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22일 수요일

"오늘 퇴근 전까지 부탁드립니다"

오랜 시간을 공들여 고민하여 해결해야 할 일이 있고, 마감일 전에 가벼운 마음으로 해도 되는 일이 있다.

일을 하는 우선 순위는 어떻게 잡는 것이 좋은가? 중요도 우선인가, 마감일 우선인가? 상급 부서 혹은 부처에서 수시로 '퇴근 전까지 부탁한다'는 자료 요청 이메일을 날린다. 받고 보면 오후 4시, 심지어는 5시인 경우가 허다하다. 충분히 시간을 들여서 조사를 하고 생각을 다듬에서 만들어야 할 자료가 이렇게 뚝딱 만들어진다.

대부분의 자료가 이러한 '인터럽트'에 의해서 해결된다. 사안이 중대해서 일주일이나 보름 전에 여유있게 요청된 자료라 해도 이러한 인터럽트에 밀려서 마감일 임박해서야 비로소 파일을 열고 들여다보게 된다. 이런 상황이니 차분히 앉아서 논문을 볼 시간이 별로 나질 않는다. 관련 분야의 동향 파악도 무뎌지는 느낌이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이런 부류의 것들이다.
  • 머릿수만 채우면 되는 회의
  • 안건도, 결론도 없는 회의(회의 개최 사실만 실적으로 남는 회의)
  • 빈 칸만 채우면 되는 자료
  • 마감일만 채워서 내면 되는 일
요청하는 사람은 대부분 '甲'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직장의 상위조직, 중앙부처 공무원 등등. 그나마 대학 교수들은 중앙부처 사무관들에게 비교적 대접을 받는 것 같다. 중요한 평가를 할 때 대개 이들이 평가 위원을 하기 때문이다. 반면 출연연 소속 연구자나 행정관련자들은 철저한 '乙'이다. 새파랗게 젊은 사무관들에게 욕도 먹고 다그침도 받는다. 그래도 일절 저항하지 못한다. 그들이 사업비를 주무르는 사람들이므로.

어쩌면 나는 행복한 고민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규제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부처의 공무원을 대해야 하는 기업체나 공기업, 공공기관의 애로사항은 이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할 것이 뻔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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