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사람이 없을 때 아주 가끔 소화전함에 물건을 넣어두었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을 때가 있다. 바쁜 택배 기사들의 입장을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지만 물건이 없어진 경우 책임 소재의 문제가 따른다. 만약 나쁜 마음을 먹은 사람이 아파트에 들어와서 고층부터 소화전함을 훑으면서 한번씩 다 열어본다면 수십 대 일의 가능성으로 주인을 기다리는 물건을 훔쳐갈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수령 예정자가 소화전함에 넣어 두는 것을 동의했다고 해서 배송 기사에게 아무런 책임이 없을까?
배송기사: OO택배입니다. OOO님 지금 댁에 안계신가요?
수령인: 네, 지금 집에 없으니 소화전함에 넣어주세요.
배송기사: 그건 규정 상 안됩니다. 부재중이시면 경비실에 맡기거나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수령인: 에이, 뭐 별 일 있겠어요. 없어지면 제가 책임질테니 그냥 소화전함에 넣어주세요.
만약 이런 대화가 오갔다면 배송기사의 책임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법을 다루는 사람들의 해석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오늘 아침, 오후 5~7시 사이에 주문한 케이블이 배송될 예정이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잠시 외출하였다가 집에 돌아온 것은 3시 정도. 침대에서 졸다가 5시쯤 문자 메시지를 받았는데, "소화전"께서 인수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다른 전화 연락은 일절 받은 것이 없었고 심지어 초인종도 울리지 않았다.
우리 아파트는 지은지 오래되어서 인터폰이 고장난 곳이 대다수이다. 인터폰을 걸어보다가 받지 않았다면 최소한 집 전화나 휴대폰으로 연락을 하면 되고, 집까지 와서 문 옆의 소화전에 물건을 넣을 시간이 있었다면 차라리 초인종을 한 번만이라도 눌러보는 것이 더욱 자연스럽지 않겠는가.
인터넷으로 찾아보면 이런 경우가 워낙 많아서 특별히 불만을 표시할만한 일도 아닌 것 같고, 그냥 문 앞에 방치하고 간 것에 비하면 훨씬 나은 상황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 해도 약간은 아쉬움이 남는다. 아래 사진은 오늘 받은 물건이다. 사무실에서 USB DAC <-> (진공관 프리앰프) <-> TDA7265 앰프 사이를 연결하기 위한 15 cm짜리 짧은 케이블이다.->->
낮 시간에는 아내가 필요한 홈패션 부자재를 사러 시내 재래시장에 나갔었다. 시장 안에 있는 분식집에서 호떡을 주문하고 만들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주인 아주머니께서 허리춤으로 와플을 담은 바구니를 건드려서 이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난 떨어뜨렸으니 이건 못팔겠다고 할 줄로만 알았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 우리가 떠난 뒤 이를 모르는 다음 손님에게 판매한다고 해도 어쩔 도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주머니께서는 아주 태연하게 와플을 다시 바구니에 담았고, 새로 구운 와플과 함께 진열대에 올려놓는 것 아닌가.
글쎄, 이 광경을 전부 목도하였으니 투철한 소비자 정신에 입각해서 뭐라고 항의했어야 할까. 가장 소극적인 항의는 다음부터 이 분식점에 가지 않는 것이겠지만, 난 특별히 뭐라 하지는 않고 묵묵히 호떡을 들고 그곳을 나왔다.
약간의 아쉬움이 묻어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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