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12일 수요일

그동안 KRA/SRA 등록을 하면서 library selection 항목을 잘못 입력했던 것 같다

먼저 이 문서는 KOBIC이나 NCBI 데이터 등록 담당자에게 공식적으로 문의하여 얻은 결론을 바탕으로 쓴 것은 아님을 밝혀 둔다. 순전히 웹 검색과 혼자 생각한 것으로만 쓴 것이다.

데이터를 더욱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제대로 작성한 메타데이터(다른 데이터를 설명하거나 기술하는 데이터)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KRA/SRA에 sequencing raw data를 등록할 때, 이 자료가 어떤 장비에서 만들어졌으며 라이브러리는 어떤 키트로 만들었는지 등을 꼼꼼하게 적는 것을 의미한다. 요즘은 시퀀싱 업체에서 리포트를 만들어 제공하므로 이를 찾아 적는 것에 별 어려움이 없지만, 과거에 연구소 내부 센터에 분석을 의뢰한 경우에는 그렇지를 못하였다. 남은 것은 FASTQ 파일과 이것이 어떤 장비에서 생산되었는지에 해당하는 기억이 전부이다. 물론 이런 방법이 통했던 것은, 나중에 담당자에게 전화나 이메일로 물어서 필요한 메타데이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달라졌을 것으로 생각한다. 

KRA/SRA의 메타데이터 중에 'library selection'이라는 항목이 있다. NCBI 웹사이트에는 자세한 설명이 없으니 K-BDS 웹사이트 자료실의 '2023년도 바이오 연구데이터 표준등록양식' 파일을 다운로드하여 30쪽부터 나오는 해당 항목을 살펴보자. 국문으로는 '라이브러리 선택항목'이라고 번역해 놓았으며, 가능한 34가지 값을 나열해 놓았다. 

나는 습관적으로 library selection을 random이나 PCR로 설정해 놓았었다. Whole-genoe (shotgun) sequencing library는 DNA 단편을 'random'하게 고르는 일부터 출발하고, 라이브러리 제작 막바지 단계에서 PCR을 하니까 그저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요즘은 shotgun sequencing이라는 말도 잘 쓰지 않는 것 같다. PubMed에서 찾은 두 용어의 쓰임새를 보라. Whole genome shotgun sequencing은 clone-by-clone 방식의 genome sequencing 방법에 대체하는 새로운 방식으로서 쓰이기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제는 shotgun 방식이 아닌  whole genome sequencing을 상상할 수가 없다.

현재는 whole genome sequencing이라는 용어를 압도적으로 많이 쓴다.

심지어 1997년 Genome Research에는 이런 글도 실렸었다. Philip Green의 'Against a whole-genome shotgun'. Whole-genome shotgun을 반대하다니! 전기차를 반대하다니! 인공지능을 반대하다니! 나는 내 블로그에 쓴 2020년 글에서 이 perspective를 언급한 일이 있다(Jvarkit: Java utilities for bioinformatics).

조금 전에 옆 방에서 서울대학교 백대현 교수(지놈포미의 설립자이기도 함)의 온라인 미팅이 있었다. 백대현 교수는 이 글을 쓴 필립 그린의 연구실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오늘 접속을 해 보니 필립 그린 웹사이트에서 더 이상 David Gordon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은퇴를 한 것 같다. 아, 추억의 consed여!


내가 library selection 방법으로 주로 골랐던 값은 다음의 두 개였다.

  • RANDOM: random selection by shearing or other method
  • PCR: source matrial was selected by designed primers

그러나 어제 게놈 고물상(취지, 최근 작업) 관련 일을 하면서 오래전에 만든 HiSeq 2000 데이터를 다루다가 문득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만약 library selection = PCR이라면, genomics DNA로부터 specific primer를 이용하여 PCR을 한 경우에만 이 용어를 써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실제로는 Covaris 등의 기기나 효소를 이용하여 fragmentation을 한 뒤 TapeStation 등으로 'size fractionation'을 한 것이므로, 이를 택해서 명확히 기술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제 데이터를 등록할 때에는 size fractionation으로 library selection 항목의 값을 넣었다.

그러면 나의 최종 선택은 옳았는가? 아직 확신을 하지 못하겠다. 예를 들어 rapid sequencing kit로 나노포어 시퀀싱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이 경우에는 분리 과정에서 저절로 깨진 genomic DNA를 그대로 사용한다. 전기영동을 하여 특정 위치에 해당하는 밴드를 오려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size fractionation을 실제로 하지는 않은 것에 해당한다. 따라서 random으로 표기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일루미나의 경우에는 bead를 이용하여 size selection을 수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적극적인 size selection에 해당하지 않고 그저 작은 DNA 단편을 제거하는 cleanup에 해당한다고 누군가 강하게 주장한다면 할 말은 없다...

