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1일 일요일

여름날의 금산사는 배롱나무 꽃과 함께

이번 주말에는 전라북도 김제시에 위치한 금산사를 둘러 보았다.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금산사 미륵전의 모습 - 마치 3층 건물처럼 보이는 우아하고도 장엄하며 압도적인 - 을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우리나라의 전통 건축물 중에서 여러 층으로 된 것은 극히 드물다. 지난 5월에 방문했었던 부여 무량사의 극락전(블로그 글 링크)과 좋은 대조를 이룰 것으로 기대하였다. 무량사 극락전은 겉에서 보아서는 2층, 내부는 통층이다.

호남고속도로를 따라 달리다가 전주를 지나 금산사IC로 나와서 십 여 분을 달리면 모악산 도립공원이라는 곳이 나온다. 금산사는 바로 여기에 위치하고 있다. 모악산은 과거에 금광이 있었기에 일제강점기때 활발한 채굴이 이루어졌다고 한다('금 광산이 있던 산에 오르다', 전북도민일보).

IC를 나와서 금산사를 찾아가는 도중에 정말 멋진 가로수길을 발견하였다. 과거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하여 근처를 지날 때 똑똑히 보았던, 너무나 멋진 가로수길을 실제로 통과하게 되다니!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마치 마인데르트 호베마의 유명한 가로수길 그림인 미델하르니스의 가로수길(1689)을 연상케 하는 그런 모습이었다. 카카오맵 로드뷰로 찾아 본 결과 '봉남로'의 한 구간인 것 같다. 그런데 이 길이 과연 내가 호남고속도로를 달리며 본 길이 맞을까? 김제시의 유명한 가로수길에는 메타세콰이어가 심어져 있다고 하는데, 구글에서 찾아보니 이 길은 해학로이고 서해안고속도로와 가깝다. 아래 로드뷰 사진의 가로수는 분명 메타세콰이어는 아닌 것 같다. 내가 고속도로에서 본 가로수길은 어디였을까? 혹시 선운사를 다녀오다가 서해안고속도로에서 이 길을 보았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봉남로에서 원평로를 거쳐 금산사로로 접어들어 조금 지나니 몇 개의 식당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길 반대편에 원평면옥이라는 냉면집이 보여서 차를 세우고 이 집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가격도 적당하고 맛도 좋았다. 다음에 여름이 지나서 들르게 되면 한우우거지탕을 먹어 보리라.


금산사 가는 길에 원평면옥에서 냉면을 먹었다. 지역민들이 즐겨 찾는 맛집인 것 같다.

모악산 도립공원 주차장은 무료이지만 절 경내까지 들어가면 유료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다고 하여 호젓한 길을 따라서 조금 더 차를 몰았다. 갑자기 커다란 문이 나타나는데 근처에 차를 댈 수는 없어서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나중에 찾아보니 금산사로 들어가는 관문 격인 개화문(견훤문이라고도 부름)이었다. 견훤이 아들 신검에 의해 이곳 금산사에 유폐당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절 내부에 위치한 제1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바로 곁에 위치한 계곡에 놀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 절을 향해 올라가는데 아무런 편액이 없는 작은 전각이 보인다. 보통 절에서 가장 작은 집에 해당하는 산신각보다도 훨씬 작았다. 여기에는 과연 누가 모셔져 있는 것일까?


가득히 놓인 제물을 보아하니 정말 영험한 석상인 것 같다.

안에는 기이하게 생긴 얼굴 모습의 석상이 모셔져 있었다. 검색을 해 보니 영험한 미륵할머니 또는 돌할머니라 부른다고 하였다. 후대에 다시 만든 것으로 보이는 머리 부분을 시멘트로 붙인 것 같다. 석굴암 본존불상처럼 완벽한 조형미를 갖춘 것도 있지만, 이 미륵할머니처럼 완벽함과는 거리가 먼 석상은 정성스럽게 치성을 올리는 사람에게 소원을 들어주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압도적인 기둥 크기를 자랑하는 일주문을 지나면 금강문(또는 인왕문)이 위치해 있다. 금강문을 둔 절은 그렇게 많지 않다고 한다.

금산사 일주문.

보제루 아래 한 쪽을 막아서 만든 카페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며 더위를 잠시 식혔다. 경내에는 배롱나무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금산사에는 많은 문화유산이 있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미륵전(국보 제62호)이 아닐까 한다. 겉에서 보기에는 3층처럼 보이지만, 실제 들어가 보면 통으로 되어 있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나무 그늘 벤치에 앉아서 미륵전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내부에 들어가면 중앙에는 높이가 12미터 가까이 되는 미륵본존불이 좌우에 위치한 보살상과 함께 세워져 있다.

