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일 수요일

다시 만난 백남준의 프랙탈 거북선

미술관 혹은 박물관의 수장고는 전시되지 않은 소장품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창고에 해당한다. 일반 관람객이 접근할 수 없는 장소여야 함이 상식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수장고를 개방하여 일종의 전시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요즘의 추세인 것 같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서 이러한 시도를 처음으로 체험했던 것이 벌써 몇 년 전의 일이다.

근로자의 날 휴무일을 맞아 아내와 함께 대전시립미술관을 오랜만에 방문하였다. 2019년부터 외부 파견 근무가 이어지면서 좀처럼 갈 기회가 없었다. 2층 로비에서 늘 관람객을 맞던 백남준의 프랙탈 거북선이 보이지 않았다. 오늘의 기획전시는 지역미술조명사업 1 <가교: 이동훈, 이남균, 이인영, 임봉재, 이종수>(링크)였다. 서울 지역과는 다르게 독자적으로 발전해 온 대전의 지역 미술이 걸어온 길을 조망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응노미술관까지 둘러본 다음 대전문화예술의 전당 쪽으로 향하는데 처음 보는 구조물이 눈에 뜨였다. 지하의 열린 수장고로 내려가는 입구였다. 2022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개방되었다고 하니 오늘 처음 보는 것이 당연하다. 어떤 형태로 소장품들을 보여주고 있을지 궁금증을 안고 지하로 내려가 보았다. 3시부터 시작되는 도슨트의 해설을 들으러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고, 우리 부부는 자유롭게 수장고의 작품을 감상하였다. 





'닫힌 수장고'라면 전시를 하지 않는 작품을 항상 일정한 위치에 보관할 것이다. 열린 수장고로 전환하였으니 주기적으로 어떤 기획 의도를 갖고 작품을 선별하여 수장고 내 관람 공간에 내어 놓는 수고를 해야 할 것이다.

1실과 2실 말고도 또 다른 방이 있어서 들어가 보았다. 아! 프랙탈 거북선은 여기에 있었다. 이곳은 바로 프랙탈 거북선을 위한 상시 전시 공간이었던 것이다. 전자부품의 노후화로 가동을 중단했다가 2019년 보존처리를 완료했다고 한다. 가동 시간은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단 두 시간인데, 운도 좋게 가동 중인 시간에 이곳을 들르게 되었다.








일반적인 미술품이라면 온·습도와 강한 조명에만 주의하면서 보존을 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백남준의 비디오아트처럼 전자 및 기계 부품과 이제는 구하기 힘든 CRT TV로 구성된 작품은 작동이 되는 상태로 보존하려면 각고의 노력을 들이지 않을 수가 없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다다익선은 1003개의 CRT 중 작은 것 모니터 중 작은 것 268개를 LCD 패널로 교체했다고 한다. 현대 기술로 디스플레이를 교체한다고 해도 아날로그식 CRT 특유의 느낌 - 광택이 있는 유리 곡면, 4:3의 종횡비 및 독특한 색감 - 은 재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복원을 거쳐 열린 수장고에 '영원한 안식 공간'을 마려한 프랙탈 거북선은 비로소 원형을 찾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2층 중앙홀에 전시할 당시에는 공간이 좁아서 양쪽 날개와 하단 일부를 축소하고 변형하여 전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다시 만난 거북선이 더 웅장한 모습이었던 것 같다. 햇빛이 들지 않는 지하에서 빛을 발하며 가동 중인 프랙탈 거북선은 더욱 강렬한 느낌을 주었다. 

웅장한 모습 그대로 오랫동안 대전 시민들에게 사랑 받기를 바라며...

지금 내가 앉아 있는 불편한 '자리'(지위, 책임 등)를 보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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