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29일 일요일

녹음 모니터링을 위한 보조 케이블 만들기(일종의 패시브 믹서)

이번 주말의 DIY 결과물은 일종의 passive mixer이다. 믹서라는 표현을 하였지만 각 신호의 레벨을 조절하는 포텐셔미터와 같은 것은 없으므로 외형은 Y-cable을 닮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RCA 단자와 1/4" TRS 단자로 들어오는 신호를 합쳐서 RCA 단자로 내보내는 물건이다. 

●와 ●●로 들어오는 신호가 1:1로 섞여서 맨 위의 RCA 플러그로 나간다.

두 입력을 섞는 회로는 다음의 것(스테레오 → 모노 전환)을 참조하였다. 실제 제작에서는 475R 대신 보유하고 있던 470R 저항을 사용하였다.

그림 출처: Stack Exchange "Multiple options for passive audio mixer". 20K pulldown resistor는 플러그를 꽂거나 뺄 때 발생하는 팝 노이즈를 줄이기 위한 것으로, 기타용 페달에서 매우 널리 쓰이는 기법이라고 한다.

왜 이런 물건을 만들었는가? 나는 음악 작업을 위해 Behringer Xenyx 802 믹서(구입 당시 작성한 글 링크, 매뉴얼)와 Behringer UCA200 USB 오디오 인터페이스(헤드폰 출력이 있는 UCA202가 아님)를 사용한다. 

Xenyx 802. 보통 믹서 모델명의 숫자는 전체 채널의 수(모노는 1, 스테레오는 2)를 의미한다. 마이크 입력 2개, 스테레오 입력 2개(2 x 2 = 4)인데 왜 모델명은 6이 아니라 8로 시작하는가? STEREO AUX RETURN 단자를 통해 두 채널을 추가로 쓸 수 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물론 이렇게 들어오는 신호는 본체에서 EQ나 레벨, 밸런스 등을 조절할 수 없다.

오디오 인터페이스의 입출력은 믹서의 RCA 단자("2-TRACK")를 통하여 INPUT⇿OUTPUT을 서로 반대로 연결한다. 연결 다이어그램은 아래에 보인 그림을 참고하라. MAIN OUT은 외부 스피커(예: 공연 현장에서 청중을 향해 사용하는 음향장비)를 구동하기 위한 것이며, 녹음을 위한 신호는 2-TRACK 단자로 내보내는 것이 정석이다.

2-TRACK 단자는 다음 그림과 같이 생겼다. 이 단자를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다른 회사의 믹서 제품에서는 'CD/TAPE INPUT OUTPUT'이라고 표시하기도 한다.


2-Track connectors.

 

2-TRACK 단자와 오디오 인터페이스(UCA20X)의 연결 방법

컴퓨터에서 재생되는 음악(유튜브 등)을 헤드폰으로 들으려면 아래에 사진으로 보인 2-TRACK 스위치 중 위의 것("2-TR TO CTRL ROOM")을 눌러 놓는다. 이렇게 하면 믹서의 각 채널에 입력되는 신호는 헤드폰/컨트롤 룸으로는 들리지 않는다. 물론 채널로 입력되는 신호는 항상 메인 아웃으로 흘러 나간다.

 


즉, 이 두 개의 누름 스위치는 2-TRACK 입력을 다음의 두 그룹(노란 사각형)에 보내는 방식을 결정한다. PHONE과 CTRL ROOM OUT은 한통속이다.



컴퓨터에서 DAW를 이용하여 연주 녹음을 하는 (1)가장 단순한 상황 즉, 가정해 보자. 믹서로 입력되는 음성(마이크)이나 악기 연주 신호를 컴퓨터로 일방향 전송을 하고 끝내는 경우를 가정해 보자. 컴퓨터에서 재생하는 소리(예: backing track)를 동시에 재생하는 것은 일절 고려하지 않는다. 이 때에는 2-TRACK 스위치 두 개를 전부 오픈한 상태(누르지 않음)로 녹음을 하면 된다. 이 조건에서는 믹서의 입력 신호가 차단되지 않고 그대로 헤드폰/콘트롤 룸 아웃으로 흘러 나가므로 헤드폰으로 모니터링을 하면서 녹음을 할 수 있다. 내 저가형 오디오 인터페이스에는 헤드폰을 위한 위한 출력 단자가 없으니 이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최소한 UCA202 정도를 구입했더라면 오늘과 같은 보조 케이블 제작은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2-TRACK 스위치를 둘 다 누르면 피드백 루프가 생겨서 매우 곤란하다.

다음은 (2)약간 복잡한 상황을 떠올려 보도록 하자. 이미 컴퓨터에 녹음해 놓은 트랙을 헤드폰으로 들으면서 이에 맞추어 새로운 트랙을 녹음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드럼+베이스 트랙을 미리 녹음해 놓고, 이 소리를 헤드폰으로 들으면서 일렉트릭 기타를 별도의 트랙에 녹음하고 싶다. 이를 오버더빙(overdubbing) 기법이라 부른다. DAW 소프트웨어에서 녹음 입력 신호를 동시에 출력하도록 설정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소프트웨어적 단계를 거치면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레이턴시 때문에 실용적이지 못하다. 최초의 트랙을 녹음하는 것이라면, DAW가 발생하는 메트로놈 소리를 들으면서 녹음하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 

DAW에서는 녹음을 진행하는 동시에 드럼 트랙 재생이 이루어진다. 이를 믹서의 헤드폰 출력을 통해 들으려면 2-TR TO CTRL ROOM 스위치를 눌러 놓아야 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는 정작 믹서로 들어오는 기타 연주 신호가 헤드폰 단자를 통해 나오지 못한다.

그러면 2-TR TO CTRL ROOM 스위치는 열어 놓고, 그 아래에 있는 2-TR TO MIX 스위치를 눌러 놓으면? 헤드폰으로는 드럼 소리와 기타 소리가 같이 들릴 것이다. 그러나 믹서의 녹음용 출력에는 드럼+기타 소리가 같이 섞여서 나가게 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이게 아니다. 드럼 소리는 연주자의 귀에만 들리면 충분하고, 단지 기타 소리만 순수한 녹음 출력으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믹서의 FX SEND 출력과 오디오 인터페이스의 출력을 단순히 합쳐서 2-TRACK으로 입력한 다음, 2-TR TO CTRL ROOM을 누른 상태로 녹음을 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FX SEND는 믹서의 입력을 외장 이펙터로 보내는 단자이다. 리턴을 시키지 않으면 입출력 신호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더군다나 각 채널 스트립에는 FX SEND 레벨을 조정하는 노브가 있다. 따라서 믹싱 회로를 만든다 해도 음량 조절을 위한 별도의 포텐셔미터를 달 필요가 없다. 전원조차 필요하지 않은 패시브 믹싱 회로를 만들자! 이것이 이번 주말의 작업 목표였다.

혼자 궁리하다가 생각해 낸 방법이지만 아마 나와 같은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실행에 옮긴 사람은 많이 있을 것이다. 작업 후 검색을 해 보니 FX SEND를 보조 출력 또는 모니터 목적으로 쓰는 사례가 있었다.

작업 전에는 FX SEND 단자가 스테레오일 것으로 생각을 했다. 그래서 55 플러그(6.35mm)도 스테레오형을 구입하여 납땜을 하였다. 그런데 보조 케이블을 만들어서 테스트를 해 본 결과 컴퓨터에서 흘러나오는 드럼 소리는 제대로 들리지만 기타 소리는 왼쪽만 들리는 것이 아닌가? Xenyx 802 매뉴얼을 찾아보니 다음과 같이 FX SEND는 MONO임을 분명히 해 두었다.

하, 그렇구나! FX SEND는 모노인데 'STEREO' AUX RETURN이라... 플러그를 다시 연 다음 좌우 케이블을 팁에 한꺼번에 납땜하였다.

FX SEND는 모든 채널의 것이 섞여서 흘러나온다. SEND 레벨을 각 채널에서 개별적으로 조절할 수 있으니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이 보조 케이블을 상시 꽂아 두어도 헤드폰으로 재생되는 컴퓨터 소리가 특별히 더 작아지지도 않는다. 기껏해야 470R 저항을 직렬로 연결한 상태이니 말이다.


한 십 년쯤 전에 TAPCO MIX60 믹서를 잠깐 썼을 때에는 조작이 익숙하지 않아서 늘 애를 먹고는 했었다. 자주 써서 몸에 배도록 익히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2024년 1월 1일 업데이트] 오늘 새롭게 다운로드한 Xenyx Q802 다이어그램에 그림과 더불어 설명을 붙였다. 어디서 다운로드했는지는 미처 기록을 해 두지 못했다. 내가 사용하는 Xenyx 802가 아니라 컴프레서가 달린 Q802 모델임에 유의하라. 새롭게 만든 보조 케이블(패시브 믹서)는 빨간 점선에 해당하는 연결을 만들어 준다. 파란색 박스, 즉 2-Track to Main Mix 누름 스위치에 해당하는 것 중 별표를 붙인 오른편의 박스는 내가 수년 전에 인용한 Xenyx 802의 다이어그램(당시 작성한 글 링크)에는 없었다. 원본 다이어그램에서는 2-Track Input이 항상 main out에 연결되어 있는 상태였는데 생각해보면 이는 옳은 상태가 아니다. 


2023년 8월 28일 업데이트

이 보조 케이블을 연결해 놓고 Alesis NanoPiano의 연주를 녹음해 보면, mono로만 모니터 출력이 나오게 되니 상당히 거북하다. 그러나 기타 또는 베이스처럼 단일 채널 악기의 모니터링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믹서에 연결된 수북한 케이블은 마치 일주일은 감지 않은 머리를 보는 것 같아 심란하다. 그렇다고 해도 실용적으로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사실 요즘 나오는 웬만한 오디오 인터페이스라면 다이렉트 모니터 기능이 있어서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바로 어제, Behringer U-Phoria UM2 오디오 인터페이스와 콘덴서 마이크로폰을 사게 되었고(관련 글 링크), 편리한 다이렉트 모니터 기능을 확인하였다.

