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15일 금요일

메디톡스-대웅제약 ITC 분쟁과 관련한 최종 판결문 공개 버전을 입수하다

2018년도 매경 미디어 그룹의 'Pulse'에서 실은 기사 하나를 소개하는 것으로 오늘의 글을 시작한다.

Botox craze in S. Korea raises concerns over toxin strain leakage [국문 기사 - 보톡스 테러악용 막으려면...NGS 통해 관리·추적할 수 있어야]

한국은 명실상부한 보톡스 강국이다. 전 세계에서 4개 회사가 보톡스를 제품화했는데, 한국 업체는 3개나 된다(2021년 현재 국내에서 20개나 되는 기업이 이미 의약품 허가를 받았거나 준비 중에 있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회사가 지극히 위험한 균주를 다루고 있으므로, 관리 부실이나 테러 목적으로 균주가 유출되면 대단히 위험하다. 유전체 해독을 통한 균주 관리를 정부 주도로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작년 말부터 질병관리청을 통해 실태 조사가 시작되었지만, 유전체 해독(NGS)을 하자는 것에 대하여 많은 기업들이 반대를 하고 있고, 해당 부처의 의지도 아직 강한 것 같지는 않다.

조사번호 337-TA-1134가 할당된 메디톡스-대웅제약의 ITC 소송 최종 판결문 전문이 2021년 1월 13일 드디어 공개되었다. 누구나 ITC EDIS(Electronic Document Information System) 사이트에 사용자 등록을 하면 PDF를 받을 수 있다. 여기에서 입수한 문서의 사용 제한에 대한 규정이 있지만 무슨 말인지 잘 파악이 되지 않는다. 파일을 직접 읽어보고 일부를 발췌한 뒤 내 의견을 달아서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정도로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파일을 공개된 사이트에 첨부해 올리면 어떻게 될까? 잘 모르겠다.

국내 소송에서는 균주의 유전체 해독을 통해서 관련성이 있음을 가리자는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래서 16S rRNA 유전자 염기서열이나 포자형성능 분석과 같이 핵심을 벗어나는 기법을 가지고 지리한 공방을 이어오고 있다. 국내 법원에서는 시행하지 못했던 유전체 염기서열 비교를 ITC는 강제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현실이 안타깝지만 여기에서 대단히 큰 의미가 있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핵심 쟁점은 메디톡스의 영업 비밀(trade secret), 즉 보툴리눔 독소 생성 균주와 생산 공정을 대웅제약이 도용했는가에 관한 것이다. 예비판결문(FID, final initial determination)에서는 두 가지 전부 도용한 것으로 인정되어 10년 동안 미국으로의 수입을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으나, 최종판결문에서는 생산 공정에 대한 영업 비밀 침해만이 인정되어 21개월의 수입 금지라는 훨씬 가벼운 판결이 나왔다. 이에 대하여 두 당사자는 전부 불만이고, 판결문의 해석을 둘러싼 거친 언론전 제2라운드를 시작하였다. 기자님들, 기업에서 제공한 보도자료만 보지 말고 EDIS에서 최종판결문 좀 받아다가 좀 읽어나 보세요...

균주의 도용에 대해서는 FID의 결론을 그대로 인용하였다. FID에서는 Paul Keim이라는 전문가로 하여금 두 회사 균주의 유전체를 비교하게 만든 증거를 채택하였다. 물론 이는 메디톡스에서 추천한 전문가이고, 대웅제약에서는 다른 사람을 추천하여 각각 분석 결과를 제출하게 하였다. FID에서는 Keim의 보고서를 더욱 중요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 위에서 소개한 Pulse의 기사를 클릭하면 당시 한국을 방문한 Keim의 사진이 나온다. 최종 판결문에서 중요한 문장 몇 개를 추려 보겠다.

  • (34쪽) The FID finds that Respondents misappropriated the Medytox bacterial strain. 
  • (37쪽) Respondents no longer assert the defense of independent development, i.e., that Daewoong founds its strain in the soil...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항임) 대웅이 더 이상은 독자적으로 토양에서 균주를 분리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 (37쪽) The Commission agrees with the FID's analysis. The genetic evidence establishes by more than a preponderance of the evidence (indeed by near certainty) that Daewoong derived its strain from Medytox.
  • (40쪽) Thus, the Commission finds that the evidence supports the FID's findings that Daewoong acquired the Medytox strain by improper means.
중요한 결론 중 하나가 내려졌다. 대웅이 메디톡스의 균주를 부당한 방법으로 획득했음을 위원회에서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 이 균주 자체에 대해서는 영업 비밀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훔친 것은 맞는데 보호받을 가치는 없다? 보호받을 가치가 없는 것을 훔친 것은 죄가 아니다?
너희 집에서 숟가락을 하나 훔쳐서 밥을 먹었어. 좀 미안하지만 숟가락은 누구나 쉽게 살 수 있잖아. 너희 집 숟가락은 법적으로 보호 받을 가치가 없대. 그런 물건을 좀 갖고 나왔기로서니 그게 왜 도둑질이 되겠니?
1970년대에 미국 위스콘신 대학이 보유하던 보툴리눔 균주(Hall A-hyper라고 널리 알려짐)는 연구자들 사이에 자유롭게 공유될 수 있었다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 이후 연구자를 위험에 빠뜨리게 하거나 바이오테러에 쓰일 수 있는 고위험성 균주의 관리에 대한 법률이 전세계적으로 강화되고 보툴리눔균의 상업적 이용에 눈을 뜬 기업들이 관리를 강화하면서 보툴리눔 균주를 얻는 것이 상당히 까다로와졌다. 다시 말해서 자연계에서 직접 찾아내지 않으면 어려운 상황이 되었는데, 신기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보툴리눔 제제의 원료가 될 수 있는 A형 균주를 주변 토양에서 분리하였다는 회사가 너무나 많다. 식품 유래 보툴리눔독소증은 거의 보고되지 않으면서도 주변 흙에 이렇게 많은 보툴리눔균이 살고 있다니 대한민국은 정말 축복 받은 기회의 땅인 것이다!

