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17일 화요일

독서 역주행 - <두 얼굴의 조선사(2016)>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1999)> 이어서 읽기

나의 성은 나주 정(丁)씨 '○○공(公)'파이다.

"저는 ○○ 김가입니다." ...(1)
"저는 ○○ 박씨입니다." ...(2)

다른 사람 앞에서 말을 할 때에는 (1)처럼 하는 것이 예의에 맞다고 한다. 하지만 이 블로그에서처럼 평어체로 쓰는 글에서는 (2)처럼 해도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공'파라고 표현한 것은 이 정보가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집안 어른께서 우리 정씨의 내력을 말씀해 주신 것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 집안의 ○○공 파보(派譜)를 정리한 것은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노력이었다. 그런데 이것을 나주 정씨 '메인 스트림'에 해당하는 월헌공파에서 인정을 하지 않는 듯한 느낌을 받은 일이 있다. 그것도 처음 만나는 사람이 당사자인 내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매우 무례한 일이 아니겠는가?

할아버지께서는 고향(경기도 어느 지역 A라 하자)에 남아있는 우리 조상의 비문, 우리 성씨와 연결된 지명 및 유적의 이름, 그리고 최근 기록만 남은 단편적인 우리 집안의 족보를 가지고 쥬류를 이루는 정씨의 족보에 힘겹게 연결하는 작업을 하셨노라고 내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내가 알기로 '○○공파'가 만들어진 것도 할아버지의 노력인 것으로 안다. 그렇다면 혹시 원래 우리 집안은 정씨가 아닐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조선 후기가 되면서 양반이 점점 많아지고, 전부 성과 족보를 갖게 되었다. 양반이 갑자기 생식능력이 왕성해져서 그 수가 늘었나? 절대 그럴리는 없다. 대부분은 족보를 새로 만들면서 권문세가의 성을 슬쩍한 것이 다반사일 것이다. 게대가 태반은 중국에서 들어온 사람이 자기 성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하니 정말 웃기는 노릇이다. 하긴 나주 정씨도 정덕성이란 사람이 중국에서 한국 압해도에 유배를 와서 시작했다고 전하지만, 다산 정약용은 이를 믿을 수 없다고 하였다. 보다 확실한 중시조는 고려 때의 무인 직책인 검교대장군을 지낸 정윤종(정덕성의 15세손이라고도 함)이다.

우리 조상이 원래 근본이 없는 집안을 이루고 살다가 수백년 전에 A 지역에 들어와서 丁씨 행세를 한 것일까? 기왕 그럴 것이라면 몰락한 왕족이나 당시 세도를 누리던 집안의 성을 따르지 않았을까? 아니면 티를 덜 내기 위하여? 지금으로선 우리 집안이 과거에 양반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다.

명절을 맞이하여 우리 나라 인구를 차지하는 성씨가 너무가 다양성이 부족하고, 대부분이 왕족이나 권문세가의 후손임을 자처하는 것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된 원인은 어디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방송 다큐멘터리 작가 조윤민이 지은 '두 얼굴의 조선사(2016)'를 구입해서 읽게 되었고, 지금으로부터 꼭 20년 전인 1999년에 상명대 김경일 교수가 지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를 중고책 서점에서 구해서 단숨에 읽었다.


중국땅을 거쳐간 왕조 중에는 한나라 이래로 300년을 넘긴 것이 없다. 그러나 조선은 대한제국 선포 전까지만 따져도 5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그런데 이것이 길다고 해서 과연 자랑할마한 일일까? 그 기나긴 역사 속에서 우리는 자주적인 근대화의 싹을 틔워 왔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왼쪽 책의 결론이고, 나는 그것의 근본 이유가 유학에 있다고 생각하여 오른쪽 책까지 읽게 된 것이다. 

조선의 지배세력은 그야말로 '정치 공학자'라고 생각한다. 유교라는 이념화된 사상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흔히 유교의 기본 정신 중에 仁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중국 고대문자 및 문헌 전문가인 김경일 교수에 의하면 공자가 살던 시기에 仁이라는 글자는 없었다고 한다. 오래 전 중국에서 적당히 다듬어진 사상이 어쩌다가 조선의 통치 이념이 되고, 그 틀에 갖힌 기득권 세력은 우리의 창의롭고 진취적인 기운을 죄다 틀어막은 것만 같다. 과거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사문난적으로 몰려서 사약을 한 사발 죽 들으켜야 하는 사회에서 어찌 발전으로 생각하고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단 말인가?

왼쪽 책은 조선왕조실록 등 근거를 제시해 가면서 학문적으로 기술하였고, 오른쪽 책은 일종의 에세이에 해당한다. 오른쪽 책은 당시 IMF 구제금융 시대를 맞아 답답한 현실을 개탄하면서 쓰여진 책이다. 저자는 책을 내고 나서 유림들에게 고소를 당하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원래 저자가 의도한 제목은 훨씬 강경한 '공자를 죽여야 나라가 산다'였다나? 두 책을 읽는 내내 머리에서 김이 뿜어져 나오는 것만 같았다. 

조선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고 하여 이것이 식민사관이라든가 요즘 물의를 일으키는 책 '반일 종족주의'를 옹호하고 있는 것으로 오해하지는 말라. 

다음에 읽을 책은 김경일 교수의 2013년도 저작 '유교 탄생의 비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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