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인가를 사고 싶어서 인터넷을 열심히 뒤질 때가 있다. 아니, 좀 더 솔직해지자. 무엇인가를 사기 위해 항상 인터넷을 뒤지고 있다고 고백하자. 단지 그 관심 대상이 바뀔 뿐이다. 지난 25년(혹은 그 이상?)을 회상해보니 사진기와 렌즈, 망원경, 기타(악기), synthesizer, 자전거 부품, 오디오 부품과 스피커 등 나의 관심은 정말 다양한 분야를 휩쓸고 지나간 것 같다.
가장 최근까지 열병을 앓게 한 것은 바로 시계였다. 섭마니 째마니 논크로노니 브슬이니 하는 시계 애호가들의 은어에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나도 이제 '시알못(시계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서 '시잘알'로 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비싼 시계에는 엄두를 내지 못하겠고, 저렴한 오토매틱 시계에 조금씩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간혹 고등학생인데 20~50만원짜리 시계를 추천해 달라는 글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곧 50을 바라보는(앗, 천기 누설이다!) 나도 누리지 못하는 호사를 미성년자가 누리다니!
- 집은 없어도 외제차를 산다.
-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300만원짜리 시계를 산다.
확실히 요즘의 가치관은 많이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비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세계(시계?)가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종종 방문하는 인터넷 상의 시계 포럼을 가 보면, 다소 엉뚱한 질문 글이 가끔 보인다. 바로 '이 시계가 진짜인가요? 아는 (형|아버지|친구)가 주었어요'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자기 상황을 정말 솔직하게 묻는 사람도 있지만, 가짜 시계를 구해서 쓰면서 이것이 얼마나 진짜처럼 보이는지를 떠보는 질문이 더 많은 것으로 생각된다. 최근에는 이런 류의 질문을 올려서 댓글 잔치를 벌인 뒤 나중에 나타나서 '포럼 회원들이 진짜를 가려내는 실력이 얼마나 되는지 테스트하려고 일부러 글을 올렸다'고 실토하는 경우도 보았다. 문제는 이런 고백성 글 안에 'ㅋㅋㅋ'가 붙는다는 것. 이 정도면 실례도 이만저만이 아니고 비아냥과 빈정거림에 다름없다.
또 이야기가 한참 옆길로 샜다. 지금 키보드 앞에 앉은 것은 오늘의 '지름'을 고백하기 위함이다. 싱가포르에 있는 Creation Watches에서 일본 오리엔트사의 저가형 오토매틱 시계를 하나 주문했다. 지난 1월에 구입한 중국제 <롤렉스 서브마리너> 카피 제품은 일종의 탐색전이었다고 보면 되겠다. 나의 호기심을 충족하면서도 가격이 부담스럽지 않은 것을 고르는 지난 한달 반 동안의 과정은 정말 고통스러웠다. 시잘알 선배들에 의하면 '싼 것 자꾸 사지 말고 단 한번에 가라!'는 명언이 있다. 그러나 물건 구입에서 그다지 단호하지 못한 나는 가랑비에 옷 적시는 시도를 자주 하는 편이다. 다이버 시계인가 드레스 워치인가, 시계줄은 가죽 혹은 금속 중에 무엇으로 할 것인가, 직경은 작게 할 것인가 혹은 크게 할 것인가, 기계식인가 혹은 쿼츠인가, 더욱 심각하게는 어느 제조사를 택할 것인가에 관한 가장 근본적인 물음까지. 그런 긴 시간의 고민 끝에 오리엔트 Three Star 라인의 저렴한 제품을 주문하기에 이르렀다. 날짜만 표시되는(아마도 48743 무브먼트 사용) 제품으로서 통줄이 아닌 소위 깡통줄을 사용한 제품인 것이다. 워낙 DHL를 이용한 총알 배달로 유명한 곳이라 금요일쯤이면 물건을 받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택배 기사로부터 방금 건네받은 물건의 포장을 풀면서 내용물에 대한 간단한 평가를 하는 동영상이 요즘 유튜브 등에 많이 올라온다. 이것은 현명한 구매 행위에 분명히 도움은 된다. 하지만 '언박싱'이니 '핸즈온'이니 하는 영어 표현은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3-4일 후 시계를 받게 되면 모델명 및 사진 공개와 함께 소박한 평을 써 보고자 한다. 아마도 쇼핑몰 사이트를 제외하면 이 오리엔트 모델의 국문 사용기로는 최초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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