이 sequencing raw data로부터 de novo assembly를 재수행하다가 또 중요한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Draft genome sequence를 등록할 때에는 200 bp 미만의 contig는 제거해야 한다. ZGA pipeline에 '--minimum-contig-length $$$' 옵션이 있지만 이는 가장 마지막의 annotation에 투입되는 염기서열의 길이 제한에 쓰일 뿐, 실제 FASTA file은 건드리지 않는다.  BioPerl Bio::Seq 오브젝트를 기억 속에서 소환해서 간단한 스크립트를 짜야 하나? 그럴 필요는 없었다. 다음과 같이 SeqKit(seq subcommand)를 써서 쉽게 해결하였다.

seqkit seq -m 200 IN.FASTA > FILTERED.FASTA


2025년 2월 10일 월요일

달리기 기록이 좋아질 수 있을까

바람이 불지 않는 영하 3도의 밤이란 달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여건이다. 원래 밤에는 바람이 잘 불지 않아서 하천변 코스를 달리기에 매우 좋다. 6분 23초 페이스로 7 km를 달리고 돌아왔다. 공교롭게도 이틀 전 6 km를 달렸을 때에도 페이스는 똑같은 6분 23초였다. 지난 8월부터의 기록을 살펴보니 6 km 이상을 달렸던 날 중에 이보다 페이스가 좋은 경우는 없었다.

보충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 상태에서 페이스 단축을 기대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런 상황이라면 한 달에 2초를 줄이기도 힘들 것이다. 여기서 2초 단축이라 함은, 약 40분을 달리는 과정에서 전체 시간을 2초를 줄인다는 뜻이 아니다. 1 km를 달리는데 드는 시간(페이스)를 2초 줄이겠다는 뜻이다. 따라서 6 km를 목표로 하는 달리기에서는 전체 시간에서 12초(2초 x 6)를 줄이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딱 30분만 달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비교적 단기간에 페이스를 향상시킬 수도 있을 것이나, 요즘은 한 번에 6~8 km를 달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으니 쉽게 기록이 나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마라톤 완주를 100번 넘게 하였고 수많은 달리기 환자를 치료한 정형외과 의사 김학윤 원장의 조언(아래 소개한 동영상)으로는 빨리 달리는 것보다 오래 달리는 것을 택하라고 하였다. 예전보다 무리하게 빨리 달려서 기록을 향상시키려 하지 말고, 오래 달리는 것으로 기록을 세우는 것이 더 안전할 것이다. 다음 동영상(의사결정 에피소드 71)의 바로 앞 에피소드 70번도 참조하는 것이 좋다.


올해의 목표는 10 km까지 달려 보는 것이다. 10 km를 달리는 동안 대략 7분 이내의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매번 10 km를 달리는 것은 어려우니 서너 번에 한 번 정도라면 적당할 것이다. 소위 '국룰'은 6 km 페이스, 1시간 10 km라고는 하지만 말이다.

달리기 관련 동영상을 찾아 보다가 얻어 걸린 다음의 쇼츠에서 보이는 같은 준비운동 동작을 많이 권장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는 소위 '에이 스킵(A-skip)'이라 하는 것이다. 조정력, 고관절의 이동성, 다리 힘을 향상시킨다고 한다. 그런데 중년의 몸으로는 이 동작을 따라서 하는 것이 어렵다. 며칠을 탐구(?)하다 오늘 겨우 흉내 비슷한 것을 내게 되었으니 나도 어지간한 몸치가 아닌가 싶다.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얻은 첫 부상, 즉 안쪽에 피가 고이면서 들뜬 엄지 발톱이 불편하다. 안에서 새 발톱이 나오고 있지만 들뜬 발톱을 아예 뽑아 버릴 수도 없고...


2025년 2월 9일 일요일

Al Jarreau의 Moonlighting - 초보자의 bass cover 2탄

요즘 (동)영상을 제작한다고 하면 보통 이를 구성하는 두 가지 요소인 비디오와 오디오가 포함된 최종 결과물을 만드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 어떤 카메라를 이용하여 동영상을 촬영하더라도 거의 항상 오디오도 함께 녹음되고, 당연히 그러한 결과물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작의 입장에서 두 요소는 나누어서 고려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비디오 요소는 아주 전문적인 사람이 아니라면 휴대폰으로 찍은 동영상이 일반적이겠지만, 별도로 마련한 이미지 시퀀스도 가능하다. 안드로이드 휴대폰을 PC에 연결하여 웹캠처럼 쓰려면 다음과 같은 글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갤럭시 휴대폰이나 태블릿 카메라를 웹캠으로 사용 방법, 윈도우 11 지원

음악 연주를 공개하는 것이 주요 목적인 영상이라면 무엇을 '비디오'로 택할 것인가? 가장 좋은 것은 물론 연주자가 실제 연주하는 모습을 별도의 카메라로 찍어서 사용하는 일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많은 수고가 따른다. 배경을 정리하고 적당한 조명도 준비해야 하며, 약간의 분장(?)도 있어야 한다. 도와주는 사람이 없이 이 모든 것을 혼자 하기도 쉽지 않다.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면 클래퍼 보드(소위 '슬레이트')를 사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집 거실 한쪽 구석은 스튜디오? 별다른 이펙터 하나 없이 이 '노 브랜드' 국산 중고 베이스의 험버커 픽업에서 뿜어져 나오는 소리가 마음에 든다.


연주 영상을 만들기 위해서 녹음 당시의 DAW 화면을 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다만 대부분의 경우에 ASIO를 통해 작동하는 DAW의 실시간 사운드 출력을 화면 녹화 프로그램으로 보내는 방법을 알아 내야 한다. 아주 초보적인 수준으로 OBS Studio의 사용법(링크)을 익힌 다음, DAW의 실행 화면과 오디오 출력을 OBS Studio로 보내는 방법을 조사해 보았다. 다음의 유튜브 영상 'How to Get Audio from Your DAW to OBS for Recording / Streaming (No Latency) for PC'이 도움이 되었다. 