2023년 1월 26일 목요일

통계처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관하여

업무를 위해 배포되는 뉴스 스크랩을 보다가 흥미로운 제목의 기사가 눈에 띄었다.

[시평] 국가 통계 관리할 '통계처'가 필요하다(문화일보 2023년 1월 26일)

기획재정부의 외청인 통계청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으니, 각 부처에 산재한 통계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총리실 산하의 통계처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글을 쓴 사람은 전 통계청장인 서울대 경제학부 류근관 교수이다. 얼핏 보기에는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을 더 키우거나 격상시키고 이를 지원해야 한다는 논리로 비칠 수도 있다. 조직의 생리가 원래 그러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 색안경을 잠깐 벗고 생각하면 꽤 타당하다는 생각도 든다.

여기에서 정부 조직 단위인 처와 청의 차이를 알아보자. '처(處)'는 국무총리 소속으로 설치하는 중앙행정기관으로서 여러 부에 관련되는 기능을 통합하는 참모적 업무를 수행하고, '청(廳)'은 행정각부의 소관사무 중 업무의 독자성이 높고 집행적인 사무를 독자적으로 관장하기 위하여 각부 소속으로 설치되는 것이라 하였다(링크). 따라서 '처'의 지위가 '청'보다 더 높다고 볼 수 있다.

행정안전부예규 제170호인 「정부조직 영어명칭에 관한 규칙」(링크)에 따르면 부와 처는 영어로 Ministry라 부르고, 청은 Administration, Agency, Service, Office 등으로 부른다.

빅데이터 및 디지털전환 시대를 맞아 데이터 허브는 통계청이 맡고, 총리실 산하의 통계처에서 이를 총괄한다는 아이디어도 좋다. 현재 국회에서 여야간에 의원입법으로 이를 위한 조직 개편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통계학(統計學, statistics)은 수학의 한 분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내가 주워들은 바에 의하면 수학자와 통계학자는 서로를 다른 분야의 사람이라고 여긴다고 하였다. 역사적으로도 통계학은 국가 경영에 필요한 수치적 정보를 제공하는 활동이었다. 요즘 인기를 끄는 (빅)데이터 과학 또는 인공지능·기계학습 분야가 근대 통계학과 그 뿌리를 같이 하느냐는 단순한 질문을 던진다면 서로 다른 입장의 답변이 나올 것 같다. 어쨌든 데이터가 중요한 시대에 통계(학 또는 업무)의 중요성은 나날이 커질 것은 당연하다.

데이터 자체와 통계는 그 성격이 약간 다르다. 한때 내가 몸담았던 조직에서는 바이오 분야의 데이터를 한데 모아서 관리 및 활용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고자 무척 많은 노력을 했었다. 이러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당위성, 법적 근거, 국제적 동향.... 모두 차고 넘치게 많다. 시간도 많이 흘렀고, 예산도 많이 확보되었다. 사실 기술적으로도 불가능할 것은 없는 수준이 되었다. 그러면 잘 되고 있는가? 글쎄, 잘 되지 않는 것 같다. 왜 그러한지에 대해서는 학문적 접근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공공데이터 포털에 가 봐도 별로 재미가 없다.

데이터 등록과 활용을 막는 특별한 규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등록 실적과 활용 실적을 수치로 표현한다면, 해마다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데이터를 주물러서 뭔가 수치를 만들고 예측하는 것은 통계의 영역인데(단순 '집계'와는 다르다!), 그 결과를 해석하여 어떤 기대 가치에 대한 평가 결과를 만들어야 하는 부담이 늘 따른다. 통계 수치가 항상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는가? 통계 수치를 이용하려는 사람이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는가에 따라서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매우 적극적인 데이터의 왜곡(이것은 귀가 닳도록 들어온 연구부정행위의 하나임), 그리고 그것이 아니더라도 결과의 자의적인 해석(처벌하기 어려움) 사이에는 매우 넓은 회색 지대가 존재한다. 그래서 통계를 올바르게 쓴다는 것은 정말 무섭고도 중요한 일이다.

유리잔에 물이 정확히 반 남아 있다는 것은 불변의 사실(데이터)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찰 결과를 놓고서 '물이 아직 많이 남았으니 안심해도 된다' 또는 '물이 반 밖에 남지 않았으니 아껴 마셔야 한다'라는 가치 평가(그리고 향후 대책까지)를 내리는 사람은 정책 입안자들이다. 물이 반 남아 있다는 객관적인 결과를 'translation'하여 정책 입안자에게 전달하는 것은 통계업무를 하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정말로 중립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을까?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기존의 통계청보다 격상된 '통계처'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현 정부의 기조에 맞는지 돌이켜 볼 일이다. 그리고 통계 자료를 생산하고 관리하는 각 부처의 하위 조직 간의 연계를 강화하는 것으로도 충분하지는 않을까?

(흠... 나는 사실 '연계'라는 말은 가장 무책임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2023년 1월 25일 수요일

중고로 풀린 하만 카돈(Harman Kardon) 스피커 부품

설 연휴 내내 일렉트릭 기타 연습만 하다가 잠시 쉬면서 인터넷 서핑을 하는 도중 전기 및 전자 관련 DIY 용품을 판매하는 곳에서 희한한 오디오 관련 중고 물품을 파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디선가 적출해 낸 것 같은 20와트급(4옴)의 스피커 시스템을 단지 몇 천원에 판매하는 것이었다. TV 등에 들어가는 납작한 타원형 풀레인지 스피커를 판매하는 글은 아주 가끔 본 일이 있지만, 이번의 것은 남달랐다. 무엇에 쓰이던 물건일까?

출처: e-홈메이드클럽. 돔 트위터가 배송 중에 찌그러지는 것은 감수해야 한다. 오늘 주문한 것은 AD-68(가운데) 두 세트.

스피커 유닛 단품이 아니라 밀폐형 인클로저에 소구경 유닛 2개(1.25인치 트위터, 2인치 미드우퍼)와 드론 콘(패시브 라디에이터)이 붙어 있는 상태였다. 2인치 유닛을 미드우퍼라도 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정확히 말하자면 풀레인지 스피커 유닛일 것이다. 2번 정도 나무 인클로저를 짜서 스피커를 넣어 본 짧은 자작 경험에 의하면, 만족할 만한 소리를 내기가 참 어려웠다. 그러나 이 중고 부품은 인클로저를 만들기 위해 애를 쓸 필요가 없다. 이미 어느 정도의 소리가 나도록 설계하고 튜닝을 완료한 시스템 상태로 팔리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껍데기를 씌운다면 그것은 단지 외관을 위한 것일 뿐이다. 다만 크로스오버 네트워크가 문제인데, 무극성 캐패시터를 트위터 쪽에 직렬로 하나 연결하는 간이형 네트워크를 권장하고 있다. PC용 보급형 2채널 스피커 시스템에 흔히 쓰이는 그런 방식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e-홈메이드클럽에서는 캐패시터까지 판매한다. 

적당한 앰프 모듈만 연결한다면 책상 위 모니터 양 옆에 두는 스피커, 또는 악기용 스피커로 아주 제격일 것이다. 진공관 싱글 앰프에 신시사이저나 일렉트릭 기타(이펙터 출력)를 연결하는 것은 영 이상하지 않은가. 마침 작년 여름에 블루투스 앰프 모듈 ZK-502H(링크)를 구입해 두었으니 여기에 연결하면 안성맞춤일 것이다.

이 부품을 좀 더 알아보기 위하여 검색을 해 보니 유튜버 '공돌이파파'님의 상세한 리뷰 동영상이 유튜브에 공개된 상태였다. 


결론은 꽤 쓸만하다는 것이다. 공돌이파파님의 의견에 의하면 트위터는 아예 사용하지 않는 것이 소리가 더 좋게 들렸다고 한다. 2인치 유닛이므로 상당한 수준의 고음이 나올 것을 기대해도 좋다. 다. 이 물건이 재활용품 시장에 돌아다니게 된 까닭은 AI 스피커 겸 셋톱박스인 KT 기가지니 2(GiGa Genie 2)가 회수되어 이로부터 적출된 때문이라 한다. 이미 작년 상반기쯤부터 알려지기 시작하였다고 하니 나는 다소 늦게 이 소식을 접한 셈이다. 네이버에는 이를 사용하여 스피커 DIY를 한 사례가 꽤 많이 올라와 있었다. 

가격이 얼마 되지도 않는 물건을 구입하는 데에 고민을 오래 할 필요가 없다. 당장 두 세트(4개)와 무극성 캐패시터 및 스피커 연결 단자를 주문하였다. 껍데기는 당분간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트위터가 눌리지 않게 전면부를 적당한 물건으로 살짝 가리고 고무 다리만 붙이면 실 사용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2023년의 DIY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으로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원래는 6V6 싱글 앰프의 제작(작년에 감은 출력트랜스포머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 또는 진공관 테스터 제작 정도를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이는 최소한 몇 달 뒤 또는 내년으로 미루어질지도 모르겠다.


2023년 1월 27일 업데이트

온라인으로 주문했던 스피커와 부품이 하루만에 도착하였다. 트위터에는 4.7uF 무극성 캐패시터를 직렬로 연결하였다. 스피커 유닛의 구경 한계로 인하여 저음이 풍성하지는 않지만 가까운 거리에서 음악을 즐기기에는 충분하다.

포장 상태. 돔 트위터는 눌리지 않고 온전하게 배송되었다.

왼쪽의 접착제 병은 크기 비교를 위한 것. 책상 위 모니터 양 옆에 두기에 적당하다.

'harman/kardon'이라는 새김이 보인다.

테스트하는 모습. 스프링 클립식 터미널을 하나씩 달아 주었는데, 케이블 끝에 덜렁 달려있어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 트위터를 보호하기 위하여 R-코어 출력트랜스포머 자작 때 사용했던 보빈용 바퀴(3T 아크릴 가공, 링크)를 붙였다.

