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15일 일요일

[독서 기록] - ≪다산의 마지막 습관≫

코로나 시대의 세계 동향과 재테크 관련 서적이 신간 코너를 가득 채우고 있는 가운데 함초롬히 놓인 책 ≪다산의 마지막 습관≫(조윤제 지음)을 선택하였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책도 벽면 서가에서 앞 표지가 드러나게 하여 두 칸을 차지할 만큼 진열되어 있었으니 판매처 입장에서는 잠정적인 구매자의 눈에 뜨이도록 상당히 신경을 쓴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마케팅 전략은 나에게는 먹혀 들어간 셈이다.

24쪽에서 ≪소학(小學)≫이 어떤 책인지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였다.

소학은 남송 시기 사람인 주자와 그의 제자 유청지가 함께 만든 책이다. 주자는 우리가 잘 아는 성리학을 집대성했던 대학자다... 소학은 그가 쉰이 넘은 나이에 펴낸 아동교육서의 완결판이라고 할 수 있다. 주자는 논어, 맹자, 예기 등 백여 권의 고전에서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내용을 추려낸 다음 교육, 인간의 길, 수양, 고대의 도, 아름다운 말, 선행의 여섯 편으로 묶었다

말하자면 '어른의 학문'인 ≪대학(大學)≫에서 가르치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근본이 되는 것을 '어린이의 학문'인 소학에서 익혀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조선의 대학자 다산에게 갑자기 소학이라니? 한때 임금의 총애를 받으며 요직을 두루 거치던 그였지만, 신유박해와 더불어 그의 집안은 풍비박산이 되고 그는 강진에서 18년 간의 유배 생활을 하게 된다. 그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나는 잘못 간직했다가 나를 잃은 자다. 어렸을 때 과거가 좋게 보여서 과거 공부에 빠져 지낸 세월이 10년이었다. 마침내 처지가 바뀌어 조정에 나아가 검은 사모에 비단 도포를 입고 미친 듯이 큰길을 뛰어다닌 세월이 12년이었다. 또 처지가 바뀌어 한강을 건너고 조령을 넘어, 친척과 분묘를 버리고 곧바로 아득한 바다의 대나무 숲에 달려와서야 멈추게 되었다. 이때는 나도 땀이 흐르고 두려워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 나의 발꿈치를 따라 함께 이곳에 오게 되었다. 나는  나에게 이르기를, '자네는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왔는가? 여우나 도깨비에 끌려서 온 것인가? 아니면 해신이 부른 것인가? 자네의 가정과 고향이 모두 조천에 있는데, 어찌 본고장으로 돌아가지 않는가? 물었다. 끝끝내 나라는 것은 멍한 채로 움직이지 않으며 돌아갈 줄을 몰랐다. 그 얼굴빛을 보니 얽매인 곳이 있어서 돌아가고자 하나 가자 못하는 듯했다. 마침내 붙잡아서 함께 이곳에 머물렀다.(23쪽)

그는 유배지에서 철저히 '나를 찾'기 위해 노력하였고, 그 힘이 된 것이 바로 소학에 담긴 '수신(修身)'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 책은 내가 평소에 유학에 대해 갖고 있었던 비판적인 자세에 더욱 불을 당기는 꼴이 되고 말았다. 저자가 내세우는 주장이 억지스럽다거나,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전쟁 상황은 아니지만 새로운 감염병의 창궐로 인해 기존 질서가 철저히 붕괴되고 있는 지금,  ≪소학≫과 ≪수신≫이라니? 이제 갓 천자문을 익힌 어린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소학이란, 성리학적 지배 이념을 뼛속 깊숙하게 새겨 넣는다는 첫 작업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유학 또는 성리학에 대한 나의 지식은 지극히 단편적이고, 그에 대한 비판 의식 역시 아직은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아직은 공부가 부족함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유학적 세계관은 인(仁)과 예(禮)를 올바른 길로 강조하며 그 질서에 순응하는 사람을 길러내기에 급급했던 것은 아닐까? 어지럽고 늘 뒤바뀌는 세상을 주도할 수 있는 변혁적인 인재상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껴진다.

책은 일주일 전에 다 읽었지만 이제 기록을 남기게 된 것은 유학과 관련한 나의 고민을 좀 더 다듬고 필요한 자료를 찾아보느라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아직 이를 글로 쓸 만큼 정리가 되지는 않았다. 오늘 쓰는 글은 앞으로 이런 주제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겠노라는 선언적인 의미가 크다. 앞으로 조윤민의 책을 몇 권 읽어야 되겠다.

“백성 피땀으로 지은 宮… 권력 유지 위한 통치수단” [차 한잔 나누며]

YES24 조윤민 대표작  ≪두 얼굴의 조선사≫는 이미 읽었다(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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