핵심은 ReaPlugs VTS FX suite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포함된 다양한 plug-in 중에서 실제로 필요한 것은 ReaStream(audio+MIDI over ethernet) 하나 뿐이니 이것만 설치하면 된다. 기능을 더 익히면 방송으로 내보내는 것도 가능하다.

설치 후 테스트 녹화를 해 보니 Waveform FREE 12에서 작동은 되는데 녹화된 결과물에서 'pops and clicks'가 너무 심하고 재생 속도도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나와서 도저히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아마도 저가의 오디오 인터페이스가 갖는 필연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OBS Studio의 출력물은 MKV(Matroska Multimedia Container) 파일이다.

고심 끝에 Audacity에서 베이스 녹음을 하는 화면을 OBS Studio에서 그냥 녹화하는 방법을 취해 보았다. 가상 악기를 실시간으로 연주하는 것은 아니므로 ASIO와는 관계가 없다. 어제와 다른 점은 예전에 Gaudio Studio에서 베이스를 제거해 둔 것을 다운로드하여 백킹트랙으로 썼고 녹음 중에 Audacity 안에서 컴프레서를 걸어 주었다는 점이다. 동영상의 최종 마무리는 언제나 그렇듯이 OpenShot 비디오 에디터를 사용하였다.


너무 멋을 부리다가 조금 어색한 노트가 들어간 곳이 없지 않다. Behringer U-Phoria UM2 오디오 인터페이스의 instrument channel인 2번에 베이스가 연결된 상태라서 영상에서는 마치 right channel만 녹음한 것처럼 나오지만, OBS Studio에서 녹음 입력 설정을 MONO로 설정해 주었기에 최종 결과물은 양 채널에서 잘 들린다. OpenShot에서 화면 녹화 앞부분에서 프로그램을 전환하는 모습을 제거하고 타이틀을 삽입하였다. 

이와 같이 녹음/녹화 및 영상 편집 용도로 만들어진 무료 소프트웨어(본문에서 굵은 글씨로 표기)를 익혀 나가는 일도 보람이 있다. 언젠가는 활용할 일이 많을 것이다. 기왕이면 영상 문법에도 관심을 갖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영상에도 문법이 있다


Moonlighting (Al Jarreau)


Some walk by night
Some fly by day
Nothing could change you
Set and sure of the way

There is the sun and moon
They sing their own sweet tune
Watch them when dawn is due
Sharing one space

We'll walk by night
We'll fly by day
Moonlighting strangers
Who just met on the way

<ChatGPT의 'Moonlighting' 가사 번역 - 지나친 의역?>

우리는 몰래 사랑을 키워가고 있어
아무도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몰라
우리는 별들 아래서 꿈꾸고 있지
우리는 문라이팅 중이야, 모두 다 알게 될 거야

그녀와 나는 오래전부터 계획을 세웠지
우리는 떠나기로 했고, 결국 도망쳤어
이제 우리가 함께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길게 뻗은 도로 위를 달리며
밤하늘 아래에서 빛나는 꿈을 꾸고 있어
우리는 사랑을 찾아 떠나왔어
우리는 문라이팅 중이야, 모두 다 알게 될 거야

시간이 지나면
이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될 거야
우리는 운명처럼 만났고
이제 누구도 우리를 막을 수 없어

ChatGPT의 설명에 따르면, moonlighting이란 밤에 달빛 아래에서 다른 일을 한다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즉 낮에는 본업을 하고 밤에는 부업을 하거나 몰래 다른 일을 함을 의미한다. 드라마 테마곡으로 쓰인 이 곡에서 갖는 의미는 두 남녀 주인공(브루스 윌리스와 시빌 셰퍼드)가 본업을 두고 로맨틱한 감정이 싹터서 비밀스럽게 사랑을 하는 이중적인 관계를 암시한다나?

사실 알 재로나 브루스 윌리스 관련 내용이라면 조사를 통해 몇 편의 글을 써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두 사람의 열렬한 팬은 아니다. 알 재로는 이미 고인이 되었으니, 건강 상태가 매우 좋지 못한 왕년의 액션 스타 브루스 윌리스가 평안한 노년을 보내길 바랄 뿐이다.


성심당 딸기시루를 처음 영접하다

나는 <오징어게임> 시즌 1도 아직 보지 않은 사람이다. 사람들이 지나치에 열광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약간 거부감을 느끼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전국민이 한 번은 다 경험해 보았다는 성심당의 딸기시루 역시 그러하다. 성심당 케익 부띠끄 앞을 지날 때마다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얼마나 대단한 것이라고 왜 저런 고생을 하고 있나?'라고 느끼고 무심히 지나가고는 했다. 크게 기대를 하지 않고서도 동네 빵집에 들러서 가벼운 마음으로 구입조차 하기 어려운 케익이 되어 버렸으니 나에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지..

