 내는 관악기는 호른(혼)이다. 그러나 내가 이를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이 오보에와 더불어 가장 연주하기 어려운 관악기라고 하지 않던가. 현실적으로 배울 수 있는 악기 중에서는 클라리넷에 관심이 많다. 사촌 동생이 클라리넷 연주자라서 혹시 독학을 하다가 막히면 도움을 좀 받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도 있다. 색소폰은 중년 남성들이 너무들 많이 달려들어서 왠지 호감이 가지 않는다.

내가 만져본 관악기는 초등학교 교재용 악기의 대명사로 잘못 인식된 소프라노 리코더와 단소가 전부이다. 단소는 소리를 제대로 내 본 적이 없다. 리드의 구조와 소리가 나는 원리, 입술의 떨림으로 소리가 나는 트럼펫 계열과의 차이, 이조악기라는 묘한 특성 등등 새로 공부할 것이 무척 많다.

문제는 연습을 할 장소가 마땅치 않다는 것. 이러한 점에서는 아들녀석도 마찬가지이다. 몇 대의 일렉기타와 신세사이저가 내 관심을 기다리면서 집과 사무실에서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는데, 이 와중에 관악기라니... 좀 더 고민을 해 보자.

2019년 11월 16일 토요일

mg-GlobOS 0.11(1911)의 탄생

이번 월요일에 있었던 미생물 유전체 해독 및 분석 교육에서 사전에 준비했던 자료를 수업 시간에 전부 소화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하여 당시에 사용한 환경을 리눅스 가상 머신으로 만들어 그 OVA 파일을 배포하기로 결심을 하였다. 이름은 mg-GlobOS라고 지었다. mg는 microbial genome, Globe는 내가 쓰는 도메인인 GenoGlobe(.com 및 .kr)에서 딴 것이며, OS는 CentOS처럼 Operating System을 의미한다. 첫 공개판의 버전은 0.11 (1911)이다.

공식 웹사이트는 다음의 위치로 정했다.

http://genoglobe.kr/kribb/mg-globos

OVA 파일 및 실습용 데이터는 나의 구글 드라이브에 올려서 전체 공개를 해 놓았다. 일루미나 플랫폼으로 읽은 미생물 유전체의 데이터를 평가, 조립, 매핑, 비교 분석 및 pan-genome analysis 등을 하기 위한 프로그램들을 bioconda 및 기타 방법으로 설치하였고, 전체 과정을 재현할 수 있는 스크립트와 샘플 데이터를 준비해 두었다.

어쩌면 TORMES 파이프라인(PubMed 링크)과 같은 것을 잘 익혀서 교육 및 실무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업 스타일에 따라서 가져다 붙여야 하는 요소 프로그램이 전부 다르므로 한 가지 파이프라인이 꾸준하게 살아남는 일은 드물다. 오히려 특정 기능을 담당하는 'killer app'은 계속 살아남지만 말이다.

mg-GlobOS를 유지하고 개선하는 일 자체가 나에게는 보람있는 일이 될 것이라 믿는다.

아나콘다를 설치해 놓은 다음 필요한 conda package를 하나씩 설치하다보면 dependency 사이에 inconsistency가 있다면서 거의 모든 패키지를 홀라당 뒤집어 엎는 일이 생긴다. mg-GlobOS에서도 첫번째 패키지인 khmer를 설치한 뒤 jellyfish를 설치할 때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있음을 느꼈고, 나중에 다른 패키지를 설치할 때 전체를 뒤집어 엎는 듯한 메시지를 만났었다. 비록 치명적인 에러가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늘 그 원인이 궁금했었다. GitHub의 conda 이슈 목록에 올라온 다음의 글에서 해결 방안이 보이는 듯하다.

After fresh install of 2019.03, second run of conda upgrade --all removes nearly all packages. #8940 (o12joyns의 7월 23일 코멘트를 참고할 것)

Anaconda 설치 직후 conda upgrade --all을 두 차례 실시하면 된다. 쉽게 말해서 설치에 사용한 anaconda distro와 현재의 차이점을 전부 없애주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일부 패키지가 custom 버전으로 되돌아갔다가 다시 원상복구(혹은 업데이트?)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현실은 그러하다.