미처 사진으로 담지는 못했으나 내부를 굳건하게 받치고 있는 네 개의 기둥을 한참이나 경외하는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각 층마다 붙은 편액의 글씨가 다르다. 1층부터 차례로 대자보전-용화지회-미륵전. 편액에 얽힌 이야기는 여기를 참조하라.

미륵전을 한참 둘러본 뒤 밖으로 나와 나무 그늘의 벤치에서 고마운 바람을 맞았다. 대적광전과 미륵전에서 염불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하였다. 두 스님의 독경 소리는 완벽하게 조성이 일치하였다. 가사가 다른 유니즌(unison)이라고나 할까? 

금산사의 본전(本殿)은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이다. 화엄종의 맥을 계승하는 사찰에서는 이런 전통을 따른다고 한다. 비로자나불은 석가모니불이 말씀하신 불법을 형상화한 것, 즉 법신불이다. 따라서 금산사에는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이 없다. 비로자나물은 말씀이 육신이 되었음을 강조한 요한복음의 시작 부분을 연상하게 한다. 

금산사 대적광전은 보물 제476호였으나 1986년 화재로 전소되어 보물 지정이 해제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모습은 1990년에 복원한 것이다.

대적광전 뒤에 나란히 위치한 조사전과 나한전 옆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보물 제26호인 방등계단이 나온다. 여기에는 너른 두 단의 기단 위에 오층석탑(보물 제25호)과 종 모양의 탑이 있다. 그 곁에는 적멸보궁이 위치한다.



여기에서 바라보는 미륵전의 모습은 배롱나무 꽃과 너무나 잘 어우러진다.

땀에 절어서 번들번들한 내 모습. 기록적으로 더운 여름날에도 남편을 따라 잘 돌아다니는 아내가 고맙다.




아래의 두 석물도 전부 보물로 지정된 것이다.

석등.

육각 다층석탑.

돌아오는 길에는 전주에 들러 전북대학교 오스스퀘어에서 치즈 케익과 차를 마셨다. 김제를 떠나기 전에 벽골제를 마지막으로 들렀다 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오스스퀘어 2층에서. 밖에 보이는 것은 또 배롱나무 꽃이 아닌가?

입추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예년과 비교하기 어려운 폭염이 지속되고 있다. 더위가 어서 누그러져서 나들이하기 좋은 날씨를 맞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집에서 일하기 위한 컴퓨터 활용 환경 정비하기

집에서는 데스크톱 컴퓨터의 활용 비율이 과거에 비하여 현저하게 떨어졌다. 두 대의 낡은 데스크톱, 즉 Dell Inspiron 3668(2017년 구입)과 리눅스 데스크탑을 보이지 않는 곳에 치워서 거실의 컴퓨터용 책상 주변을 깔끔하게 치운 뒤, 모니터를 노트북 컴퓨터(ThinkPad E14 Gen3)에 연결하였다.


사진에서 오른쪽에 보이는 모니터는 2007년 제조일자가 찍힌 LG Flatron L226WTP-PF(22인치)이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 고장난 것을 주워다가 고쳐서 지금껏 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색상도 예전 같지 않다.

이 낡은 모니터를 얼마나 더 쓸 수 있을까? 만약 고장이 난다면 저렴한 24인치급 모니터로 바꾸어야 되겠다. 크로스오버의 '24B5 IPS 75 방탄'이라는 제품이 16:10 비율이라서 저렴한 가격에 작업용으로 쓰기에 좋다고 한다.

사진에는 남기지 않았지만 책상 밑에서 늘 발을 성가시게 하던 몇 개의 박스도 보이지 않는 곳에 치워 버렸다. 자주 꺼내 쓰는 물건이거나 늘 눈에 뜨이는 노출된 위치에 두어야 하는 물건은 특성에 따라서 정리해 두는 것이 옳다. 그러나 사용 빈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물건이라면 상자에 모두 몰아서 넣고 눈에 뜨이지 않는 곳에 치워 두는 것이 낫다. 

정리의 기본은 '잘 버리기'라고 생각한다. 매몰비용(sunk cost 또는 retrospective cost)이란 이미 지출해서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을 말한다. 위키피디아를 찾아 보니 매몰비용 때문에 이미 실패한 또는 실패할 것으로 예상되는 일에 시간, 노력, 돈을 투자하는 것을 '매몰비용의 오류'라고 한다(링크). 매몰비용의 오류 때문에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계속 보유하게 되면서 정리정돈이 어려워진다.