금속 프레임을 제거한 형태. 하부에는 스티커식 고무발을 붙였다. 뒷쪽의 아이와 스피커가 거대하게 느껴진다.

체구는 작아도 당찬 소리가 난다. 트위터에 직렬로 삽입한 캐패시터의 용량이 적당한지는 잘 모르겠다. '보통 혼형 트위터에는 0.1-0.2uF를, 콘형 트위터에는 1-5uF를 사용'(링크)하라는데, 돔 트위터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2-way speaker system에 맞는 크로스오버 네트워크를 제대로 만들려면 최소한 다음과 같은 수준(1st order crossover)은 되어야 하는데, 한쪽 채널을 구성하는데 3천원 + (캐패시터, 터미널)을 들인 수준에 뭘 더 투자하겠는가. 사실 스피커의 크로스오버 네트워크는 앰프를 만드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라서 함부로 접근하고 싶지 않다.

출처: DIY Audio & Video 2-way crossover design / calculator help

구입처의 해당 상품(AD-68) 구매 후기에는 이 물건에 맞춘 크로스오버 회로도(링크)를 소개한 사람이 있으니 나중에 참조해 보도록 하자.

탑 쌓기.

이안 반사식 카메라(twin-lens reflex, TLR)를 닮지 않았는가?


시장에 풀린 재활용 부품이 여러 사람들의 자작 정신에 자극을 주고 있는 것 같다. 이보다 먼저 나왔던 스피커에 씌울 수 있는 반가공 케이스 제품도 이미 몇 개가 팔리고 있다. 



2023년 1월 20일 금요일

30년이 넘도록 기타를 쳐도 정복하지 못한 릭(lick)

리프(riff)와 릭(lick)의 차이는? 글쎄...

1987년 여름에 구입한 세광음악출판사의 「일렉기타교본」. 발간일은 1985년 5월 10일. 당시에 나온 이런 종류의 취미 또는 기술 서적 중 '편집국 편'이라고 되어 있는 책은 대부분 외국의 책을 무단으로 베껴서 만든 것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이후 몇 음악 관련 책을 세 권 정도(재즈 화성학, 제프 벡 주법, 지옥의 메커니컬 기타 트레이닝 1권) 더 구입했었는데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찾을 길이 없다. 

세광음악출판사의 「일렉기타교본」. '일렉기타'는 잘못된 명칭이다. '일렉트릭 기타' 또는 '전기 기타'가 맞다. 이제는 여기에 소개된 곡을 전부 인터넷에서 찾아 들을 수가 있으니 얼마나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시대에 살고 있는가?


다음의 악보 일부는 이 교본의 247쪽에 나오는 「Smoke on the water」(BPM=116)의 기타 독주의 한 부분이다. 이 마디의 1~2박의 얼터네이트 피킹(alternate picking)이 나에게는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 특히 2박째가 매끄럽게 되질 않는다. 첫 박에서는 다운-업-다운-업(1-2-3-4) 피킹을 하는 것이 정석일 것 같은데 다운-다운-업-다운으로 치는 버릇이 들었고, 이어지는 2박째에는 왼손가락 운지와 피킹이 늘 꼬인다. 특히 빠르게 업 피킹을 할 때 줄을 가볍고도 명료하게 치면서 지나가야 하는데, 이상하게 피크가 줄어 턱 걸리면서 제대로 소리를 내지 못할 때가 많다.

이 교본에서는 얼터네이트 피킹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

음악 전체를 다 들어보도록 하자.



이 릭을 30년 동안 정복하지 못하고 있다. 일렉트릭 기타를 처음 배워도 1년 반 정도면 충분히 익힐 수준의 소절이 아니던가? 실은 기타를 방치해 둔 시간이 매우 길기 때문에 30년이 넘는다는 경력은 어폐가 있다.

왼손 운지보다 오른손의 피킹이 훨씬 어렵다는 것은 일렉트릭 기타를 치면서 초급을 막 넘어가려는 수준에 깨닫게 된다. 심지어 나는 피크를 올바르게 잡는 방법을 놓고서 아직까지 고민을 하고 있다. 유튜브를 보면서 피킹의 기본부터 다시 익혀야 할 판이다.


어제는 넷플릭스의 영화 「메탈 로드」(링크)를 재미있게 보았다. 헤비메탈에 진심인 반항아 헌트(에드리언 그린스미스)가 피크 탓을 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나 역시 피크는 매우 까다롭게 고르는 편이다. 크기, 두께, 재질 등등. 지금도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폴 길버트 사인이 있는 아이바네즈 피크(두께 1mm?)를 좋아하는 편이다. 일반적인 눈물방울(teardrop)형 피크보다는 약간 작다. 브라이언 메이는 동전을 피크 대신 쓴다 하였으니 저마다 취향이 다름은 당연하다.

2023년 1월 18일 수요일

얼떨결에 DBZ Cavallo AB 기타(flying V style)의 주인이 되다

'전기기타는 전기를 먹여야 한다(링크)'라는 글을 쓴 것이 딱 이틀 전이었는데, 오늘 귀가하는 나의 손에는 DBZ Cavallo AB 기타(국내 제조)가 들려 있었다. 이렇게 하여 뮬(mule) 악기장터에 올라와 있던 '악기플러스'님의 매물 하나를 소진하였다. AB는 'abalone binding'을 뜻한다. 국외 사이트(Music Radar)에 이 기타에 대한 리뷰가 실려서 소개해 본다(2012년, 링크). Cavallo 시리즈에 AB 모델이 추가되었다는 기사도 여기에 있다(링크).

DBZ 기타의 멋진 헤드스톡. 국내에서 OEM으로 만들어진 이 기타에 젤린스키의 영감이 얼마나 녹아들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DBZ(Dean B. Zelinsky, 기타 제작자의 이름)라는 기타 브랜드를 알게 된 것은 불과 며칠 전이었다. 딘 젤린스키가 악기 제조 및 대중음악 산업에 미친 영향, 그리고 그의 브랜드 역사에 대해서는 한번 관심을 갖고 찾아서 읽어봄직하다.

플라잉 V 스타일의 기타를 산다는 것은 나로서는 큰 모험이었다. 그러나 더 나이가 들면 이런 과감한 디자인을 고르지 못할 것 같았다. 마호가니 바디, 셋-인 네크, 고정식 브릿지... 이것이 내가 원하던 최소한의 요건이었다.

맞는 스탠드가 필요해! 헤드스톡의 크기가 확연히 다르다. 그렉 베넷(Greg Bennett)이 설계하여 삼익이 만든 전기 기타(왼쪽)의 헤드스톡은 매우 작은 편이다. 여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링크). DBZ 기타의 헤드스톡은 멋진 스타일을 위해 음향학적 장점을 희생했을까? 잘 모르겠다.

가방 역시 맞는 것은 구하기 어렵다. 헤드가 삐죽 솟은 상태로 범용 가방에 넣어서 적당히 둘러메고 가져왔다. Flying V 형태의 일렉트릭 기타는 맞는 스탠드와 가방을 구해야 한다는 새로운 숙제를 남겼다.


이 기타는 생각보다 가볍지만 바닥에 앉아서 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서서 연주하거나, 혹은 의자에 앉아서 삐죽 솟은 바디 부분을 다리 사에에 끼워 넣고 쳐야 한다. 익숙해지려면 약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지극히 인체공학적이지 못하지만, 이를 뛰어넘는 '멋'이 있다. 네크의 단면은 V자에 가까운 느낌인데 나쁘지 않다.

장기 재고 기타이지만 셋업이 잘 되어 있어서 사용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특히 셀렉터 스위치는 놀라울 정도로 부드러웠다. 매장에 있던 다른 DBZ 기타도 손에 잡아 보니 매우 가볍고 멋진 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전통적인 일렉트릭 기타의 디자인과는 조금 다르지만, '아름답다'는 느낌을 준 기타는 DBZ가 처음인 것 같다. 

남은 숙제는 연습! 리눅스에서 녹음하기를 포함하여...


2023년 1월 20일 업데이트

LoudWired에 소개된 딘 젤린스키의 인터뷰 기사 'What makes a guitarist iconic'(링크)을 소개한다. 

The real answer is songs!

Eddie Van Halen, Jimmy Page, Jimi Hendrix — all great players but reached iconic status due to their hit songs. Yngwie Malmsteen, Joe Bonamassa…great players, but no hit songs. If you go to a Yngwie show, he plays for about 500 guitar players. When you would go to see Eddie, there would also be about 500 guitar players, then another 25,000 fans behind them.


2023년 1월 26일 업데이트

대충 만든 음악. 드럼 트랙은 유튜브에서 적당히 골라서 사용하였고 기타 연주는 오버더빙하였다. 이펙터는 Korg AX3G, 오디오 인터페이스는 Behringer UCA-200, 믹싱의 필요는 별로 없었지만 Behringer Xenyx 802를 경유하여 Audacity에서 녹음하였다. 오디오에 대한 후처리는 거의 하지 않았다. 노멀라이즈와 페이드 아웃 정도...



2023년 1월 17일 화요일

유전체 데이터의 익명화(anonymization)는 과연 가능한가?

오늘의 주제는 이미 인터넷 상에서 널리 논의되어 왔고 전문적인 자료도 많기 때문에 이렇게 글을 쓴다고 해 봐야 지식의 피라미드 주변에 돌멩이 하나를 쌓는 정도의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나 자신의 공부를 위해서 단편적인 지식을 찾아 정리한 정도가 되겠다. 보다 영양가 있는 지식을 원한다면 이 분야의 전문가인 카카오헬스케어 연구소장 신수용 박사의 블로그(링크)를 검색하여 찬찬히 읽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나도 그곳을 틈틈이 들르면서 많은 지식과 영감을 얻고는 한다.

먼저 '익명화(匿名化)'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보자.

익명화에 해당하는 영단어는 보통 anonymization이라고 알려져 있다. 구글을 통해서 이에 대한 뜻을 찾아 보았다. 출처는 생략하였다.