갑자기 upgrade와 update의 차이점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2019년 11월 13일 수요일

TORMES 힘겹게 설치하기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 각 지역에 설립된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올해로 투자 및 운영계획이 종료되면서 각 대기업들은 앞으로의 운영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동아일보 2019년 11월 11일 기사 "손떼자" vs "더 투자"... 대기업들 '창조경제혁신센터' 고심.

재직자 재교육 단기과정 유전체 데이터 분석교육(제2차)

지난 월요일(11월 11일),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미생물 유전체 분석 이론 강의 및 실습을 마쳤다. 실습 자료를 너무 많이 준비해서 뒷부분의 1/3 정도는 그냥 말로 때운 것 같아 수강생들에게 죄송스런 마음이 앞선다. 이를 보충하는 의미에서 실습을 위해 사용한 스크립트는 전부 다음의 웹문서로 공개를 하였다. 앞으로도 이 문서는 계속 설명을 달고 업데이트를 해 나갈 예정이다.

http://bit.ly/2WNG5XZ

무엇보다 걱정이 앞서는 것은 분석용 프로그램이 잘 설치된 환경이 아니라면 이 스크립트가 별로 소용이 없다는 점이다. bioconda를 이용하여 프로그램을 설치해 나가는 과정을 별도의 위키 문서로 정리해 놓았는데, 과연 이를 재현하는데 어려움이 없을지 모르겠다. 관리자 권한이 없어도 필요한 프로그램을 설치할 수 있도록 애를 썼다.

미생물의 whole genome sequencing(WGS) 결과물을 분석하기 위해 미리 만들어진 pipeline이 있다면, 개별 application을 다운로드하여 설치하지 않아도 되므로 무척 편리할 것이다. 스페인의 연구그룹에서 최근에 발표한 TORMES가 이러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여서 실제 설치를 해서 사용해 보기로 하였다. 논문을 처음 접한지는 꽤 되었는데 dependency가 많아서(yml 파일을 보라) 성가시다는 생각이 들어 관심을 갖지 않았다가 conda를 통해서 이들이 한번에 설치된다는 것을 알고서 도전해 보기로 했다.

TORMES: an automated pipeline for whole bacterial genome analysis. Bioinformatics 35(21), 2019, 4207-4212 https://doi.org/10.1093/bioinformatics/btz220
https://github.com/nmquijada/tormes
The progress of High Throughput Sequencing (HTS) technologies and the reduction in the sequencing costs are such that Whole Genome Sequencing (WGS) could replace many traditional laboratory assays and procedures. Exploiting the volume of data produced by HTS platforms requires substantial computing skills and this is the main bottleneck in the implementation of WGS as a routine laboratory technique. The way in which the vast amount of results are presented to researchers and clinicians with no specialist knowledge of genome sequencing is also a significant issue. Here we present TORMES, a user-friendly pipeline for WGS analysis of bacteria from any origin generated by HTS on Illumina platforms. TORMES is designed for non-bioinformatician users, and automates the steps required for WGS analysis directly from the raw sequence data: sequence quality filtering, de novo assembly, draft genome ordering against a reference, genome annotation, multi-locus sequence typing (MLST), searching for antibiotic resistance and virulence genes, and pangenome comparisons. Once the analysis is finished, TORMES generates and interactive web-like report that can be opened in any web browser and shared and revised by researchers in a simple manner. TORMES can be run by using very simple commands and represent a quick an easy way to perform WGS analysis.
 WGS = whole genome sequencing인가? NCBI에는 WGS를 whole genome shotgun의 의미로 쓰지만 마지막 S를 sequenicing의 약자로 이해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이 파이프라인은 특히 대장균과 살모넬라의 경우 플라스미드 분석, 항생제 내성 점돌연변이(유전자 획득에 의한 항생제 내성 예측은 기본 분석에 포함), 혈청형 및 fimH 타이핑 등의 상세 분석까지 진행해 주는 것이 특징이다.

TORMES란 스페인 Salamanca 시를 관통하여 흐르는 강의 이름인데, University of Salamanca의 개교 800주년(2018년)을 기념하여 이 분석 파이프라인의 이름으로 사용했다 한다. 스페인에서는 가장 오래된 대학이고, 유럽 전체로는 두번째라고 한다. 유럽 최초의 대학은 1088년에 설립된 볼로냐 대학(이탈리아)이다.