버리는 것은 낭비이므로, 소유한 물건을 되도록 정리하지(=버리지/처분하지) 않는 것은 바람직한 생활 태도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소한 것에 집착하고 버리지 못하는 것도 욕심이라고 한다.

"언젠가 필요할지도 모르잖아?"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오랜 기다림 끝에 우연히 활용 가치를 찾는 편익보다, 그 물건이 장기간 자리를 차지하면서 발생하는 비용이 더 클 수도 있다. 정리정돈에 대한 유튜브 강연 하나를 들어 보니 6개월 동안 쓰지 않은 물건은 버릴 대상으로 고려해 보라고 하였다. 필름 사진기? 망원경? 자전거와 그 부속? 온갖 악기와 자작 진공관 앰프? 다양한 취미 생활을 거치면서 구입한 물건들을 다 어떻게 할 것인가? 추억과 관련한 물건은 장기 보관 대상으로 여겨서 별도로 관리해야 하지 않겠는가? 예를 들어서 딸아이가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에 쓴 그림 일기는?

별도의 창고나 광을 두고 살기 어려운 아파트 위주의 거주 방식으로는 답이 잘 나오지 않는다. 작은 방 하나를 '광'으로 지정하고 장기 보관할 추억의 물건이나 기념품의 총량을 제한한다면, 6개월 이상 쓰지 않는 물건을 매몰차게 버리는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서랍 정리 중에 발견한 일렉트릭 기타용 가죽 멜빵. 이렇게 반가울 수가!

대대적인 집 수리를 진지하게 고려하는 2024년 여름, 일단은 불필요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물건을 정리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때 소유물 총량제의 개념을 마음에 두고 행동에 옮기면 매우 유용할 것이다.

2024년 8월 10일 토요일

런데이 1주차 훈련을 마치고

런데이(RunDay)는 달리기를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매우 유용한 앱이다. 인터벌 트레이닝, 즉 뛰고 걷는 것을 반복하면서 훈련 강도를 높여 나가면서 8주 동안 이를 따라서 하다 보면 30분 간 쉬지 않고 뛰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제 겨우 1주차, 즉 이틀에 한 번 씩 총 세 차례의 달리기를 마친 수준에 불과한 상태이니 새로운 운동을 시작했다고 고백하기도 부끄러운 수준이다. 3주 정도 끈기 있게 진행한 상태라면 모를까... 

도장 세 개를 받았다.

달리기를 시작한 동기는 매우 단순하다. 지난 토요일, 정기 건강 검진을 받으면서 정말 이제는 건강을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체지방이 아주 많아서 생존을 위협할 정도가 된 것은 아니다. 사실 평소에 조금 적게 먹는 것 덕분에 이런 한계 수준의 건강을 겨우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문진표를 작성하면서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기록하는 것도 이제는 부끄럽다.

지난 1주 동안 땀이 날 정도의 운동을 하였습니까? - 아니오.

지난 1주 동안 숨이 찰 정도의 운동을 하였습니까? - 아니오.

나이가 들면서 혈압이 조금씩 오르는 것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심박수도 정상인보다는 빠른 것 같다. 혹시 유산소 운동을 하면 좀 달라지지 않을까? 달리기는 몸과 마음에 활력을 줄 뿐만 아니라 인지력 향상에도 도움을 준다고 한다. 이게 가장 중요한 동기이다! 50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제약이 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무릎을 보호하기 위해 이 나이에 함부로 뛰면 곤란하다는 잘못된 생각을 오랫동안 했었다. 무리하지 않게 달리는 것보다 등산이 무릎에 더 해로울 것이다.

그래서 무작정 달리기를 시작하기로 했다. 서울에서 파견 근무 생활을 할 때, 운동을 위해 경복궁 둘레 약 2.7 km를 걷고 뛰기를 반복하면서 딱 한 번 돌아 본 일이 있다(산책을 하면서 걸어 본 일은 많지만...). 그때 앱의 도움이 있으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걷고 뛰는 시간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심 후에 몇 개의 글을 찾아서 읽어 보니 '런데이' 앱이 인기가 좋은 것 같았다. 다음은 아마도 20대로 여겨지는 어느 대학원생의 성공기를 읽어 보자. 여기서 (누구나) = (50대 중반)에 해당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런데이 30분 달리기 도전 8주 프로그램 완주 후기

"누구나 30분 동안 달릴 수 있게 하는 것,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해 주는 것. 일단 시도하면 죽이 되는 밥이 되든 몇 시간, 며칠, 몇 달이 걸리든 해 낼 수 있다는 것."