  • the fact or process of removing any information that shows which particular person something, particularly something such as a record on or message from a computer
  • removal of identifying information from (something, such as computer data) so that the original source cannot be known
  • removal of any information that shows which particular person something relates to
  • the irreversible alteration of data so that its human subjects are no longer identifiable

국문 자료를 검색해 보면 '더 이상 개인을 알아볼 수 없게 조치한 정보'라는 정의가 나온다. 위에서 살펴본 영단어 anonymization의 정의와 매우 가깝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가장 기본이 되는 법인 「개인정보 보호법」에서는 익명화 또는 익명정보를 정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익명' 및 '익명처리'라는 단어가 각 2회씩 등장할 뿐이다. '더 이상 개인을 알아볼 수 없게 조치한 정보'라는 정의는 법률도, 시행령도, 시행규칙도 아닌 「가명정보 처리 가이드라인」에서 내려 주었다.

익명화를 제대로 정의하는 국내법은 내가 알기로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생명윤리법)」이 유일하다. 생각하지 못했던 분야의 법률에서 선제적으로 정의를 내리게 된 것 같다. 생명윤리법 제2조(정의) 제19호를 인용해 보자.

“익명화”(匿名化)란 개인식별정보를 영구적으로 삭제하거나, 개인식별정보의 전부 또는 일부를 해당 기관의 고유식별기호로 대체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보인 익명화는 「가명정보 처리 가이드라인」의 '가명처리' 정의(개인정보의 일부를 삭제하거나 일부 또는 전부를 대체하는 등의 방법으로 추가정보가 없이는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도록 처리하는 것')에 더 가까워 보인다. '익명'의 문자 그대로의 의미가 '이름을 숨기는 것'이므로, 개인정보의 일부(~식별정보)를 삭제하거나 대체하는 생명윤리법 상에 정의된 익명화를 거친 익명정보는 충분히 '재식별'이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영단어 anonymization의 일반적인 정의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 「보건의료데이터 활용 가이드라인」에서는 익명정보를 다음과 같이 보다 좁게 정의하였다.

익명정보: 시간·비용·기술 등을 합리적으로 고려할 때 어떠한 다른 정보를 사용하여도 더 이상 개인을 알아볼 수 없는 정보('개인정보 상의 개인식별정보를 영구적으로 삭제하거나, 개인식별정보의 전부 또는 일부를 해당 기관의 고유식별기호로 대체하며 만든 정보'에 대하여 기대할 수 있는 속성과는 조금 다르다)

여기서의 익명화는 anonymization의 일반적인 정의에 보다 가깝다. 사생활 및 정보 보호를 위한 기본법은 익명화 또는 익명정보를 아예 정의하지 않았고, 생명윤리법의 정의는 왠지 헐렁하고, 법적 구속력이 없는 가이드라인에서 가장 구체적인 정의를 내리고 있으니 바람직한 상태는 아니다. 식별정보(주민등록번호와 같은)를 삭제하거나 대체하는 정도는 가명화(pseudonymization, replacing all personal identifiers with pseudonyms)라고 한다. 가명정보는 다른 정보를 결합하면 재식별이 가능하다. 어떤 방법을 사용해도 재식별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익명화라고 보면 된다.

미국의 HIPAA Privacy Rule이나 유럽연합의 GDPR도 익명화를 특별히 정의하지는 않는다. 다만 비식별화(de-identification)라는 용어로 이를 대신하고 있는 것 같다. 미국의 개정 커먼룰에 의하면 비식별조치를 한 정보 및 인체유래물 관련 연구는 인간대상연구(human subject research)가 아니므로 제공자의 동의나 기관심의위원회(Institutional Review Board, IRB)의 심의가 필요하지 않다. 이건 연구자에게 대단히 중요하다.

이야기가 약간 옆길로 새지만 IRB를 왜 기관생명윤리위원회라고 불러야 하나? 그냥 기관심의위원회가 아닌가?

서론이 길었다. 그러면 유전체 데이터의 진정한 익명화는 가능한가? 오늘의 글은 이에 대한 기술적 방법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다. 무차별적인 익명화는 가능할 것이다. 단지 데이터로서의 가치가 사라질 뿐이다. 데이터로서의 가치를 살리면서 재식별은 불가능하게 만드는 '적당한 익명화'는 가능할까? 난 이것도 어렵다고 본다. 유전체 정보의 익명화 기술과 이를 거친 자료의 재식별화 기술은 마치 군비 경쟁(arms race)와 같아서, 어느 하나가 발전하면 나머지 하나는 당연히 이를 따라잡거나 조금 더 앞서게 될 것이다. 

따라서 데이터 자체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수준으로 적절히 익명화를 하고('가명화' 수준에 머무른다 하더라도...), 그 노력이 충분하다면 현행법에서 요구하는 수준을 충족한 것으로 인정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기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물론 데이터 재식별 금지 합의서라든가 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를 만들어 놓아야 할 것이다. 

2021년 Nature Communications에 실린 논문 "Computational tools for genomic data de-identification: facilitating data protection law compliance"(링크)에서 공감가는 대목을 구글에서 번역하여 소개해 본다.

이러한 기술이 개인 식별의 모든 잔여 위험을 제거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법은 여전히 그러한 데이터를 익명으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관할권에서 익명으로 간주되는 데이터의 임계값은 '제로 위험'이 아닙니다. 잔여 위험은 여전히 익명으로 간주되는 데이터에 남아 있을 수 있으며, 실제로 특정 개인 정보 보호 규제 기관 및 보건 규제 기관은 데이터 세트에서 개인이 재식별되는 수용 가능한 잔여 위험을 5%에서 9% 범위로 제안했습니다. 따라서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기술은 여전히 익명 데이터를 생성하는 실행 가능한 방법으로 간주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유전 데이터 비식별화 방법이 익명 데이터를 생성하지 않는 경우에도 이러한 방법이 데이터 보호 규정 준수에 높은 유용성을 유지한다고 주장합니다. EU 데이터 보호법(GDPR)은 데이터를 사용하는 엔터티가 '설계 및 기본적으로 데이터 보호'를 수행하도록 요구합니다. 게놈 데이터의 전산 비식별화는 이 법적 요구 사항을 이행하기 위한 강력한 도구입니다. 또한 이러한 메커니즘을 구현하면 데이터 최소화를 수행하고 상황에 맞는 보안 보호 장치를 구현하는 것과 같은 다른 법적 요구 사항을 충족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게놈 데이터에 대한 전산 비식별화 방법은 데이터 관리에 유용한 도구입니다.

'우리는 이러이러한 방법으로 유전체 데이터를 익명화하였고, 재식별 가능성은 7%이니 안전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재식별 가능성을 수치화한다는 것은 쉬운 노릇은 아닐 것이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한국에 점점 더 많은 외국인이 들어와 생활하고 있는 현실을 비추어 볼 때, 수집된 자료의 민족적 특성까지 고려하게 된다면 재식별 가능성을 계산하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가명정보를 동의 없이 특정 목적(통계작성, 과학적 연구, 공익적 기록보존)에 쓸 수 있게 한다는 것이 개정 개인정보 보호법 제3절 특례조항 신설의 취지이나 「보건의료데이터 활용 가이드라인」에서는 유전체 및 전사체 정보의 안전한 가명처리 방법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철저히 동의 기반으로 쓰라고 하니 아직도 활용의 길은 멀다. 가명처리 방안이 만들어질 것을 기다리지 말고 차라리 동의서를 확실하게 받아서 쓰자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이론적으로 데이터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유전체 데이터의 익명화 방법은 없다. 쓸모를 유지하는 수준의 적절한 익명화 또는 가명화 방법을 사회적 합의에 의해서 더 늦기 전에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현재의 정책 수준을 묘사한다면 내성이 없는 완벽한 항생제가 나오기 전까지 항생제 사용을 금지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어차피 그런 날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항생제를 지금 당장 사용하되 오·남용을 막도록 노력해야 한다.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2017년 11월 27일에 있었던 '심평원 약학정보원 개인질병정보 판매 행위로 본 현 정부의 보건의료 빅데이터 추진 전략의 문제점' 토론회 관련 기사(메디포뉴스 "보건의료 빅데이터 '재식별' 위험? 케케묵은 논의" 링크)를 보게 되었다. 토론회 자리에서 한양대학교 김재용 교수가 한 말이 가슴에 와 닿아서 이를 인용하는 것으로 오늘 글을 마무리하련다.

오늘 논의에서 비식별화와 재식별화가 강조됐는데, 유럽연합 차원에서 보건의료 빅데이터는 비식별화가 기본적으로 불필요하고 쓸모없다는 것으로 결론이 이미 나 있다. 지금 비식별화 기술 문제로 이 논의를 끌고 가면 안 된다. 비식별화와 식별화는 충분조건이 아니다. 문제 제기한 사람들이 이 문제를 놓침으로서 전산자원·법률 차원 논의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시민 차원에서도 의도는 좋았으나 전체적 논의 프레임이 빅데이터가 존재 한 하던 시절의 개인정보 논쟁 수준이다. 15년 전 프레임에서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2023년 1월 16일 월요일

전기기타는 전기를 먹여야 한다

지난 1월 7일, 아내와 함께 종묘를 산책한 뒤 낙원상가 3층을 둘러 보았다. 특별히 살 물건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화려한 모습의 악기를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게을리 했던 악기 연습을 다시 해 보겠다고 마음을 먹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별난 모습의 에피폰 기타.

머리가 없는 일명 headless 기타의 대명사인 Steinberger의 "Spirit"


이펙터가 이렇게 예쁠 수도 있구나! 마치 미술 재료상의 진열장 같다.

벌써 2년 전에 수리를 한 뒤 거의 손을 대지 않았던 나의 삼익 세미할로바디 기타(1999년 구입)에 다시 관심을 두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당시에 쓴 글 - '삼익 일렉트릭 기타의 수리가 끝나다'). 역시 낙원상가 방문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일회성 이벤트는 아니었던 것 같다.