TORMES의 설치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2019년에 작성된 내 블로그의 글에서 아마도 가장 많이 다루어진 자체발급 SSL 인증서 문제 때문이었다. 현재 근무 중인 파견기업의 모든 전산망은 SOMANSA라는 국내 보안 업체의 웹프록시 서버 뒤에서 "보호"를 받는다. 그래서 자체 인증서를 통하여 내부적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고, 리눅스 장비를 통해서 https(443번 포트)로 파일을 받으려면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다. git, curl, wget, R 패키지 설치 등 걸리지 않는 곳이 없다. tormes-setup 명령으로 필요한 나머지 dependency와 외부 DB를 받으려면 이것들이 다 동원되니 얼마나 번거롭겠는가. 저 메시지만 보면 머리에서 김이 날 지경이다.

Resolving ccb.jhu.edu... 128.220.233.141
Connecting to ccb.jhu.edu|128.220.233.141|:443... connected.
ERROR: cannot verify ccb.jhu.edu's certificate, issued by ‘CN=Somansa Root CA,O=Somansa,C=KR’:
  Self-signed certificate encountered.

하나씩 해결을 해야지 어쩌겠는가. 먼저 R의 필요 패키지 설치를 하려면, 홈 디렉토리리에 .Renviron 파일을 만들어서 CURL_CA_BUNDLE=.cert/Somansa_ROOT_CA.cer라는 내용을 넣어야 한다. 그리고 tormes-setup 스크립트도 홈 디렉토리에서 실행해야 한다. Somansa_ROOT_CA.cer 파일은 각자 환경에 맞게 따로 만들어야 한다.

다음으로는 CGE_module을 설치하기 위한 git 작동에서 SSL 인증을 건너뛰게 해야 한다. 이는 환경변수를 하나 건드리면 된다(export GIT_SSL_NO_VERIFY=0). 아예 설정 파일을 건드려서 앞으로 git를 실행할 때 항상 SSL 인증을 건너뛰게 할 수도 있다. git와 SSL 인증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상세한 설명은 정광섭 님의 글 git 에서 https repository 연결시 SSL 인증서 오류 해결법에 잘 나와 있다. CGE_module은 아마도 덴마크 공과대학(DTU) Center for Genomic Epidemiology에서 제공하는 타이핑 도구 및 DB를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minikaraken DB의 설치 문제를 해결하자. tormes-setup 스크립트를 텍스트 편집기로 열어서 wget 명령어가 있는 곳을 찾은 다음, 라인 끝에 --no-check-certificate 옵션을 추가하였다. 이것은 git에서처럼 설정 파일이나 환경변수를 조작하여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세 가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tormes-setup을 몇 번이나 실행했는지 모른다. 지금은 가장 마지막 단계인 minikraken DB의 다운로드가 진행 중이다(49분 남았다).

점심식사를 하고 자리에 돌아와서 최초의 테스트 실행을 해 보았다. 샘플 데이터는 E. coli RR1(HB101 RecA+)에서 유래한 220x 일루미나 시퀀싱 데이터이다(2 x 101 nt). 실험실 균주라서 항생제 내성 유전자나 virulence factor 예측에서는 별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것이다.

$ tormes -m samples_metadata.txt -o tormes_out -t 24 -g Escherichia 
Software: /opt/anaconda2/envs/tormes-1.0/bin/abricate found
Software: /opt/anaconda2/envs/tormes-1.0/bin/convert found
Software: /opt/anaconda2/envs/tormes-1.0/bin/fasttree found
Software: /opt/anaconda2/envs/tormes-1.0/bin/kraken found
Software: /opt/anaconda2/envs/tormes-1.0/bin/kraken-report found
Software: /opt/anaconda2/envs/tormes-1.0/bin/megahit found
Software: /opt/anaconda2/envs/tormes-1.0/bin/mlst found
Software: /opt/anaconda2/envs/tormes-1.0/bin/parallel found
Software: /opt/anaconda2/envs/tormes-1.0/bin/prinseq-lite.pl found
Software: /opt/anaconda2/envs/tormes-1.0/bin/prokka found
Software: /opt/anaconda2/envs/tormes-1.0/bin/quast found
Software: /opt/anaconda2/envs/tormes-1.0/bin/roary found
Software: /opt/anaconda2/envs/tormes-1.0/bin/roary2svg.pl found
Software: /opt/anaconda2/envs/tormes-1.0/bin/sickle found
Software: /opt/anaconda2/envs/tormes-1.0/bin/spades.py found
Software: /opt/anaconda2/envs/tormes-1.0/bin/trimmomatic found

