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무주군에 위치한 적상산. 赤裳山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사면이 절벽이라 단풍이 물들면 여인네의 붉은 치마와 같다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적상산이라 하면 양수 발전소가 있고 아마추어 천문인들이 즐겨 찾는 관측지라는 정도 밖에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무주리조트에서 열렸던 학술행사 참석 후 대전으로 돌아오는 길에 중턱의 와인 동굴까지는 차를 몰고 가 본 일이 있었다. 언젠가 가족을 데리고 정상의 적상호, 즉 양수 발전을 위해 퍼 올린 물을 가두는 호수까지 올라가 보리라 작정을 하고 있었는데 바로 어제 잠깐 시간을 내어 다녀왔다.
정상까지 올라가는 구불구불한 오르막은 매우 가팔랐다. 도로로 지리산(성삼재)을 지나 천은사로 내려갈 때에도 이 정도로 심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정상까지 올라서 호수를 끼고 전망대까지 간 뒤 다시 돌아오는데, 안국사라는 절로 향하는 길이 있다. 적상호가 거의 정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절로 오르는 길 초입에는 적상산 사고가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한 다섯군데 중 하나라고 한다. 여기를 지나칠때만 해도 적상산이 어떤 역사적 의미가 있는 산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런 사전 조사를 하지 못했으니까.
안국사를 가는 길 중턱에 버스를 위한 주차장이 있고 승용차를 위한 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혹시 걸어다니는 탐방객에게 방해가 될까 조심스럽게 차를 몰고 절까지 가 보았다. 거의 산 꼭대기, 사방이 탁 트인 곳에 아담한 절이 자리하고 있었다. 고려시대 1277년에 월인스님이 창건한 절이라고 한다. 절이 앉아 있는 분위기가 너무 마음에 든다고, 아내가 이야기하였다. 원래 안국사는 이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었는데 적상호 건설로 인해 수몰되면서 사고와 더불어서 현재 위치로 옮겨온 것이라 한다. 안국사에 보관된 괘불은 보물 제1269호이다.
절을 잠시 둘러본 뒤 절 주차장에서 차를 타려는데, 길 아래쪽으로 성벽이 있는 것이 아닌가? 바로 적상산성의 성벽이었다. 고려말 최영장군이 천연의 요새인 이곳에 성을 쌓고 창고를 지어 뜻밖의 난리에 대비하도록 조정에 요청하여 지은 것이라 한다.
국토 어느 한 곳에도 조상의 땀과 숨결이 배어있지 않은 곳이 없겠지만, 대전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 이렇게 깨끗하고 조용한 곳이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이번에는 망원경을 들고 한번 와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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