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8일 금요일

늑대는 어쩌다가 개가 되었나

 

2020년 10월 17일 석파정 서울미술관에서 촬영
개는 늑대와 교배가 가능하고, 그 자식(= 개 자식?)도 생식 능력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 두 동물이 얼마나 가까운지는 생물학적으로도 자명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개와 늑대가 인간을 대하는 태도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이다. 산 속에서 사람을 만나면 늑대는 이를 드러내면서 으르르...소리를 낼 것이 뻔하다. 꼬리를 치며 다가와서 킁킁대며 냄새를 맡고는 곧바로 경계를 풀고 몸을 비비며 발라당 몸을 까뒤집고 배를 드러내는 개가 현생 늑대와 조상을 같이 한다는 것이 상상이 가능한가? 야생 생활을 하던 늑대가 어떻게 사람과 생을 같이 하는 가축화(domestication)의 길을 걷게 되었을까? 오늘 한계레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한겨레신문 2020년 1월 8일] 개의 가축화, '단백질 중독' 피하려 남는 살코기 늑대 주다 시작됐다?

이 기사는 사이언티픽 리포츠(Scientific Reports, '싸리'라고도 부르는 사람이 있음)에 어제 실린 논문 'Excess protein enabled dog domestication during severe Ice Age winters'(링크)를 소개한 것이다. 늑대가 개로 진화하는 과정은 사람이 온순함을 기준으로 선택을 계속한 결과라는 가설이 있고, 인간이 수렵채취인(이를 hunter-gatherer라고 부르는구나.. 오늘 처음 알았음)에서 농경으로 생활 방식을 바꾸어 갈 무렵 음식 찌꺼기에 기대 살던 늑대 일부가 개가 되었다는 가설도 있다. 전적으로 고기만 먹는 늑대는 전분을 분해하는 효소 유전자가 없지만 개는 그렇지 않다. 인간이 남긴 음식 찌꺼기를 어떤 방식으로든 소화시켜야 하니 전분 분해 효소 유전자를 갖게 되었을 것이다. 한 마디로 '개 풀 뜯어먹는 소리(?)'처럼 들리지만, 엄밀히 말하면 풀은 셀룰로스지 전분, 즉 녹말은 아니다. 이에 관심이 있다면 'A key genetic innovation in dogs: diet'(링크)를 살펴보자. 췌장에서 발현되는 아밀라제(pancreatic amylase AMY2B)의 copy 수가 늑대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으로 이를 설명한다.

어떤 가설이 옳든 간에 인간의 필요에 의해 늑대를 길들이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오늘 신문 기사로 소개한 논문에서 주장하는 바는 약간 다르다. 인간은 칼로리의 너무 많은 부분을 단백질로 섭취하면 치명적인 단백질 중독이 일어날 수 있다. 이는 특히 식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빙하 시대에는 더욱 심각한 문제였을 것이다. 그래서 남는 고기를 가까이 있던 늑대에게 던져주게 되었고(아마 경험을 통해 고기만 많이 먹으면 몸이 나빠짐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가축화의 시작이라고 주정한 것이다.

이런 기사를 보고 원문을 찾아 읽으면서 지적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생물학 전공자의 보람이다. 전문적으로 들이파는 분야만 편식할 수는 없지 않은가? 지식에도 잡식이 필요하다. 요즘은 주로 보툴리눔균(Clostridium botulinum)의 연구 역사에 관한 자료를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깡통회사(Continental Can Company, CCC)의 Metal Division Research and Engineering 부서에서 일하는 미생물학자가 1960년대부터 균주를 분리하고 연구를 했다니 정말 존경스럽다(논문 사례 링크).

뭐 이런 찬물 끼얹는 글도 있지만.

[김박사넷] Scientific Reports 하락세 설명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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