ERROR: Software /opt/anaconda2/envs/tormes-1.0/bin/../share/mauve-2.4.0.r4736-0/Mauve.jar not found! Please check if:
  * Software is not installed
  * Software is installed but the path in /opt/anaconda2/envs/tormes-1.0/bin/../files/config_file.txt is incorrect

Mauve.jar 파일의 설치 위치는 mauve-2.4.0.r4736-1 디렉토리인데 /opt/anaconda2/envs/tormes-1.0/bin/../files/config_file.txt 설정 파일에는 mauve-2.4.0.r4736-0으로 표시되어 있다. tormes-1.0.yml에는 그저 mauve=2.4.0.r4736라고만 적혀 있는 상태이다. contig.txt의 해당 라인을 찾아서 0을 1로 고친 뒤 다시 실행을 하니 모든 소프트웨어가 제대로 자리잡고 있음을 확인한 뒤 trimmomatic을 실행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결과를 살펴 보았다. R markdown으로 생성된 리포트와 각 단계별 서브디렉토리로 구성된 결과물이 있어야 하는데 텅텅 비어있는 상태이다. 왜 그런 것일까? trimmomatic으로 전처리를 한 뒤 quality filtering(prinseq, sickle 또는 trimmomatic 중에서 선택; --filtering 옵션 사용; 기본은 prinseq)을 통과한 read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tormes 옵션 중에서 --min_len의 기본 크기가 125라서 그런 것 같다. 오늘 사용한 샘플 데이터의 read 길이는 101 bp이기 때문이다.

 --min_len       Minimum length to the reads to survive after filtering (default=125) 

--min_len 75로 맞추어 놓고 다시 시도를 해 보았다. quality filtering이 잘 진행되고 이어서 SPAdes가 진행된다. 결과물은 적절하게 생성되었다. 비교할 다른 샘플이 없이 단일 균주라서 pan genome analysis 등은 생략되었다.

결과 리포트는 tormes_report.Rmd라는 RMarkdown code로 생성된다. 샘플 리포트는 여기에서 볼 수 있다. 다음 명령어를 사용하면 html 파일로 바뀐다. 마크다운 언어 또한 피해갈 수 없는 대세인 것 같다. Rmd를 컴파일하여 html을 만들다니... 아주 오래 전에 LaTeX으로 학위 논문을 컴파일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Rscript -e 'library(rmarkdown); rmarkdown::render("tormes_report.Rmd", "html_document", encoding="UTF-8")'
나중에 Acinetobacter baumannii의 일루미나 시퀀싱 결과를 몇 개 넣어 돌려볼 생각이다. 오염이 발생한 샘플이 있었는데(결국은 수작업으로 점검하여 k-mer filtering을 했지만) 이를 TORMES는 어떻게 대처하는지 궁금하다.

2019년 11월 12일 화요일

NCBI에 등록된 미생물 유전체 정보를 기준으로 가장 많이 시퀀싱된 종은 무엇일까?

10월 하순에 다운로드한 GenBank의 bacterial genome assembly summary file(링크)을 기준으로 species 단위로 집계를 해 보았다. subspecies는 고려하지 않았다. 이 파일은 매일 업데이트되고 있는데, 오늘 기준으로 무려 477,023 줄이나 된다. 첫 두 줄은 코멘트와 컬럼 설명이므로 등록된 유전체의 수는 477,021 건이란 뜻이 된다.

가장 많이 시퀀싱된 species 상위 100개를 정리하였다. 오른편의 숫자는 등록된 서열 건수이다. 1,000 건이 넘는 species는 28개이다. Pseudomonas sp.처럼 종이 특정되지 않은 것을 제외한다 하여도 대부분 병원성 세균이다. 특히 1위와 2위의 격차가 상당히 크다. 이 집계가 의미가 있으려면 시퀀싱된 것 중에서 complete genome level까지 된 것의 비율(혹은 수)을 산출하는 것도 필요하다.

나는 Salmonalla enterica가 왜 이렇게 중대한 병원성 세균인지에 대한 지식은 별로 갖고 있지 않지만, 최근 출판된 논문 앞부분을 슬쩍 훑어보니 꽤 심각한 녀석임에는 틀림이 없다.

