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26일 목요일

통계처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관하여

업무를 위해 배포되는 뉴스 스크랩을 보다가 흥미로운 제목의 기사가 눈에 띄었다.

[시평] 국가 통계 관리할 '통계처'가 필요하다(문화일보 2023년 1월 26일)

기획재정부의 외청인 통계청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으니, 각 부처에 산재한 통계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총리실 산하의 통계처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글을 쓴 사람은 전 통계청장인 서울대 경제학부 류근관 교수이다. 얼핏 보기에는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을 더 키우거나 격상시키고 이를 지원해야 한다는 논리로 비칠 수도 있다. 조직의 생리가 원래 그러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 색안경을 잠깐 벗고 생각하면 꽤 타당하다는 생각도 든다.

여기에서 정부 조직 단위인 처와 청의 차이를 알아보자. '처(處)'는 국무총리 소속으로 설치하는 중앙행정기관으로서 여러 부에 관련되는 기능을 통합하는 참모적 업무를 수행하고, '청(廳)'은 행정각부의 소관사무 중 업무의 독자성이 높고 집행적인 사무를 독자적으로 관장하기 위하여 각부 소속으로 설치되는 것이라 하였다(링크). 따라서 '처'의 지위가 '청'보다 더 높다고 볼 수 있다.

행정안전부예규 제170호인 「정부조직 영어명칭에 관한 규칙」(링크)에 따르면 부와 처는 영어로 Ministry라 부르고, 청은 Administration, Agency, Service, Office 등으로 부른다.

빅데이터 및 디지털전환 시대를 맞아 데이터 허브는 통계청이 맡고, 총리실 산하의 통계처에서 이를 총괄한다는 아이디어도 좋다. 현재 국회에서 여야간에 의원입법으로 이를 위한 조직 개편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통계학(統計學, statistics)은 수학의 한 분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내가 주워들은 바에 의하면 수학자와 통계학자는 서로를 다른 분야의 사람이라고 여긴다고 하였다. 역사적으로도 통계학은 국가 경영에 필요한 수치적 정보를 제공하는 활동이었다. 요즘 인기를 끄는 (빅)데이터 과학 또는 인공지능·기계학습 분야가 근대 통계학과 그 뿌리를 같이 하느냐는 단순한 질문을 던진다면 서로 다른 입장의 답변이 나올 것 같다. 어쨌든 데이터가 중요한 시대에 통계(학 또는 업무)의 중요성은 나날이 커질 것은 당연하다.

데이터 자체와 통계는 그 성격이 약간 다르다. 한때 내가 몸담았던 조직에서는 바이오 분야의 데이터를 한데 모아서 관리 및 활용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고자 무척 많은 노력을 했었다. 이러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당위성, 법적 근거, 국제적 동향.... 모두 차고 넘치게 많다. 시간도 많이 흘렀고, 예산도 많이 확보되었다. 사실 기술적으로도 불가능할 것은 없는 수준이 되었다. 그러면 잘 되고 있는가? 글쎄, 잘 되지 않는 것 같다. 왜 그러한지에 대해서는 학문적 접근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공공데이터 포털에 가 봐도 별로 재미가 없다.

데이터 등록과 활용을 막는 특별한 규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등록 실적과 활용 실적을 수치로 표현한다면, 해마다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데이터를 주물러서 뭔가 수치를 만들고 예측하는 것은 통계의 영역인데(단순 '집계'와는 다르다!), 그 결과를 해석하여 어떤 기대 가치에 대한 평가 결과를 만들어야 하는 부담이 늘 따른다. 통계 수치가 항상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는가? 통계 수치를 이용하려는 사람이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는가에 따라서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매우 적극적인 데이터의 왜곡(이것은 귀가 닳도록 들어온 연구부정행위의 하나임), 그리고 그것이 아니더라도 결과의 자의적인 해석(처벌하기 어려움) 사이에는 매우 넓은 회색 지대가 존재한다. 그래서 통계를 올바르게 쓴다는 것은 정말 무섭고도 중요한 일이다.

유리잔에 물이 정확히 반 남아 있다는 것은 불변의 사실(데이터)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찰 결과를 놓고서 '물이 아직 많이 남았으니 안심해도 된다' 또는 '물이 반 밖에 남지 않았으니 아껴 마셔야 한다'라는 가치 평가(그리고 향후 대책까지)를 내리는 사람은 정책 입안자들이다. 물이 반 남아 있다는 객관적인 결과를 'translation'하여 정책 입안자에게 전달하는 것은 통계업무를 하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정말로 중립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을까?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기존의 통계청보다 격상된 '통계처'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현 정부의 기조에 맞는지 돌이켜 볼 일이다. 그리고 통계 자료를 생산하고 관리하는 각 부처의 하위 조직 간의 연계를 강화하는 것으로도 충분하지는 않을까?

(흠... 나는 사실 '연계'라는 말은 가장 무책임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