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7일 월요일

[독서 기록] 인간 무리, 왜 무리지어 사는가

  • 지은이 마크 모팻(Mark W. Moffett)
  • 옮긴이 김성훈
  • 원제 The Human Swarm: How our societies arise, thrive and fall 

8월 21일자 경향신문에 신간이 소개된 것([책과 삶]인간은 어떻게 거대 사회를 유지했나)을 보고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마침 8월 24일 월요일 아침에 광화문 근처에서 회의가 열리게 되어 일부러 훨씬 일찍 광화문역에 도착한 다음, 커피 한 잔을 들고 30여분을 기다린 끝에 교보문고 매장이 9시 30분에 문을 열자마자 구입을 했다. 




코로나19가 전지구적으로 번지면서 인류는 지금까지는 다른 방식의 삶을 완전히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되었고,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지만 코로나19를 퍼뜨린 책임이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집단은 철저히 배척되기에 이르렀다. 특히 서구 사회에서 동양인에 대한 혐오가 다시 나타나고 있음은 심히 우려스럽다. 그렇다고 하여 우리 사회가 포용적이기는 한가? 타 인종에 대한 한국 사회의 배타성은 최근 샘 오취리의 SNS 논란을 예로 들지 않아도 너무나 명백하다.

인류는 어떻게 하여 이렇게 큰 집단을 이루어 살게 되었는가? 거대한 사회를 이루어 사는 개미는 서로를 개별적인 개체로 식별하지 못하면서도 어떻게 안정적이고도 역동적인 고도 사회를 유지하는가? 외부자에 대한 배척은 종종 내부 결속용으로 악용되어지고 있는데, 그 근저에 깔린 심리적 기제는 무엇일까? 이런 문제에 대한 호기심이 이 책을 빨리 사서 읽어보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활력 넘치는 사회, 혹은 정서적으로 안정된 사람이 되려면 같으면서도 달라야 한다(390쪽).

갈등이 전혀 없이 구성원의 생각이 전부 같고, 겉으로 드러나는 표식에도 차이가 없는 인간 사회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 유성 생식이라는 생물학적 원리는 결국 섞임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과학이 더욱 발달하여 자기 자신과 똑같은 유전자를 지닌 2세(이것은 클론이므로 2세라고 부르는 것도 어불성설이다)를 만드는 일이 유행이 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그리고 모험심이나 호기심에 의한 것이든, 혹은 생존에 의한 것이든(이제는 전쟁이 아니라 기후 변동에 의해 현 주거지에서는 도저히 살 수가 없어서 딴 곳으로 이동하는 난민이 생겨나는 시대이며, 팬데믹도 난민을 만들 수 있다) 끊임없이 이동하려는 인간의 속성도 결국은 외부성(foreignness)을 만드는 요인이 된다. 이를 생각하다 보면 2017년에 읽은 책(독서 기록 - 이주하는 인간, 호모 미그란스)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침팬지는 모두를 알아야 한다. 개미는 아무도 알 필요가 없다. 인간은 그냥 몇 명만 알면 된다. 그리고 이것이 그 모든 차이를 만들어냈다(102쪽).

저자는 다른 생물체의 무리 생활과 인류의 과거 역사를 들여다봄으로써 어떻게 하여 현재의 인류가 서로를 다 알지 못해도 지금처럼 큰 집단을 이루게 되었는지를 논하고 있다. 아는 개미를 제외하고는 대단히 이례적인 현상이다. 또한 '우리'가 아닌 외부 집단에 대한 인식이 내부 구성원을 단결하게 만드는 매우 자연적인 방법인 동시에, 일부 사회 리더는 이를 교묘하게 역이용하기도 하였다.

외부성은 사회 내에 다양성을 가져다주는 매우 근본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이 책의 결론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다양성은 사회적 과제를 제시함과 동시에 다양한 재능과 관점에 의해 추친되는 창조적 교환, 혁신, 문제 해결을 가져온다(585쪽).

우리는 우리가 몸담고 있는 '국가'라는 사회가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는 한 영원히 지속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사회는 불만을 제거하지 않고, 단순히 그 불만을 외부자들로 향하게 한다(586쪽). 이는 대단히 불행한 시나리오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환경에 대한 것이든 혹은 같은 인류 집단에 대한 것이든, 호모 사피엔스는 각각의 변화에 대한 손상을 최대한 줄이는 방법을 아는 유일한 생명체이다(같은 쪽).

나는 지금 일하고 있는 파견 근무지에서는 분명히 외부자이다. 그리고 계약 기간이 끝나 다시 원 직장으로 돌아가게 되면 또 일정 기간 동안은 외부자나 다름없는 적응 기간을 다시 거쳐야 할 것이다. 외부자로서 생활한다는 것은 적당한 긴장감과 만족감을 동시에 가져다주는 좋은 기회가 된다. 이러한 상황을 잘 활용하여 내가 몸담고 있었던 두 곳의 '사회'에 전부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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