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8일 월요일

기술 혁신의 이면 - 지속 가능한 사회는 가능할까

기술 혁신 시대는 늘 인류로 하여금 불편한 선택을 강요하였다. 기존 기술을 고수할 것인가, 또는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여서 적응할 것인가 중에서 하나의 태도를 취해야 했고, 대체로 후자를 택하는 사람이 새 시대에서 번성하는 주류로 자리 잡게 되었다. 늘 인용되는 영국의 러다이트 운동(1811~1817년)이나 붉은 깃발법(1865년)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신기술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항상 존재하지만, '결국은 스러지고 말' 저항 정도로 치부되는 것 같다. 

저항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모두 똑같을 수는 없다. 과거부터 지켜 온 공고한 기득권(카르텔?)이 붕괴되는 것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입장도 있을 것이고,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근근이 생계를 지탱해 주었던 직업을 잃는 두려움도 있을 것이다. 모든 사회 현상을 시장 논리나 진화론적인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언젠가는 새로운 질서가 저절로 자리잡게 될 것이니 다소의 아픔이 있더라도 이를 감수하는 것이 옳을 것이며, 사회 전체적으로 약간의 희생을 딛고 일어서서 더 많은 혜택을 더 많은 사람이 누리게 되는 과정이라는 입장도 있을 것이다.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일이다. 올바르고 공정한 사회라면 결국 소멸되어 사라질 계층·직업군이라 하더라도 그들이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살 수 있도록 살뜰히 배려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앞으로 30년쯤 지나면 키오스크 앞에서 주문을 주저하는 노인이 훨씬 줄어들까? 이러한 일은 기술 혁신 시대에 잠깐 나타나는 과도기적 현상일까?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매일 매일이 '특이점'과 같은 요즘, 기술 혁신은 상시적으로 일어나고 있으며, 전 인구의 일정 비율은 기술 부적응자 상태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빠르게 잠식한다는 두려움이 점점 주변에 퍼지는 것 같다. 단순 업무 직군은 종사자 수가 점점 줄고 있고, 해고 때문에 업무 강도는 더 높아지고 있으며, 그나마 고객과 대면하여 생성된 정보를 텍스트로 전환하여 AI에게 학습시키는 역할로 바뀌어 나가고 있다고 한다.

[경향신문] 업무만 가르치고 빠져라? AI발 해고 '올 것이 왔다' - 2024년 1월 7일

AI가 제 역할을 하려면 천문학적인 전력을 소비하는 데이터 센터가 필요함은 물론이다. 가정이나 산업(제조) 현장에서 사용하는 전력량을 능가할 날이 멀지 않았다. 24시간 내내 아무때나 이메일을 보내고, 동영상을 감상하기 위하여 데이터 센터에서는 전기를 빨아먹고 있을 것이다. 전기라는 같은 자원을 놓고 다툼이 발생하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다. 이는 별도의 글에서 진지하게 다루어 보아야 한다.

이와 같이 화이트칼라의 영역은 AI에 의해 직접적으로 위협을 받고 있지만,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블루칼라의 영역에서는 오히려 기회가 되고 있다는 긍정적인 기사도 있다. 고령화로 인해 젊은 일손이 부족해지는 것도 원인이 된다고 한다. 

[조선일보] 노다지 터진 블루칼라...'빈익빈 부익부'가 허물어진다 - 2024년 1월 7일

이 기사(영국 이코노미스트 인용)에 따르면 코로나 이후 생산직·서비스직 노동자의 임금이 크게 올랐고, 학위가 필요 없이 도제식 견습 교육을 받아야 하는 일자리의 임금도 더 높아졌다고 한다. 또 다시 육체 노동의 시대로 돌아가는가? 지표 상으로는 블루칼라의 처우가 과거 어느 때보다 좋아졌지만, 여전히 노동자는 점점 더 많이 싸울 자세가 되어 있다고 하였다. 즉, 코로나 이후 경제적 과실을 기업과 경영진이 독점한다는 문제 의식을 강하게 갖고 있다고 하였다. 정당한 불만의 표출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다.

미래 사회가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지 가늠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른바 '알파 세대(Generation Alpha)', 즉 2010년 이후 세대는 현실과 온라인 세계를 자유롭게 오가며 성장한다. 스마트폰과 AI가 완전히 세상과 일체화된 이후 태어난 세대는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이 이전 세대와는 완전히 다르다. 

알파 세대는 최신 기술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과도 어울려 사는 데 익숙할까? 아직 알파 세대가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출하기 직전의 단계이지만, 이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문해력이 떨어지고, 맥락을 통해서 단어의 뜻을 유추하기보다는 즉각적으로 질문을 던진다.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짐은 당연하다. 가히 "인류가 바뀌었다"고 평가해도 될 수준에 이른 것이다.

[한겨레신문] 도파민 인류① - "선생님, 개최가 뭐예요?"...스마트폰 쥔 '도파민 인류' 어휘를 잃다 - 2024년 1월 8일

세상 모든 자극의 집합소인 스마트폰은 도파민과 연결되어 있다. 스마트폰과 더불어 우리의 자녀들은 도파민을 얻고, 대신 더 많은 것을 잃었다. 스마트폰 과다사용 증상이 심할수록 언어 처리에 관여하는 뇌의 두 부분 간에 기능적 연결성이 떨어지는 현상이 관찰되었다고 한다. 

시리즈 기사의 첫 번째 글에서는 주로 문해력 측면의 문제점을 논하였지만, 결국은 언어를 통해서 주변 상황을 파악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저하되는 문제로 이어질 것이다.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면 사회 생활을 영위하기 힘들어진다. 이런 사람들의 비중이 점차 커져서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그런 성향을 갖는다면, 정말 암울한 미래 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사람, 그리고 그 사이의 관계보다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도파민 인류② - "스마트폰 의존, 대마초보다 지능에 2배 유해한 환경" - 2024년 1월 11일

두 번째 기사에서는 영국 저널리스트 요한 하리의 저서 <도둑맞은 집중력>을 소개하였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려는 순간 실수를 하게 되고 창의성은 감소한다.

"인공 지능 시대에 우리가 원하는 것은 로봇처럼 일하는 직원이 아니라 창의적으로 일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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