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15일 토요일

복희와 여와, the ultimate maker!

오랜만에 혼자서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 특별 전시인 [대고려 918·2018 그 찬란한 도전]과 [황금인간의 땅, 카자흐스탄]은 유료 전시라서 나중에 식구들과 함께 왔을 때 보기로 하고 1층 선사관부터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하였다. 신라관이 새로와졌다는 뉴스를 보았었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왕릉의 껴묻거리를 선반에 죽 늘어놓아서 관람객을 압도하는 분위기는 역시 국립경주박물관이 으뜸이다.


한 쌍으로 이루어진 국보 91호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 중에서 지체가 높아보이는 사람을 가까이에서 찍어보았다. 멋진데? 내 구글 프로필 사진을 저 무사의 얼굴로 바꾸어 볼까? 곁에 있는 또 하나의 도기는 하인에 해당한다고 한다. 주인에 해당하는 사람은 의관도 더욱 화려하고 무릎에 드리운 옷자락은 갑옷의 느낌이 난다.

주인과 말의 눈매가 닮았다.

이번에는 신안선에서 발견된 흑유자, 즉 검정 광채가 나는 도자기가 특별 전시되고 있었다. 이것은 일본의 차(茶)문화 발전과도 관계가 깊다고 하였다. 오묘한 색깔이 정말 아름다웠다. 일식집에서 흔히 미소된장국을 담아주는 그릇 - 주로 플라스틱이지만 - 의 색깔이 흑유자를 본뜻 것인지도 모른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잊지 않고 찾아보는 것이 바로 '백자 넥타이 술병'이다. 보물 1060호로서 실제 이름은 '백자 끈 무늬 병'이다. 어쩌면 저 병의 잘록한 목에 끈을 달아서 쉽게 들고 다녔는지도 모른다. 도공은 어떻게 하여 단순하면서도 대단히 디자인적이며 센스까지 느껴지는 끈을 그려 넣었을까? 아마 이 병이 만들어진 당시 사람들 중 몇 명은 '어라, 끈이 달린 줄 알았더니 그림이었구나!'하며 무릎을 치고 유쾌하게 속아넘어갔을 것이다.


병의 목에 실제로 줄을 달아서 사용한 것 같다. 15세기 백자 가마터에서 나온 깨진 그릇에 다음과 같은 싯구가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이태백의 '술을 기다리는데 오지 않네'(待酒不至)'이다(참고 - 유홍준의 국보순례[48] '백자 넥타이 술병' 링크). 배달 음식을 기다리는 마음이랄까. 어려서 아버지의 술 심부름을 참 많이 다녔었다. 아주 드물게 외상으로 술을 사오라고 하시면 가게로 가는 발길이 잘 떨어지지 않았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지금은 미성년자에게 술을 사오라는 심부름을 시키지 못한다.
술병에 푸른 끈 동여매고
술 사러 가서는 왜 이리 늦기만 하나
산꽃이 나를 향해 피어 있으니
참으로 술 한 잔 들이키기 좋은 때로다


전통 도자기에 그려진 문양 중에는 물고기가 압도적으로 많다. 물고기는 다산과 풍요, 입신출세와 부귀영화의 상징이라 한다. 물고기와 이름 모를 식물이 그려진 분청사기 세 점의 사진을 찍었다. 나는 분청사기에 그려진 저 물고기 문양을 볼 때마다 이정문 화백의 '심술통'이 생각난다. 어딘가 모르게 강인해 보이는 악다문 턱이 느껴지지 않는가?

분청사기는 대부분 생활용 그릇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약 200년 정도 만들어지다가 백자가 널리 퍼지면서 사라졌다고 한다. 고려청자와 같은 명품은 아니지만 질박한 아름다움이 있다.


다음의 도자기를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역시 우리나라는 치킨 대국이다! 하지만 병에 새겨진 새는 닭이 아니고 상서로운 새인 봉황이다. 봉황은 임금의 상징이었고, 지금은 대통령 표장에도 쓰인다. '봉'은 수컷이요, '황'은 암컷으로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그리는 것이 정석인데, 대통령 표장에는 똑같은 모양의 새를 두 마리 그려 놓았으니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봉황'이 아니고 '봉봉' 또는 '황황'이 되고 말았다는 신문 기사도 있었다(링크).


하지만 다음 작품과 같은 투쟁적인 새의 이미지도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관에서 열리고 있는 '가나아트 컬렉션 시대유감'에서 찍은 사진이다. 화살을 맞은 새는 처절하게 죽어가지만 그 몸에서 새로운 새들이 날아오르고 있다. 봉황의 이미지는 특권 계층에 의해 세습되는 권력, 그리고 여기에 기대어 자손 만대에 이르도록 영광을 누리는 '忠'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불사조(안창홍, 1985)

복희와 여와는 중국 신화에서 인간을 창조한 것으로 알려진 신으로 서로 남매지간이다. 아래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뱀 모양의 하반신이 서로를 꼰 형태이다. 그러나 자웅동체는 아니다. 위 아래의 붉은 동그라미는 해를 연상시키는데 그 모양이 마치 욱일기를 닮았다. 주변의 하얗고 작은 동그라미들은 아마 별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왼쪽의 인물 여와는 컴퍼스를, 오른쪽 복희는 굽은 자를 들고 있다. 인간을 창조하는 중요한 일을 하였으니 그 일에 걸맞는 '공구'를 들고 있는 셈이다. 요즘 사회 운동으로 확산되는 Maker의 자세 아니겠는가?

공구라는 한자어보다는 연모라는 토박이말을 쓰고 싶었다.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 하였다. 여러 사람을 이롭게 하려는 선한 의도, 그리고 이를 실제화할 수 있는 실력(= 좋은 연모, 연장, 공구), 그리고 주변의 도움이 잘 어우러져야 멋진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나에게 주어진 인생이 얼마나 더 남아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대략 전후반 중간의 쉬는 시간에 접어든 것으로 생각된다(때이른 정년을 맞았다는 뜻은 아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후반전을 조심스레 설계해 보는 중이라고 표현하면 정확할 것이다.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잘 만들어 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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