지난 월요일, 저녁을 먹고 두 시간 이상 지난 뒤 오랜만에 땀을 잘 배출하는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런데이의 트레이닝 방법은 매우 단순하다. 예를 들어 5분의 준비 걷기, 1분 달리기, 2분 걷기, 또 1분 달리기... 이렇게 뛰고 걷는 사이클를 반복하다가 마지막으로 5분의 마무리 걷기로 끝난다. 총 운동 시간은 30분~40분 정도이다. 다음 회차에는 1분 달리기가 1분 30초로 늘어난다. 이렇게 뛰는 시간을 늘이고 걷는 시간을 줄여 가면서 8주째가 되면 쉬지 않고 30분을 뛸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 아마도 4 km 이상은 달리게 될 것이다. 기록에 연연하지 않고 총 거리 5 km 정도 또는 30분을 쉬지 않고 뛰는 목표를 언젠가 달성하게 될 것으로 본다. 사실 30분에 5 km를 딱 맞추는 것은 매우 도전적인 목표일 수 있다. 

런데이에는 트레이닝 기능 뿐만이 아니라 커뮤니티 참여 등 흥미와 목표의식을 함양하는 많은 기능이 포함되어 있다. 아직 그 기능을 속속들이 알지는 못한다. 다음은 오늘의 운동 기록이다. 대전광역시 유성구 전민동 주민이라면 다 알 만한 코스이다. 인도를 따라 걷거나 뛰는데 약간 좁다는 점을 빼면 나쁘지 않다. 적당히 언덕도 포함하고 있어서 훈련하기에 좋다고 생각한다.


달리기를 마친 뒤에는 아내를 불러서 같은 코스를 걷는다. 아내도 같이 런데이를 시작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직 그런 수준은 되지 않는다. 갑천변도 훌륭한 달리기 코스이지만 집에서 900미터 이상을 이동해야 접근 가능하다.

허벅지에 느껴지던 근육통은 2회차 운동을 마친 뒤 없어졌다. 아직까지 무릎에서는 별다른 이상 징후가 없다. 뛸 때에는 발의 가운데 부분부터 디디려고 의식을 한다. 

한번 해 보자. 다치지는 말고...

 

2024년 8월 4일 일요일

2024년 뜨거운 여름의 경주 여행

"이런 날씨에 경주를 간다고?"

뜨거운 여름에 경주를 가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만약 그렇다면, 이런 날씨에 경주 IC를 진입하자마자 차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는 무엇이며, 대릉원 지구의 노상 주차장을 꽉 채운 자동차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밤 늦게 동궁과 월지(예전에 '안압지'라 부르던 곳), 그리고 월정교의 야경을 즐기기 위해 밀려드는 사람들은? 도심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압도적인 규모와 함께 부드러운 곡선미를 한껏 품고 있는 왕릉군은 그 위를 뒤덮은 초록 풀과 함께 기가 막히게 어우려져 고유한 마티에르를 이루며 한 여름에 더욱 가치를 발한다. 왕릉 앞의 혼유석에는 여름 더위에 지친 무덤 주인이 땅 속에서 스며 나와 '어휴, 꽤 덥군'하면서 나와 앉아서 손부채질을 하면서 왁자지껄 근처를 지나는 관광객을 흥미롭게 구경하고 있을 것만 같다.

2024년 7월의 끝자락 2박 3일은 경주 여행으로 마무리하였다. 기억이 흐려지기 전에 사진과 더불어 여행기를 남기고자 한다. 경주는 문화유적지를 찾아 다니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우리 부부의 단골 여행지이다. 거의 20년 전부터 매년 1회 이상 경주를 다녀왔던 것 같다. 수도권에서 파견 근무를 했던 3년 반 동안은 제외하고.

2019년 월정교가 복원되면서 인근의 야경이 좋은 볼거리가 되었고, 예쁘고 아기자기한 가게로 들어찬 '황리단길'도 인기를 끌면서 경주를 찾는 사람이 더 많아진 것 같다. 그래서 대릉원 입구의 좁은 차도 또한 사람이 몰릴 때에는 매우 혼잡하다. 대릉원은 내부 천마총을 제외하고 무료로 개방이 되었다. 쪽샘 유적발굴관은  현재 운영을 하지 않아서 아쉽다. 월정교를 비롯한 신라왕경 핵심유적의 복원에 대해서 논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현재의 모습 그대로 보존할 것인가, 또는 정확한 고증은 어차피 불가능하니 최대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최소한의 건물이라도 복원해 놓는 것인 옳은가? 참 어려운 문제다.

