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29일 금요일

폴 카임 박사의 세미나 참석기(2022년 4월 22일) - 계통유전체 분석을 통한 사회문제 해결 사례

2022년 4월 21일, 나는 코엑스에서 열렸던 저 세미나 자리의 두 번째 줄에 앉아 있었다(한국미생물학회의 세미나 안내문 링크). 강연이 끝난 뒤 키가 무척 큰 폴 카임 박사 바로 곁에서 사진을 찍은 것은 실수다!

출처: 뉴데일리경제(링크)
미국 Northen Arizona University의 Translational Genomics Research Institute에서 근무하는 그는 2001년 탄저균 테러 사건에서 포자의 출처를 밝히는데 큰 공헌을 한 사람이다. 반사회적인 의도를 가지고서 생물학적 작용제를 살포하는 나쁜 사람이나 단체(또는 국가)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기후 변동에 의하여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얼음 속에 묻혀 있던 병원체가 되살아나 새로운 아웃브레이크를 유발하기도 한다. 2016년 시베리아 툰드라 지역에서 갑자기 탄저병이 돌아서 1명이 죽고 사슴 고기를 먹었던 72명이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발생한 일이 있다. 이는 80년쯤 전에 탄저균에 의해 죽은 순록이 영구동토층에 갖혀 있다가 해동되면서 탄저균이 되살아난 때문이었다. 이 일로 인하여 수십만 마리의 순록을 도살하고 백신을 접종하는 등 한바탕 난리를 치러야만 했다(관련 기사 링크).


카임 박사는 미국 ITC에서 맞붙은 에볼루스-대웅제약 대 엘러간-메디톡스의 보툴리눔 균주 출처 분쟁에서 메디톡스 측이 선임한 전문가이기도 하다. 발표가 끝난 뒤 기자가 물었다. 왜 한국에는 이렇게 많은 보톡스 제조회사가 있을까요? 카임 박사의 대답은 간단했다.

"모르겠다."

보툴리눔 균주를 보유한 모든 기관으로부터 균주를 의무적으로 제출토록 하여 관리를 하는 방안이 담긴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 몇 달 전에 발의되어 곧 시행을 앞두고 있는 상태라고 들었는데, 현재 어떻게 진행 중인지는 알지 못한다. 대부분의 국내 업체들이 한국 환경에서 직접 균주를 분리하여 제품 개발에 이르렀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실제로 유전체 분석을 해서 이를 서로 비교하게 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오게 될지 매우 흥미롭다. 만약 엘러간-메디톡스에서 사용하는 Hall A-hyper와 수십 SNP 정도로밖에 차이가 없다면, 그 기원을 과연 어떻게 설명할까?

미국에서 1920년대쯤에 분리된 균주와 동일한 것이 2000년대에 한국 땅에서 발견될 확률이 과연 얼마나 될까? 지구 반대편에서 처음 보고된 신종코로나바이러스의 변이체가 순식간에 우리나라에서도 발견되기도 한다. 이를 사람이나 물자의 이동에 의한 '유입'으로 해석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우리나라에 원래 있던 변이체라거나 독자적으로 돌연변이가 생겨서 일치하게 되었다고 보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의 보툴리눔독소증 발생 사례는 극히 드물다. 만약 한국의 바이오의약기업이 땅을 파서 상업적으로 개발이 가능한 수준의 Clostridium botulinum 균주를 채취할 수 있으려면, 국내에서도 매년 수십 명 정도의 보툴리눔독소증 환자가 나와 주어야 한다. 미국의 사례를 보자. 다음의 자료는 미국의 질병관리본부(CDC)에서 게시한 것이다.

An average of 110 cases of botulism is reported annually in the US. 링크

일본이나 중국도 결코 적지 않다. 그럼 우리나라는? 질병관리청 감염병포털을 캡쳐하였다.

출처 링크

음... 2003년 사례는 일가족이 같은 음식을 나누어 먹고 걸린 사례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영아 보툴리눔독소증 환자 분리균주의 유전학적 특성을 분석한 자료(링크)를 보면 전체 유전체가 아니라 독소 생성 유전자만을 분석한 것이라서 균주가 어디에서 유래했는지를 판단하기가 매우 어렵다. 연구자는 분명히 whole genome sequencing 결과를 갖고 있을텐데 왜 공개하지 않았을까? 이 균주는 환자의 분변 샘플에서만 확인된 것으로, 환자가 먹은 음식이나 주변 환경까지 철저히 뒤진 것 같지는 않다. 수입된 식품 원료에 포자가 오염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소를 마비시키는 보툴리눔독소증은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보고된다(2021년 뉴스 링크). 하지만 가축병의 원인 세균과 보톡스 제품에 쓰이는 세균(대부분 type A toxin)은 번짓수 자체가 다르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실행에 들어가면 아마도 가장 바쁜 곳은 질병관리청이 될 것이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으로 2년 넘게 고생을 한 정부부처가 또 짐을  짊어지게 될 터이니 안타까운 마음도 있지만, 국내 기업체에 널리 퍼져 있는 보톡스 제조용 균주의 기원을 속 시원하게 밝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

부정한 방법으로 입수한 균주라고 해서 그로부터 만들어진 의약품의 약효나 안전성에 문제가 있을리 없다. 그러나 취득 과정에 거짓이 있었다면, 제품 허가를 취소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몇년 동안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문서' 위조 문제 등을 생각해 보라. 위조한 문서를 이용하여 학교에 들어가고, 국가가 인정하는 자격을 받았다고 하자. 문서를 위조한 것으로 인정되어 학교 입학 자격을 박탈한다면, 국가가 인정하는 자격도 잃는 것이 논리에 맞을 것이다.

균주의 출처 문제를 가지고 다투는 메디톡스의 자세에 100% 동의하지는 않지만,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많은 국내 회사가 보톡스 산업화에 달려들고 있는 기이한 현상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정말 알고 싶다.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