Genomic features of high-priority Salmonella enterica serovars circulating in the food production chain, Brazil, 2000-2016. Scientific Reports volume 9, Article number: 11058 (2019)
Multidrug-resistant (MDR) Salmonella enterica has been deemed a high-priority pathogen by the World Health Organization. Two hundred and sixty-four Salmonella enterica isolates recovered over a 16-year period (2000 to 2016) from the poultry and swine production chains, in Brazil, were investigated by whole-genome sequencing (WGS).
아래 목록에서 11위를 차지하고 있는 Acinetobacter baumanii 데이터 중에는 내가 속한 연구 그룹에서 연세대학교 의과대학과 같이 작업을 했던 99건의 시퀀싱 결과물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등록한 데이터의 규모가 문제가 아니라 좋은 연구 논문이 나와 주어야 하는데.. 그게 걱정이다.

Salmonella enterica 170291
Campylobacter jejuni 28931
Listeria monocytogenes 23428
Streptococcus pneumoniae 21530
Escherichia coli 20299
Campylobacter coli 11687
Staphylococcus aureus 10907
Klebsiella pneumoniae 8642
Mycobacterium tuberculosis 6680
Pseudomonas aeruginosa 5223
Acinetobacter baumannii 4394
Clostridioides difficile 2824
Pseudomonas sp. 2649
Streptococcus pyogenes 2604
Neisseria meningitidis 1971
Shigella sonnei 1847
Enterococcus faecium 1804
Mycobacteroides abscessus 1724
Burkholderia pseudomallei 1568
Helicobacter pylori 1518
Enterococcus faecalis 1451
Vibrio parahaemolyticus 1346
Streptococcus suis 1303
Vibrio cholerae 1257
Streptococcus agalactiae 1222
Bacillus cereus 1094
Bordetella pertussis 1056
Rhizobiales bacterium 1006
Mesorhizobium sp. 999
Gammaproteobacteria bacterium 925
Streptomyces sp. 874
Legionella pneumophila 824
Enterobacter hormaechei 819
Bacteroidales bacterium 800
Haemophilus influenzae 753
Shigella flexneri 751
Enterobacter cloacae 739
Staphylococcus epidermidis 737
Bifidobacterium longum 709
Neisseria gonorrhoeae 650
Prochlorococcus sp. 643
Chloroflexi bacterium 631
uncultured Clostridiales 578
Actinobacteria bacterium 565
Bacillus thuringiensis 545
Serratia marcescens 538
Clostridiales bacterium 537
Bacillus sp. 529
Alphaproteobacteria bacterium 504
Lachnospiraceae bacterium 484
Deltaproteobacteria bacterium 472
Pseudomonas syringae 469
Lactobacillus plantarum 467
Cronobacter sakazakii 456
Xanthomonas oryzae 448
Stenotrophomonas maltophilia 436
Bacteroidetes bacterium 433
Acidobacteria bacterium 423
Acidimicrobiaceae bacterium 418
Firmicutes bacterium 415
Acinetobacter pittii 414
Yersinia pestis 400
Yersinia enterocolitica 389
candidate division 367
uncultured Collinsella 354
Clostridium sp. 351
Brucella melitensis 343
Verrucomicrobia bacterium 336
Campylobacter upsaliensis 333
Acinetobacter sp. 333
Parcubacteria group 332
Ruminococcaceae bacterium 321
Flavobacteriales bacterium 321
Flavobacteriaceae bacterium 315
Yersinia pseudotuberculosis 311
Bacillus subtilis 311
Leptospira interrogans 310
Campylobacter lari 309
Burkholderia ubonensis 307
Klebsiella oxytoca 301
Burkholderia cenocepacia 301
Bacteroides fragilis 301
Rhizobium leguminosarum 298
Bifidobacterium adolescentis 298
Klebsiella variicola 295
Planctomycetes bacterium 293
Prevotella sp. 276
Klebsiella quasipneumoniae 276
Cutibacterium acnes 274
Alistipes onderdonkii 270
Ruminococcus sp. 267
Streptococcus equi 265
Proteobacteria bacterium 263
Staphylococcus haemolyticus 262
Rhodobacteraceae bacterium 261
Pseudomonas stutzeri 261
Clostridium botulinum 248
Staphylococcus sp. 246
Francisella tularensis 243
Oenococcus oeni 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