첫 날은 대릉원과 경주국립박물관을 둘러 보았다. 전시실에서 땀 냄새가 날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숙소에서 쉬다가 저녁이 되어 동궁과 월지의 야간 조명이 멋있다고 하여 늦은 시간에 다시 차를 몰고 나가 보았으나 차량이 너무 많이 밀려서 포기하고 월정교를 둘러 보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고속도로를 따라 경주로 진입하다.

대릉원에서.


'신라'라는 이름은 이런 뜻을 지니고 있다. 덕업일신 망라사방(德業日新 網羅四方) - 덕을 쌓는 일이 날마다 새로워 사방 천지를 아우른다.

무엇이 이렇게 부끄러우신지?

기와(수막새)에 새겨진 신라인의 국보급 미소. 정식 명칭은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보물 제2010호). 현재 쓰이는 LG의 로고 디자인에 영감을 제공했다고 한다.

월정교. 남에서 북쪽으로 건너 온 뒤에 교촌마을 쪽에서 촬영.


둘째 날 오전은 불국사로 향했다. 폭염이 계속되고 있어서 나무 그늘을 벗어나기 싫은 날이었다. 불이문쪽으로 오르는 언덕길은 그늘이 울창해서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아쉽지만 너무 더운 관계로 석굴암은 건너 뛰었다.

점심은 다음 목적지인 감은사터를 둘러본 뒤 근처 바닷가에서 해결하기로 하였다. 몇 년 전에 문무대왕릉이 위치한 봉길해수욕장까지 왔다가 양남 주상절리가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나 미처 들르지는 못하였다. 이번에는 주상절리의 모습이 궁금하여 그 근처에 가서 구경도 하고 점심도 먹기로 하였다.

해안을 따라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이내 양남 주상절리에 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내비게이션은 차를 서쪽으로 돌려서 터널을 뚫고 가게 하였다.봉길해수욕장 바로 남쪽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여기에 월성 원자력발전소가 위치한다. 여러 가지 입지를 고려하여 이 곳에 발전소를 지었을 것이다.

주상절리가 위치한 곳의 바로 북쪽에는 읍천항이라는 작은 항구가 있었다. 차를 해안가에 대고 내리니 바닷가로부터 시원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장님이 직접 운영한다는 읍천횟집에서 물회를 먹었다. 공깃밥을 곁들여 주는 물회는 처음이었는데, 반찬과 탕을 포함하여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다. 다음에 경주를 오게 되면 꼭 들르게 될 것 같다. 양남 주상절리는 새로운 발견이었다.




감은사터 서탑. 

읍천횟집.

'바랗 COFFEE'라는 카페에서. 바람이 시원하여 에어컨을 가동할 필요가 없다. 휴가를 가도 전자결재를 위해 노트북을 늘 갖고 다녀야 한다.


이것이 사진으로만 보았던 양남 주상절리.

'ㅇㅊㅎ' = 읍천항.

남쪽에서 바라본 월성 원자력발전소. 왼편은 동해.  홍보관은 공사 중이라 문을 닫았다. 원자로를 직접 본 것은 처음이다. 저 원자로를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할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가까이 가서 사진을 찍고 싶다'였다. 물론 그럴 기회는 없었다. 혹시나 싶어서 돌아오는 길에 발전소 정문쪽으로 접근해 보았으나 거기에서는 원자로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심슨 가족'의 무대가 되는 스프링필드의 원자력발전소가 생각이 났다. 몽고메리 번즈 사장은 아직도 건재하신가?

돌아오는 길에는 괘릉, 즉 원성왕릉에 들렀다. 경주 여행 때 한 번도 빼놓지 않는 곳. 언제나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네 마리의 돌사자는 표정이 전부 다르다. 나는 이를 드러내며 익살스럽게 웃는 동북쪽 돌사자를 가장 좋아한다. 그러고 보니 여기 놓은 석물들은 1300년 전부터 여기에 있었고, 또 내가 죽은 뒤에도 계속 남아 있을 것이 아닌가? 아, 부럽다...

오늘따라 유난히 처연하게 보이는 영지석불.


마지막 날에도 날씨는 대단히 더웠다. 숙소가 위치한 보문단지 가까이 위치한 종오정이라는 곳을 처음으로 가 보았다. 전통 정원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연꽃은 이미 다 졌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피어나는 꽃이 남아 있었다. 다음 코스는 분황사 - 첨성대 - 계림 - 경주 향교. 단골집인 경주원조콩국에서 시원한 콩국수로 점심을 하고 경주를 떠났다.