주말에 대전 집에 다녀오면서 기타와 멀티 이펙터(Korg AX3G), 그리고 다이렉트 박스를 가지고 왔다. 오디오 믹서가 있으니 PC(주로 유튜브), AX3G 등 여러 입력을 다루기에 매우 편리한 환경은 이미 갖추어 놓았다. USB audio interface도 보유한 터라 PC를 통한 연습 수준의 재생과 녹음도 가끔 해 보고 있다. 아, MIDI controller keyboard를 마지막으로 연결한 것이 몇 주 전이더라...

먼지가 가득한 기타에 케이블을 연결해 보았다. 이런? 프론트 픽업에서 전혀 소리가 나지 않았다. 픽업 셀렉터의 문제인가, 혹은 픽업 내부에서 단선이 일어났나? 혹시 픽업을 교체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2년 전 수리를 할 때 셀렉터는 교체를 한 상태라서 문제가 생길 것 같지는 않고, 심한 충격을 주지 않았다면 픽업 내부에서 선이 끊어질 가능성 또한 거의 없다. 셀렉터를 분해해서 F-홀 바깥으로 꺼내어 보니 배선이 끊어진 곳은 없었다.

너무 오래 작동을 하지 않아서 픽업 셀렉터의 접점에 더러워진 것일지도 모른다. 셀렉터 조작을 수십번 반복하니 소리가 나기 시작하였다. 레버를 전환한 상태에서 잘 움직여 보면 소리가 더욱 커지기도 한다. 옳거니, 접점의 문제가 맞겠군... 작은 세공용 줄을 사용하여 접점을 몇 번 문질렀더니 완벽한 수준으로 소리가 나게 되었다. 내친 김에 기타용 케이블의 플러그도 문질러서 광택이 나게 하였다.

돌이켜보니 앰프에는 거의 연결을 하지 않고 기타를 쳤던 것이 화근이었던 것 같다. 세미할로바디라서 앰프를 연결하지 않아도 소리가 비교적 크게 나오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로 두었으니 전기부품의 작동 상태를 알 수가 있나... 그렇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고, 전기기타는 전기를 먹어야 한다. '멀티이펙터+믹서+헤드폰+가끔 PC로 녹음하기'의 조합이라면, 나의 기타를 더 이상 외로운 상태로 놔 두지는 않게 될 것이다. 

모델명 없는 나의 기타(1999년 구입). 삼익에서 그렉 베넷 모델을 출시하면서 만든 프로토타입으로 알고 있다. Royale RL3와 유사하나 바인딩과 금속 부품의 도금이 다르다.


일렉트릭 기타 구입처 정보

악기를 구입하기에 절대적으로 좋은 위치(즉, 서울)에 있는 동안 기타를 하나 더 사고 싶다는 생각을 떨쳐 내기가 어렵다. 숙소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낙원상가도 좋고, 중고 거래도 좋다. 악기 정보 및 중고거래 사이트로 잘 알려진 뮬(https://www.mule.co.kr/)에 며칠 들락거려 본 결과 몇몇 판매자들이 저렴하면서도 품질이 좋은 국산 OEM 제조 기타를 팔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국내 혹은 중국에서 만들어진 '노 브랜드' 제품 중 쓸만한 것, 또는 OEM 기타 중 약간 흠이 있는 것을 주로 판매한다. 특히 '악기플러스'는 좋은 제품을 실 사용에 문제가 없이 세팅하여 싸게 파는 것으로 유명한 것 같다. 아래의 링크는 각 판매자가 최근 6개월 동안 올린 매물(일렉트릭 기타로 한정)의 정보이다. 이미 팔린 물건까지 보려면 상세검색 메뉴에서 판매여부를 '전체'로 놓으면 된다.

  • 판매자 닉네임: 악기플러스(링크)
  • 판매자 닉네임: 현주7733(링크)

두 판매자 전부 인천 지역에서 활동한다는 것도 특이하다. 우리나라의 주요 기타 제조 및 수출업체가 인천에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리고 DBZ(창립자인 Dean Barrett Zelinsky이름을 딴 기타 회사로 현재는 Diamond Guitars로 바뀌었다고 함, 위키피디아 및 공식 웹사이트 - 특색이 있는 디자인의 기타를 볼 수 있음)라는 브랜드의 기타를 많이 취급하는 것도 우연은 아닌 것 같다. DBZ 기타의 헤드스톡에 붙어있는 새가 먹이를 낚아채는 모양의 금속제 DBZ로고 플레이트는 알리익스프레스에서 판매할 정도이니 꽤 알려진 브랜드였던 것 같다. 사실 삼사일 전까지는 DBZ 또는 Diamond는 전혀 모르던 브랜드였다. 독특한 모양의 set-in neck를 갖춘 기타, 혹은 아예 플라잉 V 스타일의 기타에 관심이 간다. 플라잉 V 기타를 갖게 된다면, 아마 뾰족한 끝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까져 나갈 것이 뻔하다.

이미 삼익 기타와 스콰이어 텔레캐스터(대전 사무실에서 장시간 쉬는 중)을 갖고 있으면서 또 무슨 기타란 말인가. 세워 놓을 공간도 부족한데.. 웹질이나 하면서 눈요기할 거리를 새로 찾았다는 것에나 만족하기로 하고, 연주 및 녹음 연습이나 하자고!

2023년 1월 13일 금요일

민감정보 수집·이용 동의서 뜯어보기

개인정보(또는 민감정보)의 수집·이용 동의서를 부주의하게 만들면 '차가운 금속제 철컹철컹 팔찌'를 차게 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개인정보보호 포털에서 제공하는 「알기쉬운 개인정보 처리 동의 안내서」('22.03.)를 잘 찾아서 읽어야 한다. 게시판 구조가 매우 희한해서 공지글에 대한 URL을 딸 수가 없다! 뭘 이렇게 만들었담... PDF 파일에 대한 직접 링크는 여기에 있다.

사실 법률적으로 흠이 없는 동의서 문구를 만들려면 이 법률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 '저희 회사가 이런 동의서 초안을 만들었는데 문제가 없을까요?'라고 질의 또는 민원을 넣는다? 글쎄... 별로 현명한 방법은 아닌 듯.

구체적으로 받아야 하는 동의와 그 근거를 찾아보자. 도움말씀을 주신 곽환희 변호사님께 감사를...

  1.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한 동의(개인정보 보호법 제15조)
  2. 개인정보의 제3자 제공에 관한 동의(동법 제17조)
  3. 개인정보의 목적 외 이용·제공에 관한 동의(동법 제18조)
  4. 민감정보 처리 동의(동법 제23조)
  5. 고유식별정보처리 동의(동법 제24조)

건강과 관련한 정보는 민감정보에 해당한다. 인터넷을 뒤져서 몇 개의 민감정보 수집 동의서를 찾아 보았다. 다음과 같이 3개의 항목을 설명한 뒤 맨 마지막에 동의 여부를 체크하도록 되어 있었다.

  • 수집·이용 목적
  • 수집·이용할 항목
  • 보유·이용 기간
  • 수집·이용 동의여부: 위 목적으로 민감정보를 수집·이용하는 것에 동의합니다(동의하지 않음□ 동의함□)

수집·이용 목적을 보자. '보증료 우대 자격 여부' '직원 채용절차 진행 및 인력관리' '지원자 분석을 위한 목적(우대사항 적용)' 등.

민감정보 수집항목은 단순히 '건강정보'라고 한 곳도 있었고, '장애사항'이라고 쓴 곳도 있었다.

인터넷에서 찾은 동의서가 법적으로 100% 완벽한지는 나도 확신하기 어렵다. 공개된 동의서로부터 법적인 허점을 찾아서 고발을 한다고 알리고, 이를 빌미로 합의를 유도하는 슬기로운(?) 법률 전문가가 나설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수집 및 이용할 항목을 '건강정보'라 하고, 목적에는 '고객 맞춤형 건강 분석 및 어쩌고저쩌고...'라고 하면 사실상 포괄적 동의와 가까워지지 않을까? 가명처리 후 제3자 제공에 대한 것은 별도로 하더라도 말이다.

그래도 영 찜찜한 뒷맛이 남는다. 기존의 인체유래물 연구 동의서(제34호 서식)은 유전체 정보까지는 수용할 수 있다. 건강정보 또는 보건의료 데이터라는 새로운 유형의 정보를 수집하여 이용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모범적인 동의서 서식이 있다면, 그리고 외국에서 말하는 포괄적 동의가 허용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진공관 테스터 자작을 위한 가변 바이어스 공급회로 공부

제목은 대단히 거창하나 글 내용은 매우 간단하다. 끝에 다다르면 옴(Ohm)의 법칙이 모든 것을 지배함을 알게 될 것이다.

진공관 테스터를 만들려면 바이어스 전압을 바꾸어 가면서 공급하는 회로가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앰프를 만들 때 널리 사용하는 자기 바이어스 회로를 쓸 수는 없다. 가장 간단하게는 30V 정도의 DC를 얻어서 가변저항(포텐셔미터)을 통해 컨트롤 그리드에 연결하면 된다. 단, (+)극에 해당하는 선을 주 회로의 그라운드에 연결한다는 것만 기억하면 된다. 그렇게 해야 그리드에 마이너스 전압이 걸린다.

B 전원(HT)을 만드는 파워 트랜스포머의 2차 탭에서 선을 따서 마이너스 수십 볼트의 직류를 만드는 기법도 있는데, 회로를 이해하기가 조금 까다롭다. 상세한 설명은 The Valve WizardBias supply 항목에 잘 나온다.

나는 소용량 전원 트랜스포머(220V:15-0-15V)를 여분으로 갖고 있기에 이를 가변 바이어스 공급회로에 사용할 예정이다. 흐르는 전류량은 매우 적으므로 작은 용량의 트랜스포머로도 충분하다.

