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23일 화요일

이마빌딩으로 출근하기

세종대로 근처를 거닐다 보면, 미국 대사관 뒤로 갈색 타일을 두른 15층 건물이 눈에 뜨인다.  꼭대기에 붙은 이름은 '利馬'. 이마? 말을 이롭게 한다? 처음에는 말 산업 또는 한국마사회와 관련한 빌딩일 것이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아마 나와 같은 오해를 한 사람이 많이 있을 것이다.

출처: 서울경제


이마빌딩은 이마산업이 30년째 관리해 오고 있는 오피스 전용 건물로서 삼봉 정도전의 집터였다고 한다. 당연히 한국마사회와는 관련이 없다. 2017년 서울경제에 실렸던 기사(건축과 도시)를 보면, 이마빌딩은 풍수지리적으로 최고명당의 위치에 자리잡은 건물로서 많은 입주사가 크게 번창하였다고 한다. 현재의 말 산업과는 무관하지만, 이 기사에 따르면 조선시대 왕실 전용 마굿간, 서울시경 기마대 등이 위치하여 말과 연관이 깊은 것은 사실이다.

서울을 떠나 대전에 정착한 지 어언 35년, 다시 서울로 돌아와서 이마빌딩에 자리잡은 사무 공간에서 일을 하게 될 줄 어찌 알았겠는가. 숙소로 마련한 오피스텔에 입주할 날짜가 아직 되지 않아서 며칠 동안은 운니동에 있는 허름한 모텔에서 묵고 있는데, 돈화문 보며 걷기 시작하여 운현궁을 옆에 두고 걷다가 멀리 경복궁과 동십자각을 바라보며 끝나가는 출근길의 정취가 너무나 좋다. 9월 1일이 되어 오피스텔로 입주하게 되면 정반대 방향에서 현대적인 건물 사이를 누비면서 이마빌딩으로 출근하게 될 것이다.

근무 첫날은 전산 시스템을 익히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보안에서 비교적 자유로운(지메일이나 구글 드라이브를 접속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지만) 정부출연연구소에서 일을 하다가 업무망과 인터넷망이 완전히 분리된 정부 전산 시스템의 개념이 잘 잡히지 않아서 애를 먹었다. '안정성'과 '보안'을 최대화하기 위한 정부의 전산 시스템을 만들고 관리하는 사람들의 수고가 눈에 보이는 듯하였다. 사람은 하나인데 왜 이메일 주소는 세 개나 되는 것인지는 아직 이해가 되지 않지만.

혼자 쓰는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 칸막이로 나뉜 공용 사무실을 쓰는 것도 매우 새롭다. 이 분위기에 빨리 익숙해져야 한다! 8월 1일 전에는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서 정보를 나누고 토론을 하는 모습이 직장 대부분의 일하는 모습일 것이다. 짧은 시간 안에 백 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서 일할 공간을 마련하느라 지원국 사람들(소위 '늘공', 비하를 하는 낱말이 아니니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오해가 없으시길)은 무척 많은 수고를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곳에 모인 사람들은 아직 어리둥절함을 떨쳐버리지 못한 상황에서 뭔가 지원이 부족함을 느끼기 쉽다. 전산 시스템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다들 애를 쓰면서, 자연스럽게 옆자리와 등 뒤에 앉은 사람들에게 정보를 얻고 또 주기도 한다. 

Pseudo-'어공'이 되었으니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도 조심스럽다. 진짜 공무원처럼 블로그나 유튜브 운영을 위해 사전에 허가를 받을 필요는 없지만, 업무와 관련된 설익은 정보를 부지불식간에 유출하면 안 될 것이다. 아마도 볼거리가 가득한 출퇴근길의 분위기를 기록하는 수준에서 그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마빌딩 1층 로비에 위치한 말 조형물. 머리 모양을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크고 긴 꼬리 때문에 다람쥐로 착각할 수도...

이마빌딩 지하를 흐르는 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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