종오정 입구에서 찍은 사진.

2024년 여름, 부여 궁남지의 연꽃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여기에서 달랜다.


분황사의 돌사자. 원래 그렇게 만든 것인지, 천 년이 넘는 오랜 시간 동안 풍화를 견뎌내느라 그렇게 된 것인지. 돌사자의 모습은 흡사 단순하게 디자인된 것처럼 보인다. 현대 작품이라 해도 믿을 것 같다.

첨성대 경내에는 그늘이 별로 없다. 남동쪽에 위치한 모과나무 아래 벤치를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승자.

계림으로 들어가면 더위를 잊을 수 있다.

계림에서 바라본 첨성대. 향교쪽으로 나가는 길에 내물왕릉을 만났다.


경주 향교의 대성전.

경주 향교는 물론 삼국시대에 건립된 것은 아니겠지만 마모된 계단에서 세월이 느껴진다.

2천년 초반에 아이들을 데리고 경주에 처음 여행을 왔던 기억이 새롭다. 사실 그때는 휴식을 위해 온 것이 아니라 학회 참석을 위해 급하게 일정을 잡아서 왔었다. 비가 억수로 내리던 여름, 딸아이를 업고 불국사의 불이문쪽 언덕을 오르던 기억이 난다. 이번 여행에서는 평소에 가지 않았던 곳을 발견하게 된 것이 훌륭한 성과라고 하겠다. 더위가 물러나면 다시 또 오고 싶다.

여행의 교훈: '셀카'를 믿지 말자. 주름이나 잡티를 없애 주므로, 내가 생각보다 젊다는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앞으로 할 일: 작년부터 쓰기 시작한 노랫말 '경주'를 마무리하고 멜로디를 붙인다.




보컬 믹싱은 함부로 할 것이 아니다

어제 자작곡 '호수섬 이니스프리'에 직접 노래를 한 보컬 녹음을 덧붙이는 작업을 해 보았다. 컴프레서만 걸고 추가로 세 트랙에 화음을 입혀서 유튜브에 올렸다(버전 4). 공개를 해 놓고 나서는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완성도가 떨어지는 음악을 올리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차라리 대 내려 버리고 개인 블로그에나 동영상을 - '동영상'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것이, 타이틀 이미지 하나만 들어 있으므로 - 올리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밀려든다. 유튜브에는 기획부터 제작까지 모든 면에서 프로페셔널한 사람이 만들어 내는 동영상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일단 곡 자체가 좋아야 하고,

악기 연주와 믹싱 상태도 좋아야 하고,

무엇보다도 보컬 믹싱이 다른 어떤 악기 연주의 그것보다 잘 되어야 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전제는 노래를 잘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온갖 이펙터와 믹싱 테크닉은 잘 부르지 못한 보컬 및 그 녹음의 결점을 커버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는 것이 아니다. 잘 부른 노래를 적절한 기술로 녹음한 뒤, 이를 최종 소비자에게 가장 효과적인 형태로 전달하기 위해 녹음 이후의 작업이 필요하다.

Auburn Sounds라는 회사의 Graillon 2 Free Edition라는 것을 써서 이미 녹음을 마친 보컬 트랙의 수정을 시도해 보고는 있지만 아직 사용법도 잘 모르겠고, 원하는 결과가 나오는지 확신을 하기 어렵다.


기왕 이렇게 된 것, Graillon 2 기능을 공부해 두자. 다음은 유튜브에 올라온 동영상 The underrated Graillon 2: A FREE Little AlterBoy Alternative이다.

https://youtu.be/DatosyL1Rzc?si=eg8tffF5Utqt1r63

다음은 Graillon 2 FREE로 수정을 거친 버전 5이다.



어제 유튜브에 올린 버전 4는 보컬 트랙을 복사하여 두 개로 만든 뒤, 팬을 좌우로 다르게 주어서 마치 두 사람이 부르듯이 두터운 소리가 나도록 만들었었다. '더블링'이라고 불리는 믹싱 기법을 약간 흉내낸 셈이다. 이것은 특별히 어디서 배우거나 참고한 것은 아니다. 결점 투성이의 단일 보컬 트랙보다는 이것이 더 낫게 들렸기 때문이다. 제대로 한 더블링은 월간믹싱의 기사 '보컬 사운두를 두껍게 만들어 주는 더블링 녹음 방법'을 참고하라.  버전 5에서는 보컬 트랙을 하나로 되돌리고, Graillon 2로 수정을 가해 보았는데 무엇이 나아졌는지 잘 모르겠다.