몇 년 전만 해도 성심당 본점의 케익 부띠크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있었다. 조각 케익류를 사서 자리에 앉아 커피와 함께 마시는 일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딸기시루를 비롯한 과일시루 케익이 전국적인 인기를 끌면서 그런 여유는 사라지고 말았다. 이전에도 밸런타인 데이 등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공간 확보를 위해 테이블을 일부 치우는 일이 있었다. 이제는 내부에서 여유를 즐기며 케익과 차를 즐기기는커녕 입장조차 쉽지 않은 상태가 되었다. 이를 위해서 매장에서 구입한 제품을 먹을 수 있는 별도의 공간이자 카페를 겸한 성심당문화원이 가까운 곳에 생기기는 했지만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성심당을 대전 시민에게 돌려주세요!'

늘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우리 가족은 시루 시리즈의 그 어떤 케익도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하였다.

그러던 우리 부부가 드디어 딸기시루를 오늘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일요일을 맞아 월산본가에서 갈비탕으로 점심을 먹고 우리들공원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대종로 쪽으로 올라와 보니 성심당 본점의 케익 부띠끄에 입장하려는 대기 줄에 사람이 매우 적었다. 건물 한쪽 면을 다 채우지 못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어쩌다가 이런 일이? 아무런 주저함이 없이 줄을 섰다.



몇 분 기다리지 않고 입장을 하여 전병 등 몇 가지를 더 고른 뒤 계산대에 섰다. 딸기시루 수령은 밖으로 나가서 옆 건물로 가라고 하였다. 이동을 하던 우리는 두 눈을 의심해야 했다. 우리가 줄을 섰던 곳 바로 옆 건물 틈바구니에 갑지기 몰린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갑자기 이렇게 사람이 몰렸다는 이야기인가? 

2.3 kg이라는 딸기시루는 포장을 받아들고 보니 상당히 묵직하였다.

여기가 바로 딸기시루 '공장'이다. 밀려드는 주문을 소화하느라 성심당 직원들은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하고 있을까?



맛은 어떨까? 집에 돌아와서 저녁 대신으로 딸기시루를 펼쳤다. 딸기가 쏟아지기 쉬워서 보통의 방법대로 수직으로 잘라 먹기는 좀 어렵다는 말을 들었기에 층별로 해체해 먹기로 하였다. 그러나 맨 위의 딸기를 먼저 거두어 먹은 것이 실수였다. 그 아래의 브라우니를 덜어내어 조금 잘라서 입에 넣는 순간... 아, 퍽퍽하구나! 딸기와 같이 먹을 것을!

과일이라는 것이 수분이 많고 무거우니 딸기시루와 같이 다층 케익을 만들려면 단단한 브라우니를 중간층에 넣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케익이 찌그러지면서 과일에서 나온 물을 빨아먹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성심당에서 여전히 인기리에 팔리는 생크림 케익에서 쓰이는 부드러운 재질의 것이 아니라서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 그런데 여름에 나오는 망고시루는 중간층에 초콜릿 브라우니를 쓰지 않았다. 왜 그럴까? 성심당의 개발자들이 모든 조합의 시도를 다 해 본 다음에 나름대로 최적의 결정을 내려을 것이니 괜한 의심은 갖지 말도록 하자. 

아직 3층이 남았다. 다음에는 반드시 딸기와 같이 한 층을 덜어내어 같이 먹어야 되겠다. 


남들 다 하는 것을 따라서 하는 것은 싫지만, 가끔은 그런 고집을 꺾는 것도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가끔 어쩌다 한 번은 꺾이는 마음이다.


 

녹음하고 달리고

공연 준비를 하는 동안 나의 베이스 기타 두 대는 전부 강당 무대 옆의 대기실에 보관되어 있었다. 집에서는 한동안 베이스를 만지지 못했다는 뜻이다. 주말 외출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잠시 직장에 들러서 베이스 하나('빨강이')를 들고 왔다.

그냥 뭔가 녹음을 하고 싶어졌다. 1980년대 인기리에 방송되었던 드라마 Moonlighting의 오프닝으로 잘 알려진 Al Jarreau(1940-2017)의 테마곡을 택했다. 작년부터 사무실 지하에서 유튜브를 틀어놓고 혼자 베이스를 치며 노래도 따라 불렀었다.

유튜브의 원곡을 재생하면서 Audacity에서 루프백 녹음을 하여 WAV 파일로 저장하였다. 파일을 LALAL.AI에 올려서 베이스 라인을 제거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How to Remove Base), 결과물을 파일로 다운로드하려니 유료 구독을 해야 한다. 흠... 편법이지만 웹 브라우저에서 베이스가 제거된 음원 파일을 재생하면서 또 Audacity에서 루프백 녹음을 하였다. 오디오 인터페이스는 늘 쓰는 Behringer UM2이다.

이것 말고도 Vocal Remover라는 웹사이트에서도 비슷한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돈을 내지 않고서 마음대로 작업을 할 수 있는 서비스는 많지 않다. 하루에 한 번만 분리 작업을 하거나, 10분을 넘는 음원 파일은 처리를 못 한다거나... 어차피 돈을 써야 한다면 차라리 국내 기업의 서비스인 Gaudio Studio를 쓰는 것이 나을 것이다. 


Gaudio Studio가 제공하는 솔루션.


작년에 있었던 두 번째 공연을 준비하면서 여기에서 몇 곡을 올려 작업을 했었다. 글을 쓰는 지금 접속을 해 보니 Moonlighting을 이미 파트별로 분리를 해 놓았었다. 이 사실을 까맣게 잊고서 오늘 불필요한 작업을 한 셈이다.



