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10일 월요일

Waterman 만년필, 망가지다

지난 9월부터 쓰던 Waterman 만년필(관련 글 링크)을 땅바닥에 떨어뜨린 이후로 닙 상태가 아주 불량해졌다. 책상에 앉아서 일을 하다가 캡을 벗긴 상태에서 떨어뜨렸는데 닙 부분이 바닥에 그대로 부딛히면서 눈에 뜨일 정도로 닙이 휜 것이다. 처음에는 글씨가 잘 써지질 않았다. 휜 곳을 편다고 종이 딱딱한 곳에 대고 이리저리 누른 것이 문제를 더 악화시켰다. 글씨가 너무 굵게 써지면서 남은 잉크가 놀라울만큼 빠른 속도로 줄어들더니 이제는 잉크가 방울져 흐를 정도가 되었다.

가장 만족스럽게 쓰던 만년필이었는데 이렇게 빨리 망가지게 되어서 허탈하기만 하다. 전적으로 사용자의 실수이고,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일어난 것에 불과하다. 잘 관리하면 대를 물려서 쓸 수도 있지만, 부주의에 의해서 쉽게 망가지기도 하는 것이 만년필이다.

워터맨 만년필 서비스 센터(링크)에 보낼까? 내가 직접 구입한 것이 아니라서 보증서나 구입 기록을 갖고 있지 않은데 서비스 접수가 될지 궁금하여 전화를 걸어 보았다. 음.. 왜 안받지?

'삐~'

이런, 팩시밀리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홈페이지를 보고 (주)항소 고객지원실에 다시 제대로 전화를 걸어서 문의하니 보증서가 없어도 상관이 없다고 한다. 구입처를 통해 서비스를 맡길 때에는 아마도 그곳에서 샀음을 입증할 수 있는 영수증을 갖고 있어야 할 것 같다.

이런 문제를 겪기 싫다면 저가형 만년필의 최강자인 프레피를 구입하여 쓰는 것이 나을 것이다. 약간은 거친 필기감, 고급스럽지 않은 닙... 그러나 가격을 생각한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값이 싸지만 늘 새것을 쓰는 '일회용' 인생을 살 것인가, 아니면 비싸고 관리가 힘들지만 내 손에 맞추어져 가면서 나의 경험을 그대로 간직한 물건을 쓸 것인가? 선택과 취향의 문제이다.

당분간은 파커 IM Premium Vacumatic Pink를 다시 쓰기로 한다(관련 글 링크). 지난 가을 이후 오랫동안 쓰지 않아서 말라붙었던 닙을 따뜻한 수돗물에 담가서 잉크가 다시 나오게 만들었다. 이 미끄덩거리는 만년필은 구입한지 1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손에 익숙하게 잡히지를 않는다.

펜을 쥐는 방법과 글씨체는 사람마다 다르다. 이는 손가락의 문제가 아니고 뇌의 문제일 것이다. 운동처럼 훈련을 통한 근육의 발달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므로. 발끝으로 흙 위에 글을 쓰거나 손바닥 전체로 작대기를 쥐듯 필기구를 쥐고 글씨를 써도 그 사람의 원래 글씨체에 가깝게 써 지는 것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요즘 뇌의 가소성이라는 것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 언젠가는 뇌를 자극(혹은 조작?)하여 순식간에 글씨체를 바꿀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쉽게 말해서 손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이식한다 해도 내 글씨체는 그대로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목소리는? 사람마다 고유한 목소리는 성대가 전부 달라서 그런 것일까, 혹은 뇌에서 보내는 신호가 사람마다 달라서 그런 것일까? 발성기구를 통째로 다른 사람의 머리에 이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실험을 해 볼 수는 없다. 그런데 구글링을 조금 해 보니 사람마다 고유한 목소리는 성대 구조가 전부 달라서 그렇다는 글이 있다. 갓난아기의 울음 소리는 누구나 다 비슷하다. 이 경우에는 남아 여아를 불문하고 성대 구조가 비슷하지만, 일단 성별에 따라서 성대 주름막 부분이 자라는 속도가 달라지고, 성인이 되면 지문처럼 전부 다른 목소리를 갖고록 변한다고 한다(사람마다 목소리가 다 다른 이유는?). 아, 그렇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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