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3일 월요일

SMPS 실험 끝내기

약 한 달에 걸친 SMPS 실험을 어제 날짜로 모두 마쳤다. 이번 실험의 목표는 SMPS를 사용하여 진공관 앰프의 B 전원 및 히터용 전원을 전부 공급하는 것이었다. 지난번 포스팅에서 실험을 모두 마쳤다고 하였었으나 글을 작성하던 당시에는 SMPS를 앰프 섀시 안에 넣기 전의 상황이었다. 그런데 주말을 맞아 최종 작업을 하다가 너무나 많은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모듈화된 각 기판을 연결하면서 선을 잘못 연결하였고, 이를 바로잡고 난 다음에는 출력 전압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 모든 테스트를 다 마치고 앰프 섀시에 넣는 과정에서 전혀 작동을 하지 않는 현상이 발생했으니 말 그대로 '멘탈 붕괴'에 빠지고 말았다. 핵심 부품인 반도체 소자는 정상적이었다. 그렇다면 다른 수동 소자가 망가졌단 말인가? 그래봐야 저항과 캐패시터가 전부인데, 어디가 터져 나가거나 탄 흔적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부품을 점검하느라 테스터봉을 찍고 부품을 탈착하는 과정에서 또 애꿎은 반도체 부품만 여러개 날려버렸다. 처음부터 다시 회로를 꾸며야 하는 것인가? 이제 남은 부품이 없는데? 그동안 만든 것을 전부 잡동사니 상자에 넣어버리고 잊어버릴까?

실수와 좌절로 토요일 하루를 다 보내고 말았다. 이렇게 간단한 회로 하나도 제대로 꾸미지 못한단 말인가. 한 달 동안의 노력이 고스란히 들어간 프로젝트에서 이대로 좌절할 수는 없다! 다시 스위칭 회로 기판을 들고 어디에서 문제가 생겼을지를 꼼꼼하게 확인해 보았다. 스위칭 회로의 출력과 고주파트랜스의 1차 코일을 연결하는 납땜이 영 부실해 보였다. 전날 오배선으로 인하여 발생한 전기적 충격 때문인지 고주파 트랜스쪽으로 연결된 부실한 납땜이 거의 떨어진 상태인 것을 확인하였다. 이를 단단히 납땜을 하고 도통 테스트를 한 뒤 전원을 넣어 보았다.

출력 전압이 나온다! 다행이다.

나머지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고정되지 않은 상태로 바닥면에 그냥 놓여있었던 자작 R-core 출력 트랜스도 세워서 흔들리지 않도록 확실하게 고정을 하였다.


섀시 내부에 SMPS를 넣었다. 왼쪽의 전원 트랜스들은 실직 상태가 되었다.

조립을 전부 마치고 수 시간 동안 튜너를 연결하여 음악을 들어보았다. 고주파 트랜스에서는 그다지 열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신호가 없는 상태에서 스피커에 귀를 바싹 대고 온 신경을 집중하였으나 잡음은 실질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음질은 어떠한가? 트랜스를 이용한 전원회로를 사용하였을 때보다 나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노력이 헛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이번 기회가 아니었으면 SMPS의 원리를 배울 기회가 전혀 없었을 것이다. 나를 SMPS 자작의 길로 인도하신 제이앨범의 회원 '고야'님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복습을 하는 의미에서 이번에 만든 SMPS의 실제 모습을 상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이전의 포스팅에서도 이미 소개하였었지만 내가 참조한 회로는 이미 인터넷에 널리 공개가 된 것이다(링크1, 링크2; 두 회로는 사실상 동일). 참조 회로와 내가 꾸민 SMPS가 가장 다른 점은 250 V 이상의 DC를 얻기 위해서 배전압 정류회로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위칭 동작을 위한 핵심 부품인 IR2153의 정상 동작 여부를 확인하는 회로(IR2153 칩 점검을 위한 간단한 회로)를 자작하여 사용함으로써 훨씬 일손을 덜 수 있었다.

1번 회로기판(노랑 박스)는 고야님이 직접 만들어서 보내주신 것이다.
교류 220 V가 1번 회로로 들어가면 노이즈 필터를 거친 뒤 브리지 정류를 통해 280 V 정도의 직류가 얻어진다. 이는 직렬로 연결된 저항 양단에 공급되어 반분된다. IR2153는 입력된 직류를 30 kHz 정도의 고주파로 전환하여 트랜스로 공급한다. 트랜스 2차 권선은 B 전원과 히터용 권선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히터용은 0.7 mm 에나멜선을 단 두 번 감은 것인데, 특별한 정류를 거치지 않고 고주파 그대로 사용한다. 고주파는 일반적인 디지털 멀티미터로는 정확한 전앖값을 측정할 수가 없다. 따라서 3번 정류회로 기판을 거쳐서 나온 값으로 확인하였다. 3번 정류회로에서 쓰인 다이오드는 고속회복형인 UF4007이다.

3번의 최종 정류회로는 고전압을 얻고자 약간의 꼼수를 부린 것이다. 겉모습만으로는 매우 일반적인 다이오드 브리지 정류회로에다가 고주파 노이즈를 제거하기 위한 초크 코일을 단 것에 불과하다. 이렇게 사용하려면 노랑 원으로 표시한 두 곳에 교류를 입력하면 된다. 그런데 이 중 하나(사진에서 8.2 ohm 저항이 연결된 것)와 평활용 캐패시터를 연결한 중앙에 교류를 공급하면 배전압 정류회로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정류 다이오드 중 뒤쪽의 두 개는 쓰지 않는 셈이 된다. 

약 250~280 V 수준의 높은 출력 전압이 얻어지지만 실제 싱글 엔디드 진공관 앰프에서 필요로 하는 전류는 120 mA 수준이라서 단순 계산으로 32.2 W면 충분하다. 싱글 엔디드 앰프이므로 입력 신호의 크기에 관계없이 늘 일정한 전류가 흐른다. 히터쪽에서는 역시 단순 계산으로 17 W 미만의 전력이 필요하다(교류이므로 단순히 전압과 전류를 곱해서 전력을 계산할 수는 없다). 따라서 SMPS 입장에서는 50~60 W 정도를 안정적으로 출력할 수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전원 변동에 따른 보상이나 단락에 대한 보호 등 복잡한 기능은 하나도 넣지 않은 대단히 단순한 SMPS이지만 진공관 싱글 엔디드 앰프라는 부하의 특성과 소전력만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구성만으로도 실용상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호기심, 좌절, 보람, 그리고 성취감으로 범벅이 된 지난 한 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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