베이스를 제거한 음원 파일을 Audacity로 불러들인 뒤 오버더빙으로 베이스 녹음을 하려니 자꾸 에러가 난다. 너무 오랜만에 녹음을 하느라 프로그램 사용법을 잊어버린 것인가? ASIO support 기능과 함께 컴파일했던 Audacity를 이용하여 겨우 작업을 마친 뒤 유튜브에 올렸다. 이런 초보자 수준의 베이스 커버 버전을 올려서 인터넷 세상을 더럽하는 것이 부끄럽다...


녹음 후 유튜브 업로드까지 한 다음 오디오 인터페이스에 다이나믹 마이크로폰을 연결하여 테스트를 하다가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게 되었다. 오늘 접한 Audacity의 오류는 녹음과 재생의 sampling rate가 일치하지 않은 때문이었다. 오버더빙을 하려면 당연히 두 수치가 같아야 한다. 이는 Windows의 설정이 아니라 예전 제어판에 들어가야 제대로 맞출 수가 있다. 

나의 연주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려면 비디오(화면)는 무엇으로 하는 것이 좋은가? 녹음은 어떻게든 겨우 해 보겠지만, 적절한 비디오를 선택하는 것이 늘 고민스럽다. 연주를 하는 내 모습을 직접 찍는 것은 매우 수고스럽고 기술적으로도 쉽지 않다. 오늘의 사례에서처럼 DAW에서 재생하는 화면을 녹화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화면 녹화를 위한 소프트웨어 선택은 아직 어려운 문제이다. 리눅스에서는 Kazam이라는 훌륭한 소프트웨어가 있었다. Windows에서 쓸 수 있는 OBS Studio의 사용법을 어서 익혀야 될 것이다.

밤 9시 반이 되어 운동복을 차려입고 밖으로 나갔다. 어제(5 km)에 이어서 오늘은 6 km를 달렸다. 눈이 얼어 미끄러운 산책로에서 넘어지지 않기 위해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매일 10 km를 달리거나 1,500 m 수영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다소 번거롭다고 느껴지더라도 신체를 규칙적으로 쓰는 것이 업무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음악과 관련된 활동도 마찬가지이다.

다음주면 추위가 물러가기 시작할 것이다. 이번 겨울도 만만하지는 않았다.


2025년 2월 6일 목요일

KRIBBtonite의 최초 공연, 출장(강원도 홍천), 그리고 흩날리는 눈발을 뚫고 대전으로 복귀

연구소 설립 4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우리 밴드 KRIBBtonite가 첫 공연을 하였다. KRIBB + tonight(오늘밤)의 뜻도 있지만, 슈퍼맨도 꼼짝 못하게 만드는 신비한 돌 kryptonite를 뜻하기도 한다. 준비 기간은 약 3개월. 각자 연구와 실험에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자발적으로 모여 이런 성취를 이룬 것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만들어 낸 음악의 질을 논하기에 앞서 정말 수고 많았다고 칭찬부터 하고 싶다.

2025년 2월 4일, 역사가 이루어졌다. 정말 마음에 드는 단체 사진. 촬영자를 기억하지 못함이 아쉽다.

베이스를 치는 내 모습. 이를 보고 가수 이용복(1952~)을 떠올리는 분도 있었으나, 나는 존 윅 4편에 나오는 케인(견자단)의 모습과 대조해 보았다. 


멤버 중 한 명은 공연 후 정리를 마치고 늦은 점심을 먹자마자 부랴부랴 회의를 하려 세종시(과기정통부)로 달려갔다. 

네 곡을 연주했던 공연 전체를 찍은 동영상을 입수하게 되어 밤 늦게 여기에 타이틀과 약간의 자막을 입혀 유튜브에 올렸다. OpenShot 비디오 에디터를 쓴 지가 좀 되어서 사용법을 기억해 내느라 시간이 걸렸다.

동영상 편집 중. 스틸 사진을 모아 쿠키 영상 비슷한 것을 만드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여러 이미지 사이의 디졸브를 매끄럽게 설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보컬을 담당하는 멤버가 무려 세 명이라는 것도 KRIBBtonite의 강점이다. 음향 장비를 더욱 확충하여 다양한 여건에서 좋은 사운드를 내는 것이 앞으로의 숙제이다. 아울러서 재능과 끼를 갖춘 멤버가 더 모이면 좋을 것이다.

다음날, 강원도 홍천에서 열린 한국유전체학회 동계심포지엄을 가기 위해 길을 떠났다. 

중간에 들른 남한강 휴게소.

홍천에 왔으니 막국수를!


첫 날에는 90분에 걸친 K-BDS(국가바이오데이터스테이션)세션에서 좌장을, 둘째 날(오늘)은 오전에 열린 또 국가통합바이오빅데이터구축사업 세션에서 발표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단지 15분에 불과한 발표이지만 대규모 사업을 소개하는 자리인데다가 과제 책임자인 나는 세부적인 사항을 아주 상세히 알지는 못하기 때문에 사전에 연습을 많이 했다. 큰 발표장임에도 불구하고 여분의 의자를 가져다 놓아야 할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찾았고, 사업단에서도 준비에 많은 정성을 쏟은 흔적이 역력했다. 사업 홍보에 큰 도움이 되었으리라고 믿는다.