The Valve Wizard 웹사이트에서 소개한 기본적인 바이어스 공급회로를 잠시 들여다보자. 빨간 글씨는 내가 추가한 것이다. R2와 R3이라는 저항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공관 테스터를 자작하는 정도의 수준에서는 생략해도 큰 문제는 없다. C2는 여러 진공관이 이 바이어스 공급회로를 같이 사용할 경우 grid leak current를 디커플링하는 동시에 P1과 같이 평활 필터의 역할을 한다. 전류량이 적어서 주 평활 캐패시터(C1)와 마찬가지로 큰 용량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략 10~100uF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그림 출처: The Valve Wizard - Bias supply(링크)

먼저 R2의 역할을 생각해 보자. 이것이 없다면, 가변저항을 끝까지 돌렸을 때 0V의 전압이 얻어질 것이다. 바이어스 전압이 0V이라면 플레이트 전류가 과도하게 흐를 것이다. 이를 차단하기 위한 역할이다.

R3은 일종의 pull-down resistor에 해당한다. 만약 가변저항의 회전자 접촉이 좋지 않아서 허공에 뜬 상태가 되면, 그리드에는 아무런 전압이 가해지지 않는다. 바이어스 전압이 0V인 상태보다 더욱 위험하다. 이럴 때 바이어스 전압을 최대의 마이너스 값으로 붙들어 매는 역할을 한다. 아주 품질이 좋은 가변저항을 사용한다면 R3를 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더군다나 진공관 테스터는 앰프처럼 장시간 켜 두는 것이 아니므로 생략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R2와 R3은 안전장치의 역할을 한다. 다만 P1 와이퍼의 회전 각도에 따라 실제로 몇 V가 나오는지 계산하는 것이 조금 귀찮아진다. R3을 P1의 열 배 정도 값으로 해 놓으면 최종 출력 전압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정류 직후 -30V(Vin)가 만들어졌다고 하자. P1 = R2 = 10K라면, 출력되는 전압의 조절 범위는 -15V~-30V가 된다. 초단관이라면 바이어스 전압을 0V에 가깝게 만들어야 하므로(이를 '높은 바이어스 전압'이라 표현하는 것은 좀 어색하고, '얕은 바이어스 전압'이라고 하는 것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일반 자작인들은 어떻게 표현하는지 모르겠으나...) R2에 더 작은 값의 저항을 써야 한다. 다음의 원칙을 이해하면 가변저항 회전 각도에 따른 바이어스 전압을 쉽게 계산할 수 있다.

  • P1의 와이퍼 위치에 따라 저항값은 A와 B로 나뉜다.
  • 정류회로 양 끝에 걸리는 전체저항은 (A와 R3 병렬연결) + B + R2이다.
  • (정류회로에서 출력되는 전압) x (B + R2)/전체저항 = (바이어스 전압)이 된다.

-30V, P1 = 10K, R2 = 100R, R3 = 100K의 조건에서 조절 범위는 -0.6~-30V로 계산이 되었다. 다른 것을 그대로 두고 R2 = 1K로 하면 -3V~-30V가 된다.

Vin = -30V, R3 = 100K인 조건.

진공관 테스터의 스크린 그리드 및 플레이트 공급용 전원은 최대 300V 정도가 나오는 DC-DC boost converter를 쓸 계획이라서 적당한 DC 전원만 마련되면 제작 자체는 매우 간단해질 것으로 보인다.

머릿속에서만 설계하고 납땜을 하다가 그냥 꼬리를 내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지만 바이어스 공급 회로를 이해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6LQ8 SE amplifier의 신호입력용 RCA 단자 바꾸기

앰프의 신호 입력 단자(RCA)에 고질적인 접촉 불량 문제가 있어서 이를 교체하기로 하였다. 품질이 좋은 패널용 RCA 단자는 상당히 비싸므로, 언젠가 쓸 일이 생길 것이라 생각하고 미리 사다 놓은 기판형 단자를 쓰기로 하였다. 이 부품은 엘레파츠 품목번호 EPX33T9T(RCA 401)로서 개당 가격은 450원에 지나지 않는다. 패널에 붙이기는 별로 적당하지 않다. 일반적인 자작인이라면 보통 한 조에 5천원 혹은 그 이상 가격이 나가는 패널용 RCA 단자(예: DGS-델트론의 RCA-NA, 오디오파트 링크)를 쓸 것이다.


플라스틱 부분을 실톱으로 잘라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기존의 단자는 그대로 두고, 새 단자는 핫멜트를 이용하여 옆판에 붙여버렸다. '멋'보다 '실용'을 추구한 셈이다.



교체 후에는 아무리 건드려도 소리가 났다 안 났다 하는 접촉 불량 증세가 완전히 사라졌다. 기존의 단자를 해체해 보니 접촉 불량의 원인은 부품 자체의 불량이 아니라 납땜 불량이 주요 원인인 것 같았다. 정확한 재조사 후 기존의 단자를 다시 사용할 가능성이 있어서 이전의 RCA 단자를 그대로 남겨 둔 것이다.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기에는 너무나 아깝다.

양질의 부품을 이용하여 좋은 접촉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2023년 1월 6일 금요일

그래서 올해는 뭘 만들 것인가?

연초에 세운 계획이 항상 100%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도중에 흥미를 잃어서 그만 두기도 하고, 여건이 허락하지 않아서 도중에 대폭 계획이 바뀌기도 한다. 작년 말에 감은 R-코어 출력 트랜스포머를 사용해서 6V6 싱글 앰프를 만들어 보겠다고 어렴풋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계획을 꼭 올해 안에 달성할 필요는 없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진공관이 도대체 어느 정도의 성능을 보이고 있을까? 화장실 백열등이 '퍽'하고 끊어지듯이 돌연히 사망하는 일도 있겠지만, 대개는 조금씩 성능이 감퇴되기 때문에 언제 교체를 해야 할지 정확히 판별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측정을 통해 데이터시트에 표기된 수치의 50~60% 정도로 열화되었을 때 교체하는 것이 현명할 터인데, 그저 취미로 앰프를 이따금 만드는 사람이 진공관 테스터(기성품)를 갖추기는 상당히 어렵다. 따라서 간단한 수준의 진공관 테스터를 직접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떨까 한다.

무엇을 측정할 것인가? 소위 '에미션'의 정도를 재면 된다. 진공관을 오래 쓸수록 주어진 플레이트 전압과 바이어스 전압에서 흐르는 플레이트 전류가 점점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43 power pentode의 특성 곡선을 보자.

데이터시트는 The Valve Museum(링크)에서 가지고 왔다.

빨간색 세로선은 플레이트 전압이 125V인 상황이다. 바이어스 전압이 -10V라면 32 mA(파란색 점)가 플레이트로 흘러야 한다. 그러나 성능이 떨어진 진공관은 동일 조건에서 더 적은 전류가 흐를 것이다. 예를 들어 이 조건에서 20 mA(녹색 점)이 흐를 것이다. 정상적인 43 pentode는 동일 플레이트 전압에서 바이어스를 더 깊게(-15V) 걸어야 이런 전류값이 측정될 것이다. 

이상은 단일 조건에서 측정한 결과만을 논한 것이다. 플레이트 전압을 고정한 상태에서 바이어스 전압 변화에 대한 플레이트 전류 변화분을 구하면 상호 콘덕턴스(mutual conductance, gm)가 된다. gm은 저항의 역수이므로 ohm을 뒤집은 'mho'를 단위로 쓴다.

바이어스 전압이 1V 올라갔더니(-10V => -9V) 플레이트 전류가 1mA 더 흘렀다면, gm은 (플레이트 전류 변화분)/(바이어스 전압 변화분) = 1mA/1V = 1 millimho = 1,000 micromho가 된다. 물론 진공관의 작동이라는 것이 모든 영역에서 선형적인 것은 아니니 지나치게 극단적인 플레이트 전압/바이어스 전압 조건에서 플레이트 전류를 측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인터넷을 뒤지면 진공관 테스터 DIY에 대한 정보가 나온다. 심지어 curve tracer를 만드는 방법도 이따금 보이는데, 그런 수준까지는 필요하지 않다. 간단한 진공관 테스터 자작 정보를 찾아 보았다.

[Valve Heaven] A low cost, easy to build diy valve/tube tester

이것이 매우 적당해 보인다. 배전압 정류회로를 사용하여 스크린 그리드 및 플레이트 전압을 몇 단계로 조절하게 만든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 약간의 변형을 가하면 된다. 가령 내가 사용하는 진공관은 히터 전압이 6.3V, 12V, 25V로 다양하니 DC 어댑터와 조절 가능한 컨버터를 조합하면 될 것이다.

진공관 테스터 제작 매뉴얼을 인쇄해 놓고 여가 시간에 읽어 나가면서 나의 상황에 맞추어 아이디어를 다듬어 나가야 되겠다.

웹호스팅 서버의 PHP 버전을 5.2에서 7.2로 업그레이드하다

나는 호스팅어라는 업체의 싱글 웹호스팅 서비스를 통해서 공식 홈페이지(http://www.genoglobe.com/) 및 다음과 같은 두 개의 위키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위키 엔진은 DokuWiki인데, 서버에 설치된 PHP 버전(5.2)이 낮아서 2020년 7월 배포된 Hogfather 버전부터는 엔진을 업그레이드하지 못하고 있었다.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으면 다음 화면처럼 지저분한 알림이 계속 뜬다. 최신 버전이 더욱 안전하고 효율적임은 당연하므로(가끔 업데이트 배포 직후 bug에 대한 hotfix가 나오기도 하지만)이므로, 업데이트가 나오는 대로 적용하는 것이 현명하다.


바로 오늘까지도 호스팅어의 PHP를 업그레이드를 어떻게 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심지어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혼자 해결할 수 없다면 운영진에 물어보면 되지 않겠는가? 지금껏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한 것이 부끄럽다.

오랜만에 호스팅어에 접속하여 홈페이지를 수정한 뒤 PHP 업그레이드에 대한 도움말을 찾아보니 대쉬보드의 PHP Configuration 메뉴에 버전을 올리는 메뉴가 있다고 한다. PHP 7.2로 아주 손쉽게 업그레이드를 한 뒤 다시 위키 사이트로 접속하여 Wiki Upgrade 기능을 사용하여 최신 엔진을 설치하였다. 이렇게 쉬운 것을 2년 반 동안이나 질질 끌고 있었다.

