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이 있다.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주변에서 그것이 유난히 눈에 잘 뜨인다는 뜻이 되겠다. 소규모 공연을 위한 음향 관련 장비를 하나 둘 장만하다가 가장 마지막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무선 마이크가 최근 관심 대상이 되었다. 어제는 국가 통합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 사업단 회의장에서 손에 받아 든 무선 마이크가 어떤 주파수로 작동되는지(900 MHz 대역) 주의 깊게 바라보았고, 오늘은 코엑스에서 열렸던 같은 사업단 관련 컨퍼런스에서 무선 마이크가 일시적으로 작동이 원활하지 않았던 현상 - 회의장이 너무 넓어서 그랬다고 함 - 을 유심히 관찰하였다. 이내 작동이 잘 되었던 것은 무엇을 조정해서 가능해진 것인지도 궁금하다.
집(스튜디오라고 해 두자)에서 간단하게 녹음을 하는 상황이라면 무선 마이크를 사용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러나 버스킹 또는 행사장이라면 이는 매우 유용한 물건이 된다.
음향 장비의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최근 중국제 저가 공산품을 너무나 쉽게 구입할 수 있게 되니, 도대체 이보다 가격이 수십에서 수백배는 더 나가는 전문회사 제품은 얼마나 품질에 차이가 있을지 궁금해진다. 알리 익스프레스를 살펴보면 무선 마이크 두 개와 수신기를 합쳐서 싼 것은 추가 할인을 적용하면 2만원도 안 되는 가격에 살 수 있는 것이 적지 않다. 이런 것을 그냥 사다가 쓰면 일반적인 용도에서는 충분하지 않을까?
알리익스프레스에서 누구나 쉽게 구입 가능한 중국산 저가 무선 마이크 세트. |
문제는 국내법에 따르면 무선 마이크는 주파수에 따라서 사용이 금지된 것도 있고,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도 있다는 것. 전파라는 것은 공공재의 성격을 가지므로 국가가 나서서 세심하게 규제를 해야 함은 맞다. 무제한으로 사용을 허용하면 긴급 상황에서 방송이나 통신 등에 장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해 관계자가 많고 관련 산업의 규모가 크다 보니 늘 불만은 나오게 마련이다. 대표적인 것이 700 MHz 무선 마이크를 금지하는 절차였던 것 같다. 이 대역은 주파수 재배치를 통해 당시 새롭게 시작되는 서비스인 UHD TV 방송 및 LTE에 장애를 줄 수 있으므로 단속을 하고 있다. 이미 통신법으로는 2013년 1월부터 수입·제조·판매를 금지하였으나 워낙 사용자가 많아서 단속 유예기간을 길게 주었던 것 같다. 실제 단속은 2021년부터 이루어졌다. 허가 없이 사용 가능한 무선 마이크는 925-932 MHz 대역과 GHz 대역의 것이 있다고 한다. 후자는 또 Wi-Fi와 간섭이 생길 수 있다고 하니 주의가 필요하다.
통상적인 RF(radio frequency) 주파수 대역 종별. 출처: 정보통신기술용어해설 |
방송이나 통신 사업자에게 700 MHz를 쓰도록 허용했다면, 일반인이 이 주파수 대역을 쓰지 못하게 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잘 쓰던 장비를 몇 년 뒤에는 금지한다고 하니 장비 교체를 위해 추가 비용이 들어 매우 부담이 됨은 당연하다. 결정은 먼저 이루어진 뒤, 이 대역을 (일반인이) 쓰면 안된다는 합당한 홍보 논리는 나중에 개발하였을 것이다. 여기에 정치권이 끼어들면서 셈법이 더욱 복잡해지고, 경매라는 방법도 동원되는 모습도 보인다.