그런데 밴드 단톡방에 놀라운 소식이 올라왔다. 인트라넷 로그인 화면에 동영상 링크가 올라온 것이다. 연구소 공식 채널이 아니라 내 개인 채널이라서 송구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덕분에 조회수는 올라가겠지만... KRIBBtonite 로고는 챗GTP를 이용하여 내가 만든 것이다.



질의 응답 시간에 이런 질문이 있었다. 100명 정도의 whole-genome sequencing 결과를 갖고 있는데 이를 국가통합바이오빅데이터구축사업에 기탁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백롱민 사업단장의 답변을 기억나는대로 재구성해 보면 다음과 같다.

국가통합바이오빅데이터구축사업은 참여자로부터 데이터에 대한 기부를 받는 동의서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있었던 연구에서는 참여자로부터 데이터를 연구 목적으로 사용해도 좋다는 사용 승인을 받은 것이지 기부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미 만들어진 데이터를 본 사업에 기탁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기존 데이터를 국가통합바이오빅데이터구축사업의 틀 안에 넣으려면, 참여자를 다시 수소문하여 다시 동의서를 받아야 한다. 이를 다소 어려운 말로는 '동의서 구득'이라고 한다. 이는 인간 대상 연구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우리나라의 규제 현실에서 빚어지는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기도 하다. 미국에서는 몇 가지 방법으로 비식별 처리가 이루어진 인체유래 데이터를 이용하는 연구는 인간 대상 연구로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추가적인 동의서나 심지어 IRB 심의도 필요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문제는 내가 블로그에서 여러 차례 언급한 일이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비식별 정도가 아니라 원칙적으로 데이터에 대한 익명화를 해야 한다. '보건의료데이터 활용 가이드라인'에서는 익명화보다 수준이 낮은 가명처리를 한 경우 이를 특정 목적-통계 작성, 과학적 연구, 공익적 기록 보존-에 한하여 정보주체(제공자)의 동의 없이 제3자에게 제공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으나, 엄격히 말해서 여기에 '연구 데이터'는 포함되지 않는다. 연구데이터를 재활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연구자가 데이터를 수집하면서 이를 인체유래물은행에 기증한다는 동의서까지 같이 받는 것이다. 데이터를 등록하는 은행이 별도로 존재하고, 이를 인체유래물은행이 담당한다는 것은 매우 어색하다.

엄보영 사무국장의 사업 전체 설명에서 data philanthropy('데이터 자선 활동' - 기업, 기관 및 개인이 보유한 데이터를 공익적 목적으로 공유하거나 활용하는 기부 형태)를 강조한 것은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부는 명시적인 의사 표현이 필요하다. 다른 말로는 결국 동의서 구득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래서 나에게는 미국의 모델이 매우 합리적으로 느껴진다.  

같은 세션에서 발표를 했던 Graeme Bethel 및 일루미나 코리아의 관계자들과 미팅까지 하느라 늦은 점심을 먹어야 했다. 왜 genome sequencing이 필요한가? 환자에게 도움을 주고, 과학자들에게는 연구를 할 수 있는 데이터를 주며, 마지막으로 제약 기업이 신약을 개발하는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Bethel의 말이었다.

Graeme Nethel의 발표.


오후 세시 반이 다 되어서 홍천을 떠나 대전으로 향했다. 또 눈이 내린다! 영하 18도에 가까운 혹독한 강원도의 밤을 보낸 때문일까, 자동차의 내비게이션 화면이 나오지 않는다. 엔진오일을 교환할 때도 되었으니 주말에는 서비스 센터에 가 봐야 되겠다. 지난주의 여수 여행과 서울 나들이를 비록하여 공연, 그리고 어제와 오늘의 강원도 출장까지... 나나 자동차나 모두 수고가 많았다. LibreCAD에서 진공관 앰프 상판 도면을 완성하는 것도 이번 주말의 숙제가 되겠다.



2025년 2월 2일 일요일

8 km 달리기의 후유증 - 쏟아지는 졸음

  • 사흘 전(1/30) - 39:20 / 6.04 km / 6'30" 
  • 이틀 전(1/31) - 12:35 / 1.87 km / 6'41" <- 불편한 신발을 잘못 선택해서 빨리 종료함 
  • 어제(2/1) - 53:19 / 8.01 km / 6'39"

한 번에 8 km를 달린 것은 1월 26일 여수 여행 중이 최초였고 어제는 두 번째였다. 달리기를 시작한 작년 8월부터 어제까지의 총 마일리지는 401.69 km였다.

어제 달린 갑천변 코스.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는 뿌듯함은 좋았지만 오늘 하루 종일 쏟아지는 졸음과 싸워야만 했다. 오늘이 휴일이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다리의 뻐근함 또는 묵직함은 다음날 오전이면 다 풀린다. 즉 이 정도의 달리기가 근골격계에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러나 피로감을 느낀다면 문제가 있다.

현재의 체력으로는 격일 8 km 달리기는 무리가 있다. 한 달에 꼭 100 km 이상을 달리려고 과도하게 집착하지는 말자. 

