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8일 토요일

독서 기록 - 인듀어(Endure)

알렉스 허친슨 지음, 서유라 옮김. 서문은 <티핑 포인트> <아웃라이어>로 유명한 말콤 글래드윌이 썼다. 제목을 <지구력> 또는 <인내력> 정도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적당했을 터인데 영문 원제는 명사형 Endurance가 아니고 Endure이다. 그렇다면 명령어로서 <참아라> 정도의 뜻인가?



이 글은 휴대폰에서 블로거 앱으로 작성하는 것이다. 책 표지 사진을 찍어서 크기 조정까지 하였는데 정작 이미지를 글 중에 삽입하는 기능을 찾지 못하겠다. 일단 글을 올린 다음 나중에 PC에서 삽입해야 되겠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최근 경험하거나 접한 정보가 묘하게도 이 책과 연관성이 있다. 얼마 전에 모 기업에서 발표를 하면서 서론 부분에서 영화 인터스텔라에 나오는 우주선 Endurance호를 언급한 일이 있다. 그리고 바로 며칠 전 <남극에서 발견된 10가지 기이한 것>이라는 제목의 유튜브 동영상을 보았는데, 이에 따르면 탐험가 섀클턴이 배를 이끌고 남극 탐험에 나섰다가 1915년 1월 꽁꽁 얼어버린 바다에 갖히고 마침내 배가 부서지면서 이를 포기하고 나오게 되는데 이 배의 이름이 바로 인듀어런스호다. 이 일화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탈출로 일컬어지며 오늘 읽은 책 <Endure>의 앞부분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공교롭게도 극심한 추위와 관련한 매우 중요한 사건인 장진호 전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넷플릭스에서 본 것도 엊그제의 일인데, 요 며칠 동안 강추위가 몰아치면서 남극 탐험대의 처절한 탈출과 흥남 철수로 이어지는 장진호 전투의 기록 영상이 묘하게 오버랩된다. 여담이지만 장진호에서 중공군의 공격과 혹독한 추위를 뚫고 흥남을 통한 미국의 철수 역시 됭케르크 철수에 버금가는 성공적인 철수작전이었다 한다. 그러나 됭케르크 철수에서는 병사들만이 철수하였지만 흥남 철수에서는 군인과 상당한 물량의 군수물자와 더불어 많은 인원의 민간인도 같이 탈출시켰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다고 한다. 물론 됭케르크 작전에서는 민간인 선박이 군인들의 탈출에 참여했다는 것이 중요한 의미가 될 것이다.

이 책은 탐험가나 운동선수와 같이 극한의 상황까지 체력을 소모하면서도 결국은 불가능할 것 같았던 한계를 극복하게 되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소개하였다. '막판 스퍼트'는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저자 자신이 달리기 선수 출신의 물리학 박사이자 칼럼니스트라서 자신이 겪은 경험담을 매우 생생하게 소개하였다. 젖산의 축적, 산소 공급의 한계 및 에너지의 고갈, 탈수, 심부체온 상승 등 생리학적인 면에서 육체의 능력을 소진시키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이 책이 주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육체적 피로란 더 이상 몸이 망가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뇌가 느끼고 지령을 내리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실제적으로 신체의 한계는 지속적인 운동 또는 극한 상황(잠수, 오지에서 탈출하기 등)에서 우리가 죽을 것 같이 느끼는 순간에도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라톤을 마치고도 국기를 들고 트랙을 한바퀴 더 돌 수 있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도저히 더 힘을 쓰지 못한다고 느끼는 상황에서도 연료통은 아직 절반 혹은 그 이상이 남아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뇌는 한계상황이 오기 훨씬 전에 피로감 또는 고통으로 경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며, 학습 또는 뇌를 잠깐 속이는(?) 것으로 그 한계를 더욱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체 지구력을 측정하는 시험에서 눈으로 보고 결정해야 하는 작업을 같이 부과하면 지구력이 훨씬 떨어진다고 한다. 이는 기존의 상식과는 매우 다른 것이다. 이를 역이용하면 신체적 지구력을 더 키우는 훈련도 가능하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의 분위기는 신체의 한계는 운동생리학적으로 한정지을 수 있다는 극단과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렸다는 극단 사이에 있다.

뇌를 자극하는 전극을 단 헤드폰 비슷한 도구(경두개직류자극 tDSC)가 상업화를 앞두고 있다고 한다. 아직 효과가 완벽하게 입증되지는 않았다. 이것은 언젠가는 운동선수나 육체를 쓰는 사람을 착취하기 위한 것으로 팔리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인간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 이런 연구를 가능하게 했다고 본다.

Genomics 전공자로서 빠지기 쉬운 오류는 생명체의 능력이 유전체에 새겨진 정보의 범위에 갖혀있다고 보는 것이다. 환경을 거론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유전체라는 모든 경우의 수를 '제한'하는 요인으로 환경 요인을 거론하는 것이 아닐까? 생명체의 능력, 특히 뇌는 매우 유연하며 신비로운 기관이다. 섣부르게 '나의 능력은 여기까지'라는 생각에 빠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