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8일 토요일

휴대폰으로 글을 쓴다는 것

예상하지 못한 개인적인 사정이 생기면서 주말을 타지역에서 당분간 보내게 되었다. 꼭 이것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12월에 접어들면서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빈도 또한 줄어들었다. 아무래도 신경이 분산되어서 그런 것 같다. 지금 이 글은 휴대폰에서 블로거 을 통해서 쓰고 있다.

휴대폰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여러모로 불편하다. 손가락 두 개만을 써야 하니 입력 작업의 속도가 오르지 않고 오타가 잦다. 화면 자체가 작으니 글 전체를 띄워놓고 분량이나 균형을 맞추기도 어렵고, 스타일이나 링크를 마음대로 지정하는 것도 어렵다. 더구나 컴퓨터라는 것 자체가 글을 쓰는 방법을 많이 바꾼 것도 사실이다. 인터넷을 통해 찾은 다른 근거를 인용하거나 링크를 거는 일이 거의 필수가 되면서 멀티 태스킹이 불편한 휴대폰에서는 오로지 내가 작성하는 텍스트에만 집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다만 창을 하나 더 띄우고 맞춤(특히 띄어쓰기) 점검을 수월하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 흠이다. 구글 플레이에서 멀티 태스킹용 앱을 하나 받아서 설치해 보았으나 잘 쓰게 될지는 모르겠다.

공책에 필기구로 직접 글을 쓴다고 가정해 보자. 외부에서 인용한 그림이나 링크 같은 것이 난잡하게 들어갈 여지가 없다. 이렇게 작성한 글이 학술적 용도의 글로 최종 완성된다면 온갖 주석과 참고문헌 인용으로 범벅이 되긴 하겠지만. 책을 읽으면서 신경을 다른 곳으로 분산시키는 주석을 맞닥뜨리는 것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과연 하이퍼텍스트가 문서의 구조를 고도화하고 독자에게 더 많은 정보를 주고 있는가? 그건 나도 모르겠다.

인터넷을 매체로 전달되는 문서에는 아무래도 이미지가 있어야 독자의 시선을 끈다. 요즘 인기를 끄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감상 후기 - 전문적인 평론가가 아닌 일반인이 쓴 것 - 를 예를 들어 찾아보자. 중간 중간에 영화 장면이나 동영상이 삽입되지 않은 것은 별로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블로그에 글을 남기면서 대표 이미지가 될만한 것을 삽입하려고 애를 쓰는 편이니 말이다. 그런데 오늘처럼 휴대폰만을 가지고 글을 쓰다보니 독자의 시선을 끌려고 하는 그러한 노력이 다 덧없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검색창을 하나 열어놓고 내가 작성하는 글과 관련된 사실이 정확한지, 다른 인용할 자료는 없는지 찾아보는데 상당한 시간을 들인다는 것이 과연 옳은가? 이는 쓰는 글의 목적에 따라 다를 것이다. 기사나 학술문서를 쓴다면 이러한 행위가 당연하지만, 만약 시를 쓴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인터넷 + 모바일 기기가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너무나 많이 바꾸어 놓았다. 여유 시간을 보내는 방식, 질문과 대답하는 방식, 글을 쓰는 방식, 정보를 입수하는 방식. 바로 얼마 전의 일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아들에게 혹시 프랑스 감독 알랭 레네를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자동차 뒷자리에 있던 아들의 대답은 '잠깐만요 (휴대폰으로) 찾아볼께요'였다. 내가 질문을 누구에게 던진다는 것은 그 사람의 경험과 지식 그리고 의견을 묻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아들의 즉각적인 반응은 정보 검색의 중재자가 되어 주는 것이었다.

나는 검색한다. 고로 존재한다...

검색하는 인간을 Homo 무엇이라 해야 할까?

검색이 아니라 능동적 학습과 사고, 그리고 체계적인 글쓰기라는 고전적인 활동 - 여기에 '인문학적'이라는 양념을 붙이고 싶지는 않지만 - 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오늘 기차 안에서 읽은 책의 독후감도 휴대폰을 통해서 써야 한다. 외부 자료의 도움 없이 양손가락 타이핑으로 완성해 보겠다.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