  • 2024년 8월(51.66 km), 9월(40.11 km), 10월(68.95 km), 11월(75.22 km), 12월(66.26 km)
  • 2025년 1월(91.12 km) - 총 16회, 회당 5.695 km

올해 1월의 기록을 기준점으로 삼아서 이보다 조금 더 달린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이틀에 한 번 꼴로 40분 이상을 달리되 2~3회에 한 번 정도는 8 km(대략 53~54분)를 채우면 될 것으로 본다. 

공주(公州)의 재발견

인기 프로그램 「전현무계획2」에 소개되었던 어떤 식당을 가기 위해 공주에 들렀다. 원조집이 아닌 다른 업체를 통해 이미 이 음식을 먹어본 일이 있던 아들의 말로는 대전-충남권에서만 잘 알려진 것으로서 다른 동네에서는 '괴식(怪食)' 취급을 받는다고 하였다.

과연 한 시간이나 대기하면서 먹을 가치가 있었을까?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곳을 다시 찾아와서 줄을 서는 수고를 감수하면서 또 먹게 될 것 같지는 않다. 맥주 안주로는 적당해 보였다. 차라리 공주 특산물인 밤을 이용한 디저트류가 더 나았다. '여수(돌산도):갓 = 공주:알밤'이라는 비례식을 떠올려 보았다.


유별난 음식으로 늦은 점심을 먹은 뒤 주변을 검색하여 '#17커피'라는 카페에 들렀다. 대전지방검찰청 공주지청 앞 회전교차로에 접한 곳으로, 밝은 표정으로 손님을 맞는 주인의 모습이 좋았다. 



아무런 계획 없이 향한 다음 목적지는 공산성. 입구에 해당하는 금서루로 오르는 길에 즐비하게 놓인 비석군을 살펴보았다. 공주는 이미 여러 차례 와 보았기에 새로울 것은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 공덕비(선정비 또는 송덕비라고도 부름)를 놓기 위해 주민들은 괜한 수고를 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공주에는  정3품의 목사가 파견되었다고 한다. 공주를 거쳐가는 모든 관찰사가 이곳 백성들이 영원히 기억하고 싶어하는 훌륭한 관리였을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 관찰사가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 뒤에는 공덕비를 과연 세우지 않고 지나갔을까? 혹은 어떤 관찰사가 머물다 가더라도 그저 관행이라는 이유로 비석을 세운 것일까? 혹시 아직도 관료 사회에 남아있는 '간부 모시는 날'(2025년 1월 조선일보 기사 링크)과 같은 폐습은 아니었을까?


여러 공덕비 중 이 사진의 가운데 것이 가장 특이하면서 조형미가 돋보인다.

조금 검색을 해 보니 2015년 장성신문에 실린 「공덕비 유감」이란 기사에 이런 글이 있었다.

하지만 탐관오리(貪官汚吏)들은 부임하자마자 자기 밑의 아전들을 시켜 공덕비를 세울 돈을 모으게 했다. 이는 공덕비 건립이 조선시대 고을 수령의 공개적인 비자금 창구로 백성들로부터 돈을 각출했고 이를 비채(碑債) 또는 입비전(立碑錢)이라 부르며 성금의 일부만 공덕비 건립에 쓰고 나머지는 사또가 개인적으로 챙기는 돈 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권력에 아첨하는 이방이나 아전들이 있었을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정조가 1789년 '세운 지 30년 이내의 비석은 모두 철거하라'는 엄명까지 내린 것을 보면 공덕비의 폐해가 심각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공덕비에 상투적으로 쓰는 문구가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나의 얄팍한 한자 실력으로도 그 뜻을 미루어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라는 문구가 적힌 비석이 많았다.


어떤 비석에서는 다음 사진과 같이 永('길 영')을 다소 색다르게 새겨 놓았다. 마치 亠(돼지해머리 두) 부수 아래에 물 수자를 쓴 것 같이 보인다. 永은 내 이름에 쓰이는 한자라서 못알아보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데 말이다.


날씨가 별로 춥지 않아서 공산성 성곽을 올라 시계방향으로 2.66 km에 이르는 둘레를 걷기로 하였다. 약간 가파른 구간이 있어서 힘겨워하던 아내도 전체 둘레를 다 돌고 나서는 무척 뿌듯해 하였다. 내가 달리기를 쉬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이다. 워밍업이 되기 전까지는 힘들지만, 집에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난 뒤 밀려드는 개운함과 성취감은 다른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금서루를 비록하여 금강과 면한 곳은 돌로 쌓은 성벽이 있지만 이는 조선시대에 개축된 것이고, 그 뒤편에는 토성 형태를 하고 있다. 중간쯤 돌았을 때 눈이 많이 와서 출입을 금한다는 작은 표지판이 놓인 것을 발견하였으나 포근한 날씨로 눈이 많이 녹은 터라 우리 부부를 비롯한 많은 탐방객이 이를 무시하고 성벽을 따라 돌았다.

정문 역할을 하는 금서루를 배경으로.



누에 씨(알)을 보관하기 위한 잠좀냉장고. 1914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연지와 만하루.


동문에 해당하는 영동루. 원래 현판이 없었으나 공주시에서 이름을 공모하였다고 한다.

성곽을 따라 걷는 도중 국방색의 긴 가방을 등에 멘 청년과 그 아버지로 추정되는 사람 둘을 만났다. 가방에는 태극기가 붙어 있었다. 가방에 든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활이라고 하였다. 

"양궁인가요, 국궁인가요?"

"국궁입니다."