다음은 쿠오넷에 올라온 질문 '믹싱 전문가님들, 보컬 믹싱 평가 및 자문 좀 구하겠습니다'에 대한 지하돌고래 회원의 답변이다. 아직은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가 가득하다.

이퀄라이저는 웬만해서는 누구나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는 도구이며, 실제 결과로 봐도 이큐잉은 열심히 하신 티가 나는 것 같습니다. 반면 컴프레서 이해는 다소 단편적으로 접근하신 것 같은데요. 게인리덕션이 몇데시벨 나오면 된다 이런 팁은 의미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가장 추천드리는 방법이면서 직관적인 방법은 '오토메이크업게인(자동 게인 보상)' 기능이 있는 컴프레서 플러그인으로 레이쇼, 어택, 릴리즈, 스레숄드 만져보면서 보컬이 붙고/떨어지고, 올라가고/내려가고, 튀어나오고/들어가고 하는 느낌들을 익혀보시는 것입니다.

오토메이크업게인을 가지고 있는 컴프레서 중 접근성이 높은 것들 몇 가지 소개해보자면 부가적인 착색 요소가 없고 유틸리티형인 Pro-C 2가 있고, 저렴한 가격에 여러 아날로그 모델링 컴프레서 알고리즘과 착색 캐릭터를 경험해볼 수 있는 MJUC, 풍부한 기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무료버전에 기능제한을 많이 두지 않는 Tokyo Dawn Labs 무료플러그인 정도 추천해봅니다.

꼭 오토메이크업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직접 게인보상을 같이 만져가면서 효과를 들어보셔도 무방하나, 초반에는 여러 파라미터를 다각도에서 만지는 것이 좀 어렵기 때문에 오토메이크업 기능이 있는 것들로 추천을 드린 것입니다.

팁이라면 이퀄라이저, 컴프레서로는 '착 붙이는' 톤을 만들고 '튀어나오는 질감 부분'은 새추래이션으로 만들어보는 것입니다. (이게 정석, 정답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 과정에서 보이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그럼 새추래이션이 어떤 원리이고 어떤 플러그인들이 있는지 공부를 하셔야겠지요.

L1, RVox 같은 단순한 형태의 리미터/컴프레서를 약간 써보시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로 뭉갠 효과 그 자체가 이상적이라기 보다는 '뭉개지면서 반주에 달라붙는' 포인트를 익히는 의미가 크죠. 물론 여전히 보컬믹싱에 많이 사용되는 오래된 플러그인들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보컬을 밀어내기도 하고 당기기도 하고 효과가 직관적으로 설명하기 까다롭기는 하지만 룸리버브, 숏딜레이 등을 적당히 하이컷/로우컷해서 걸어주면 악기음들과의 거리감이 잡히면서 보컬이 더 잘 내려앉는 수도 있습니다. 사진 속에 다른 이미지를 합성해 넣었을때 약간의 블러 효과나 그림자 효과를 주는 것처럼 생각하시면 됩니다.

조금이라도 녹음과 믹싱에 경험이 있는 사람이 유튜브에 올린 내 결과물을 듣는다면, '어이구 어르신, 일기는 일기장에나 쓰세요...'라고 빈정거릴 것 같다. 방구석 프로덕션으로 시작하여 이름을 알린 뮤지션들은 전부 1만 시간의 법칙을 증명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나는 이런 거창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음악을 하는 것은 아니다.

기타 하나와 본인의 목소리만을 가지고서 자신의 음악을 세상에 선보이는 시대는 조금씩 사라져 가는 것 같다. 음악 자체의 변화도 그렇고 음악을 만드는 기법, 연주 실력, 작곡 및 편곡 능력 등이 워낙 상향 평준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기타 하나를 둘러메고 자기의 음악 세계를 알리는 사람들도 있다. 그 덕분에 어쿠스틱 기타가 꽤 많이 팔렸고, 일렉트릭 기타는 락/밴드 뮤직이 예전만큼 인기가 있는 편이 아니라서 어려움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어쨌든 나 정도의 열의를 가진 사람은 어디를 지향하여 노력을 해야 할지 아직 결정을 내리기는 어렵다.

