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7일 일요일

도시재생의 희망과 한계 - 다시 세운상가에서

폭염이 이어지던 주말 한낮에 꽤 많은 거리를 돌아다녔다. 카카오맵에서 하루 종일 걸은 거리를 따져보니 4.5 km 정도가 되었다. 동대입구역에서 출발하여 DDP - 청계천 - 세운상가 - 서울극장(존 윅 3편 파라벨룸을 보았다) - 익선동 - 인사동까지. 하루가 지난 오늘까지 햇볕에 탄 얼굴과 팔뚝은 여전히 화끈거리고, 아직 노곤함이 가시지 않았다. 주말의 끝자락에 앉아서 몇 가지 느낀 점을 적어보고자 한다.

어릴 적 사는 동네가 달랐기 때문에 사실 나는 태극당에 대한 추억은 갖고 있질 않다. 2010년에 이 제과점의 위생상태를 고발하는 충격적인 TV 프로가 방송되면서 질타를 받았으나 그 이후 경영진이 바뀌면서 충분히 개선된 것으로 여겨진다. 당시의 TV 화면은 아직도 인터넷에 돌아다닌다. 충분히 반성을 하고 개선을 했어도 인터넷에 남은 기록은 사라지질 않으니 정말 무섭다. 손님도 많았고, 빵과 빙수의 맛도 좋았다. 지나치게 달거나 자극적이지 않고 약간 슴슴하다고나 할까. 

동행한 아들.

세운상가에는 특별히 살 것이 있어서 간 것은 아니었다. 서울시의 대표적인(성공적인?) 도시재생사업 대상으로 알려진 세운상가를 아직까지 제대로 둘러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세운부품도서관에 전시된 류재용 장인의 진공관 앰프 Knot Audio 'Integrated Amp-v'. 6V6GC에 해당하는 구 소련의 진공관 러시아 6П6С(6P6S)를 사용한 푸시풀 앰프이다.

간간이 오가는 관광객도 보이고 젊은 제작자의 작업 공간이 보이기도 했지만 전반적인 느낌은 너무 한산하다는 것이었다. 가게를 비워도 불은 켜 놓아 달라는 상가 번영회의 안내문이 왠지 옹색하게 느껴졌다. 아무리 밥상과 그릇이 예쁘면 무엇을 하겠는가? 먹음직한 음식이 담겨있지 않다면 의미가 없지 않은가? 서울시를 조망할 수 있는 높은 전망대, 멋진 조명, 카페와 갤러리를 예쁘게 만들어 봐야 인증샷이나 찍으러 오는 사람만 반짝 늘 뿐이다.


세운전자상가를 지켜온 기술자와 주변의 부품·공구상가, 주민, 그리고 이곳을 단지 맛집 탐험이나 인증샷 촬영 목적으로 찾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이곳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물건을 사러 오는 고객들이 잘 어우러질 때 참다운 도시재생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메이커'라는 키워드는 충분히 고심하여 뽑아 낸 흔적이 엿보인다. 재생사업 이후 일단 임대료가 올랐다는 것은 좋은 일은 아니다. 부디 좋은 성과가 있기를 바랄 뿐이다. 

세운상가의 주변 지구는 정비가 시급해 보인다. 만약 화재라도 발생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보수를 하지 못하고 천막으로 간신히 씌운 지붕, 온갖 물건이 방치된 옥상, 폐허가 된 듯한 옥탑방 등 안전상으로도 문제가 심각해 보이는 건물이 즐비하다. 김수근이 설계한 세운상가는 당시로는 현대적인 건물이었지만 그 주변부의 외형적 발전(단순한 방문객의 눈으로 보기에는 그렇다)까지는 품지 못했던 모양이다.





서울극장에서 아들과 함께 영화를 본 뒤 친구를 만나고 돌아온 아내와 인근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어디를 갈까? 늘 가던 인사동 말고 익선동 한옥거리는 어떨까? 종로 3가 사거리를 북쪽으로 올라가다가 익선동쪽으로 접어들던 우리 식구는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정경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양 팔을 좌우로 뻗으면 벽이 닿을 듯한 좁은 골목길에 이렇게 많은 식당들이 있다니! 아예 건물을 헐어내고 조성한 빈 터에 간이 테이블을 빼꼭하기 채워서 만든 식당에서 젊은 사람들이 연신 고기를 구워내고 있었다. 현대적인 분위기로 한껏 멋을 내어 내부 인테리어를 바꾼 곳도 있었다. 익선동이 이렇게 힙&핫한 곳이었단 말인가? 그저 '노포(老鋪 - 요즘 지나치게 많이 쓰이는 낱말이 되었음)가 좀 있으리라는 생각만 갖고 갔다가 사람의 물결에 놀라고 말았다. 오죽하면 사람이 너무 많으니 주말에는 가지 말라는 글까지 인터넷에서 볼 수 있었다.

저녁 무렵이 되면 불이 꺼지고 사람들 발길이 뜸해지는 코앞의 세운전자상가에 비한다면 익선동은 분명히 상업적으로는 성공한 곳이다. 하지만 먹는 것, 입는 것, 악세사리 말고는 사람들을 끌 수 있는 아이템이 없는 것일까? 나열하고 보니 전부 관광지에서 팔리는 것들이다. 수고롭게 사진을 찍어서 소셜 미디어에 올릴 수 있는 '매력'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면 그것은 너무 서글프다. 두 시간이나 기다려야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라면, 가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고객도 힘들고, 종업원도 힘들다. 그리고 한번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 곧바로 젠트리피케이션의 타겟이 된다. 익선동은 건물과 골목이 너무 좁아서 상업 자본에 의한 대형 프랜차이즈가 들어오기 어렵다는 것이 방어 요인이 될지도 모르겠다. 

경제 논리와 정책 어느 하나만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것이 도시재생 문제일 것이다. 지역민(주거민으로서 혹은 그 지역에서 일터를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충분한 참여가 있어야 하고, 그러면서도 가벼운 관광지로 전락하지 않는 묘책을 강구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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