나중에 찾아보니 공주 관광단지 안에 관풍정이란 국궁장이 있다고 한다. 전국 380여 국궁장의 종가 역할을 하는 인왕산 기슭의 황학정이 떠오른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면서 시간이 부족하여 성곽을 따라 걷는 것에 집중하느라 영은사(사찰)을 제외하고는 공산성 내부에 있는 많은 건축물과 유구를 둘러보지는 못하였다. 공산성 안에는 왕궁으로 추정되는 유적이 있다. 서기 475년 동안 공주(당시 웅진)로 백제의 도읍지를 옮겨 사비 천도 전까지 약 7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날 동안 왕궁은 어디에 있었을까? 웅진 시대 왕궁터를 비정할 수 있는 문헌자료는 매우 제한적이며, 공산성 내부는 왕궁을 두기에는 매우 협소하다. 지속적인 발굴 조사를 통해 언젠가는 그 답이 나오리라.

유난히 길었던 2025년 설 연휴 동안의 나들이는 아쉽지만 이것으로 마무리하게 되었다.

2025년 2월 1일 토요일

실수로 한강 다리를 걸어서 건너다

서울 출신이지만 대전에서 산 기간이 더 길어진 나에게 서울은 출장이나 관광 목적으로 들르는 곳이 되었다. 유난히 길었던 이번 설 연휴 마지막 날(어제), 국립중앙과학관에 차를 세워 놓고 근처를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박물관 개장 시간부터 매우 많은 차량이 입구로 줄지어 들어오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날은 주차장을 무료로 개방하고 있었다. 아내와 함께 특별전인 「푸른 세상을 빛다 고려 상형청자」를 둘러보았다. 원래 유료 전시지만 설날을 맞아 무료로 입장을 허용하고 있었다. 박물관에서 시간을 보낸 뒤 400번 시내버스를 타고 이태원으로 향했다.





가끔 들르던 쟈니 덤플링에서 점심을 먹고 앤트러사이트(Anthracite)에서 커피를 마셨다. 이 카페 1층에는 반려견을 끌고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기 때문에 다른 카페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2층에 올라와 보니 이태원을 지나는 멋장이들은 여기에 다 모이는 것 같다. 앤트러사이트는 무연탄이라는 뜻이다. 왜 이런 이름을 카페(로스팅샵이라고 해야 하나?) 이름으로 택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로스팅한 커피가 마치 무연탄처럼 느껴져서 그런 것일까? 오래된 건물을 적절하게 리모델링하여 결코 과하지 않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이태원에 처음 왔을 때는 지금은 없어진 빌리엔젤을 자주 들렀었다. 2018년에 이태원 빌리 엔젤의 추억이라는 글을 쓴 일이 있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리움. 고미술이 좋아진다는 것은 나이가 든다는 뜻일까? 나는 물고기나 기하학적 무늬가 그려진 분청사기를 특히 좋아하지만, 귀얄기법을 쓴 것도 좋아한다.







우리 딸아이와 같은 도자공예 전공자를 한숨짓게 했을 커다란 항아리.



다시 400번 버스를 타고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향한다는 것이 그만 실수로 405번을 타고 말았다. 버스가 크게 회전을 하더니 잠수교로 접어드는 것이 아닌가. 오, 이런... 일단 반포한강공원·세빛섬 정류장에 내렸다. 이곳에 인공섬이 세 개가 있다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다. 언제 또 여기에 오겠는가 싶어서 세빛둥둥섬에 있는 카페에 들러 주변 경관을 감상하며 커피를 마셨다.



이곳을 벗어나서 다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가려니 마땅한 대중교통 이용 경로가 잘 나오지 않았다. 일단 잠수교를 걸어서 건너기로 했다. 한강 다리를 걸어서 건너는 것은 서울 출신인 우리 부부 모두에게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날씨가 몹시 춥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잠수교를 달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역시  '서울'이란 선택받은 곳에 사는 사람들이 이런 혜택을 누리는 것이겠지.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서울. 모두가 여기에 살고 싶어 하지만,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아, 그렇지도 않구나. 어차피 수도권에는 인구의 약 절반 이상이 살고 있지 않은가. 두 아이 중 하나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으니 절반은 성공한 것인가, 혹은 수도권 인구 집중 문제를 더욱 심화시킨 것인가? 서울 출신 남녀가 만나 대전에 살면서 자녀 둘 중 하나를 서울로 보냈으니 인구 분산에 더 기여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자녀 중 하나는 미국에 있으니.

서울이 부러운 것은 문화적 혜택 때문이다. 편리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많은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누릴 수 있다. 의료 혜택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여기에는 많은 비용이 따른다.   

대전으로 돌아온 나는 갑천변을 달리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잠수교를 달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약간을 달려서 1월 달리기를 마감하였다. 조금만 달리면 90 km를 채우는 것으로 1월을 마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제도 뛰었으니 오늘은 가볍게 3 km만 채우고 싶었지만 아침에 빨아 놓은 운동화를 대신하여 고른 신발이 너무 불편하여 채 2 km도 달리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로써 달리기 반년째를 맞아서 가장 많은 거리를 달린 달이 되었다. 하루 걸러 하루씩 매번 6 km를 달린 셈이다.



몸이 보내는 신호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한달에 100 km를 달리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 페이스 단축은 달성하기 어려운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