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18일 월요일

영업 비밀이 아닌 '균주'의 획득 경로는 정당하지 않아도 되는가?

미국 ITC에서는 메디톡스가 제품 생산용으로 사용하는 Hall A-hyper 보툴리눔균주가 메디톡스의 독자적인 영업 비밀이 아니라고 판결을 내렸다(관련 글 링크). 그 근거는 미국 위스콘신대학교를 중심으로 한때 이 균주(의 모체)가 자유롭게 풀린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정식으로 물질이전계약서(material transfer agreement, MTA)를 체결하여 이용의 범위와 재배포 조건(보통은 금지) 등에 대하여 합의를 해야 한다. 그러나 위스콘신대학교는 그 당시 균주 공여에 대한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즉, 돈을 받고서 사용 권한을 명시한 계약서와 함께 균주를 제공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니 그곳에서 학위를 마치고 부교수까지 지냈던 사람이 연구에 사용하던 균주를 귀국하면서 갖고 온 것에 대하여 '도둑질'이라고 매도할 수는 없다. 내가 알기로는 현재 위스콘신대학교가 메디톡스 보유 Hall A-hyper 균주에 대하여 아무 권한도 요청하지 않겠다는 확인서를 발급해 주었다고 한다. 이것이 균주의 취득 과정 정당성을 확인하는 공식적인 문서 자체는 아니다. 이 점을 들어서 대웅제약에서는 오히려 메디톡스의 균주 출처가 가장 불확실하다고 계속 공격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근무 기록이나 연구 주제, 그리고 KAIST 독성학 연구실에서 진행한 연구 등 무수한 증거는 균주의 입수 과정을 명백하게 보여 준다.

물론 이삿짐에 균주를 싸서 들여오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당시의 법으로는 처벌하기 어려움) 그 과정에서 특별한 유출 사고가 일어나지 않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보툴리눔균은 생물 무기 또는 바이오테러에 쓰일 수 있는 대단히 위험한 균주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 현재는 이를 입수 또는 활용하는데 상당히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보툴리눔균은 무려 다섯 개나 되는 국내법에 의하여 관리를 제한하고 있다(감염병예방법, 유전자변형생물체법, 생화학무기금지법, 대외무역법, 가축전염병예방법). 이를 주관하는 정부의 소관 부처는 질병관리본부, 산업통상자원부 및 농림축산검역본부의 3개에 이른다.

미국의 생물자원은행에 해당하는 ATCC(American Type Culture Collection)에는 Clostridium botulinum이라는 검색어를 넣어도 아무 정보가 나오지 않는다. 구입과 활용에 제한이 걸린 균주라서 아예 아무런 정보도 공개를 하지 않는 것 같다. 반면 영국의 NCTC(National Collection of Type Cultures)에서 검색을 하면 품목 중 24개의 것이 해당된다는 결과가 나온다(링크).

균주 자체는 영업 기밀이 아니므로 이를 사용하여 보툴리눔 독소 제제를 만드는 것을 균주 제공자가 말릴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두 당사자 사이에 계약서가 존재한다면 어떻게 될까? 연구 용도로만 쓰는 조건으로 균주를 제공했는데(보유 경위에 대하서는 성실 신고를 했다고 치자), 받은 기업에서 이것으로 별안간 사업화를 한다고 가정하자. 제공자는 명백한 계약 위반으로 문제를 삼을 것이고, 사업자는 ITC의 판례를 들어(이것이 국내에 어떤 영향을 미쳐야 하는지는 별도로 하고) 영업 비밀이 아닌 균주이니 우리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맞받아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제공자가 이 균주에 대한 독점적 권한을 애초에 받은 것도 아니지 않냐고 주장할 것이다. 여러모로 지금의 분쟁 상황과 비슷하게 굴러간다.

고위험성 병원체의 보유 허가(질병관리청)를 받으려면 균주를 입수하게 된 경위를 사실대로 신고해야 함이 상식적이다. 바로 위에서 보인 '가상의 분쟁'도 균주 입수에 대한 신고 및 허가는 사실에 입각하여 정상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가정 하에 써 본 것이다. 지금 질병관리청이 실시하고 있는 전수 조사에서 만일 균주 입수 경위를 허위로 신고했음이 드러나면 감염병 예방법상 위법에 해당하므로 보유 허가 취소는 물론 고발 조치를 취하겠다고 한다. 이는 당연히 의약품의 허가 사항(식약처 소관)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뉴스에 의하면 조사서를 부실하게 작성하여 제출한 기업이 일부 있다고 한다. 

