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24일 금요일

"교수님이세요?"

오늘은 국내 최고의 '생활문화기업'임을 자처하는 모 기업체가 주최하는 컨퍼런스에 참석을 하였다. 친구로부터 이 행사에 관한 소식을 뒤늦게 전해들었지만 이미 사전 참가신청이 마감된 상태였다. 뒤늦은 참가 신청이 가능한지 게시판에 글을 남겼고, 현장 등록이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고서 매우 고마운 마음으로 이틀째 날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이른 출장길에 올랐다. 새벽 여섯 시가 채 되지 않은 이른 시각에 집을 나서야 했다.

철도와 시내버스를 통해 행사장 근처에 내리니 멋지게 지은 큰 규모의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태풍이 우리나라를 지나쳐 가는 중이었지만 우려와 달리 세력도 많이 약해졌고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곳을 지나고 있어서 비만 간간이 내릴뿐 매우 쾌적한 날씨였다. 상쾌한 마음으로 건물로 들어서니 분주하게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 제품 전시대, 이 기업 소유 브랜드의 매장(카페 및 헬스&뷰티 스토어) 등이 멋진 인테리어와 잘 어울러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등록 데스크를 향했다. 곳곳에 직원들이 배치되어서 안내를 하고 있었다. STAFF라고 적힌 명찰을 단 사람이 먼저 다가와서 나에게 물었다

"교수님이신가요?"

왜 그걸 묻는 것인가? 교수와 비(非)교수에 대한 대우가 다른가? 교수 자격으로 참가한 청중은 더 각별하게 모시라는 지시가 있었나? 내가 과연 교수인가? 굳이 따진다면 UST 겸임 교수이니 교수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평소에 이러한 점을 전혀 강조하지 않고, 또 그러고 싶지도 않다. 몇 초간 생각하다가 '그건 아닌데요'라는 어색한 대답을 하고 말았다. 갑자기 내가 이등 시민으로 전락한 느낌을 받았다. 

언젠가 어떤 학술 행사 비슷한 것에 간 적이 있다. 식사가 제공되는 자리였는데, 진행자가 '교수님들은 앞쪽 테이블로 오시고, 학생·연구원은 뒷쪽으로 앉으세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 난 연구원이지. 나는 뒷쪽 테이블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교수라는 직함이 갖는 사회적 지위는 엄청나다. 정부출연연구소에서 대학 교수로 옮기지 못한 연구'원'의 '신포도 이론'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능력과 기회가 된다면 다들 학교로 가고 싶어한다는 편견이 싫다. 난 권위와 위계 자체를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이고, 다음과 같은 표현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 친구, 내 밑에서 일하던 사람이야(=내가 데리고 있던 사람이야).
애들 다 어디갔어? 그런 건 애들 시키지 왜 직접 해?
출연연구소 안에서도 이런 소리가 들리는데, 하물며 대학 안에서는 어떻겠는가? 지금은 많아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한국 대학 안에서는 전근대적인 요소가 많이 남아있다. 몇년 전이었던가, 어느 국립 대학교의 연구실을 잠시 방문했더니 학생을 시켜서 음료수를 내오는 모습이 너무나 불편하였던 기억이 있다. 한국 문화의 이런 특성에 대해서 비판적인 의견을 많이 내놓는 박노자 교수의 최근 한겨레신문 기고를 살펴보자.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높으신 분' 없는 세상을 위하여!(2018년 8월 14일)

학부생은 약간의 소비자적인 입장에서 교수를 대하지만(비싼 등록금을 지불하므로 이에 해당하는 교육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 대학원생은 교수에게 영원한 '을'이다. 그리고 교수들은 사회적으로도 존경을 받으며 정치적 입김을 불어넣을 기회도 많다. 출연연 종사자들에게 왕처럼 군림하는 중앙부처 공무원들도 교수들은 깍듯이 모시는 경우를 본 일이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에 대해서 토론을 해 본 일이 있는데, 학교에서 교수로 있다가 공직에 오르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것이 결론이었다. 출연연 종사자들은 과학기술계의 공직에 오르기는커녕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내지도 못한다. 요즘은 국민의 폭넓은 지지도 별로 받지 못해서 대덕넷에는 걸핏하면 출연연을 없애라는 댓글이 올라온다. 'PBS제도 이대로는, 과학기술 역량 추락 막을 수 없어'라는 대덕넷 기사에 달린 댓글 잔치를 보라. 이런 글을 볼 때마다 속이 상함은 물론이요, 가끔은 출연연 내부에서도 이에 동조하는 자조적인 글을 올리는 것 같아서 더욱 안타깝다.

공부와 연구를 하는 집단은 교수와 학생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연구원'이라는 이름으로 도매금으로 취급되는 집단에는 연구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책임지며 주도하는 연구책임자(Principal Investigator, PI), 실무를 담당하는 연구자(학사·석사·박사 등 다양), 그리고 연수생 등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수가 그렇게 적은 것만도 아니다.

연구원이라고 뭉뜽그려서 부르는 집단 안에 전문성이나 직무에 따라 다양한 계층이 있고, 난 그 중에서 어느 수준 이상에 이르는 사람이니 구별해서 대우해 달라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직책에 따르는 이름을 가지고서 사람을 이분법적으로 취급해서는 아니된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행사는 매우 유익한 자리였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기업에서도 정말 열심히 한다는 좋은 이미지를 느끼게 되었다.

점식식사로 제공된 치킨가스. 제법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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