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3일 금요일

악기와 납땜인두 - 전기기타를 고쳐 보자

음악과 납땜인두는 매우 관련성이 없는 조합처럼 보인다. 그러나 음악을 연주하거나, 녹음을 하거나, 재생을 하려면 전기 및 전자공학의 산물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나는 음악을 재생하는 도구(앰플리파이어)의 자작에 몰두하느라 하루가 멀다하고 납땜인두에 불을 지피고는 하였는데, 이제 나의 관심은 음악을 연주하는 도구(전기기타)로 회귀하면서 기타 연습과 관리에 열을 올리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올해 들어서는 먼지가 쌓이는 것을 막기 위해 마스터 건반에 씌운 얇은 담요를 한 번도 걷어내지 못했던 것 같다. 관심 분야가 워낙 많아서 정해진 기간 내에 골고루 애정을 쏟기가 참 어렵다.

내가 보유한 전기기타는 현재 4대가 되었으며 그중에서 절반이 올해에 구입한 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 오래된 삼익 Greg Bennett 세미할로바디 기타(Royale의 프로토타입)의 전기 계통에 문제가 있음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평소에 앰프를 전혀 연결하지 않고 생소리만 내서 연주(사실은 실력이 늘지 않는 무의미한 연습)를 했던 터라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세미할로바디 기타를 샀던 이유도 앰프를 쓰지 않고 사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방식의 연습은 매우 옳지 않았다.

2년 전에 픽업 셀렉터를 교체하면서 이 접촉불량으로 의심되는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다고 믿었었으나 그렇지 않았다. 넥 픽업쪽으로 전환하면 소리가 나다 안나다를 반복하는 문제가 계속 발생하여 다시 픽업 셀렉터를 의심해 보았으나, 새로 교체한지 얼마 되지 않는 부품이 또 말썽을 부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세미할로바디 기타는 커버 같은 것이 없어서 모든 부품을 전면의 F-홀로 넣고 빼야 한다. 상당히 번거로운 일이다.


처음에는 아주 쉽게 용의자를 색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3단 픽업 셀렉터는 매우 단순한 구조이다. 5장의 금속판(1-2-3-4-5, 가장 두꺼운 3번은 그라운드에 연결) 사이에 절연판을 넣고 샌드위치처럼 적층하였다. 1과 5는 각 픽업의 출력이 볼륨 폿을 경유하여 연결되는 곳이다. 레버를 중앙에 두면 1-2, 4-5가 각각 연결되고, 어느 한 쪽으로 밀면 반대편 쌍이 떨어진다. 예를 들어 1과 2는 떨어지고 4-5만 붙은 상태가 된다. 2와 4는 항상 연결된 상태로서 잭(출력)으로 이어진다. 펜더형 기타에 쓰이는 5단 셀렉터의 구조는 아직 알아보지 않았다.

그림 출처 링크


일단 픽업 셀렉터를 꺼내 놓고 이리저리 관찰을 하였다. 멀티테스터로 테스트를 해 보면 접점은 분명히 제대로 작동을 하였다. 그런데 왜 부품을 건드리는 것에 따라 소리가 나다 안나다를 반복하는 것인가? 셀렉터를 만지는 도중에 수축튜브로부터 신호선 하나가 쑥 빠지는 것을 발견하였다. 오, 이게 문제였군!


단단히 납땜을 하고 수축튜브를 씌워 마감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부품과 선을 건드리면 소리가 나지 않을 때가 있었다. 납땜 부위 근처가 아닌 케이블 내부에서 단선이 일어나기는 정말 어려운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넥 픽업의 신호를 처리하는 볼륨과 톤 포텐셔미터를 전부 탈거하여 F-홀을 통해 꺼내 놓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잭도 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시 제자리에 끼우는 수고는 나중에 감당하기로 하고...

볼륨 포텐셔미터에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부품을 건드리면 접촉이 되다 안되다 하는 증세가 발생하는데, 납땜 부위는 아니다. 포텐셔미터 내부에서 저항체와 슬라이더 사이에 먼지가 끼어서 그런 것 같았다. 슬슬 짜증이 밀려오기 시작하였다. 부속을 사다가 전부 교체할까? 낙원상가가 멀지 않으니 아예 픽업을 제외한 부품 및 배선 일체를 교체해 달라고 맡길까? 아니, 그 정도 일은 부품만 있으면 내가 직접 할 수 있는데! 물론 기타에 상처를 내지 않고 말끔하게 작업할 정도는 되지 못하겠지만. 기타의 제조연도(1999년으로 추정) 및 구입연도(2000년)을 감안하면 부품과 배선 일체를 교체할 때는 충분히 된 것 같다.

전기적 접촉 불량일 때 임시방편으로 흔히 쓰는 '와리가리' 기법을 발휘해 보기로 했다. 포텐셔미터 손잡이를 잡고 끝에서 끝까지 돌리기를 수십번 이상 반복하자 드디어 제대로 소리가 나기 시작하였다. 만약 이따금 앰프를 연결하면서 노브를 돌리기라도 했다면 이런 상태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빈 집이 쉬 망가지듯, 움직이라고 만든 물건을 그냥 방치하면 먼지가 끼고 녹이 슬면서 결국은 쓰지 못하게 된다.

부품과 배선의 전면 교체는 다음번에 문제가 다시 일어났을 때 직접 하는 것으로 마음을 먹고, 탈거한 부품을 제자리에 끼우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것이 가장 어려운 작업이었다. 특히 F-홀에서 가장 멀리 위치한 잭을 제 구멍에 찾아 넣는 일이 쉽지 않았다. 적당한 방법을 한참을 생각하다가 줄 같은 것을 사용하여 낚시질을 하듯이 고정용 구멍으로 끌어 내는 방법을 써서 겨우 마무리를 하였다. 구글에서 'semi hollow body electric guitar wiring'이라는 검색어로 찾아보면 다들 나와 비슷한 방법으로 배선 작업을 하는 것 같았다. 치실+수축튜브 긴 것을 이용할 수도 있고, 상황에 따라서는 아예 전용 도구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국외 사이트에서 몇 가지 참신한 아이디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최근 구입한 중고 데임 기타의 소리 안 나는 증세(링크)와 삼익 기타의 볼륨 폿 접촉 불량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하면서 전기기타 회로의 구성을 이해하는 좋은 경험을 쌓게 되었다. 비싼 수업료를 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음번에는 삼익 기타 헤드스톡의 무늬목을 바르게 펴는 작업을 해 볼 생각이다.

원래 여기는 무늬목이 아니라 검정색 유광으로 마무리가 되어 있었으나 부러진 헤드-넥을 수리하면서 이런 상태가 되었다. 줄감개를 제거한 뒤 갈라진 틈새에 목공본드를 주사기로 찔러넣은 다음 뜨거운 다리미로 밀면 밀착이 되지 않을까? 전부 밀어내고 검정색 유광(우레탄?)으로 마무리를 하려면 내 실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렵고, 전문 리페어샵에 맡긴다 해도 아마 기타 가격 이상의 비용이 들 것이다. 그렇게 되면 넥 뒷면에 접합 부분도 갈아내고 다시 도색을 하고 싶어질 것이 뻔하다.

원래는 이런 모습에 가까웠었다. 프로토타입 기타라서 글자는 새겨져 있지 않았지만. 출처: TopShelf Instru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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