교수신문에서 설문조사를 통해 2022년의 사자성어로 선정한 것은 논어에 나오는 '과이불개'(過而不改,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음)였다(링크). PHP 버전을 올리지 않은 것이 잘못이라고 할 것은 아니지만, 최적의 상태가 아님을 알고 있으면서도 개선하지 않은 채 그냥 두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2023년 1월 5일 목요일

약간 헷갈리는 GDPR 조문 체계, 그리고 또 포괄적 동의(broad consent)!

GDPR, 즉 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일반개인정보보호규칙 또는 일반데이터보호규칙)은 유럽연합의 데이터 보호와 관련한 법이다. 지침이 아니라 법이므로 강제성이 있으며, 2018년부터 실행되고 있다.

GDPR에서는 포괄적 동의(broad consent)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Recital 33에 이러한 문구가 있다.

[Consent to Certain Areas of Scientific Research] It is often not possible to fully identify the purpose of personal data processing for scientific research purposes at the time of data collection. Therefore, data subjects should be allowed to give their consent to certain areas of scientific research when in keeping with recognised ethical standards for scientific research. Data subjects should have the opportunity to give their consent only to certain areas of research or parts of research projects to the extent allowed by the intended purpose. (구글 번역 결과: [과학 연구의 특정 영역에 대한 동의] 데이터 수집 시점에 과학적 연구 목적을 위한 개인 데이터 처리의 목적을 완전히 식별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데이터 주체는 과학 연구에 대해 인정된 윤리 기준을 준수할 때 과학 연구의 특정 영역에 동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데이터 주체는 의도된 목적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연구의 특정 영역 또는 연구 프로젝트의 일부에 대해서만 동의할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이 문구가 바로 GDPR이 포괄적 동의를 허용하는 근거로 인식되고 있다. 적법한 동의(consent)의 조건은 Article 7 Conditions for consent에서 설명한다.

Recital이라... 이를 우리말로는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전문(前文) 또는 설명조항이라고 번역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전문이라고 하면 preamble이 떠오른다. 즉 법령 등에서 첫째 조항 앞에 적어서 그 법령의 목적이나 기본 원칙을 밝히는 글(다음 사전 링크)을 말한다.

이런 '리사이틀'이 아니라... 그림 출처(링크)

GDPR의 Recital은 그런 의미의 전문은 아니다. GDPR의 공식 웹사이트(https://gdpr-info.eu/)를 방문해 보자.


가장 왼쪽을 원문이라고 해 두자. Article 1~99가 11개의 장(chapter)로 구분되어 있다. Chapter 2, Article 7 'Conditions for consent'(링크)를 방문하면 1에서 4까지의 조문이 있고 그 아래에 suitable recital(32, 33, 42, 43)이 나열되어 있다. 이제 대략 이해가 간다.

GDPR을 17개 국어로 설명하는 GDPR-TEXT.COM을 방문하면 한글로 번역된 친절한 설명을 만나게 된다. 본문의 각 조를 찾아가면 이를 설명하는 전문(recital)이 연결되어 보인다. 이것 역시 OK!

자, 그러면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의 GDPR 대응지원센터(링크)를 방문해 보겠다. GDPR을 처음 공부할 때 많은 도움이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여기에 당연히 GDPR의 '원문', 즉 Article 1~99과 Recital에 해당하는 것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자료실 -> GDPR 조문(링크)을 찾아가 보면 원문과 번역문이 같이 게시되어 있다.

엥? Recital이 먼저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한참을 지나서 2/5쯤 넘기니 비로소 Chapter 1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왜 이렇게 헷갈리게 만들어 놓았는가? 그리고 각 article을 설명하는 recital이 연결되어 있지 않아서 좀 불편하다. 

공부할 글을 두 편 소개하는 것으로 오늘의 글을 마치고자 한다.

Life Science, Society and Policy (2020). Broad consent under the GDPR: and optimistic perspective on a bright future 링크

EDPB Document on response to the request from the European Commission for clarification on the consistent application of the GDPR, focusing on health research (2021) 링크 (EDBP = European Data Protection Board)

UNESCO (2017), Report of the IBC(International Bioethics Committe) on big data and health 링크 <= Broad consent의 개념을 소개한 문구가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특히 52조는 broad consent에 대한 오해를 잘 설명하고 있다. Broad consent란 specific consent(설명 동의)에 대한 반대 개념이 아니라, 주어진 정보를 이용하여 할 수 있는 연구의 범위에 동의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개인정보 보호법에서는 동의 사항을 세분화하여 각각에 대한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것이 개정 커먼룰에서 공식적으로 도입한, 그리고 GDPR에서도 간접적으로 인정한 포괄적 동의를 금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포괄적 동의를 보다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2023년 1월 13일 업데이트 - 포괄적 동의에 필요한 요소

45 CFR § 46.116 "General requirements for informed consent"에는 설명 동의가 갖추어야 할 요소를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포괄적 동의에 관한 것은 (d) 항목 "Elements of broad consent for the storage, maintenance, and secondary research use of identifiable private information or identifiable biospecimens"에 나열되어 있다.

  1.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일반 동의 내용
  2. 연구 유형에 대한 일반적 설명
  3. 정보나 인체유래물의 공유가 발생할 수 있는 기관이나 연구자의 유형에 대한 기술
  4. 이들이 보관되고 관리할 수 있는 기간('무기한'도 가능)과 연구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간('무기한'도 가능)에 관한 설명
  5. 특정 세부 연구의 상세 내용에 대해 연구대상자나 법정대리인에게 고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술
  6. 연구 결과가 연구대상자에게 공개되지 않을 수 있다는 진술
  7. 연구대상자의 권리와 개인 식별 가능한 정보나 인체유래물의 보관 및 사용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 연락처

포괄적 동의서의 템플럿은 다음을 참고하라.

Attachment D - Recommendations for a Broad Consent Template

우리나라의 개인정보 보호법이 과연 포괄적 동의를 허용하고 있는지 법조문을 들여다보고 몇 군데 질문을 해 보니 돌아오는 대답은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2022년에 개최된 정부 어느 위원회의 심의자료를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현 개인정보 보호법은 개인(민감)정보의 처리 시 구체적 동의 원칙이며 포괄동의는 불허, 인간대상연구에 관한 법령인 생명윤리법은 포괄동의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 없음...(중략)...IRB는 포괄적 연구목적 동의와 연구 승인에 대한 구체적 법적 근거가 부재하여 이에 대해 보수적으로 심의함

우리나라 법에서 포괄적 동의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이를 수용해야 한다는 논의가 학계와 산업계에서 불거지고 있는데, '포괄적 동의'라는 단어를 놓고 떠올리는 의미가 서로 다른 것 같다. 일단 포괄동의는 구체적 동의의 반대편에 서 있는 개념이 아니라고 UNESCO 보고서(링크)에서 말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포괄적 동의는 '바이오뱅크'의 역사적 맥락을 놓고서 대두되었음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에 대한 도움이 될 논문은 한국의료윤리학회지(2012)에 실린 「바이오뱅크와 포괄적 동의」(링크)이다.



2023년 1월 4일 수요일

LTspice에서 오극관(pentode) 심벌 편집하기

43과 같은 오극관은 대개 억제 그리드(suppressor grid, G3)가 관 내부에서 캐소드와 연결되어 있으므로 바닥면의 핀에 직접 연결되지는 않는다. 오극관에 대한 특허권은 필립스가 갖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기업에서는 특허를 침해하지 않고 이와 동등한 진공관을 개발하려 노력한 끝에 빔 사극관(beam tetrode)를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최초의 실용적인 빔 사극관은 RCA의  6L6이라고 한다. 이상의 내용은 제이앨범('초보자를 위한 지식(11): 5극관, 빔관'링크)에서 발췌하였다.

LTspice에는 다음과 같이 딱 세 개의 진공관 심볼이 내재되어 있다. Pentode 심벌에서는 캐소드와 억제 그리드의 내부 연결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기존의 심벌을 편집하여 제대로 된 오극관 심벌을 만들어 보고자 한다.


심벌 위에 마우스 포인터를 놓고 오른쪽 버튼을 클릭하면 Component Attribute Editor 창이 열린다. 가장 위의 'Open Symbol'을 클릭하여 심벌 편집창을 연다.

흠... 마치 요즘 복습하고 있는 LibreCAD의 화면과 비슷한 것이 열린다. 선을 그려 넣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클릭하니 'Draw' 기능이 나왔다. 선, 사각형, 원, 호 등을 그릴 수 있다.

수정 완료한 모습

새로운 연결선을 넣고 마무리하여 최종 완성 심벌을 만든 뒤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였다. 



참 쉽다. 그렇지 않은가?


2023년 1월 1일 일요일

딱 필요한 만큼만 공부하는 진공관 앰프 자작인용 전자기학 생기초(R-코어 출력 트랜스포머)

2023년 1월 1일부터 또 진공관 앰프 이야기를 써 본다. 나는 진공관 싱글 엔디드 앰프용 출력 트랜스포머(R-코어 사용, 5K:8 ohm)를 딱 두 번 만들어 본 사람으로서 공부를 해야 얼마나 했겠고 지식의 깊이는 또 얼마나 되겠는가. 솔직하게 밝히자면 2018년 코어 한 조에 에나멜선을 감아서 몇 년 사용하다가, 2022년에 이를 다 풀어내고 같은 코어에 다시 선을 감아 사용하는 것이 전부이다. 더군다나 앞으로는 트랜스포머를 새로 감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분할감기니 인덕턴스니 부유용량이니 투자율이니 에어 갭이니 하는 전문적인 용어를 설명하기 위한 글이 아님을(이를 설명할 정도로 이해하지 못한다) 미리 밝혀 둔다.

