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22일 월요일

독서 기록 [이스탄불], [2010 스페이스 오디세이]

참으로 오랜만에 책을 읽었다. 2006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묵의 자전적 수필집 [이스탄불], 그리고 전혀 다른 장르의 소설인 아서 C. 클라크의 [2010 스페이스 오디세이]. 앞의 것은 아내가, 뒤의 것은 아들이 권한 책이다. SF 영화의 고전인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아직도 본 일이 없기에 유튜브에서 영화 해설 동영상을 미리 보고 전편의 대강을 파악한 뒤에 본격적으로 빠져들었다.


더운 일요일 네이버 그린팩토리에서,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그리고 근무지에서 점심식사를 걸러가면서 정말 오랜만에 몰두하여 책을 읽었다. 지나치게 빨리 읽어서 세부를 잘 놓치는 나쁜 버릇을 여전히 고치지 못했지만 말이다(그래서 외국 소설의 등장인물 이름은 수첩에 메모를 해 가면서 읽고 싶은 충동이 인다).

국내에 소개된 오르한 파묵의 책을 먼저 읽어 보는 것이 예의이겠지만 어쩌다 보니 에세이집을 먼저 읽게 되었다. 그는 이스탄불에서 태어나 평생 이곳을 떠나지 않고 살았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사업을 해서 이룬 부를 그의 아버지대에서 거의 다 소진해 버렸고, 그는 그림에 몰두하며 성장을 했다. 공과대학에 들어갔지만 자퇴를 하였고, 첫사랑에는 실패하였으며, 23세에 소설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집에 틀어박혀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새벽 4시에 잠이 들어서 정오에 일어나는 생활을 하며). '도시 그리고 추억'이라는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가 어떻게 소설 창작의 길에 접어들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그렇게 자세히 나오지 않는다. 어린 시절의 기억, 그가 자라난 도시에 대한 추억, 이스탄불의 역사, 보스포루스 해협의 정경, 서구화에 대한 갈등, 그리고 우리말로 번역하기 어려운 이스탄불 특유의 감정인 hüzün에 이르기까지. hüzün은 비애, 깊은 슬픔, 우울, 우수(blues, gloom, melancholy or ruefulness) 정도로 번역이 가능하다.
한 개인으로서뿐 아니라 공동체로서 우리는 모두 외국인이나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에 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 어느 정도 고민한다. 이 고민이 우리에게 고통을 주거나, 현실과의 관계를 흐리게 하여 현실 자체보다 더 중요한 차원에 이르면, 이는 우리에게 문제가 된다는 의미이다. 서양인의 눈에 나의 도시가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한 나의 관심은 - 수많은 이스탄불 사람들처럼 - 문제가 있으며, 한쪽 눈을 서양에 고정시킨 도시 작가들처럼 나도 이 문제로 인해 가끔 머리가 혼란스럽다. - 25장 서양인의 시선 아래서
나도 글을 쓰다 보면 쉼표를 이용하여 어구를 계속 나열하는 때가 많은데(별로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이 책 역시 시각적인 묘사적인 장면에서 그런 것이 많아서 터키어가 원래 그런 것인지 아니면 번역을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인지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제10장 '비애-멜랑콜리-슬픔'에 134쪽에 나오는 문장을 하나 인용해 보자.
나는 어둠이 일찍 깔린 저녁 변두리 마을의 가로등 밑에서 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버지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지속되는 불황 이후 상점에서 하루 종일 추위로 덜덜 떨면서 손님을 기다리는 늙은 책방 주인, 불경기 때문에 사람들이 면도를 하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이발사,,,
여러 사람들의 유형은 무려 쉰 가지를 넘게 나열되어 - 실제로 예순도 훌쩍 넘기는 수준이었겠지만 너무 많아서 세다가 말았다 - 141쪽에서 비로소 구두점을 만난다. 중간에 사진이 많이 삽입되어 있지만 문장이 참으로 길기는 길다. 파묵의 다른 작품을 읽어 봐야 이 사람이 실제로 어떤 문체로 글을 쓰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풍부한 사진과 그림은 마치 여행기나 역사서를 보는 느낌을 준다. 문명이 교차하는 지역이자 주인이 계속 바뀌는 유서 깊은 도시 이스탄불에 대한 배경 지식이 있다면 책을 읽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야 '이스탄불이 터키화한다'는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2010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정말 흥미를 가지고 몰입하여 읽었다.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많은 SF 영화들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얼마나 많은 장면을 오마주하였던가! 지금 생각해 보니 인터스텔라의 TARS는 컴퓨터 HAL에 해당하지만, 많은 이들이 저적했듯이 외형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도입 부분에서 유인원들에게 도구 사용의 지혜를 전수하고 달과 목성에서 발견되는 수수께기의 석판(monolith)을 닮았다.

Monolith vs. TARS. 출처: Interstellar

전편(영화)에서 컴퓨터 HAL이 예상하기 어려운 행동을 한 이유를 이번 편에서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도 있었다. 소설책 한 권이 영화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어두운 밤하늘을 올려다보게 한다. 주인공인 미국인과 러시아인들은 개별적으로 개성이 있는 사람들이지만, 중국인들은 마치 폐쇄적이고 한 가지 성격을 갖는 집단처럼 카테고리화하여 취급하는게 아주 조금은 불편하였다. 유럽인과 같은 행세를 하고 싶어하는 이스탄불 현지인을 바라보는 파묵의 마음도 이와 통하지 않을까?

피로가 몰려와서 더 상세한 독후감을 쓰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다음에는 다음의 책을 사서 읽어보고 싶다.

[화제의 책] 알고리즘의 손안에서 놀아나지 않으려면 '종이책'을 읽고 '사색'을 되찾아라. 
생각을 빼앗긴 세계(프랭클린 포어 지음|이승연·박상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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