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10일 수요일

나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보통 코로나19(coronavirus disease 19, COVID-19)라고 부르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는 질환의 명칭이고, 이를 일으키는 병원체는 SARS-CoV-2이다. SARS는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을, CoV는 coronavirus를 의미한다. 예전에는 '신종'이라는 접두사를 붙였으나 WHO에서 2020년에 공식 명칭을 COVID-19로 확정하였다.

나는 바이러스 전문가는 아니지만, 박테리아 게놈을 다루던 경험으로 SARS-CoV-2를 검출하기 위한 PCR 프라이머 설계에 관련한 논문을 작년 Genes Genomics에 게재한 일이 있다(PubMed 링크). 약 23만 건이 넘는 바이러스 게놈을 모아서 전처리한 뒤 conserved region을 검출하고, 이로부터 PCR 프라이머를 설계하여 실험으로 입증한 사례이다.

Identification of conserved regions from 230,163 SARS-CoV-2 genomes and their use in diagnostic PCR primer design 

논문에 찍힌 날짜를 보니 꼭 1년 전 5월 3일에 게재 승인을 받은 것으로 나온다.

WHO에서는 지난 5월 5일, 3년 4개월 만에 코로나19 국제공중보건위기상황(PHEIC, public health emergency of international concern)을 해제를 선언하였다. 바로 어제(5월 9일) 내가 세계일보에 기고한 글(링크)은 '코로나19 팬데믹 굴레에서 벗어나 곧 예전의 일상을 찾을 것이라는 희망이 보인다'는 글로 시작하고 있다.

그런데 기고문이 공개되기 하루 전(5월 8일)에 나는 이런 선물을 받고 말았다. 허허허...



목요일부터 목이 약간 칼칼하면서 감기가 시작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열도 별로 나지 않고 사지가 쑤시거나 오한이 들지도 않아서 COVID-19는 아닐 것으로 생각을 하였다. 타이레놀과 쌍화탕으로 며칠 버텨 보았으니 보통의 감기와 다르게 이틀 이상 증세가 지속되는 것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싶어서 토요일에 개인용 신속항원검사를 해 보았으나 음성이었다. 그러다가 일요일이 되니 목이 몹시 아프기 시작하였다. 약국에서 인후통 전용의 빨아먹는 소염진통제를 받아서 4시간 간격으로 먹어 보았지만 별로 소용이 없었다. 이 약의 부작용 때문인지 밤에는 잠을 거의 자지 못하였다.

월요일 아침, 그러니까 이틀 전에는 목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다시 진단키트를 써서 검사를 해 보니 선명한 두 줄이 나왔다. 이런... 나도 드디어 코로나에 걸렸구나! 아침 8시에 문을 여는 동네 병원으로 향했다. 횡단보도 신호등이 꺼지기 전에 건너가려고 뛰어 갈 수 있는 정도였으니 다른 증세는 별로 없었던 셈이다.

의료기관용 전문가 키트로 검사를 다시 하여 확진 판정을 받았다. 주사를 한 대 맞고 나흘치 약을 받아서 집에 돌아왔다. 자가격리기간은 확진일로부터 세어서 7일째 밤 12시이다. 따라서 다음 주 월요일 0시까지는 집에 머물고 있어야 한다. 확진 이틀째(어제)는 목소리가 거의 나오지 않고 흉부에 약간의 묵직함(통증?)이 느껴졌다. '아, 이러다가 숨 쉬기가 어려워지면 병원에 입원해야 하고, 정말로 위중해지면 ECMO를 쓰게 되는구나...'하는 약간의 염려가 들기도 했다. 그러나 오후부터 상태가 점점 좋아지기 시작하였다.

어떤 경로로 코로나19에 걸렸는지는 알기 어렵다. 최근 약 두 달 동안 대중교통을 이전보다 많이 용하였고, 마스크 의무 착용이 해제된 후로는 감염에 노출될 기회가 더 많았을 것이다. 

확진 사흘째인 오늘은 목소리가 많이 정상 수준으로 돌아왔다. 기침은 앓는 기간 내내 거의 나오지 않았다. 다만, 간혹 기침을 하면 기관지 안에 끈적한 가래가 많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상태이다. 가래 배출을 위해 물이나 음료를 많이 마시고 있다. 바로 곁에서 지내는 아내도 몸의 상태가 최적은 아니지만, 오늘까지도 자가진단키트로는 음성이 나오는 것을 보니 아직은 내게서 옮지는 않은 것 같다. 부디 이런 것까지 나누는 부부가 되고 싶지는 않다!

증상 발현일로부터 삼일째에 가장 심하고, 5일이 되면 좋아진다고 한다. 개인마다 편차가 있겠으나 대충 들어맞는 것 같다. 아마도 어제가 가장 증세가 심한 날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종합적으로 판단하건대 지금까지 앓았던 몸살감기와 비교하여 가장 심하게 아픈 정도에 해당하지도 않았고, 매우 수월하게 진행되는 것 같다. 초창기와 다르게 SARS-CoV-2 역시 인류와 더불어 살면서 많이 순화되어 인체를 덜 괴롭히는 쪽으로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

나는 운이 좋게도 코로나19를 걸리지 않고 지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결국은 타지 않아도 될 막차를 타고 말았다. 증세가 생각보다 심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다. 최근 자가격리를 7일에서 5일로 단축하자는 이야기가 나오다가, 심지어 격리의무 해제까지 논하는 이 시점에 말이다. 

코로나 확진자 7일 격리 의무, 이르면 이달부터 전면 해제된다

확진자가 되면 일터에 나가지 못하게 되므로 아무리 아파도 이를 숨기고 진단검사를 받지 않으려는 안타까운 사연도 아직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만약 격리의무가 해제되어 권고로 그치게 된다면, 많은 사람들은 억지로 아픈 몸을 이끌고 일자리로 나오게 될 것이고, 주변 사람들은 다시 감염 위험에 노출될 것이 자명하다. 억지로라도 쉬면서 이차감염을 막을 수 있었지만, 격리의무가 해제되면 그것조차 못 하게 되기 때문이다. 요 며칠 동안 우리나라의 확진자 수가 큰 폭으로 증가한다는 우려스러운 기사도 보인다(링크).  

확진자 및 가까이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마스크를 씌워서 억지로 일을 하게 할 것이 아니라. 콜록거리는 사람에게는 과감하게 며칠 쉴 수 있게 보장하는 것이 사회적 비용을 덜 들이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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