유튜브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동영상 한 편이나 블로그에 올린 미디어, 하다못해 이메일 한쪽도 탄소를 배출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추어 정신에 충실하면서 비웃음을 사지 않을 정도의 완성도를 달성하려면 여기에도 부단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보컬 믹싱이야말로 음악 작업 중의 꽃이라고 할 만하다. 더운 날씨에 에어콘 바람이 닿지 않는 방구석에서 녹음 작업을 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느꼈다. 

아니, 노래 연습이나 좀 더 하세요...

2024년 8월 3일 토요일

속 불편한 건강검진날

정기 건강검진은 마치 일년에 한 번 치르는 부담스런 숙제처럼 여겨진다. 해가 갈 수록 건강 지표가 점점 나빠지는 것을 보는 것은 결코 유쾌하지 않기 때문이다. 키도 조금씩 줄어들고, 혈압은 슬금슬금 높아지고 있으며, 시력도 나빠지고, 근육량도 주는 것 같다. 이는 노화에 따른 자연스런 결과이므로 인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대사증후군의 징후는 보이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스럽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운동을 하지는 않지만, 식사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이런 최소 수준의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다. 근육량을 늘리기 위해 노력이 필요하지만 전혀 하는 것이라고는 없다. 가족력이 있는 고콜레스테롤혈증은 약으로 다스리고 있다. 약을 먹지 않아도 중성 지방은 전혀 높지 않으니 그저 그러려니 하면서 지낸다.

건강검진일이 다가오면서 위 내시경에 대한 부담이 커진다. 평소에는 잘 견디는 편인데, 작년에는 삽입부를 잘 삼키지 못해서 애를 먹었다. 올해는 좀 쉽게 할 수 있을까? 

매년 수면 내시경(정식 명칭은 의식하 진정내시경)으로 위 검사를 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 자료를 검색해 보니 위 내시경 검사의 경우 무려 80%가 넘는다고 한다. 건강검진을 받던 오늘, 순서가 되어 내시경 검사실로 들어갔더니 아예 대기실에서 침대에 누운 상태로 기다리라고 하였다. 전에는 일반 위 내시경 검사를 하는 경우 검사실에 내 발로 걸어 들어가 준비를 하였었다. 그런데 오늘은 다른 수면 내시경 대상자처럼 침대에서 대기하다가 끌려 들어가서 검사를 받게 되었다. 이제는 일반 내시경을 '비수면 내시경'이라고 부를 정도이니 나도 어느새 소수자가 된 느낌이었다. 차라리 나도 몇 만원 더 내고 편한 수면 내시경을 할 걸 그랬나?

전에는 수면 내시경 대상자에게 운전을 하지 말라는 주의 사항을 전하는 정도였는데, 오늘 검사를 기다리면서 들은 것은 이것에 몇 가지가 더 추가되었다.

"보호자는 누가 오시기로 했나요? 하루 종일 어지럽고 몽롱할 수 있으니 운전은 절대 하지 마시고, 계단 대신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세요. 그리고 계약서 같은 것도 쓰지 마세요."

오, 그렇구나.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계약을 하면 불리한 조건에 대해서 무심코 동의를 할 수도 있으니까.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오늘 위 내시경 검사는 매우 편하게 받았다. 검사 중에는 위를 부풀리기 위해 공기를 주입하는데, 이를 트림으로 빼 내지 말고 조금만 참으라고 하였다. 전에는 긴장하거나 힘을 주지 말라고 하였지, 이렇게 구체적인 설명을 들은 적은 없었다. 생각해 보면 이는 당연한 지시 사항이다. 위를 부풀리지 않으면 검사를 제대로 할 수가 없고, 결과적으로 다시 공기를 주입하고 검사에도 더 긴 시간이 걸릴 것이므로.

'비수면' 내시경이 좋은 점은 검사를 하면서 의사로부터 직접 설명을 들을 수 있고, 검사 후 즉시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목구멍이 아픈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검사 전에는 금식 때문에 허기가 져서 속이 불편하고, 검사 후에는 장비가 쓸고 지나간 자리가 몇 시간 동안 불편하고... 건강검진을 하는 날은 이래저래 하루 종일 속이 불편하다. 내 위장은 완벽하게 건강하지는 않지만 특별히 약을 먹어야 하는 상태는 아니다.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라는 설명을 들었다. 커피는 앞으로도 계속 마시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운동이 필요하다. 유산소와 중량 운동 모두 필요하며, 치사하게 나 혼자만 할 것이 아니라 움직이기 싫어하는 아내와 같이 해야만 한다. 앞으로 남은 인생 중에 오늘은 가장 젊은 날이라고 하였다.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늦다. 새로운 도전 거리를 찾아야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