단지 부귀환(negative feedback, NFB)을 걸기 위하여 출력 트랜스포머의 2차 권선 두 가닥 중 어느 것에서 선을 따야 하는지에 관하여 이론적으로 아주 조금 알아보고 궁리한 것을 기록하기 위하여 오늘의 글을 적는다. 기성품 출력 트랜스포머를 쓰는 경우는 고민할 일이 전혀 없다. 2차측에 8(또는 4)옴과 0옴으로 라벨이 붙은 것 중에서 가장 큰 숫자가 적힌 탭을 쓰면 된다. 출력 트랜스포머를 직접 감은 경우에는 이 글을 읽어나가면서 해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흔히 앰프 자작인이 NFB라고 말하는 것은 좀 더 정확하게는 global negative feedback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다음 그림과 같이 local NFB라는 기법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국내 웹문서에서 다루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global NFB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Local negative feedback의 사례(출처:Tube Amplifiers Explained, Part 11. Negative feedback(링크)

Global NFB를 걸어 주려면 입력 신호와 같은 위상의 출력 신호를 저항으로 적절히 감쇠시켜서 초단 캐소드 저항 근처에 연결(자기 바이어스 회로의 경우)하는 것이 대표적인 방법이다. 캐소드와 캐소드 저항 사이에 연결을 하거나, 또는 캐소드 저항과 그라운드 사이에 저항을 하나 더 삽입한 뒤 그 사이에 연결하는 방법을 사용한다(아래 그림). 고정 바이어스 회로를 채택한 경우에는 어떻게 NFB를 거는지 잘 모르겠다. 출력이 높아지면 캐소드와 그라운드 사이의 전압 차이가 커져서 바이어스가 더 깊게 걸리고, 이에 의해서 입력 신호가 낮아져서 부귀환 효과가 나타나는 것인....가? 라고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다.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림 출처: VTADIY - Vacuum Tube Amplifier DIY 4.4 Global Negative Feedback in a vacuum tube amplifier(링크). 진공관을 거칠 때마다 출력쪽에는 입력과 위상이 180도 다른 증폭된 신호가 나온다는 것을 기억해 두자.

그 다음에 공부할 것은 트랜스포머의 극성(polarity) 표시이다. 아래에 소개한 회로도(여러 차례 언급할 것이므로 출처를 따서 VIAS라고 부르겠다)를 보면 트랜스포머의 1차 및 2차 단자쌍 중 어느 하나에 검은색 점이 표시되어 있다. 1차 권선의 검은 점 쪽으로 전류가 들어가면, 2차 권선의 검은 점 쪽으로 전류가 흘러 나옴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자면 검은 점이 찍인 1차와 2차 탭은 위상이 같다. 거창하게 렌쯔의 법칙 같은 것을 암기할 필요는 없다. 권선을 어느쪽부터 감기 시작했는지는 제작자 나름이지만, 트랜스포머를 제작할 때 1차와 2차의 감은 방향을 같게 배치했다면 시작 혹은 끝에 해당하는 1차 및 2차 권선의 가닥은 위상이 같다.

그림 출처: VIAS, Virtual Institute of Applied Science(링크)

VIAS 그림에서 1차(PRI)와 2차(SEC)의 권선 방향은 전부 left-handed로서 동일하다. 권선의 감은 방향은 어떻게 판별하는가? 전자기학과는 관련이 없지만 압축 용수철의 방향을 설명하는 문서(링크)를 잠시 방문해 보라. 마치 잭 스패로우가 망원경을 들여다보듯 코일의 축 방향을 들여다보면서, 코일에 손가락을 대고 오른쪽(시계방향)으로 돌릴 때 손가락이 당신의 눈에서 점점 멀어진다면 바로 그것이 right-handed coil이다. 일반적인 나사(오른나사)를 돌려서 재료에 박아 넣을 때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Handedness는 코일을 180도 돌려 놓아도 달라지지 않으며, 1차 권선과 2차 권선의 handedness가 동일하다면 둘 다 시작 또는 끝에 해당하는 곳의 위상이 같으므로 여기에 검은 점을 찍어 표시하면 된다.

다음에 공부할 것은 R-코어 트랜스포머의 제작 실제에 관한 것이다. 우선 제이앨범 한병혁 님의 유튜브 동영상('진공관 출력트랜스용 R-코어 소개', 15분 29초 분량)을 통해 R-코어 트랜스포머가 무엇이고 왜 음질이 우수한지 복습해 보자. 제이앨범이 진공관 앰프 자작에 관하여 내게 미친 영감과 실질적 도움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두 번째 그림(VIAS)에서는 1차 및 2차 권선을 따로 그렸지만, 실제는 하나의 보빈(원형의 실패와 같은 구조물)에 두 종류의 권선을 감는다. R-코어 출력 트랜스포머 자작에서 흔히 그렇게 하듯이 하나를 다 감고 나머지를 감는 단순한 방법도 있고, 번갈아 감는 방법도 있다. 다음 그림과 같이 똑같은 규격의 보빈에 1-2차 권선을 함께 감은 것을 두 개를 마련한 뒤 R-코어 하나의 양 팔에 하나씩 끼워 넣어야 된다. 그리고 두 보빈의 동일 차수 권선(1차와 1차, 2차와 2차)을 직렬로 연결해야 한다. 즉 자연스럽게 '2분할 감기'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연결을 해야 하나?

오른쪽의 것이 1-2차 코일을 다 감은 완성된 보빈이다. 절연테이프를 두른 뒤 왼쪽처럼 두 개를 하나의 코어에 끼워 넣는다. 보빈에 코일을 다 감은 것을 뭐라고 불러야 하나? 나도 모르게겠다. 

일단 1차 권선을 서로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생각해 보자. 2차 권선도 똑같이 생각하면 된다. VIAS 그림에서 보인 이론적인 트랜스포머에서는 보빈의 양 끝에 에나멜선이 각각 노출되어 있다. 따라서 두 개의 보빈에 분할하여 감은 권선을 직렬로 연결하려면 R-코어를 따라서 서로 가깝게 향한 선을 연결하면 된다. 권선을 180도 돌려서 장착해도 이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로 R-코어 권선을 감을 때에는 보통 보빈의 한쪽 끝면에 시작과 끝 선이 전부 나오게 만든다(꼭 이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다음 그림에서 굵은 점선 아래쪽 절반에 그린 것이 일반적인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각 그림에 대하여 왼쪽의 것은 권선의 직렬 연결을 보기 쉽게 나타낸 것이지만, 실제 R-코어에 권선을 이렇게 끼우지는 않을 것이다. 오른쪽 그림과 같이 코어의 양 팔에 권선을 하나씩 끼우게 되는데 방향이 헷갈릴 것이다. 위의 경우는 이미 설명했듯이 바로 끼우나 뒤집어 끼우나 상관이 없고, 서로 가까운 선(코어를 따라 마주보는)을 연결하면 직렬이 된다. 그러나 권선작업을 한 뒤 보빈의 한쪽 면에 에나멜선의 시작과 끝이 같이 나오도록 마감을 하였다면, 고정 방향은 하나로 결정되어 버린다. 노출된 양 끝선이 전부 한 면을 향하도록 코어에 끼운 다음, (끝-끝)을 서로 연결하면 된다. (시작-시작)을 서로 연결해도 되지만 편의상 나는 (끝-끝)으로 통일하기로 한다.

R-코어용 권선 두 개를 서로 연결하는 법. 1차 권선 및 2차 권선 전부 동일하다. 빨간 X자 표시는 실수로 넣었다. 원본 그림을 남겨 두지 않아서 수정을 하지 못하였다.

지금까지 기본적이면서도 꽤 중요한 사항을 알아 보았다. 그러나 아직 해결이 되지 않은 것이 있다. 2차 권선 두 가닥 중 어느 것을 NFB 연결에 사용할 것인가? 사실은 이렇게 고민할 필요는 별로 없다. 2차 권선에서 나오는 두 가닥의 리드선 중 어느 하나를 초단 캐소드 저항 아래에 연결해 본 뒤 굉음이 나거나 소리가 더 커지면, 반대편의 것을 연결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론적으로 접근한 것과 실제 실험 결과가 일치하는지 확인하지 않고는 못견디는 성미라서, 지금까지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어떻게 연결해야 하는지를 추론해 보기로 한다. 일단 두 개의 진공관을 연이어 거치게 되므로 플레이트를 거쳐 출력 트랜스포머 직전에 다다르는 증폭 신호는 입력과 동일한 위상일 것이다. 그리고 VIAS 그림과 같이 1차와 2차의 감는 방향이 같을 경우, 시작(또는 끝) 리드선은 위상이 같다고 하였다(즉 검은 점). 그렇다면 1차 권선의 시작점을 플레이트에, 2차 권선의 시작점을 8 ohm 위치라 생각하고 이를 NFB 포인트로 삼아 초단쪽에 연결하면 될 것이다.

S와 E는 감은 코일의 시작(start)과 끝(end)을 의미한다. 두꺼운 빨간색은 1차, 나머지는 2차 코일의 직렬연결을 뜻한다. 1차와 2차 코일은 전부 보빈 위에 같은 방향으로 감아야 한다. 여기에서는 E와 E를 연결하였지만, S와 S를 연결해도 된다. Global negative feedback을 걸기 위한 배선은 2차의 8옴 측에서 따면 된다. 출처: 내 블로그(링크)

실제 앰프에 연결하여 테스트한 결과는 내 추론과 잘 일치하였다. 출력 트랜스포머에 극성을 표시한 회로도를 다음의 그림에 보였다. 다음번 제작을 꿈꾸는 회로도에 맞추어 그린 것이라 진공관 형번과 다른 부품의 수치는 정확하지 않다.

본문에서는 트랜스포머의 극성을 '검은 점'으로 표시한다고 설명했는데 LTspice로 그린 회로도에는 속이 빈 작은 원으로 극성이 표시되었다.

대충 시행착오로 해도 될 일을 변변치 못한 이론을 곁들여 부정확하게 설명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글이 나와 비슷한 수준의 진공관 앰프 자작인에게 고민을 덜어주는 기회를 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은 없다.

오류가 있다면 얼마든지 지적 바랍니다!


더 알아보고 싶은 사람을 위한 읽을 거리

내가 바이블로 삼는 The Valve Wizard는 출력 트랜스포머 관련 사항은 다루고 있지 않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