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5일 목요일

앰프를 부수다

보다 나은 가치를 위한 창조적 파괴? 공간 확보를 위한 부득이한 조치? 화풀이? 앰프의 제작자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든다. 7년 반 정도 사용한 진공관 앰프가 아무런 문제가 없을 수는 없다. 한쪽 채널에서 묘한 잡음이 발생하기 시작했는데, 진공관을 좌우 채널을 바꾸어 끼워도 잡음이 따라 다니지를 않는다. 심지어 새 관을 꽂아도 잡음은 그대로이다! 앰프를 엎어놓고 뚜껑을 열어 봐야 저항과 캐패시터만으로 이루어진 회로일 뿐이고, 어차피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약간의 변형 초삼결(super triode connection) 회로라서 달리 손을 쓸 수가 없었다. 터지거나 망가진 전해 캐패시터가 있는 것도 아니요, 납땜이 떨어진 곳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초삼결 회로에는 트랜지스터를 쓰는 것으로 아는데, 이 앰프의 한쪽 채널 구성은 반도체 소자 없이 12DT8 + PCL86이다.

원 제작자에게 보수를 요청하기에는 구입 후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났고, 이 무거운 것을 보내고 받는 번거로움이 있다. 차라리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싱글 앰프로 바꾸기로 하고 전원부를 제외한 회로를 전부 걷어냈다. ECL/PCL86 싱글 앰프의 회로도는 인터넷에 널려 있다. 며칠에 걸쳐서 배선 밑그림을 그려 본 다음, IC114에 필요한 부품을 주문하였다.

바깥쪽 구멍 두 개는 비워두지 말고 빈 소켓을 꽂도록 하자.
6N1+6P1 싱글 앰프도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부끄럽지만 화풀이를 좀 심하게 했다. 사실 이 앰프는 결정적인 하자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소켓 어댑터를 사서 남들은 한번씩 다 거쳐 간다는 6V6 싱글 앰프로 전환해 보겠다고 여러 차례에 걸쳐 궁리를 하였으나 그것도 그만 두기로 했던 참에 약간의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말았다.

43 앰프는 소리를 조금 더 키워 보고 싶지만 오실로스코프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서 실험을 하기가 어렵다. 

올해로 8년째, 진공관 앰프를 가지고서 소소한 즐거움을 누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50W+50W 반도체 파워 앰프가 뿜어내는 당당한 출력 앞에서 더 이상 음악적 쾌감을 느끼기가 어려웠다는 것이 솔직한 결론이다. 앞으로는 6LQ8 싱글 및 푸시풀 앰프, 그리고 오늘 쓰는 글의 주제인 PCL86 싱글 앰프를 마지막 진공관 앰프 경험으로 삼고자 한다. 헌 전선과 뜯어낸 부품으로 가득한 정크 박스도 그 크기를 줄여 나가련다. 앞으로는 음악 자체에 몰두하고 싶다.

그동안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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