ITC에서 균주 자체는 영업 비밀사항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 논리의 흐름은 생각보다 어렵다. 기존에는 영업 비밀이라 하더라도, 균주에 대한 제한 없는 접근이 주어진다면(위스콘신 대학 시절) 그 이후로는 더 이상 영업 비밀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영업 비밀이 되는 가장 합당한 방법은 개량을 통해 균주 자체의 상업적 가치를 원본 Hall A-hyper보다 더 낫게 만드는 것이다. 이와 같이 현저한 수준의 기술적 개량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한 번 풀린 영업 비밀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라고 한다. 이러한 논리에 대하여 상황에 따라서 다시 영업 비밀이 될 수도 있다는 주장을 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 같다. 이것이 내가 최종 판결문을 읽고서 이해한 바다.

제품 제조 공정의 도용 문제는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서 나도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게다가 공개된 예비·최종 판결문 전부 중요한 문구는 지운 상태로 제공되었다. ITC의 판단은 균주는 제외하고 제품 제조 공정만이 영업 비밀로서 대웅제약이 이를 침해했다는 것이다.

도용은 맞는데, '영업 비밀로 보호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이 문구를 놓고서 두 회사는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메디톡스는 균주를 훔쳐간 것을 판결이 나왔으니 이에 대해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고, 반대로 대웅제약은 균주가 영업 비밀이 아니므로 이에 대한 책임을 벗어났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메디톡스 균주의 출처가 더욱 의심스럽다고 말한다.

그런데 말이다.

만약 메디톡스의 보툴리눔 균주가 위스콘신 대학 당시의 Hall A-hyper와 특출나게 다르다면 영업 비밀로 인정받는 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유전체 해독 결과 두 균주의 유전체 차이는 수(십) 염기쌍에 지나지 않는다. 특출나게 다르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염기 하나 차이가 결정적인 phenotype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도 있지만... 균주가 한국으로 들어온 다음 어떤 설계에 의한 유전자 조작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 따라서 우연하게 발생한 몇 개의 변이가 원본 Hall A-hyper에 비하여 메디톡스의 균주의 상업적 가치를 더 높이지는 않았다고 위원회는 판단한 것이다. 최종판결문의 57쪽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Respondents contend that "the Medytox botulinum strain does not embody any information that is secret: but "the strain is a copy of the so-called Hall-A hyper strain--a well-known cell line that traces back to Dr. Ivan Hall's study of the organism almost a century ago."

대웅제약은 메디톡스 균주가 오래된 유명 균주 Hall A-hyper의 복제본이고(이미 널리 퍼져 있으며 유전체 정보도 공개됨), 따라서 이보다 더 나은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 말은, 메디톡스 균주가 Hall A-hyper에서 왔음을 시인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왜 보도자료를 통해서 메디톡스 균주 출처가 분명하지 않다고 주장하는가? 과학적으로는 두 균주가 같은 계통임이 명백하니, 아마도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는 Hall A-hyper 균주를 메디톡스도 입수하여 사용하는 것 아니냐는 정도의 말을 하고 싶은 것 같다. 하지만 어쩌랴? 고위험성 균주의 관리가 강화되기 전, 그리고 연구 재료에 대한 재산적 가치에 대한 철저한 개념이 없던 1970년대에 갖고 귀국한 균주이니 요즘 기준에 맞게 정당한 입수 절차에 대한 서류를 근거 자료로 내 놓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 국내 연구실(4층에 있었음)에서 보툴리눔균 관련 연구를 해 왔다는 것은 같은 건물 2층에 있던 나를 비롯한 학과의 모든 대학원생이 다 알던 사실이다. 그걸 기억하던 내 뇌라도 스캔해서 증거로 내놓아야 하나...

앞으로 이 분쟁이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갈 지는 알기가 어렵다. 국내 민사에서는 ITC의 최종 판결문을 참조할 수는 있겠지만, 엄연히 주권이 있는 국가의 법원이 외국의 법원(정확히 말하자면 대통령 직속 준사법기관)에서 내린 판결에 기대는 행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분명히 존재한다. 국내 문제를 미국 법정까지 끌고 가서 K-바이오의 위상에 먹칠을 했다느니, 한국 기업의 미국 시장 진출을 막으려는 앨러간의 앞잡이 노릇만 했다느니 등의 댓글을 하도 많이 보아서 이제는 면역이 생길 지경이 되었다. 메디톡스 균주의 출처부터 밝히라는 댓글을 보면 '후~' 담배라도 한 대 불붙여 물고 싶다. 참고로 나는 비흡연자이다.

불확실성을 거두어 내고 많은 사람이 행복한 사회가 되면 참 좋겠지만, 두 기업의 싸움은 이제 감정적으로도 격화되어서 끝을 알 수 없는 곳까지 치닫는 것만 같아 안타깝다. 원만한 합의의 길은 요원하기만 하다. 대웅제약의 법무팀이 얼마나 탄탄하게 짜여져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려져 있고, 최근 메디톡스는 검사 출신을 부사장으로 영입하였다. 큰 싸움을 앞두고 탄약고를 가득 채우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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