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12일 토요일

설악산 지게꾼 임기종 씨의 삶과 실직

무거운 짐을 지게에 싣고 설악산을 부지런히 오르내리던 임기종 씨의 삶은 언론에서 꽤 여러 차례 소개되었다. 그의 '직업'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아무리 보아도 보수에 비해서 너무나 고되고 힘든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군가에게 필요한 노동을 제공하고, 그 댓가를 받는 것은 서로의 필요성에 의해 자연적이고 자발적으로 교환 조건을 합의하여 이루어짐이 옳다. 그러나 여러 가지의 이유로 인해 '기울어진 책상'에서 합의 아닌 합의를 맺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혹은 합의조차 없이 그저 관성에 의해 과거에 해 오던 일을 계속하기도 한다.

과거 언론에서 다룬 임기종 씨의 삶은 미담 비슷하게 포장된 측면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냉장고처럼 일반인이 평지에서 몇 명 달라붙어서 옮기기에도 힘든 물건을 지게에 싣고 지팡이와 단련된 그의 몸, 그리고 수십 년의 지게꾼 생활에서 몸에 밴 탁월한 균형감각에 의존해서 위험한 산길을 타고 오른다. 무거운 짐을 지고 가다가 잠시 쉬어 갈 때에는 주변의 야생화나 들새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본다(어쩌면 이것은 프로그램 제작 의도 때문에 좋은 그림을 얻기 위해 만들어진 모습일 수도 있음 - 내 생각). 변변치 못한 수준의 품삯을 받으면서도 그는 힘들다거나 돈이 적다고 불평함이 없이 수십 년 동안 산길을 오르내렸다고 한다. 몸과 정신이 불편한 가족을 둔 그는 어찌보면 사회에서 법률로써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존재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기종 씨는 푼돈을 모아 홀몸노인이나 장애인을 돕는데 써 왔다고 한다. 그 금액이 지금까지 1억원이 넘는다.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이 더 어려운 이를 위해 도움을 주다니? 미담도 이런 미담이 없을 것이다.

조용히 살던 그가 언론에 몇 차례 소개되니 나 자신도 불편한 맘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좀 더 나은 대우를 받아야 했던 것이 아닐까? 수행을 위한 암자에 냉장고라니? 높은 산에서 관광객을 맞는 것이 아니라 수행을 위해 머무르는 것이라면 다소 불편한 생활도 기꺼이 감당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갖는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급기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나 국립공원관리공단 등에 임 씨가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르게 되었고, 결국 그는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을 확인해 보자면 임기종 씨는 국립공원관리공단과 직접 근로 계약을 맺은 사람은 아니다. 따라서 공단에 그러한 일이 부당하다고 호소함은 일단 번지수를 바르게 찾은 것은 아닌 셈이다. 그가 고용 계약서 같은 것을 쓰고 암자의 물건 배달 일을 해 왔을 것 같지는 않다. 그의 입장만으로 본다면, 그저 선의로 일을 해 왔고 품삯도 본인이 결정해 왔다고 한다. 왜냐하면 너무 많이 받으면 마음이 편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 이번 논란이 일자 그는 일자리를 잃었다. 올해 65세이니 이제 쉴 때가 되기도 했지만, 임기종 씨가 부당한 착취를 당해 온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면서 암자 측에서 부담을 느껴서 더 이상 일을 주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의문이 생긴다. 산꼭대기에 자리잡은 암자는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끊임없이 산밑에서 가져다 주지 않으면 존립이 불가능하다. 그러니 임 씨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계속 물건을 날라 주어야 한다. 그럼 그 일을 앞으로 누가 한단 말인가? 수행 차원에서 승려가 직접? 혹은 다른 지게꾼 후임자가 더 나은 보수를 받고서? 뒷말이 나오지 않을 수준의 높은 보수를 제시한다면 그것은 임 씨에게 계속 일할 기회를 주는 것이 옳다.

불교에서는 수행 정진을 하는 승려를 위해 뒷바라지를 하는 사람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것이 일반 신도이거나 혹은 사찰에 소속되어 어느 정도의 지위를 갖춘 사람이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자원 봉사 정도의 수준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외주를 주어 해결하던 암자의 짐 나르기를 이제 사찰 내부에서 자원 봉사 차원에서 실시한다? 이것은 그야말로 지구를 거꾸로 돌리는 행위나 다름이 없다. 과거에는 마땅히 해야 할 일로 여겨졌는지 모르지만, 요즘은 교회에서 신도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청소와 애찬 봉사를 하는 것도 예전과는 다르게 매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약간의 인터넷 조사와 상상만으로 고발의 글을 쓰기는 참 쉽다. 현장에 가서 조금이라도 상황을 알아보기 전에 함부로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마 임 씨나 사찰 관계자 모두 이번 일에 대해서 물어본다면 너무 시달려서 더 이상 언급하기 싫다고 손사레를 칠 것이 뻔하다.

참견하기 좋아하는 우리 모두는 어쩌면 임기종 씨가 명예롭게 은퇴할 기회마저 박탈한 것이 아닌가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 일과 관련하여 언론의 책임은 어디까지일까? 임기종 씨를 최근에 소개한 방송 프로그램인 『유 키즈 온 더 블럭』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까지 있었다.

정보, 관심, 그리고 정의감의 발동. 그것이 행동으로 옮겨질 때 어떤 댓가를 치러야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댓가가 과연 치를 만한 것이었는지 평가하는 것도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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