[데일리메디] 국내 보톡스 제약사 제출서류 일부 '허위'···파장 예고 (2021년 1월 11일)

[매경헬스] 질병청, "균주 영업비밀과 관계없이 허위신고는 명백한 위법" (2021년 1월 14일)

현장 실사에서 허위 신고 여부가 가려지면 정말 좋겠으나, 만약 신고용 균주와 생산용 균주를 별도로 유지하고 있다면(이건 명백히 범죄일 것이다) 압수 수색 권한이라도 있지 않고서야 이를 어떻게 적발할 것인가? 보툴리눔 제제 생산을 위한 배양 과정은 제철소처럼 용광로에 한번 불을 지피면 일년 내내 가동해야 하는 것도 아니니 압수 수색 권한이 있다 하더라도 현장을 급습(?)하여 배양 샘플을 채취하는 것도 어렵다. 실효성 있는 현장 조사 방법을 수립하는 것은 질병관리청의 숙제로 남았다.

ITC의 최종 판결에서 보툴리눔균주가 과거 한때 자유롭게 돌아다닌 일이 있으니 더 이상 특정 기업의 영업 비밀이 될 수 없다 하였으니 균주의 취득 경위는 상관 없이 아무나 이를 사용하여 보툴리눔 독소 제제를 만들어도 되는 것일까? 대웅제약은 ITC의 판결을 이용하여 자사의 입장을 홍보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는데, 솔직하게 말해서 이는 옳지 않은 해석이라 생각한다. 대웅제약이 정말 보툴리눔균주를 국내 환경에서 분리해 냈을까? 대웅제약은 인정하기 싫겠지만 ITC가 내린 과학적 결론은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균주 자체는 영업 비밀이 아니니 이제 출처 논쟁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Hall A-hyper 균주가 자유롭게 돌아다니던 것은 법률로 제한을 가하기 이전의 상황이다. 나는 법률쪽 전문가는 아니므로 단지 생명과학자의 입장에서만 말한다면 영업 비밀의 지위를 일단 잃게 되면 다시 얻을 수 없다는 판결은 다툼의 여지가 있는 것 같다. 어찌되었든 국내의 기업들이 보툴리눔 독소 제제 개발에 흥미를 갖고 균주를 확보하려고 움직이기 시작하던 시절에는 이미 법을 통한 규제가 이루어지고 있었고, Hall A-hyper 균주를 부적절한 방법으로 입수하여 판매하는 업자가 생겨났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다. 많은 기업들이 이를 통해서 균주를 구입한 뒤 국내 환경에서 분리한 것으로 허위 신고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국내에서 Hall A-hyper를 비롯한 A형 보툴리눔 균주가 이렇게 여러 기업에 의해 분리가 된 것이 사실이라면, 식품매개 보툴리눔독소증 환자가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는 훨씬 더 많이 보고되어야 한다. 

영업 비밀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균주(앞서 말했듯이 다툼의 여지가 있음)라 해서 이를 불법적인 방법으로 취득하여 사용한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자연계에서 균주를 분리했다는 신고가 사실은 허위임을 시인했다고 하자. 그러면 보유 허가는 취소될 것이고, 자연스럽게 제품 허가도 같은 수순을 밟을 것이다. 당연히 균주와 제품은 전부 폐기해야 할 것이다. 이는 고위험성 균주 관리에 대한 법률을 어긴 것, 즉 국민 안전에 심각한 위험이 될 수도 있는 행위를 한 것에 대한 합당한 처분이다. 이 문제는 균주의 영업 비밀 여부와는 상관이 없다. 만약 메디톡스가 상대 기업에 대하여 배상청구를 한다면, 이에 저항하기 위해 영업 비밀 이슈를 들고 나올 수는 있을 것으로 본다.

부디 올해는 모든 불확실성을 거두어 내는 기점이 되었으면 한다.

댓글 2개:

Unknown :

안녕하세요.

혹시 연구원에서 apt-get update 명령어가 되시나요?
며칠째 이것저것 바꿔보고 있는데 담당자분은 자기 문제가 아니라고하고
에러는 KEY 값이 expired 되어있다고 하는데...

답답하네요.

jeong0449 :

'연구원'이라 하심은 혹시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저는 3월 말까지 다른 지역의 기업에서 파견 근무 중입니다.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