- 주파수의 '은밀한 매력' - 동아사이언스 2011년 9월 4일
- 유행 따라 변하는 황금주파수(이동통신 3사의 주파수 전쟁 내막) - 사이언스타임즈 2013년 5월 31일
- 700MHz 황금 주파수 뺏긴 이통사, 차세대 이동통신 5G '빨간불' - 아시아투데이 2015년 7월 8일
- 황금주파수 700MHz, 누가 가위질했나 - 다시쓰는 한국 이동통신 연대기3
470-698 MHz 대역의 무선 마이크는 공연이나 방송제작 및 공연지원업에 종사하는 사업체만 허가를 받아서 사용 가능하다고 한다. 그것도 고정된 장소에서만. 야외에 임시로 설치한 공연용 무대(때로는 방송으로 송출되기도 함)라면 어떻게 허가를 받을까? 공연 허가를 받으면서 무선 마이크 외부 사용에 대한 임시 허가를 받는 것일까? 어쨌든 개인은 절대로 이 허가를 받을 수 없다. 알리익스프레스에서 판매하는 많은 저가 무선 마이크가 바로 이 대역에 해당한다. 물론 가격대를 보면 방송이나 공연에 어울리는 수준의 것은 아니겠지만. 사실 이 대역의 무선 마이크를 쓴다고 해서 기존 통신망이나 방송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특정 영역의 사업자에게 일종의 특혜를 준 것으로 보는 해석도 있다. 다음은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뛰어야 하는 방송 종사자가 기존에 잘 사용하던 700 MHz 무선 마이크를 900 MHz로 바꾸면서 겪은 어려움을 토로한 글이다.
무선마이크 900MHz 전환기 - 한국영상기자협회(2021년 1월 7일)
470-698MHz 신규허가 주파수대역 wireless system(월간 방송과 기술 2011년 8월 1일)과 네이버 블로그에 바다쟁이님이 쓴 글 무선마이크 주파수 현황(2019년 수정)도 잘 읽어보면 매우 유용하다.
수입업자가 국내에 전자제품을 들여와서 판매하려면 많은 돈을 들여 인증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개인이 재판매하지 않을 목적으로 단 하나의 물건을 해외직구하는 정도로는 처벌을 받지 않는다. 구입 후 1년 뒤에는 중고 거래도 가능하다(중앙전파관리소의 관련 글 링크). 하지만 이렇게 600 MHz 대의 무선 마이크를 알리익스프레스에서 구입하여 사용하다가 전파관리소의 단속에 걸렸다면? 중앙전파관리소에서는 월별 불법무선국 조사단속 일정을 공지한다(링크). 이때 허가를 받지 않은 일반 사용자가 470-698 MHz 대역의 무선 마이크를 사용하는지 여부를 단속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논란이 있었지만 700 MHz 대역의 무선마이크를 사용하면 전파법 제45조 (기술기준)위반으로 2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음(전파법 제91조(과태료)제4호)이 널리 홍보되었는데, 나머지 대역에 대해서는 실질적으로 단속이 이루어지는지 알기 어렵다. 방송제작 및 공연제작 사업자, 또는 인증을 받아 국내에 무선마이크를 보급하는 수입업자(또는 제조사)가 중국제 저가 470-698 MHz 무선마이크를 사용하는 사람을 적극적으로 단속해 달라고 민원을 제기할 가능성은 있다. 참고로 국내에서 제조되는 핸드헬드 무선 마이크는 (주)썬테크전자의 SECO 정도인 것으로 알고 있다.
허가 받지 않은 470-698 MHz 대역의 무선마이크 사용에 대해서 이 정도로 경고를 한 일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
보다 자세한 것을 알고 싶다면 전파법 제45조(기술기준), 전파법 시행령 제25조(신고하지 아니하고 개설할 수 있는 무선국)에 따른 과기정통부 고시 「신고하지 아니하고 개설할 수 있는 무선국용 무선기기」를 참조하라.
생물학자가 이런 분야의 상황을 어찌 이해하겠는가.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현행 국내법에 저촉되지 않는 물건으로 구입을 해야 되겠다.
참 별걸 다 공부한다. 무선통신의 아버지 굴리엘모 마르코니여, 이런 세상이 올 줄 아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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